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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조작하는 민족에게는 현재도 없다 (중)

독립군과 광복군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by 테서스

(앞 글에 이어서 씁니다.)


(3) 공산주의 아래에서 '독립'은 의미 없다


1) 소확행 : 소비에트인민공화국의 확장주의적 행보


16세의 봉제공 엠마 루이스가 지방예심판사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요구받았다

왜 혁명을 선동하는 삐라를 뿌렸느냐고 그 이유를 대라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을

지방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저지하려 하자

그녀는 매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브레히트가 쓴 시 중 일부라고 합니다. 노래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을 부르기 전에 아지테이션 식으로 읊어 주기도 하죠. 이 아지테이션이 끝나면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로 노래가 시작됩니다.



잠시 `90년대 학생운동의 단상을 떠올렸습니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20년대 중후반 ~ 30년대까지의 조선독립군 행보를 되짚어 보도록 하죠.


앞에서 썼듯이, 일본군이 만주를 집어삼키는 상황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지 못한 독립군은 흩어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신생 공산주의국가 러시아'는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았죠. 아직 미약해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중국공산당이나 조선독립에 관심 없는 중국국민당 쪽보다는 훨씬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레닌이 이끄는 공산주의 러시아는 처음부터 '인터내셔널'을 지향했습니다. 즉, 각각의 국가와 민족은 의미가 없고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의 모든 인민들이 능력껏 생산하고 취향대로 소비하는 세상이 올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전 세계의 국가권력이 하나로 통합되어 단일 정부가 될 것이라는 거대한 야망(!)을 갖고 있었죠.


러시아는 인근 국가들을 통합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되었고 계속 확장해 갔습니다. 소련에게 중요한 건 개별 국가의 독립이 아니었어요. 전 세계를 공산주의로 계몽(!)하려는 그들 앞에서 동아시아 끝자락 반도국의 독립은 그저 '따위'에 불과했습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는 '조선독립군'이라는 무장세력을 별도로 지원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예 해체하고 러시아군(소련군)으로 편입시키는 게 당연했죠.


러시아로 합류하려고 했던 조선독립군에게는 꽤 황당했을 겁니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잘 모르고 그저 '도와 준다'는 말만 믿고 러시아로 향했던 독립군들이라면 더더욱 황당했겠죠.


일부 독립군이 무장해제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조선독립군을 앞세워 강제로 무장해제를 해 버리죠. 이게 '자유시 참변'입니다.



저는 역사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유시 참변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정리할 능력은 없습니다. 독립군이 독립군과 싸우고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이 어떠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 사이에서는 매우 깊은 원한이 남았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장해제 당한 쪽은 상대방을 일본보다 더 깊게 증오했겠죠.


이 증오의 부작용이 나중에 현실화됩니다. 홍범도 장군을 죽이려고 한 저격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자유시 참변과 그 이후 사건까지 정리하는 건 역사전문가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일반인 수준에서 '다른 공산주의 세력'으로 눈을 돌려 보겠습니다.



2) 그럼 중국공산당은? 여기도 인터내셔널


1920년대에는 소련 쪽만 개별국가의 무장독립투쟁을 지원했었으나, 30년대로 넘어가면서 중국공산당도 인근 국가들의 무장독립투쟁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소련과 동일하게 '인터내셔널'을 목표로 다양한 세력을 끌어들이게 되죠.


30년대에 만주 및 중국으로 넘어간 조선인 투사들은 중국공산당 쪽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세력은 여전히 변두리(...) 국가들의 독립투쟁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미국 영국 프랑스는 당연히 아웃오브안중이었고.


그리고, 조선이 망할 때 고좆임금이 벌여 놓은 난장판을 기억하고 있는 조선인 투사들에게 [독립이 낫냐 / 인터내셔널이 낫냐. 둘 중 하나 선택해.] 라고 한다면...


당연히 90% 이상은 인터내셔널을 선택할 겁니다. 동아시아 끝자락 반도의 땅에서 군인 월급을 삥땅치다가 썩은 쌀과 모래로 지급하던 병림픽 임금 따위 섬기고 싶지 않겠죠. 개별적으로 독립해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소련이나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지원을 받으려면 '인터내셔널'의 대의(大義)에 동참해야만 했습니다.


조선의 독립투사들은 중국공산당에 합류하면서 '팔로군'이 되었습니다. 팔로군의 일원으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면서 백전노장 베테랑이 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대거 북한으로 유입되었죠.


이 팔로군 소속 조선인들을 '독립군'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름(...직설적으로 말하면 '빨갱이')로 불러야 할까요?


평가는 각자에게 맡깁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는 건 '숫자'예요.



전에 잠시 언급했듯이, 대한민국은 한국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뒀지만 막상 교과서를 보면 불리한 부분의 숫자를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살수대첩에서는 '수나라 총 병력 113만, 별동대 30만이었는데 을지문덕 장군이 별동대 30만을 다 털어버렸고 겨우 수천명만 살아서 돌아갔다'고 숫자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반면 /

임진왜란 때에 와키자가 야스하루가 이끄는 1600명의 보병이 삼도근왕군 5만명을 상대로 닥돌하여 다 흩어 버린 용인전투에 대해서는 아예 전장 이름도 언급 안 하죠. 뭐 대충 그러합니다.


이 숫자 미언급 습관은 '팔로군 소속 조선인'에 대해서도 적용됩니다. 제가 중고딩일 때 국사교과서에서는 아예 조선인 출신 팔로군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기도 했죠. 고딩 때 봤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잠시 다뤘을 뿐입니다.


뭐, 국가검정 교과서에서 언급해 주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봐야겠죠. 대략 27년 전(...)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봤을 때 제가 기억하는 숫자는 '4만명'이었습니다. 최근에 이 글 쓰면서 다시 인터넷으로 찾아본 바로는 '최소 1만명 이상'이었다고 하네요.



조선인인데 중국공산당 팔로군에서 군인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최소 1만 ~ 최대 4만. 저희가 교과서에서 배운 20년대 초반 독립군의 병력이 3500명 정도였는데, 팔로군 소속 조선인이 최대 4만 명이었습니다. 그러했습니다.


다만... 이들은 1945년 이후 대부분 북한으로 넘어갔죠. 그리고 6.25에서는... '빨갱이 북한군'으로 활약했습니다.



(4) 그러나 반일(反日) 무장투쟁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20년대에 소련으로 넘어갔다가 무장해제되고 소련의 인민으로 살아갔던 사람들.

30년대 이후에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중국공산당 소속 팔로군의 일원이 되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기여하다가 45년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군이 된 사람들.


이들을 '독립군'이라 불러야 할까요?


혹은 이들 전부를 독립군이라 부를 수 없다면, 어디까지 / 누구까지 독립군으로 인정해 줘야 할까요?


일본에 맞서 무장투쟁을 한 건 명확한 사실인데, 이 사실을 어디까지 / 누구까지 교과서에 반영하고 후대에게 알려 줘야 할까요?


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구요. 객관적인 팩트(Fact)만 제시하고 최종 판단은 각 개인이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민주국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20년 초반에 조선독립군의 이름으로 싸운 분들은 독립군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년대 이후 중국 팔로군이 되었다가 북한군으로 유입된 사람들은 '독립'과 무관했고 또 6.25 전쟁에 책임이 있으니 여기까지 독립군으로 부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1920년대 초반에 독립군으로 싸웠다면 이후에 해산되고 소련인민이 되었다 하더라도 독립군이었던 사실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독립군'의 호칭을 붙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망국의 후예로서 반일 무장투쟁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존중은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6.25 전쟁에 참여해 동족을 죽인 건 명백한 실수지만, 그 전에 자기 한 목숨을 걸고 일본과 싸운 용기는 충분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판단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쓰겠습니다. 일단 '광복군'에 대해 살펴보죠.



(5) 광복군도 중요하지만... 숫자가 부족한 건 인정하자


뭔가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숫자를 생략하는 습관이 있는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 그 교과서로 배울 때에는 '광복군이 큰 활약을 하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일본이 망하는 바람에 못 했다.'는 취지로 서술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광복군 숫자는 안 나왔구요.


대학생이 되고 나서 숫자를 확인했습니다. 아마 용산전쟁기념관에서 봤던 것 같은데요. 대략 명단의 가로줄*세로줄 해서 계산했었는데... 약 400명.


음? 4만명도 아니고 4천명도 아니고 4백명? 1개 대대 병력 수준이잖아? 이걸로 무슨 활약을 하려고 했던 거지?


이후에 다시 찾아봐도 1000명 미만으로 나옵니다. 해방 이후 '다카기 마사오'를 비롯한 만주일본군(관동군) 소속 장교들이 물타기 시전하면서 광복군에 이름 올렸고 그러면서 3천명 수준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그건 솔직히 빼는 게 맞을 것 같고, 1945년 기준으로는 최대 700명 정도였던 것 같아요.


중국공산당 소속 팔로군 출신 조선인은 최소 1만 ~ 최대 4만.

반면 남쪽 대한민국 국군의 근본이라는 광복군은 대략 4백~ 7백.


그러합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근본은 '한줌단'이었습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에 합류한 반일무장투쟁 공산주의자들의 숫자에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역사를 조작하는 민족에게는 현재도 없습니다. 일부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묵인하는 것 또한 '조작'의 범주에 들어가겠죠.


그리스 신화에서 거짓말의 달인이자 사기협잡도둑질의 신인 '헤르메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제우스 아버님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진실의 일부를 말씀드리지 않는 경우는 있겠죠."


대한민국 광복군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를 밝히지 않는 건 헤르메스와 비슷한 짓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일부만 언급하고 나머지를 은폐하는 짓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장제스 국민당 및 미국과 연계하여 양성했다는 정예강병 광복군. 이 군대를 창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신 분들의 노고는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숫자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큰 활약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병력이었습니다.


그게 현실이고 팩트(Fact)입니다.



팩트를 정리하면서 말이 길어졌네요. 여기서 끊고 다음 '하' 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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