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 이어서 씁니다.)
5. 폭풍성장 종교의 끝판왕 등장 : 허위매출
허위매출. 실물이나 용역서비스가 없는데 해당 실물 또는 용역을 거래한 것처럼 위장하여 허위의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는 행위.
이거 한다고 해서 딱히 돈 버는 건 없습니다. 당연하겠죠. 실제로 물건이 가는 건 없고 용역이 제공되는 것도 없는데 무슨 돈을 벌겠습니까.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부가세 환급'을 이용해서 허위매출로 돈을 벌었던 (그러고 나서 해외로 빤쓰런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금(金)을 해외로 수출할 때에 부가세 영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을 이용해 해외수출하는 척 위장하고 부가세 환급만 받아먹은 뒤 튀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경과는 잘 모르겠네요.
뭐, CJ헬로비전의 허위매출은 이런 부가세 환급과 무관했습니다. 허위매출에 연관되는 상대방에게 무슨 뇌물을 주거나 이익을 주려는 것도 아니었어요. 오로지 '매출성장' 그 네 글자만 보고 한 짓이었습니다.
대략 설명하면,
- 어떤 건물 소유주에게 TV, 셋탑박스, CCTV, 인터넷 회선 등을 약 40억원 어치 매각
- 이 매각에서 헬로비전 측 이익은 약 2~3% 수준
- 건물 소유주는 물건을 받았다고 하는데 대금을 지급하지 않음
- 해당 건물을 담보로 잡아 놓은 상태라 건물을 경매하면 대금은 회수 가능
한 구조였습니다.
저 구조에서 '허위매출'이 된다면... 거래 대상인 TV, 셋탑박스, CCTV 등이 전혀 공급되지 않았고 아예 실물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겠죠. 매각대금 40억원을 건물 소유주에게 빌려 주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됩니다. 소비대차계약 대신 가상의 실물을 매각하는 것으로 대체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제가 저 구조를 잘 아는 이유는, (당연히) 제가 저 계약서를 봤기 때문입니다. 법무담당자니까 계약서 검토 해야죠. 겁나 바쁜 듯이 당일날 연락해서 '30분 내에 보고 의견 주세요.' 라고 해도 일단은 보고 나서 회신 주긴 해야 합니다. 그런 게 회사생활이니까요.
실물 TV와 셋탑박스와 CCTV가 없었는데 어떻게 했냐구요? 본사 법무담당자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당연히) 해당 영업팀에서 하청업체 및 대리점 컨택하고 실물 납품할 거라 생각하죠. 실물 하나도 없이 그냥 서류상 계약만 한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뭐... 엄밀하게 따진다면 저 건물에 40억원 어치 TV와 셋탑박스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긴 했어요. 무슨 창고에 쌓아 두는 것도 아니고 '설치해서 시청'하는 구조라면 많아야 TV 100대 들어갈 건물이었는데, 그 정도면 총 금액이 몇억원 수준이지 40억까지 가진 않거든요.
엄밀하게 따졌다면 잡아낼 수 있긴 했을 겁니다. 저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충분한 발언권이 있으며 헬로비전의 폭주현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사전에 의심해 보고 체크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자체변명을 하자면) 당시에 저는 상당히 바빴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5건의 불꽃 M&A'가 돌아가고 있었고, 태양광 쪽은 전기공사면허도 없이 덜컥 수주해서 덜컥 일괄하도급을 주고 있었으며, 지역채널 담당하는 커뮤니티사업본부에서는 분신사바 전술로 다큐멘터리 3~4개를 10개로 뻥튀기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크기와 전체 거래대금을 따져 볼 여유가 없었죠.
그리하여 허위매출이 진행되었습니다. 2013년에 진행된 거래가 3년 후에 크리티컬한 치명타로 되돌아와 회사의 옆구리를 푸욱 찌르고 피분수쇼를 벌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CJ헬로비전은 어쩌다 허위매출까지 손을 대게 된 걸까요? 아무리 그레이트CJ 종교가 횡행하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저 정도로 의미없고 무모하고 무식한 짓까지 하게 된 걸까요?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납득이 안 됩니다. 직장상사가 시킨다고 해도 못 합니다. 차라리 이직해서 딴 회사 가고 말지, 저 자신이 감옥 갈 일은 절대 안 합니다.
그러나... 가끔 인간은 비합리적인 짓을 벌이곤 합니다. 나름 대학교육을 받았고 나름 20대 그룹 정규직이며 나름 사회에서 제 역할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미친 짓을 하곤 합니다.
과도한 경쟁, 미칠 듯이 매일 몰아치는 상사의 질책, 이 회사에서 떨려나면 실직자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 그런 게 합쳐지면 이성을 잃고 본인 스스로 자멸하는 길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 걸린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정상적인 회사에서도 가아끔 분식회계를 하고 가아끔 미래 매출을 땡겨와 올해 성과로 인식하고 가아끔 허위가입자를 만들어 내니, 어느 정도의 허위매출은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헬로비전이 처한 상황은 안 걸리고 은근슬쩍 스리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에서 CJ오너를 콕 찍어서 검찰로 털어버렸다'는 상황이었고, 해당 정부 내내 CJ그룹 전체가 수사기관의 좋은 먹잇감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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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매출이 어떤 식으로 수사기관의 먹잇감이 되었는지는 저 뒤에서 다시 한 번 서술하겠습니다.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되새기는 걸로 마무리하죠.
저렇게 태양광 상표갈이 사업과 허위매출 사업으로 기업사업 매출을 확 끌어올리고 있을 때. 어느 본부장님(상무 급 임원 분)이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법적으로 안 된다고 그냥 끝낼 거야? 법적으로 안 되는 걸 되도록 하라고 법무팀이 있는 거야. 법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법 피할 방안을 찾고 제안해야지. 법에 안 된다고 하고 끝낼 거면 회사를 왜 다니나? 회피방안 찾아 봐."
이 희대의 개소리(!)에 대해 제 반응은...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끝.
물론 내면에서는
[아니 희밤 본부장님. 법으로 안 되는 걸 피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제가 삼성 들어가서 재드래곤 상속 문제 해결해 주고 연봉 천억 받았겠죠 여기 헬로비전에서 연봉 5천 겨우 받으면서 뺑이치고 있겠습니까? 법으로 안 되는 건 전직 대법관이 와도 안 됩니다. 그게 법치주의에요. 법치주의가 조스바로 보이세요 닝겐?]
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얘기는 마음속에 고이 묻어 두는 게 회사생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넣어둬 넣어둬. 위에서 설치면 그냥 입꾹닫 투명인간 되는 게 상책(上策)입니다.
전에 '이직의 기술'에서 썼었는데, 프로이직러 경력직에게는 '낄끼빠빠'가 1원칙입니다. 1800년 전의 프로이직러 '가후'가 그랬듯이 대전략 같은 건 단 한 마디도 논의하지 않고 그저 눈 앞의 상황을 타개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 그게 프로이직러 경력직의 숙명입니다.
2020 그레이트 CJ가 달성불가능한 헛소리라는 걸 알아도 그냥 침묵하는 게 상책입니다. 괜히 나대나대 하면서 잘난척 해 봐야 이미 광신도로 변한 윗선에는 씨알도 안 먹혀요. 일단 특진하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인사평가 A받아서 '또 한 번의 특진'을 노려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나대나대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낫습니다.
저는 침묵했습니다. 그레이트CJ가 출동하든 말든, 그 폭풍의 중심에서 상표갈이 허위매출을 하든 말든, 그 과정에서 회사의 현금유동성이 말라 가고 부채비율이 높아지며 영업이익이 계속 축소되든 말든, 일단 침묵하고 회사 다녔습니다.
뭐, 그래도 당장 문제는 없었습니다. 헬로비전은 여전히 한 해에 1천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잘 버텼고, 티빙이나 알뜰폰 등등에서 사소하게 손실 보는 건 거뜬히 만회했습니다. 2012년 이전처럼 영업이익 30%를 보여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안 좋은 얘기를 했는데, 이 다음편에서는 헬로비전이 이렇게 돈을 잘 벌었던 이유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리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때는 유선방송업계를 '황금알 거위'로 만들어 줬던 알짜배기 사업에 대해 서술해 보겠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알짜배기 사업. [홈쇼핑수수료]입니다. 커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