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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성장 전용 추가사업의 명(明)과 암(暗) (3)

by 테서스

(앞 편에 이어서 씁니다.)


4. 폭풍성장의 중심이라고 나대나대 나댔던 기업사업. 그 현실은...


커뮤니티 지역콘텐츠, 티빙, 알뜰폰 모두 문제가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기업사업'에서 터졌었습니다. CJ헬로비전을 들썩들썩하게 만들었던 크리티컬한 치명타는 기업사업 쪽으로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유선방송사업자의 기업사업. 뭐 처음에는 별 거 없었습니다. 회사 기숙사, 호텔, 여관, 기타등등 TV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고 여러 회선의 유선방송을 연결해야 하는 곳에 단체계약을 체결하고 한 방에 몇백 회선을 팔아먹는다 정도였습니다.


나쁠 건 없죠. 어차피 유료방송은 가입자 수가 늘어야 되는 건데, 한 방에 수백개 계약 체결하면서 요금 할인해 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겁니다. 19금 방송이 넘쳐나던 시절에 러브호텔과 단체계약 체결하면 주인도 좋고 손님도 좋고 유선방송사도 좋고 모두가 해피해피. 어익후 개꿀.


대략 2011년까지는 좋았습니다. 앞에서도 몇 번이나 강조했던 '종교화된 그레이트CJ'가 풀 악셀을 밟아대기 전까지는 그냥그냥 무난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풀 악셀을 밟아버리자... 기업사업은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러브호텔 단체계약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서서 안드로메다를 향해 날아가 버렸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레이트CJ의 핵심은 '매년 24% 매출 성장'입니다. 영업이익도 그에 비례해서 증가해야 하지만 뭐 거기까지는 아몰랑. 일단 외형만 키우면 돼. 남들은 매출도 못 키우는데 헬로비전은 매출이라도 키워내잖아. 그럼 땡큐베리감사.


매출을 키우는 데에 가장 좋은 게 '현질 M&A'였다는 점도 말씀드렸습니다. 3500억원에 달하던 현금에 새로 벌어들이는 돈까지 합쳐 4000억원 이상 꼬라박는 걸로 (허접한) 지역유선방송사 사들였으면 일단 매출 2배는 달성할 수 있죠. 여기까지는 됐습니다.


그러나 그 현질성장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현금이 더 없는데 현질을 할 수가 없죠. 부채비율도 20% 수준에서 70% 수준으로 올라갔고, 현금성 자산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현질성장이 안 되는 상황에서 매출을 늘리려면? 큰 걸 해야죠. 역시 인생 한 방.


헬로비전의 기업사업팀은 '인생 한 방'을 노리듯이 대형 매출 건을 찾아다녔습니다. 유선방송 단체계약뿐만 아니라 뭔가 방송과 연결될 만한 것들은 다 찝적거렸고 팔아치웠습니다.



처음에는 CCTV, 인터넷전화, TV렌탈 등 그나마 유선방송과 연결될 만한 것들에 손을 댔습니다. 뭐 CCTV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건 아니었고 헬로비전 고유의 특색 따윈 전혀 없었으며 그저 외부에서 생산된 제품에 판매자 상표갈이만 하는 수준이었지만(흔히 '나까마'라고 합니다), 일단은 뭔가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쌩뚱맞은 게 훅 치고 들어옵니다. [태양광]이었습니다.



태양광. 지구 역사 45억년 내내 지구 전체를 비춰 줬으며 앞으로 50억 년 이상 지속될 거라는 무한의 에너지.


뭐, 홍보 멘트는 좋습니다. '우주의 대부분은 수소' 어쩌고 하는 홍보 멘트 이상으로 멋지구리한 말 갖다붙일 수 있습니다. 지구 역사 전체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니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2013~2016년 간 CJ헬로비전의 태양광사업 계약서를 검토한 사람으로서, 저는 개인적으로 태양광사업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북위 30도 이상의 지역에서 산의 나무를 베고 들판의 농지를 뒤덮으면서 이 짓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에바쎄바케바 병림픽입니다.


위도가 높을수록 태양광발전의 효율이 떨어지는데 이 나라는 이미 충분히 북쪽입니다. 남쪽 부산과 북쪽 서울의 발전량이 다를 정도로 위도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또한 태양광은 구조적으로 1) 비 오는 날에는 발전 안 되고, 2) 눈 오는 날에도 발전 안 되며, 3) 밤에는 당연히 전기 못 만듭니다. 4) 이걸 커버하려고 ESS 충전소 덧붙이면 거기서 불 납니다. 요즘 전기차 배터리 화재도 감당 안 되는데 ESS에 불 나면 대략...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이렇게 태양광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한국 한정으로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태양광 사업자 대다수가 영세하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태양광사업은 패널을 계속 관리해 줘야 합니다. 먼지가 쌓이면 먼지 털어내야 하고, 고장나는 패널은 교체해 줘야 하며, 생산된 전기를 취합하는 송배전 설비도 점검해 줘야 합니다. 즉, 설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유지보수를 해 줘야 합니다.


몇 년 동안? 최소 20년 동안.


실제 태양광발전 설치계약을 하면 이 유지보수 문제에 대해서도 부속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간 1억원~2억원 사이의 단가로 유지보수계약을 체결하고 설치한 업자가 계속 관리를 해 주도록 하죠. 해당 태양광사업의 전기 및 REC(신재생에너지 인증서)를 팔아서 유지보수비를 감당하고도 이익이 남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유지보수계약은 합니다.


그런데... 이 유지보수를 해 줘야 하는 사업자가 영세사업자라면? 당장 설치비로 몇억원 벌고 나면 유지보수 따윈 아몰랑 잠수 타 버린다면?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제가 헬로비전에 있는 동안 꽤 자주 일어났어요. 대략 2015~2016년의 일입니다.


헬로비전의 태양광 사업은 전형적으로 [앞에서 남기고 뒤로 손해보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당장 계약할 때는 4~5% 정도 이익 남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해 보면 준공 이후 불과 1~2년 만에 유지보수업체가 사라지고 그 뒷감당 하느라 유지보수 수수료보다 몇 배 많은 돈을 꼬라박아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걸 하면서 역량이 축적되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위에서 '나까마' 또는 '상표갈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당시 CJ헬로비전의 태양광 사업이라는 게 아주 전형적인 상표갈이였습니다. 회사 자체적으로는 태양광 설치 공사와 관련된 역량이 하나도 없었고 무슨 전기공사 시공 기술자도 없었으며 그저 영업팀 담당자 몇 명이 조그만 영세업체한테 일괄하도급을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초반에는 전기공사면허도 없었어요. 태양광 사업 자체가 전기를 생산해서 팔아먹는 것이어서 그 패널을 설치하고 전기를 연결하려면 당연히 전기공사면허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허도 없이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태양광 설치공사를 수주한 겁니다. 제정신이 아니죠.


또한 위에서 '일괄하도급'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건설업에 종사한 사람들은 일단 일괄하도급이라는 말을 들으면 '움찔'합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행정제재와 형사처벌 조항이 있거든요. 전기공사업법, 통신공사업법 등에서도 비슷하게 규율하고 있구요.


뭐 그러든 말든 아몰랑. 전기공사면허는 나중에 냈고 일괄하도급은 대충 안 걸릴 거라고 기대하면서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매출'이 발생했죠.



당시 헬로비전은 매출에 미쳐 있었습니다. 2020 그레이트CJ 종교에 심취해서 폭주하는 중이었고, 매년 24%씩 외형성장을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매일매일 임원들이 영업팀을 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업인 유선방송 자체는 매출을 확 끌어올리기 어렵죠. 현질 M&A로 지역 유선방송사들을 인수할 때에는 매출이 팍팍 뛰었지만 막상 인수하고 나서는 매출을 늘리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IPTV에 계속 가입자를 뺏기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유선방송은 가입자 당 매출 상승분이 극히 미미합니다. 유료방송이라고 해 봐야 월 요금 2만원 전후고 1년에 20~30만원이 전부예요. 1년에 24%씩 성장해야 하는 그레이트CJ 종교의 관점에서 연매출 30만원 뛰는 건 간에 기별도 안 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양광은 '한 방에 매출 100억원'을 땡겨 줬습니다. 유료방송 가입자 3만 명을 모집하는 것보다 태양광 공사 한 건 수주하는 게 더 큰 매출 향상 효과를 가져다 주는 거죠.


이러면 미쳐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CJ헬로비전은 태양광 사업 쪽을 극찬해 줬고, 인센티브도 팍팍 줬으며, 관련 직원들을 대폭 승진시켜 줬습니다.



여기서 멈췄으면 좋았겠죠. 나중에 유지보수에서 손해 볼 수 있고 일괄하도급 문제로 국토부 조사 또는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일단 여기서 멈췄으면 그나마 '태양광 사업 깔짝거리다가 실패했어요 뿌잉뿌잉' 정도로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CJ헬로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해서는 안 될 짓'에 발을 담그고 말았죠.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고 할 이유도 없는 짓. 회사에 별다른 이득도 없이 외형상 매출만 뻥튀기하는데 그게 더 큰 손해로 되돌아오는 짓.


[허위매출]이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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