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텔레토비~ 텔레토비~
요즘은 기억도 흐릿합니다만 한때 텔레토비 시리즈가 유행했었습니다. 어린이의 시각으로 봐도 쪼큼 변태같은 느낌(!)인데 어쨌든 유행했었어요.
그리고 당시에 아마 SNL코리아였나 그랬을 텐데 이걸 패러디해서 대박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여의도 텔레토비]였죠.
뭐, 저는 여의도 텔레토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거 할 때에는 블랙기업에서 빡빡 기고 있었고 퇴근하면 9시 10시니까 TV를 거의 못 봤어요. 헬로비전으로 이직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런데 막상 이걸 본 사람들 중 일부는 불쾌했었나 봅니다. 특히 패러디를 당한 당사자 분께서 불쾌하셨나 봐요. 아주 그냥 기업 하나 박살내고 싶을 만큼 불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작되었습니다. "CJ오너 털기 작전"이.
CJ헬로비전으로 이직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아마 2013년 3월 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날씨가 쌀쌀했고 38살에 대리2년차였던 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한 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내일 아침 최대한 빠르게 지주사 건물로 집합할 것].
대략 CJ지주회사 법무팀에서 전 계열사 법무담당자를 대상으로 보낸 문자였습니다. 중앙지검에서 CJ그룹을 노리고 한따까리 하러 나온다는 소식을 사전에 입수했고, 그래서 급한 대로 (법인격남용 따윈 신경쓰지 않은 채) 그룹 전체 법무담당자들을 불러모아 대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대략 저는 6시30분쯤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택시비를 준 건 아니니 대중교통으로 갔는데 그 시간에 도착했으면 정말 빨리 간 거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어, 그런데... 이미 털리고 있네요? 뭐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네요?
검찰이 압수수색영장 뽷 발부받아서 검찰수사관들과 함께 쳐들어 오면 민간기업으로서는 어찌 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뭘 가져가는지 리스트만 확인하자.' 정도입니다. 별건수사로 당황하는 일 없게 자료 목록을 확인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루 온종일 압수수색이 계속되었습니다. 검사와 검찰수사관을 합쳐 100명 넘는 인원이 달라붙어 아주 그냥 탈탈 털었고, 각 사에서 모인 법무담당자들은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룹 내 주요 임원들이 줄줄이 소환되었죠. 나중에 CJ측이 검찰신문조서를 열람복사하여 내용을 확인한 후 몇 분은 짤렸습니다... 몇 분은 살아남아서 더 오래 다니셨구요. 짤리게 된 이유는 아몰랑.
뭐, 개인적으로는 법무담당자로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기업의 법무담당자가 형사사건 대응을 할 일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거든요. 이런 일 있으면 나중에 이직 면접 볼 때 할 말이 많아지죠^^.
물론 CJ그룹 차원에서는 그리 좋지 않았을 겁니다. 압수수색 후 4개월 만에 오너가 구속되었다면 더더욱 안 좋죠. 아주 안 좋습니다.
대략 죄목은 외환관리법위반 및 조세범처벌법위반이었을 겁니다. '해외 비자금'이 있으면 빼박캔트 부인불가.
이 해외 비자금이 소문으로만 듣던 '삼성 창업주의 비자금'인지, 아니면 CJ가 설립된 이후에 별도로 조성된 비자금인지는 잘 모릅니다. 이와 관련한 별도의 스토리가 CJ헬로비전의 소송자료로 남아 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생략하겠습니다. 뭐 제가 상세히 모르는 것까지 수필 형태로 쓸 필요는 없겠죠. 추후에 소설로 쓰는 건 가능하겠지만 일단은 패스합니다.
아무튼, 압수수색 4개월 만에 CJ그룹의 오너가 구속되었습니다. 그룹 전체가 비상경영 모드로 돌입했고, CJ지주사에서는 법무팀을 '법무실'로 승격하면서 유명한 검사 출신 변호사 분을 부사장 직급으로 영입했습니다.
여담인데, 재벌 오너 중에 '구속되면 더 강해지는 스타일'이신 분들도 있습니다. 뭐 다들 유명하신 분이니 바로 언급하면 한화그룹 오너 분과 SK그룹 오너 분은 몇 년 들어갔다 나오면 더 건강해지시는 것 같더군요. 그룹 내 임직원들의 충성심(?)도 올라가고.
다만, CJ그룹 오너 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체질적으로 타고나는 거라서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수감생활을 버티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결국 병원생활을 해야 했고, 그 기간 동안 계속 형집행정지가 되면서 경영공백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뭐, 대다수 재벌그룹에서는 오너 경영공백이 있어도 잘 돌아갑니다. 전문경영인들이 준법경영을 하면서 더 잘 되는 기업도 있죠. 오너 분들이 법인격과 개인인격을 구분 못하는 기업이었다면 오너 부재로 인한 경영공백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CJ는 어땠을까요? 경영공백 기간에 잘 돌아갔을까요?
다른 회사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CJ헬로비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레이트CJ라는 종교'에 더욱 더 매몰되어 버렸고, 다른 계열사들이 멈춰 있는 동안 혼자서 목표달성하겠답시고 미쳐 날뛰어 버렸거든요.
대다수의 기업집단은 오너 부재로 인해 경영공백이 발생하면 '긴축경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에 재무적인 부담을 주는 투자/신사업은 최소화하고, 인력 채용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며, 가장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돈을 더 많이 남길 수 있게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이렇게 가는 것이 오너 형사사건 대응에 도움이 되기도 하죠. [위대한 오너 분이 감옥에 계셔서 일체의 투자활동이 중단되었다! 우리 그룹은 신규채용도 안 하고 오히려 인력을 줄이고 있어! 고용창출 어쩔티비. 신규고용 줄어들면 정부지지률 내려갈 건데 어쩔티비. 당장 오너 풀어줘서 투자 채용 활성화해라 빼애애액!] 을 주장해야 하잖아요. 언론들이 단골 레퍼토리로 뽑는 시나리오는 다 그럴 만 하니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CJ그룹은 오너 부재가 발생하기 직전에 '그레이트 CJ'를 선포해 버렸습니다. 그레이트 다간도 아니고 그레이트 마징가도 아니고 그레이트 CJ를 출격시켜 버렸습니다.
9년 만에 8배로 성장하겠다는 야심. 그레이트 CJ 3번만 연속으로 성공시키면 27년 만에 512배로 성장하여 매출 5000조에 순이익 500조 규모로 애플을 씹어먹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씹어먹고 아주 그냥 대한민국 전체 GDP보다 큰 기업집단을 만들어서 지구를 평정할 수 있는데 뭐 거기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24% 비율성장을 계속하겠다는 야심.
이 야심을 던져 놓은 채 경영공백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마이너(Minor)로 취급받았던 유선방송사 CJ헬로비전은 오너 공백 직전의 신년사에서 "이제 헬로비전도 메이저다!"라는 얘기를 오너 분으로부터 직접 들었었고, 어마무시한 뽕에 차올라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CJ헬로비전은 오너 부재 상태에서 더욱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너 분이 안 계신 동안 온리원(Onlyone) 하고잡이 정신을 555% 발휘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24% 성장률을 유지하겠다! 우리가 대한민국 씹어먹겠다!' 라는 전략을 밀어붙이게 되었습니다.
다른 CJ계열사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CJ헬로비전에서는 그레이트CJ가 종교였습니다. 교조화되어 아무도 반박 못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거기에 반대하려면 회사를 나가야 하고 회사에서 월급받는 동안에는 찍 소리 하면 안 되는 확고부동한 신념이었습니다.
그레이트 마징가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나오죠. [그레이~트 마징가~ 폭풍우를 부른다~]
그레이트 CJ는 거대한 폭풍우를 불렀습니다. 그룹 내에서 마이너 취급받았지만 돈 버는 것만큼은 메이저 급이었고 그 돈으로 '현질 외형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열사 헬로비전에게 '폭풍성장'을 하도록 했습니다.
폭풍성장. 잘 됐을...까요?
잘 안 됐겠죠. 그러니까 2016년에 팔아치우려고 했을 겁니다. 불과 3년 만에 '이 산이 아닌가벼.'를 시전한 걸 보면 분명 많이 꼬였을 겁니다.
뭐, 당시에는 꼬이든 말든 잘 해보려고 했었습니다. 헬로비전 직원이었고 2년 조기진급의 혜택을 누렸던 저 또한 '잘 해보자!'는 쪽이긴 했습니다.
당시의 시각을 살짝 더해서 2013~2015년 간 헬로비전이 벌였던 일들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략 "폭풍성장 전용 추가사업의 명(明)과 암(暗)" 정도 제목으로 2~3개 정도 챕터가 나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