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대략 2024년 12월부터 쓰다가 중간에 추가로 더 쓴 글입니다. 연재 시점 기준으로는 대략 6개월 전이네요. 참고해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서론
다른 글에서 자주 언급했듯이, 저는 19금 웹소설을 주력으로 하는 하꼬작가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집필시간 기준으로 최저임금 1/5도 안 되는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유일하게 최저임금 수준을 넘긴 작품은 등장인물 상당수가 만19세 안 되는 가상의 글자소년소녀들이죠(다른 말로 '미성년물'이라고 합니다;;). 또 대부분의 작품에서 강도 높은 폭력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설에서는 극한의 폭력과 성애묘사를 추구(!)하고 또 제 성격 자체가 상당히 소시오패스 성향을 갖고 있지만... 현실의 저는 매우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또 매우 잘 살고 있기도 합니다. 35살 당시의 저에 비하면 환골탈태 수준으로 발전해서 잘 살고 있죠.
현실의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결국 '자식'인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잘 크고 건강하고 하루하루 즐거워하면 그게 행복이죠.
물론 그게 가능하려면 일단 부모가 화목해야 합니다. 부부 둘이서 살던 시절을 넘어서서 '신뢰와 상호 존중'이 갖춰져야 하고,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겠죠. 자식들에 대한 애정은 굳이 끌어낼 필요 없이도 넘쳐나는 거라 강조할 필요 없겠지만 그 애정이 '부모의 대리만족'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계속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뭐, 늘 잘 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화 낼 때도 있고 자식들이 어긋날 때도 있죠.
하지만 가족 내부적으로 신뢰가 있고 부모가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 준다면 결국에는 모두 돌아옵니다. 잠시 몇 달 ~ 몇 년 힘든 시간이 있겠지만 결국에는 다시 신뢰로 돌아옵니다. 외부의 큰 사고가 아니라 가족 내부의 문제라면 결국 해결 가능하고 극복 가능합니다.
서설이 길었네요. 다시 제목에 쓴 내용으로 돌아오면...
이미 다른 글에 썼듯이, 저희 큰딸이 중1인데 소설을 조금씩 쓰고 있습니다(이 글을 업로드 하는 시점에서는 중2입니다).
한 번 시켜봤더니 잘 쓰더군요. 중요한 장면에서 감정표현도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웹소설에서 중요한) '분량'이 나옵니다. 본인이 몰입하면 하루 2만자 정도까지는 써 낼 수 있는 것 같고, 아직 중학생이니 나이가 더 들면 하루에 최대 4~5만자 분량은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딸아이와 소설쓰기 관련된 토론을 가끔 하곤 합니다. 뭐 제가 무슨 대단한 자격을 갖춘 건 아니니 딸아이를 가르친다고 할 수는 없고 '대등한 (하꼬)작가 사이에서의 토론'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제 나이가 반백살이다 보니 중학생 딸아이보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딸아이와 토론하면서 늘어놓았던 얘기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처럼 직업이 있으면서 취미로 웹소설 쓰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1) 개연성 확보 (핍진성 포함)
(2) 경험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은 작가의 특권
- 전원일기 연기자 사례
(3) 작가는 자기 작품의 신(神) : 신은 피조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4) 취미로 쓰지만 상업적 관점도 갖고 있으면 좋음 : 프로페셔널 정신
(5) 평생 글 쓴다는 생각으로
순서로 서술하겠습니다.
2. 본론
(1) 개연성 확보 (핍진성 포함)
저는 '핍진성'이라는 말을 웹소설 쓰고 난 뒤에 들었습니다. 대략 5년 전이니까 45살 때 알아본 거네요.
지금도 핍진성이 뭔지 정확히 구분하진 못합니다. '작가 본인이 설정한 세계관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세계관과 연결되지 않는 전개는 자제하자.'는 정도인데, 뭐 딱히 개연성과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소위 말하는 [뇌절 급발진]을 피하고 말이 되게 쓰자 정도의 개념으로 퉁쳐서 이해해도 충분할 듯 합니다.
개연성. 소설은 '그럴 듯 한 전개'를 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우연한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만 소설에서는 우연한 사고로 급전개하는 걸 최대한 자제해야 해요. 아예 뇌절 급발진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영역이라면 시작 단계에서는 급발진해도 되겠지만 그 이후 구체적인 내용 진행 과정에서는 급발진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최근에 대유행한 테마로 [환생트럭]이 있습니다. 이상한 마법의 힘을 가진 환생트럭이 미친듯이 달려와 히밤쾅! 들이받으면 주인공이 환생하면서 신비로운 세계로 넘어간다는 설정이죠.
이 환생트럭 설정 자체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1화에서 환생트럭이 등장한다고 해서 '아 놔 이 작품 개연성 없네. 핍진성도 없어. 현실에 없는 환생트럭 왜 자꾸 등장시키는 거야?' 라고 생각하시는 독자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적어도 웹소설 트렌드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면 환생트럭 자체를 보고 개연성이 없다고 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매우 심각한 현실 기업물이나 정치물로 마법 같은 거 싹 배제하고 달리다가 갑자기 100화 쯤에 환생트럭 히밤쾅 전개를 한다면?
이건 핍진성 오류죠. 작품이 '현실 기반'이라면 갑자기 마법 출현시키면 안 됩니다. 중간에 마법을 출현시키고 싶다면 최소한 앞쪽에서 '현실 기반이라도 나중에는 마법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암시해 줘야 합니다.
핍진성 오류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연성'은 늘 신경써야 합니다. A가 B를 미친 듯이 증오하다가 갑자기 사랑하는 감정이 싹터서 알콩달콩 로맨스로 급발진(!)한다면 그럴 만한 계기가 있어야 하고, 세계정복 가능한 영웅이 어느 날 모든 걸 내려놓고 시골마을에서 농사 짓겠다고 하면 여기도 그럴 만한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개연성을 잘 챙기려면 '비축분'을 적절히 쌓아 두는 게 좋습니다. 2~3화 뒤에 나올 내용을 미리 예측해서 앞에 몇 줄 슬쩍 흘려 두는 거죠. 혹은 뒤에 나올 내용부터 써 놓고 다시 몇 화 앞에 그 내용과 관련된 암시를 추가할 수도 있구요.
당일치기 연재를 하다 보면 앞으로 전개할 내용이 막막해질 때가 있고 그럴 때에는 앞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개연성이 급하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개연성 있는 전개에 별 관심없는 독자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짧게 읽는 트렌드에서는 개연성 챙기는 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해요. 작가가 기껏 암시해 놔도 독자 분들이 기억 못하시면 말짱 꽝이거든요.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가급적 개연성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취미 작가의 특권이 '판매수익에 연연해하지 않는다'인 건데, 좀 덜 팔리더라도 나중에 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겠죠. 그걸 위해서라도 개연성을 지키고 싶긴 하네요.
(2) 경험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은 작가의 특권
- 전원일기 연기자 사례
제 딸아이가 처음 소설 쓸 때 한 얘기가 있습니다. "나 아직 중학생인데 어른들 이야기를 어떻게 써?" 라고 하더군요.
당시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톨킨 교수가 판타지 세상에 다녀와서 '반지의 제왕' 쓴 건 아니잖아. 조앤 롤링도 어디 호그와트 마법학교 다닌 다음에 '해리 포터'를 쓴 게 아니야. 경험 안 한 일을 상상해서 쓰는 게 작가의 특권이야." 라고.
그럼 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마법세상을 상상하는 거랑 현실세계를 상상하는 건 다르지. 마법은 어차피 상상인 거 다 알지만 현실은 괜히 상상력 발휘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여기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현실도 상상할 수 있어. 당장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을 봐. 저 사람들도 다 상상해서 연기하는 거야. 그런데 엄청 잘하잖아. 작가도 똑같아".
이 얘기를 할 때쯤에 마침 저희 와이프가 '전원일기'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종영한 지 20년은 된 옛날 드라마가 뭐 재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즐겨 보긴 하더군요.
제가 딸아이에게 예시를 들었습니다.
"저기 전원일기에 '일용엄니' 나오지? 저 분이 처음 배역 맡았을 때 30살이었대. 완전 젊은 나이에 할머니 배역 맡았는데 실제로 할머니 될 때까지 그 배역을 그대로 한 거야. 작가도 중학생 나이에 할머니 심정을 상상하고 글로 쓸 수 있어. 그게 작가의 특권이야."
(일용엄니 역할을 하셨던 김수미 배우님은 작고하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0살 초반에 60먹은 할머니 연기를 하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의 특권입니다. 김수미 배우님은 탁월한 재능과 열정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했고 그 배역 하나로 한국 방송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우리 작가도 마찬가집니다.
20대 젊은이였던 빅토르 위고는 '등이 굽고 한쪽 눈이 안 보이지만 힘은 천하장사인 곱추 콰지모도'를 창조해 냈고, 오랜 시간이 지나 70대가 된 때에는 '은그릇을 도둑맞았으면 나무그릇을 쓰면 됩니다.' 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그 도둑이 잡혀 왔을 때에는 '은촛대도 선물로 줬는데 왜 안 가져갔소? 이것도 가져가시오.'라고 말하는 '고결한 주교님'을 창조했습니다. 위고 본인이 본 적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인류 문학사에 각인시켰습니다.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그 모티브가 된 어부가 있긴 하죠. 하지만 해밍웨이 소설 속 노인은 모티브가 된 어부를 뛰어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패배하지 않는 인간,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인간을 '하얀 머리에 달관한 듯한 눈빛의 노인'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작가에게 상상력은 특권입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이고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선물입니다.
때로는 그게 작가를 괴롭히기도 하죠. MZ세대 용어로 '1화 빌런'인 작가들은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상상력 좋은 작가들도 대부분 글럼프를 겪게 되구요.
하지만 이미 세상에 글을 냈다면 계속 상상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특권, 그 특권을 계속 누려 가야 합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제 딸아이도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3) 작가는 자기 작품의 신(神) : 신은 피조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작가는 자기 작품의 신입니다. 기독교의 인격화된 신이 6일 만에 온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에 쉰 것처럼, 각각의 작가는 자기 작품을 창조하고 나서 마음대로 쉽니다. 기독교의 신보다 더 오래 아주 그냥 한평생 쉴 수도 있죠;;
쉬는 건 작가의 마음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작품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일단 한 작품의 큰 틀을 설정하고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배치한 뒤 이들을 '사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장 확실하게 책임지는 것은 역시 완결(完結)입니다. 완전하게 결말을 맺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스스로 작가(作家)라는 말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매출 12원인 하꼬작가라도 일단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른다면.
그 작가는 본인 작품의 신(神)이고 그 피조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 낸 인물들이 중요한 사건을 (좋게든 나쁘게든) 해결할 수 있게 끝까지 챙겨 줘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세상은 무한한 평행우주가 중복적으로 겹쳐져 있는 거야. 이 평행우주는 각 차원에서는 끝없이 넓은 우주지만, 무한한 전체 범위에서는 그저 태평양의 물방울처럼 생겼다 사라지곤 하지.
우리 인간들이 상상하는 건 결국 다른 평행우주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살짝 비춰 보는 것 뿐이다. 플라톤이 '이데아와 동굴 이론'에서 얘기했듯이 우리의 창조적인 상상력이라는 게 결국 다른 평행우주의 사건들을 동굴 그림자에 비춰 보는 것일 수 있어.
혹은... 반대일 수도 있지.
어쩌면 우리 작가들이 상상하는 것들이 다른 평행우주를 창조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할 때마다 다른 차원 어딘가에서는 물방울처럼 평행우주가 부풀어 올라서 새로운 우주로 자라나는 것 아닐까?
만약에 그런 거라면. 내 상상력만으로 새로운 평행우주가 만들어지는 거라면.
나는 내가 만든 세상을 잘 이끌어 갈 책임이 있어. 내가 만들어 낸 평행우주가 어설프게 중단되는 건 바라지 않아. 가급적이면 예쁘고 깔끔한 물방울이 되어야지 거품처럼 뻥 터져버리면 안 돼.
제대로 된 평행우주를 만들자. 오로지 내 상상력만으로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 거야.]
막상 써 놓고 보니까 허황되긴 하네요;; 아무튼 자신이 창조해 낸 세상에 책임을 지는 게 좋습니다. 그런 게 작가의 본질입니다.
(4) 취미로 쓰지만 상업적 관점도 갖고 있으면 좋음 : 프로페셔널 정신
이 글을 시작하던 시점에는 아직 딸애의 소설이 유료판매 매출을 올리지 못했었습니다만, 보완하는 단계에서는 매출 24원을 올렸습니다. 특정 웹소설 사이트의 유료회원 분이 제 딸애의 소설을 읽어 주신 거죠. 그것도, 두 편 씩이나.
딸애가 꽤 기뻐했습니다. 어른이었으면 '에게 겨우 24원?' 이라고 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 스스로 돈 번 적이 없는 중학생에게는 무척 기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필 받아서 현재 준비중인 작품을 하루에 4편씩 써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도 기쁘긴 했죠. 하지만 반백살을 산 입장에서 '기쁠 때일수록 자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장기적으로 진짜 오래 가려면 지금부터 마인드셋팅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 단 1원이라도 소설로 돈을 벌었으면 그때부터는 '프로'인 거야. 이제 프로가 됐으니 프로답게 소설 쓰자."
프로페셔널 정신. 뭐가 있을까요?
앞에서 말한 '책임감'이 첫번째일 겁니다. 어떤 작품을 쓰든, 중간에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무조건 완결을 내고 자기가 창조한 세상에 책임을 지는 것. 조회수가 0이 되든 하루 수입이 0원인 상황이 한 달 넘게 지속되든 상관없이 무조건 완결까지 가는 것. 그게 기본입니다.
두 번째로 '웹소설 시장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입니다. 웹소설이 '열등재'라는 걸 인정하고 그 열등재 시장에서 어떤 작품을 팔아먹을지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웹소설은 열등재입니다. (열등재라는 말 자체가 살짝 기분 나쁘게 들리긴 하지만) '대중문화 전체 관점'에서 볼 때 웹소설은 확연하게 열등재입니다. 뮤지컬, 연극 등 1회 시청에 몇십만원 들이는 콘텐츠 /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몇천~몇만원 들이는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고, 만화나 웹툰과도 경쟁해야 합니다. 직관성 및 접근편이성 측면에서 웹소설은 다른 대체 콘텐츠에 비해 확실히 딸리죠.
하지만, 그렇게 열등재인 만큼 웹소설의 고유의 장점도 있습니다. 닭고기는 원래 미국 땅에서 노예들이 먹는 음식이었고 한국 한정으로도 투뿔등급 한우에 비해 열등재인 건 맞지만 교촌+BHC+BBQ 3대장 중심의 치느님 문화만 보면 헬조선을 지배하는 것처럼, 웹소설도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고유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탁월한 접근성과 확장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웹소설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창작접근성'이 매우 높습니다. 웹툰만 해도 최소 2~3년 이상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 연극이나 뮤지컬은 아예 인생을 다 바쳐야 하는 반면, 웹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이용자 접근성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창작자의 접근성이 가장 높죠.
그리고 웹소설은 확장성이 좋습니다. 웹툰,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변형 확대 가능하고 그럴 경우 원작인 웹소설이 다시 뜨기도 하죠. 한 작품이 뜨면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이 덩달아 뜨기도 하구요.
웹소설로 단숨에 대박을 낼 필요는 없고 그렇게 하기도 어렵습니다. 대신 오래오래 쓸 수 있고 남는 시간에 조금씩 써도 충분합니다. 게임할 시간에 하루 1시간만 글을 써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쓰되, 일단 유료작가가 되었다면 무조건 완결하는 것. 그게 프로페셔널(Professional)입니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중학생도 프로 소설가입니다.
(5) 평생 글 쓴다는 생각으로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나이 44살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나마 월 10만원 넘는 수익을 낸 건 45살이 된 이후였습니다. 거의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할 만한 시기에 하꼬작가 겸업을 시작한 거죠.
반면 제 딸아이는 한국나이 14살에 시작했고 15살(중2)에 첫 유료수익을 올렸습니다. 월 10만원을 넘기려면 몇 년 더 걸리겠지만 그것도 제 나이에 비하면 훨씬 젊은 때겠죠.
이렇게 빨리 시작하면 젊음 그 자체가 무기입니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은 꼭 연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죠.
물론 어릴 때 시작했다고 해서 다 잘되는 건 아닙니다. Hell조선의 조기교육 광풍에서는 너무 어릴 때 주입식 교육에 찌들었다가 중고딩 때 폭망하는 경우도 많아요. 다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조기교육 폭망' 사례는 전국적으로 매우 많습니다.
다만, 제 딸아이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 쓰기'를 '자발적으로' 시작했다면 주입식 조기교육처럼 어릴 때 폭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겠죠. 오히려 한평생 취미로 삼고서 하루하루 역량을 쌓아 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제 딸이 저를 뛰어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5년 넘게 글 썼는데 아직 월백킥(월 100만원) 한 번 찍어본 적이 없고 월 75만원이 최대 수익이었던 반백살 하꼬작가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을 겁니다.
뭐... 한강 작가님 정도로 되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순수문학의 영역에 뛰어들어 그걸 직업으로 삼길 바라지도 않구요.
그저 '평생의 취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게임하고 드라마 볼 시간에 하루 1시간 정도 들여서 소소하게 취미활동 하고 그걸로 용돈 좀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죠. 아버지로서 딸아이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