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 이어서 씁니다.)
2. 티빙(Tving)
2012~2016년 당시 헬로비전이 시도한 폭풍성장 전용 추가사업 그 두 번째. '티빙'입니다.
대략 2014년 정도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영어말하기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요. 길 가다가 외국인 만나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저로서는 참 힘들었지만 아무튼 그 때 원어민 영어강사가 '티빙 정말 소름끼치는 네이밍 센스야. TV가 살아서 사람 잡아먹는 것 같아.' 라고 극혐반응(!)을 보였습니다. 영어 원어민들이라면 절대 이런 이름 짓지 않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뭐, 원어민의 의견 따윈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헬조선. 콩글리쉬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대충 녹색 중심의 세상이라는 의미의 베르디움(Vertium)을 프랑스어 발음대로 '베르뛰엥' 이라 읽지 않고 t를 d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없는데 아몰랑 무조건 베르디움이에욧 빼애애액! 을 시전하는 나라에서 티빙 정도면 양호하죠.
아무튼 이 티빙은 당시에 나름대로 '세계 최초'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무선 모바일 환경으로 방송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최초의 서비스, 뭐 그런 컨셉이었죠.
실제로 세계 최초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최초였던 게 맞는 것 같은데 다른 나라에서 어떤 서비스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대충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세계 최초였으면 그냥 우겨도 되겠죠.
문제는 [최초라고 해서 항상 최강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평범한(!) 진리일 겁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도 최초에 누군가가 시도했지만 사뿐히 묻혔고, 윈도우 운영체제의 기반이 되는 최초 운영시스템도 사뿐히 묻혔었죠. 최초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잘 활용해서 최강이 되는 게 오조오억배 더 중요합니다.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겠죠. 넷플릭스(Netflix)가 등장했습니다. 티빙은 끝났구나. 가망이 없다.
1400만분의1 확률로 아군 한 명 희생하면서 승리하는 기적 따윈 없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압도적인 진격 앞에서 티빙은 그냥 개털리듯 털리더군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사실, 헬로비전 내부적으로 넷플릭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송사업자 간에 금과옥조 격으로 떠받들어 주는 격언 [콘텐츠가 왕이야! (Content is King!)]에 따라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했었죠. 많이 한 건 아니고 쪼큼. 아주 쪼큼.
바다 건너 넷플릭스가 진격의 거인 모드를 발동할 때쯤, 한국의 방송통신사업자들도 나름대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습니다. 지상파3사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이름 잊어버린) 앱(App)을 만들었고, SKT에서는 (옥수수 다 털리는) '옥수수 앱'을 만들었으며, 문화기업 CJ도 E&M의 콘텐츠를 유통하는 티빙을 계속 적자 감수하면서도 밀어붙였습니다. 아직도 밀어붙이고 있죠.
뭐 그렇긴 한데...
다 털렸죠. 진격의 넷플릭스 앞에서는 아무도 버텨내지 못했습니다. 뭐 내부적으로 합종연횡하면서 통합한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별로 관심도 없어요. 알아서 잘 하겠죠.
제가 아는 건, 헬로비전에서 약 5년 간 티빙을 운영하면서 4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봤다는 겁니다. 매출이 얼마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적자였어요. SK에 기습매각하기 전에 티빙 서비스만 따로 떼내서 E&M으로 팔긴 했는데 그 전에 이미 골병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죠. 사업 하다 보면 적자 볼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슬슬 이 다음부터 문제가 커집니다. 알뜰폰과 기업사업, 이 쪽이 크리티컬한 치명타였습니다.
알뜰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3. 알뜰폰 : 폰팔이들의 놀이터
제목부터 비하발언이 등장합니다. '폰팔이'.
특정 직업군 전체를 비하하는 말은 가급적 자제해야겠지만, 당시 알뜰폰 1위 사업자였던 CJ헬로비전의 입장에서 이 모바일이동통신 판매 직군과 관련된 사람들을 보면 '폰팔이'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당시 법무담당자였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 직업군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게 된 이유는 좀 있다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알뜰폰 등장 배경부터 시작하죠.
알뜰폰. 이름 참 잘 지었습니다. 국민 전체적으로 스마트폰 통신비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알아차린 정부가 은혜로운 어머니(?)의 마음으로 저가요금제를 도입한다, 뭐 취지도 괜찮았습니다.
도입하는 과정에서 [통신3사의 자회사도 알뜰폰 할 수 있다구욧!]을 시전하는 병림픽(...)이 있긴 했지만 그건 헬조선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니 그렇다 칩시다. 이 때 당시 정부가 무능해서 이런 헛점을 만든 게 아니라 통신3사 측의 로비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습니다만 이 또한 입증 불가능하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아무튼 (당시 자칭 IT기업이었던) CJ헬로비전은 알뜰폰에 도전했습니다. 당시 고만고만한 중견~중소기업이 뛰어들던 알뜰폰시장에서 (그레이트)CJ 로고 달고 뽷! 나름 인지도 있었겠죠. 헬로비전은 알뜰폰 시장에서 1위 사업자가 되었습니다.
다만... 흑자를 못 냈죠. 1위 사업자도 돈을 못 벌었습니다. 대한민국 모바일 통신 시장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거든요.
대략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스마트폰은 대부분 '통신사 보조금'으로 기계 자체는 저렴하게 구입하고 + 의무사용기간 설정된 고가의 요금제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통신비 월 10만원에 2년 의무약정을 하시면 최신 ㅇㅇ폰 100만원짜리를 무료로 드립니다 호갱님 컨셉이죠.
이 폰 100만원짜리가 개인이 구매하면 100만원이지만 통신사가 대량구매하면 얼만지 아몰랑. 의무약정 기간 중에 폰 할부요금 내는 거나 다름없는데 이 또한 아몰랑. 대충 당장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으니 나 그냥 최신폰 할래 럭키비키잖아~~!
대다수 호갱님들이 이렇게 폰을 구입하는 상황에서 '요금이 상대적으로 조금 저렴한 알뜰폰'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단통법이 시행되고 저가형 기계가 보급된 단계에서도 흑자를 못 내는데, 그런 거 없던 초창기 모바일시장에서 알뜰폰으로 흑자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뭐, 이런 시장 사정만 갖고서 그 직업군 종사자 전체를 폰팔이라고 매도하진 않겠죠. 제가 알뜰폰1위사업자 직원으로서 본 모바일시장 종사자들을 싸잡아 '폰팔이'라고 비하하는 건... 그럴 만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알뜰폰이 생길 당시를 돌이켜보죠. CJ헬로비전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덜컥 알뜰폰 하겠답시고 나대나내 나댔던 첫 시작점부터 돌아보겠습니다.
신사업에 처음 진출한 회사들은 어떤 식으로 조직을 셋팅할까요? 모바일 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임직원들이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적응하려면 어떤 방식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일까요?
답은 '경력직'입니다. 기존에 이미 통신3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을 빼내 와서 조직을 꾸리고 그 사람들의 인맥으로 대리점과 판매점을 모집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알뜰폰요금제 상품을 팔아야 합니다. 신입들을 투입해서는 답이 없어요.
뭐, 경력직을 뽑아서 조직 셋팅하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그건 신사업을 하는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모바일시장 경력직들 중 상당수가 닳고닳은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닳고닳고닳디닳은 Bomb폐급들이 정상인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겁니다.
알뜰폰이 도입될 당시, 국내 모바일시장은 이미 20여 년 넘게 불꽃 튀기는 막장영업을 거치며 닳고닳은 상태였습니다. 호갱님 한 명만 낚으면 한 달 먹고산다던 황금기(!)를 거쳐 온 대리점주와 판매상이 넘쳐났고, 그들을 관리하던 통신3사 직원들도 차고 넘쳤습니다.
이들 중 상대적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알뜰폰 업계로 넘어왔습니다. 호갱님 등쳐먹던 폰팔이 중에서도 쓸 만한 사람들은 통신3사의 고정대리점 내지 직원으로 눌러앉았고, 거기에서 떨려난 폰팔이들이 알뜰폰사업자와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잘 될 리... 없겠죠?
제가 헬로비전으로 이직하고 1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 알뜰폰 판매점 하나가 '도주했습니다'. 최신 스마트폰 기계 몇백대와 함께.
스마트폰을 주면 당연히(!) 보증증권을 받아야 합니다. 현금으로 예치해도 되지만 대부분의 폰팔이들은 현금이 없으니 서울보증보험 등에서 보증증권을 받아서 담보를 확보한 후에 비싼 기계를 줘야 합니다.
그렇지만 초창기 알뜰폰 1위사업자는 그딴거 몰랐습니다. 그냥 비싼 기계를 턱턱 배달해 주고 담보는 아몰랑. 업자가 도망가면 그것도 아몰랑.
법무담당자가 주말에 경찰서 가고 꼭 좀 잡아 달라고 사정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일개 지역경찰서 수사관이 중국까지 찾아가서 범인 잡아 올 리 없죠. 최신 스마트폰들은 중국으로 갔는지 / 국내에서 재가공되어 세탁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추적 불가.
대리점/판매점에만 양아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모바일사업부 정규직 중에도 양아치가 있었어요. 알뜰폰 가입자 숫자를 조작하는 건 기본(!)이었고, 형 이름으로 법인 설립한 후 대리점계약을 하고 물량 밀어 줘서 20억원 이상 해처먹는 인간도 있었습니다.
CJ헬로비전이 알뜰폰 1위 사업자로 가입자 80만명을 확보했을 당시, 그 가입자 중 10만명은 번호 가입 신청서가 없었어요. 대충 가입자 수 목표만 달성하려고 아무나 지인 가입시킨 후 2~3개월 만에 해지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몇몇은 진짜로 실존(實存)한 인물이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허수가입자 쩔었죠.
형 이름 법인으로 대리점계약을 한 인간도 어이없었습니다. 아주 당당하더군요. 뭐 회사가 어영부영하다가 고소 늦어지면서 무죄 나왔으니 더 당당하게 살겠죠.
(고소 늦어지게 된 사정에 대해서는 그냥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이건 헬로비전 문제가 아니라 CJ지주사 문제인데, 뭐 나중에 따로 얘기할 수도 있겠죠. 지금 시점에서는 노코멘트.)
대략 8~10년 전 폰팔이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건데, 이들은 양아치였지만 멍청하지는 않았어요. 닳고닳고닳디닳은 Bomb폐급이지만 나름 법망을 피해 가는 수법만큼은 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통신3사 정규직으로 있다가 폰팔이 양아치 근성에 물든 인간들은 상당히 똑똑했습니다. 회사의 KPI를 달성하기 위해 숫자 조작하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 먹듯이 해냈고, 조금만 허술한 틈을 보이면 자기와 친한 대리점 꽂아넣고 뒷돈 챙겼어요.
물론 그 중 몇 명은 '비리 저지르지 않고 그냥 똑똑한 직원'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쯤 임원 달았겠죠. CJ 마크 떼고 'LG헬로비전'이 된 지금쯤에는 알뜰폰사업부 내에 임원 한둘쯤은 있을 겁니다.
그들을 뺀 나머지는 뭐... 이제는 만날 이유가 없겠죠. 폰팔이들하고는 엮이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티빙과 알뜰폰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했는데, 그래도 여기까지는 치명적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티빙에 매년 90억원 이상 꼬라박고 알뜰폰에서는 폰팔이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이건 회사 내부 문제였습니다. 헬로비전 자체적으로 손실처리만 하면 끝나는 문제였고 대외적으로는 별 타격 없었어요.
대외적인 타격은 '기업사업'에서 왔습니다. 아주 크게, 크리티컬하게 왔죠.
폭풍성장의 중심, 기업사업. 이에 대해서는 다음 챕터에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