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사식당이 '비건데이'였습니다. 점심으로 채소만 먹었네요.
뭐, 취지가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ESG 경영이 대세긴 하죠. 제가 다니는 회사도 거래처 입장을 고려하여 적극적으로 ESG 활동에 동참하고 있고, 비건데이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취지라고 합니다. 취지에는 적극 찬성합니다.
으음...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운전을 안 합니다. 20대 30대에 고시공부를 가장한 게임폐인으로 살다 보니 운전면허를 못 땄고, 그래서 40대 후반이 되도록 아예 차 살 생각을 안 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대중교통 타고 다니죠. 프로대중교통러입니다.
또한, (운전을 안 하는 것과 일부 연관되어) 골프를 안 칩니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공으로 하는 모든 종목이 다 약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골프는 외곽지역 골프장까지 가야 되는데 시외버스 타고 골프장 갈 수는 없잖아요.
운전을 안 하다 보니 주말에 돌아다니는 반경도 상당히 좁습니다. 그나마 2년 전부터는 (참다참다 못한) 와이프가 직접 소형차를 끌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저 혼자 어디 가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갑니다.
각 개인별 에너지 사용량과 지구온난화 책임량을 따진다면, 저는 대한민국 하위 10% 안에 들 자신 있습니다. 어지간한 환경운동가 분들이나 친환경 베지터리언 분들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고기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뭐, 채식주의 주장하시는 분들이 꼭 에너지 소비량이나 환경문제만 따지시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게 좋죠. 식물의 생명권까지 따지면 너무 복잡해지니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동물 생명권 존중하면 좋긴 합니다.
그렇긴 한데... 인간은 원래 육식동물입니다. 100만년 전인지 200만년 전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깨진 돌조각을 손에 움켜쥐고 다른 짐승들 등짝을 좃아 버리기 시작했던 게 다 '사냥'을 위해서입니다. 잡식성이라 풀때기 먹어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고기 먹으려고 했던 거죠.
인간이 스스로를 가축화하면서 많은 본성을 억눌렀고 그 결과로 문명세계를 이루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고기 먹는 본성까지 억누르는 건 쉽지 않죠. 문명화되었다고 해서 잠을 안 자는 건 아니듯이 고기를 피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얼마 전 '나는 북극곰입니다' 광고에 나온 모 배우가 골프를 매우매우 좋아한다는 걸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북극곰을 걱정하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데 비행기로 해외여행 다니고 고오급 대형차 타고 골프장에서 멋진 드라이브샷. 캬, 좋죠.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동물입니다. '본성을 억누르고 문명화했다'는 것부터가 모순의 시작이었고 사회가 커지면서 그 모순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 모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긴 하겠죠. 친환경 외치면서 대형차 타는 모순, 싸이 흠뻑쇼에 가뭄 걱정하면서 골프장 잔디 키우는 데에 몇만톤의 물을 소모하는 모순, 환경보호 회의를 하겠답시고 전 세계 곳곳에서 전세기와 전용기를 동원해 수천톤의 항공유를 태우는 모순. 다 조금씩 줄여야겠죠.
'모순총량제'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각각의 인간들에게 일정 포인트를 주고 내로남불 모순행위를 할 때마다 포인트를 차감해 0점이 되면 일시적으로 사회활동을 멈춰 버리는 제도 같은 거죠. 그러면 저 같은 사람들은 비건데이 신경 안 쓰고 고기 먹을 수 있을 텐데요^^;;
점심에 풀때기만 먹었더니 살짝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봅니다. 헛소리는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