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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Sep 10. 2024

사냥 중 최고는 인간 사냥 : 합법적인 인간 사냥


1. 서론


"사냥 중에 최고는 인간을 사냥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무장한 인간을 사냥하고 또 그걸 즐겨 온 사람은 다른 어떤 즐거움도 누릴 수 없게 된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헤밍웨이가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언급했다는 말입니다. 게임/영화 등에서 계속 재인용되면서 더 유명해졌죠.


이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는 아마 '프레데터(Predator)'일 것입니다. 인간보다 몇 배 더 강하고 우주항해기술까지 갖춘 전투생물들이 인간 중 최상위 학살자들을 모아놓고 사냥한다는 주제. '인간 사냥'이라는 말에 딱 맞습니다.


뭐, 현실에서 무기를 들고 인간을 사냥할 수는 없죠. 가끔 그런 짓 하는 광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러다가 38구경 리볼버 총알 맛을 보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무기징역을 살게 될 거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무기를 든 사냥'이 아닌 '합법적인 사냥'이라면? 범죄자들을 타겟으로 하여 국가권력 내지 그에 준하는 권력을 활용해 사냥하는 거라면?


목차 정리 없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기존 창작물에서 다룬 방식들을 살펴보고, 현실의 이야기를 논해 보도록 하죠.



2. 본론


(1) 닥터 모로의 DNA


되게 오래된 (20세기 말) 영화인데요. 발 킬머가 날씬한 젊은 시절 몸매로 나오는 영화 중에 '닥터 모로의 DN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자체는 상업적으로 실패한 것 같지만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닥터 모로는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인데, 유전자 조작을 아주 쉽게 해냅니다. 그것도 '인간을 기반으로 한 유전자 조작'을 해 버립니다. 쥬라기공원 시리즈의 닥터 우 정도는 쨉도 안 되죠.


닥터 모로는 자신의 유전자 기술로 탄생시킨 반인반수 생물들을 데리고 어느 섬에서 신(神)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개, 늑대, 하이에나, 표범 등등과 혼합된 생물들은 모로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죠.


이 반인반수 생물들이 모로에게 충성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고통(Pain) 입니다.


모로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전기충격 장치를 삽입해 놓았습니다. 모로의 명령을 거부하려 하면 피조물 내부에서 전기충격기가 작동해 어마무시한 고통을 선사해 주죠. 너무 고통스러워서 모로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꿈꾸며 탈출하는 피조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탈출한 존재들을 추적하는 '사냥개 헌터 유닛'이 있죠.



인간 유전자에 사냥개 유전자를 섞어 만들어진 존재들. 이들은 평소에 닥터 모로의 집사로서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하는데, 탈출한 피조물이 있으면 그 때부터 헌터(Hunter)로 바뀝니다. 총칼로 무장하고 탈주자들을 추적하죠.


이 때 사냥개 헌터 역할을 하는 배우의 연기가 꽤 인상적인데요. 인간 형상에 개 분장을 한 배우가 차갑게 웃으며 총을 준비하는데, 그러면서 닥터 모로에게 짧게 질문합니다. "사냥입니까 주인님?"


인간 사냥의 즐거움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대략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기억나네요.



(2) 일본 만화 '지뢰진'


묻지마 반일 하시는 분들은 '일본 만화'라고 쓰면 싫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 분들 중에서 상당수는 슬램덩크 드래곤볼 원피스 기타등등 만화를 봤을 것 같긴 합니다만 대외적으로는 어떤 주장을 할지 알 수 없죠. 그건 각자 알아서 하시고.


제가 좋아하는 만화 중 하나가 '지뢰진'입니다. 키 크고 비쩍 마르고 감정이 거의 없는 소시오패스 형사가 범죄자들을 개 돼지 가재 붕어처럼 때려잡는 내용이죠.


이 주인공 형사는 본인이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형사가 되지 않았으면 범죄자가 되었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나 범죄자나 똑같이 미친놈이고 폭력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그런 주인공의 결론은... '알빠노?' 입니다. 형사나 범죄자나 똑같은 놈들이지만 서로의 입장에 따라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것 뿐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는 계속 사냥을 이어 가죠.


지뢰진의 전투 장면이나 사건 해결 패턴은 거의 다 비슷비슷해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대사 하나는 기억납니다. 주인공 형사가 범죄조직 꼬붕을 설득해서 윗선을 불도록 하는 대사인데요.


"이쪽은 국가권력이야."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권총을 지급받아 범죄자들 머리에 탕탕 후루후루 시전해 주는 소시오패스 주인공. 남자의 로망(!)... 일까요?



(3) 합법적인 사냥


앞에서 작품 얘기를 몇 개 했는데, 현실에서도 범죄자를 사냥하는 직업이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국가권력을 부여받아 범죄자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직업이 있죠. 형사, 검사 등 수사기관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법률지식과 돈이 있으면 그 수사기관을 앞세워 범죄자들을 잡아 족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법률지식과 돈이 없어도 수사기관에 의뢰하면 수사를 해 줘야 하지만... 뭐 현실은 좀 다르죠.


이 '현실의 합법적인 사냥'은 영화/만화의 드라마틱한 사냥과 다르지만, 막상 잡히는 범죄자 입장에서는 꽤 고통스럽습니다. 징역은 13579로 띄엄띄엄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인권이 강조되면서 예전처럼 국가권력을 이용한 사형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징역형과 구속제도만으로도 상당히 쭐리긴 합니다. (타짜 대사처럼) 쭐린다고 뒈질 건 아니지만 아무튼 당하는 쪽에서는 국가권력으로 체포하고 징역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꽤 무섭습니다.


이걸 직접 수행한다면... 꽤 재밌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저는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회사원으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았고, 지금도 그저 회사원에 불과합니다.


또한, 저는 대학 때 법을 배우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슨 변호사/법무사/노무사 등 법률 관련 자격증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대학 때 법 배우는 게 상당히 싫어서 졸업 학점 2.0도 간신히 맞췄었죠. 법학은 저랑 영 안 맞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가끔. 아주 가끔. 정말 가끔.


범죄자를 형사고소해서 인생 망가뜨리는 게 재밌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 한 명의 나머지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걸 매우 즐겁게 느끼는 날이 있습니다.


회사에 대해 횡령-배임 등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고 그 인간이 곧 죽을 듯 괴로워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이걸 제 돈으로 하지는 않죠. 돈은 회사가 냅니다. 변호사를 사고 경찰-검찰 조사를 의뢰하고 그 일을 담당한 저에게 월급을 주는 건 '회사'입니다.


회사 돈으로 범죄자를 조지는 것. 이거 은근 재밌습니다. 헤밍웨이가 말한 '인간 사냥'을 아주 살짝 맛뵈기로 경험해 보는 느낌입니다.


제가 소시오패스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죠. 뭐, 인정합니다. 저는 소시오패스 맞습니다. 드라마 셜록홈즈의 주인공처럼 고기능 소시오패스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일반인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소시오패스이긴 합니다.



최근에 '회사 돈으로 합법적인 인간 사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실제 시행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런 상황입니다.


사냥이 시작되면 끝장을 봐야겠죠. 당하는 범죄자가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을 만큼 혹독하게 몰아쳐야 합니다. 그 고통은 알빠노.


뭐, 극한 대립 없이 잘 끝나면 다행일 겁니다. 그러면 여러 직장동료들이 안심하겠죠.


아니면 사냥 시작입니다. 법률에 회사 돈을 결합하여 국가권력으로 사람을 잡아 족치는 사냥.



언젠가 이것도 소설 내용으로 반영되겠죠.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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