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서스 Dec 09. 2024

폭풍성장 부작용의 원인분석2 - 그레이트CJ

[그레이트 다간도 아니고 그레이트 마징가도 아니고 그레이트 CJ].


'2020 GCJ'라는 약칭으로 부르기도 했던 그레이트CJ. 대충 2011년 아니면 2012년에 세워진 계획인 것 같은데, 요약하면 '2020년까지 그룹 전체 규모를 8배로 키워 매출 100조를 달성하고 그 와중에 이익구조도 개선하여 영업이익 10조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아주 그냥 야심이 넘치죠. 당시 재계5위였던 롯데그룹의 순자산이 100조 전후였던 것 같은데, 그레이트CJ가 계획대로 된다면 CJ그룹은 단숨에 재계5~6위 권으로 떠오르게 될 겁니다. 삼성그룹을 3남에게 빼앗겼다(...)는 인식이 있는 CJ그룹 입장에서는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문화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겠죠.


뭐,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말을 했었죠.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그레이트CJ. 이 계획은 어땠을까요?



일단 저 '8배 성장'이라는 수치가 그냥 나온 건 아닐 겁니다. 아마 예전의 성장 속도를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일 거예요. CJ가 제일제당 하나 갖고 나와서 방송사업과 영화관과 홈쇼핑과 유선방송과 식음료사업으로 확장한 성장속도를 미래에도 계속 이어 나가자는 걸로 계산했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매우 당연한 얘기지만, '비율 성장속도'는 성장이 커질수록 떨어집니다. 지난달에 10만원 벌던 사람이 이번달에 100만원 벌었다고 해서 그 다음달에 1000만원 버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월 10만원 벌던 사람이 100만원 벌면 성장속도는 900%입니다. 이 사람이 다음달에 200만원 벌면 성장속도는 100%로 뚝 떨어지겠죠. 비율로만 따지면 성장속도가 1/9토막 납니다.


그런데... 비율이 아닌 '규모'로 보면 어떻죠?


1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랐을 때에는 +90만원 증가했습니다.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오를 때에는 +100만원 늘었죠. 순수 규모로만 따지면 200만원으로 증가할 때의 성장 규모가 더 큽니다.


비율성장의 함정이 이런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이 연15% 성장한 것과 천조국 미국이 연1% 성장하는 건 규모가 완전히 달라요. 미국 정도 규모를 가진 국가는 1% 성장만 해도 개발도상국 5개는 씹어먹을 정도로 커지는 것이고, 개발도상국은 15% 성장하든 30% 성장하든 지구 단위에서는 별 거 없습니다.



이 당연한 논리가 저 '그레이트 CJ'에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초딩도 알 수 있는 비율성장의 함정이 2020 GCJ에는 반영되지 않았어요. 그저 '아몰랑 매년 24%씩 성장해 그럼 대략 9년 만에 8배 된다구욧 빼애애액!' 수준의 계획 뿐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성장계획? 그것도 '아몰랑'이었습니다. 각 계열사가 알아서 성장계획 짜고 성장시켜야 했어요. 3년마다 2배씩 성장하는 무리한 계획이었고 각 계열사가 속한 시장이 그 정도의 성장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 또한 아몰랑. 알아서들 하세요.


당연히 실행 불가능이었습니다. 특히 제일제당처럼 밀가루/설탕/라이신 등 관련 시장이 이미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 분야에서 1위 달성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갑자기 미쳐서 3년마다 2배 / 9년만에 8배로 설탕 섭취량을 늘리는 것도 아닌데 이걸 할 수 있을 리 없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 한국사람의 절반은 당뇨병으로 죽었을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인슐린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바이오산업이 대박나는 창조경제... 였을 리 없잖아요?)


그레이트 CJ는 처음부터 실행 불가능이었습니다. 공허한 숫자와 말잔치 뿐이었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전혀 없었으며 조금이라도 숫자 관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뜬구름이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냥 '헛소리'였습니다. 라 퐁텐 우화에 나오는 '우유 파는 아가씨' 급 과대망상이었죠. 우유를 팔아 병아리 100마리를 사고 그 병아리를 다 키워 닭이 되면 다 팔아서 돼지를 사고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또 다 키워서 소를 여러 마리 사고 그 소가 낳은 송아지도 다 키워서 팔면 대박 부자 이얏호 만세. 그러다 우유 항아리가 깨집니다...


CJ그룹의 대다수 계열사는 이 무리한 계획을 (은근슬쩍 스리슬쩍) 포기했습니다. 지주사 차원에서 무슨 신앙 수준으로 밀어붙이니 공개적으로는 아무 말 안 했지만, 그냥 저 헛소리를 달성하려는 노력 자체를 안 했습니다. '3년만에 매출 2배 성장하고 이걸 3*3으로 지속한다'는 창렬한(!) 계획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어어, 잠깐만요. 3년만에 매출 2배 성장? 이거 앞에서 잠깐 나오지 않았었나요?


맞습니다. '대다수 계열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어느 특정 계열사는 이걸 농담으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3*3 지속 계획까진 못 갔지만 최소한 앞 3년에 매출 2배 성장은 이뤄 냈습니다.


CJ헬로비전. 제가 몸 담았던 바로 그 계열사가 저 황당한 그레이트 CJ에 호응해 줬습니다.



2012~2013년 경, 헬로비전은 35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쟁여 두고 있었고 IPTV의 위협에 맞서 유선방송 내부에서 덩치를 불려야 하는 사명(!)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레이트 CJ에 나오는 영업이익 증가 부분은 그냥 아몰랑 처리하고 최소한 매출 측면에서는 3년에 2배 성장을 이룰 만한 자금력과 시장을 확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헬로비전의 임원 분들에게는 그레이트 CJ에 도전할 만한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돈'과 '명예' 두 가지를 다 노릴 수 있었죠.


헬로비전을 포함한 CJ그룹사 전체에는 '성과 인센티브' 제도가 있습니다. 뭐 이건 어느 기업이나 다 있긴 하죠. 일 잘해서 성과를 내면 돈 더 받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2010년대 초반의 CJ그룹 성과 인센티브 제도는 '상위직급자 가중' 방식이었습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인센티브 가중 비율이 올라간다는 얘기죠.


G2, G3(사원) 및 G4(대리)는 가중치 1.0.

G5(과장) 및 G6(부장. 타 기업 차장)은 가중치 1.5.

G7(선임부장)은 가중치 2.0.

G7담당(준임원)은 가중치 2.5

상무 3.0 / 부사장 3.5 / 대표이사 4.0 + 별도 목표달성 인센티브 추가.


이게 인센티브 가중율이었습니다. 해당 연도의 기본 인센티브가 10%라면 사원 및 대리급은 연봉의 10%를 받고 끝나는데 상무 급은 연봉의 30%를 받고, 대표이사면 최소 40%에 별도 인센티브가 더 나오는 구조였습니다. '그레이트 CJ 달성'이라면 아주 그냥 대박이겠죠.


그리고, '다른 계열사가 영 비실비실한데 헬로비전 혼자 그레이트 CJ를 달성하는 상황'이라면 진급평가에서도 엄청 유리합니다. 평가S를 달성하면 특진 대상이고 A가 누적되어도 1년 조기진급은 가능한데 회사의 실적이 좋으면 S, A를 줄 수 있는 비율도 대폭 늘어나거든요.


결국 헬로비전은 "현질의 유혹"을 강하게 느꼈고 그에 따라 현질을 팍팍 했습니다. SO 한 개만 인수해도 그 해 매출액이 500억원 이상 늘어난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부터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기진급을 했습니다. 당시 대표이사님은 총괄부사장 직급까지 올라가셨고 그 외에도 다수의 임원들이 영전했습니다. 제가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한 건 그냥 별 거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는 동안 헬로비전은 현금을 다 써버렸습니다. 30%에 달하던 영업이익률이 10% 초반으로 떨어졌고, 매출은 2배가 되었지만 한 해 이익은 -33% 감소했습니다.


뭐 그래도 잘 굴러가긴 했습니다. 수익이 줄었다고는 해도 적자 날 일은 없었고, 다 써버린 현금도 금방 다시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적절한 시점에서 내실을 다지면 최소 10년간은 문제없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내실을 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3년간 2배로 성장하면서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걸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졌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더더욱 더 빠르게 몸집을 불리려 했다는 겁니다.


그레이트 CJ는 교조화(條化)되었습니다. 적어도 헬로비전 내부에서는 그레이트 CJ가 종교나 다름없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종교적 신념"으로 격상(?)되어 버렸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나중에 밝혀집니다. 2013~14년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제대로 드러납니다.


그건 몇 챕터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일단은 CJ그룹의 사정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죠. 헬로비전 기준으로 볼 때 외부요인인지 내부요인인지 애매하지만 일단 헬로비전이 폭주할 때 당시 상황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한 챕터 추가하겠습니다.


CJ그룹의 민감한 사정. 그건 바로 '오너의 부재(不在)'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