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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Jul 09. 2024

회사 동료 사망


제목은 그냥 중립적으로 썼습니다. 사망의 방식은... 자살.


자세한 경과는 안 쓰겠습니다. 저도 세부 사정은 모르구요.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뉴스에서 추상적인 수치로만 제시되던 '자살율 1위'가 제 주변에서 일어났고, 약간이나마 그 수치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강조했듯이 저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의 감정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아요.


제 스스로 만든 '가족'에 대해서는 남들 이상으로 신경쓰고 필요시 저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을 지킬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만, 그 가족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거의 배려하지 않습니다. 친척들이라 해도 비슷해요.


그리고 또한 전에도 강조했듯이 저는 이직을 많이 했습니다. 각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어요. 친해질 만큼 오랜 시간 다닌 적도 없었죠.


그래서인지... 회사 동료의 사망이 딱히 충격적이거나 하진 않네요. 내가 알고 얘기를 나눴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 정도입니다.



물론 제가 충격이 적다는 것이고, 다른 동료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같은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분들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드신 것 같네요. 울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그럴 만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 평소에 인간관계는 참 좋으신 분이었고 회사 동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셨으니까요. 회사 다닌 기간도 상당히 오래 되셨죠.


자살...까지 이르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긴 했을 겁니다. 회사 내에서 알려진 일도 있고. 제3자가 모르는 일도 있겠죠. 세부적인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사실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회사 동료였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어떠한 평가 없이 그저 사실일 뿐. 제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혹은 저 자신의 미래에서도.



오늘 하루도 일상(日常)이 될 것입니다. 좀 특이한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스쳐 지나가는 하루가 되겠죠.


- 대학 동기가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몇 년 간격으로 두 번 접했을 때,

-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재무팀장의 자살과 관련된 사건을 소송 기록으로 접했을 때,

- 지병 또는 과로 등으로 사망한 회사 동료의 얘기를 들었을 때.


그 각각의 날들처럼 '스쳐 지나가는 하루'입니다. 사라진 사람의 고민은 알 수 없고 살아 있는 사람의 고민만 각자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평범한 하루입니다.



어쩌면 허탈하고 허무하고 부질없는 인생. 이 삶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는 남기고 싶은 것을 찾았습니다. 그것도, 둘씩이나.


감정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소시오패스지만 그래도 가족을 이뤘고 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작은 기쁨입니다. 제 딸들이 점점 더 성장하고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는 게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소설. 인기는 전혀 없고 유행을 따라가지도 않으며 19금 범벅을 하지 않으면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써 나가면 은근 뿌듯합니다.



회사 동료의 사망. 그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내가 처한 상황은 달라.' 라고 약간 안도하게 되는 것.


이 또한 이기적인 행동이겠죠. 감정적으로 슬퍼하고 공감하는 것보다 내 사정을 먼저 살펴보는 게 그리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이기적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오늘도 일상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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