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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을 낳는 거위 홈쇼핑수수료

by 테서스

1. 영광의 홈쇼핑 시대


2012~2016년 당시 CJ헬로비전은 다양한 삽질을 했고 그 결과 수익성이 악회되었습니다. 매출은 2배로 성장했지만 이익률은 반토막 아래 1/3토막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CJ헬로비전은 여전히 돈을 잘 벌었습니다. 이익률이 1/3토막 났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30% 이익률을 보이던 게 캐사기였고(;;), 매출 1조에 영업이익 1천억으로 이익률 10%면 아주 양호한 사업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건설회사들의 영업률에 비하면 혜자 그 잡채였죠.



이전에 '유선방송의 역사'에서 상세히 다뤘었는데, 대한민국 유선방송업은 초창기에 4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을 보이다가 이내 이익률이 축소됩니다.


유선방송이 워낙 돈을 잘 번다는 걸 알게 된 방송사업자들이 '다 같이 살자!'를 시전했고 방통위가 개입하면서 PP(프로그램 프로바이더. 방송제작업자)에게 유료방송 판매수익의 일부를 나눠 주도록 의무화되었고, 지상파3사 또한 가입자 1인 당 280원*3의 송출수수료를 요구했으며, 음저협 등등 저작권단체들도 수익을 분배받았습니다. 이익률이 축소될 수 밖에 없죠.


중간에 디지털방송이 도입되고 좀 더 비싼 유료방송이 시작되면서 잠깐 이익률이 올라가는 듯 했지만, 이내 IPTV라는 강려크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유료방송 매출과 수익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는 매출을 유지하면서 수익이 줄어드는 구조였다면 이제부터는 아예 방송가입자 자체를 빼앗기면서 매출까지 줄어드는 형국이었죠.


유선방송은 위기였습니다. 아직 IPTV가 대세는 아니었던 시절에도 이미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가입자 1명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점점 더 늘어났고, 그에 비해 이익률은 줄어들었으며, 유선방송을 시청하는 고객의 숫자 또한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혜성처럼 나타난 구원자가 있었습니다. 유선방송 전체에 거대한 수익을 현금으로 따박따박 입금해 준 최대의 구원자. 그들이 바로 '홈쇼핑'이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은 가히 홈쇼핑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빨 좋은 쇼호스트들이 정통 방송국 출신 이상으로 돈을 벌며 엄청나게 상품을 팔아제꼈고, 각 가정의 아줌마들은 뭔가에 홀린 듯 홈쇼핑을 시청하다가 '재고 얼마 안 남았습니다 빨리 전화하세욧!' 멘트가 나오자마자 벼락같이 전화주문을 하곤 했었습니다.


홈쇼핑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 성장 과정에서 [채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다가 뙇 홈쇼핑방송을 볼 수 있는 '황금채널'이 무지무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지상파가 5번 7번 9번 11번을 차지하죠. 이 중간 채널이 '황금채널'이 되었습니다. 4번, 6번, 8번, 10번 채널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 중 6번이 가장 비쌌습니다.


그리고 아직 IPTV는 미약했습니다. 전국 유료방송의 대부분을 유선방송사업자가 차지하고 있었고, 이 유선방송 측에 대규모의 현금을 지급하고 황금채널을 차지하는 것이 홈쇼핑의 한 해 매출과 수익을 결정지었습니다.



이 모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홈쇼핑이 돈을 싸들고 유선방송을 찾아오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대략 2006년부터 2016년 정도까지 약 10년의 시간 동안 '진격의 홈쇼핑 시대'였습니다.


유선방송은 갑자기 중흥기를 맞았죠. 계속 줄어들던 영업이익률이 다시 올라갔습니다. 제가 헬로비전의 재무제표를 처음 봤던 2012년이 딱 이 중흥기였고, 그 때 영업이익률 30%를 찍었습니다.


이후에 영업이익률이 계속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홈쇼핑수수료의 절대 규모는 계속 커졌습니다. 특히, 헬로비전이 불꽃 M&A를 감행하면서 지역 SO들을 통합해 전체 가입자 숫자를 대폭 늘리자, 들어오는 홈쇼핑수수료의 규모가 더욱 더 커졌습니다.


딱 숫자로 말해 보죠. 2015년, 즉 진격의 홈쇼핑 시대 끝자락에서 유선방송 측이 받아먹는 홈쇼핑수수료가 가장 높았던 때를 기준으로 숫자를 따져 보겠습니다.



2015년 당시 CJ헬로비전이 6개 홈쇼핑사업자로부터 수취한 채널송출수수료가 약 2300억 원입니다. 매출이 1.2조 가량 되고 그 중 방송매출은 8500억원인가 그랬는데 그 중 채널송출수수료만 2300억 원. 그것도 모두 현금입니다. 어마무시하죠.


그리고 여기서 더 무서운 것은... 그 해 헬로비전의 영업이익이 1000억원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즉, 홈쇼핑이 주는 채널송출수수료를 빼면 -1300억원 적자였는데 홈쇼핑수수료 땡긴 걸로 이 적자를 모두 메꾸고 1000억원 흑자로 마무리했다는 얘깁니다.


실로 홈쇼핑의, 홈쇼핑에 의한, 홈쇼핑을 위한 시대였습니다. 홈쇼핑수수료 하나만 잘 땡겨먹으면 유선방송 본업 및 각종 부가사업에서 -1300억원 적자를 봐도 모든 걸 다 커버하고 흑자전환 하는 시대였습니다. '참 쉽죠?'가 저절로 나오는 시대였습니다.


물론 겉보기에 쉽다고 해서 실제로 쉬운 건 아닙니다. 백조가 물 윗부분은 우아해 보여도 물 아래에서는 미친 듯이 발을 휘젓는 것처럼, 홈쇼핑수수료 전성시대에도 유선방송사는 물 아래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그 발버둥에 대해서는 항을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2. 홈쇼핑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들


- 발버둥 첫번째. '저가가입자' 입니다.


유선방송은 기존 아날로그 기준 약 7천원 ~ 1만원 / 디지털 기준 15000원 ~ 3만원 정도의 요금제를 운용했었습니다. 이 가격으로 가입하는 가입자를 '정상가입자'라고 했었죠.


정상가입자가 있으면 당연히 비정상 가입자도 있습니다. 정상적인 요금을 내지 않고 그보다 훨씬 낮은 요금을 내는 저가가입자, 심지어 한 푼도 안 내는 0원 가입자, 본인이 유선방송 가입자인 것도 모르는 미인식 가입자 등등이 현실로 존재했습니다. 이들을 다 퉁쳐서 '저가가입자'라고 부릅시다.



저가가입자 중 그나마 양호한 게 '공시청'입니다. 아파트 등 집합건물에 공동 케이블 선을 연결해 기본 13개 채널(지상파+홈쇼핑+종편)만 묶은 방송을 전 세대에 송출하는데 이걸 공시청이라고 하고, 이 공시청을 가입자로 계산했습니다.


공시청이 연결된 아파트에서는 각 세대 별로 500원 ~ 2000원 사이의 '공시청 선로 유지보수료'를 받았습니다. 공시청 자체의 요금을 받으면 세대 별로 반발하는 경우가 있으니 선로 유지보수비용으로 적당히 둘러쳤던 거죠. 일단은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공시청 아파트 중에서는 유지보수료도 안 받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주로 '0원 가입자'였죠.


그리고 0원 가입자 중에는 더 안 좋은 형태도 있었습니다. '유선방송을 해지했는데도 해지처리를 하지 않고 가입자로 남겨 두는 세대'가 이 유형인데, 사실상 유선방송 내부의 허위매출이었죠. 1건 1건은 각각 규모가 작으니 다들 별로 신경을 안 썼지만 모이면 은근 많습니다;;



해지 후 해지처리가 안 된 세대 / 공시청 세대로 분류되는데 IPTV나 위성방송을 시청하는 세대들은 본인이 유선방송 시청자로 분류된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본인은 유선방송을 해지했거나 아예 다른 유료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유선방송 시청자로 이중계산된다는 걸 알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시청 + 0원 가입자 + 미인식 가입자로 뻥튀기된 가입자 수를 살펴보면...


제 기억에, 2014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세대(가구) 수가 2100만인데 유료방송 시청 가입자 수는 2600만이었습니다. 총 세대 숫자보다 유료방송 시청 가입자 수가 더 많았어요. 무려 25% 가량 더 많았습니다.


물론 정말로 1세대 2시청 가구도 있었을 겁니다. 안방에 IPTV 연결하고 마루에 유선방송 연결하고 작은방에 위성방송 연결하는 세대가 있긴 있었을 거예요. 한 집에 유선방송만 2개 연결하는 세대도 있었을 거구요.


그러나 반대로 아예 유료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세대도 많습니다. 2010년 중반에만 해도 '코드 컷팅'이 유행이었고 TV 없이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모든 방송콘텐츠를 섭렵하는 1인가구가 꽤 됐어요. 지금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전체 세대수보다 유료방송 시청 가입자 수가 더 많았습니다. 누가 봐도 뻥튀기된 게 보이죠.


IPTV는 단체계약(공시청)이 없기 때문에 많이 뻥튀기할 수가 없습니다. KT의 위성방송은 공시청 단체계약을 할 수가 있어서 은근히 유선방송과 경쟁하긴 했지만 구조적으로 위성방송 시청 세대 자체가 적어서 그리 많은 뻥튀기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 뻥튀기 500만의 대부분은 유선방송 쪽이었다는 얘기죠. 범인은 바로 너!


유선방송이 이렇게 가입자 뻥튀기를 한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홈쇼핑수수료'.



홈쇼핑수수료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입자 수'였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홈쇼핑 채널을 봐야 그 채널에서 구매를 할 것이고, 채널을 보려면 일단 유료서비스에 가입해야 합니다. 유료방송을 틀어서 홈쇼핑 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홈쇼핑으로 상품 구매하는 호갱이 늘어나는 구조니 당연히 가입자 수를 최우선으로 해서 협상을 했습니다.


개별 유선방송을 0원에 팔아서 적자를 보더라도 홈쇼핑수수료 협상만 잘 되면 그 적자를 한 방에 만회하고 대규모 흑자로 전환되는 상황. 이러면 당연히(!) 가입자 뻥튀기 해야죠. 당연하다면 좀 그렇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유선방송 측이 이 가입자뻥튀기로 돈 좀 만졌습니다. 홈쇼핑에서 수수료 쫙쫙 빨아먹었죠.


하지만... 영원하진 않겠죠?


지평선 너머에서 또 다른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홈쇼핑 자체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 발버둥 두번째 : 홈쇼핑의 수익이 줄어든다


홈쇼핑이 돈을 잘 벌 때에는 유선방송도 행복했고 홈쇼핑도 행복했습니다. CJ를 기준으로 볼 때, 3단 지주회사 구조의 자회사였던 CJ오쇼핑이 연간 1500억을 벌면 그 자회사(전체에서는 손자회사)인 CJ헬로비전도 1000억 이상 벌었습니다. 어익후 좋아라.


그러나... 어디에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홈쇼핑의 전성시대도 유선방송 못지않게 짧았습니다.



일단 홈쇼핑은 해당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에게 너무 높은 수수료를 받아갔습니다. 대략 홈쇼핑 방송에 올려 주는 것만으로도 수수료를 65~70% 떼 갔다고 해요. 많으면 80% 뗀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돈을 남길 수가 없죠. 홈쇼핑에서 상품 하나 팔릴 때마다 70%씩 떼 가면 대폭 적자입니다. 이걸로 돈 남기는 건 불가능 of 불가능이에요.


그런데도 업체들이 이걸 진행했던 건... '홍보효과' 때문입니다. 홈쇼핑에 방송 나가는 것만으로도 홍보효과가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던 겁니다.


하지만 홍보효과도 하루이틀입니다. 결국 업체들은 버티지 못했고... '공정위'가 개입합니다. 두둥!


공정위가 과징금 크리티컬 날리면 기업들은 찌그러져야 합니다. 홈쇼핑도 뭐 배짱장사 할 상황이 아니죠. 찌그러져야죠. 깨갱. 굽신굽신.


홈쇼핑 측은 상품납품업체 수수료를 적절히 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1차적으로 홈쇼핑의 이익 규모가 축소되죠.


홈쇼핑이 돈을 못 벌면 유선방송사에 주는 채널송출수수료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 송출수수료 줄여야죠. 불가피한 연쇄고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진격의 쿠팡'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쿠팡이 망할 줄 알았어요. 계획된 적자라면서 사업 확대할 때 결국 그 적자를 감당 못할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제 아내는 '쿠팡 짱!'을 외쳤지만 사업적으로는 안 된다는 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사태가 벌어지죠. '코로나19 사태'가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고 그 상태가 2년 이상 지속되자, 쿠팡은 무한진격을 했고 오프라인 중심의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크게 휘청거렸습니다. 결국 2024년에는 쿠팡이 최강사업자로 등극했죠.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기간 중에 백화점과 대형마트만 타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홈쇼핑도 크게 꺾였어요. 지금은 관련 업종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홈쇼핑이 더 큰 타격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CJ오쇼핑 한정으로 '자체상품 판매 부진'이 겹칩니다. CJ헬로비전처럼 오쇼핑 또한 매출증대(그레이트CJ) 압박에 시달렸는데, 매출을 늘리려고 상품 자체를 구매해 상표갈이로 팔아먹는 전략을 취하다가 판매부진 상품이 몇 개 걸리면서 적자 폭이 확대되어 버린 거죠.



이리하여, 홈쇼핑은 매출이 축소되고 이익이 줄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유선방송사업자에게 대규모 송출수수료를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2016년에는 홈쇼핑 측이 일방적으로 송출수수료 감액 통보를 하고 지급도 감액해서 지급하는 사태가 터져 버렸습니다. 헬로비전 입장에서는 절대 인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2015년 계약대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지만 뭐 돈 주는 사람이 안 주겠다는데 어쩔티비. 그냥 감액해서 받아야죠.



뭐, 제가 헬로비전 다니는 동안에는 홈쇼핑수수료가 알파이자 오메가인 건 맞습니다. 헬로비전의 모든 아픔과 손실과 고통과 피로를 씻어 주고 한 방에 흑자전환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 지속할 수 없었을 뿐 그 때 당시에는 달콤했었습니다.


달콤하긴 했지만 지속가능하진 않았습니다. 달콤한 홈쇼핑수수료는 끝물이었고, 헬로비전은 더욱 더 발버둥쳐야 했습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나네요. [그 꿈은 이룰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룰 수 없는 그레이트CJ의 꿈을 꾸던 헬로비전. 그 직원들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또 암울한 얘기를 해야겠네요. 꺾이는 회사를 더욱 더 꺾이게 만들고 직원들의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이야기 - '인사정책'을 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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