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사팀장이 바뀌다
흔히 '인사는 만사'라고 얘기합니다. 사람 뽑고 관리하는 부서가 잘 돌아가고 유능하면 그 회사 전체의 일이 잘 돌아갑니다.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사람을 적절한 시기에 충원해 주면 알아서 잘 굴러갑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여러 회사를 옮겨다니며 여러 인사팀장을 보고 비교할수록 이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더 와닿습니다. 회사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오너(Owner)-대표이사 급 최고경영진이지만, 인사팀장도 그 최고경영진 못지않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인사팀장이 잘 하면 회사가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못 하면 확 가라앉습니다.
제가 CJ헬로비전으로 이직했을 당시의 인사팀장은 꽤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인사팀장 너무 나대는 거 아니야?' 라는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그만큼 사명감을 갖고서 회사 전반의 업무를 다 이해하려 했고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최대한 도우려고 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A급 이상의 평가를 받을 만한 회사원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당시 CJ헬로비전은 '나 혼자 그레이트CJ 달성한다!'고 하면서 폭주하던 시기였고, CJ그룹 내에서도 일단 외형적인 성과로 인정받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자연스레 헬로비전 출신들이 다른 CJ계열사로 영전(榮轉)하는 사례가 생겨났습니다.
대표이사님, 경영지원실장님, 기타 실무자 등등 많이들 계열사로 옮겨갔습니다. 앞에서 말한 'A급 인사팀장'도 지주사로 영전해 갔죠.
그리고 문제의 인사팀장이 왔습니다. 제목에 쓴 대로 "넌 왜 그래?"라는 말이 따라붙을 만한 인사팀장이 CJ헬로비전에 계열사전보 형태로 발령받아 왔습니다.
뭐, 인사팀장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든 없든 회사 자체가 평안하고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면 조용히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인성이 쓰레기인 회사원들이 은근 많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평상시에 그 쓰레기 인성을 잘 드러내지 않거든요. 그냥 주어진 일만 처리하는 수준에서는 인성을 확인할 이유도 없고, 그 숙련도와 경험만 평가해서 적절한 보직을 맡기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외부요인과 결합될 때'에 발생합니다. 새로 온 인사팀장이 인사를 개판으로 시행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비로소 문제가 크게 확대됩니다.
인사가 개판으로 될 만한 환경. [구조조정]이었습니다.
2. 구조조정 : 파견~계약직 내보내는 게 구조조정이야?
헬로비전은 단기간에 매출을 2배로 불리는 기적의 성장을 이뤄 냈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부실해졌습니다. 30%에 달하던 영업이익률이 10%대로 내려갔고, 3500억원의 유동자산은 봄날의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는 근로기준법 24조 1항에 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통상 "정리해고"라고 하죠)의 요건이 되지 못합니다. 정리해고를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하는데, 일시적인 적자로는 안 되고 회사가 법정관리를 들어가거나 파산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져야 합니다. 아무리 꺾였다고 해도 1년에 1000억 버는 회사가 정리해고를 할 수는 없죠.
그렇긴 한데...
2014년 경의 CJ헬로비전은 '구조조정을 통한 조직 슬림화'를 경영목표 중의 하나로 내걸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레이트CJ 종교를 내세우며 '느그 마누라 팬티까지 팔아서 매출 만들어!' 따위 개소리로 직원들을 몰아치다가 이제 회사 영업이익률이 악화되니 사람을 줄여서 이익률을 높이겠다는 기적의 경영전략(?)을 선보인 거죠.
뭐, 저 이면(裏面)에는 '새로 인수한 지역유선방송 SO의 정규직들을 줄인다!'라는 강려크한 목표가 있긴 했습니다. 나름 삼성그룹의 모태 회사라는 자부심을 가진 CJ그룹 입장에서도 이러한 목표를 수행할 만 했죠.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대놓고 말하겠습니다. 지역유선방송 SO 소속 직원들은 CJ그룹의 네임밸류에 비해 전반적으로 수준이 낮습니다. 출신대학의 레벨, 대학 졸업 후 경력, 업무역량 등에서 CJ그룹 공채 출신보다 많이 낮은 편이죠. 그게 현실입니다.
또한, 소규모 유선방송사를 인수합병하면 당연히 본사 단위와 겹치는 보직은 줄이게 됩니다. 각 지역에 지역본부를 신설하고 거기에 관리조직을 따로 둔다고 해도 몇 명은 내보내는 게 맞죠. 이것도 M&A의 현실입니다.
즉, 2014년 경의 CJ헬로비전은 M&A 후속조치를 위해서라도 지역SO 출신 직원들을 일부 줄여야 하긴 했습니다. CJ그룹의 네임밸류에 맞지 않는 직원들을 내보내고 성장가능성이 높은 공채 신입들로 교체하는 게 더 낫긴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의 구조조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직이 어려운 직군에서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별도로 희망퇴직 위로금을 건다면 모를까 그런 거 없이 그냥 사람 줄이려면 상당히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신규로 인수한 지역SO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 M&A 계약에 일정 기간 동안 고용보장을 약정한 지역도 있었고, 그런 게 없는 지역도 그냥 막 해고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름 유선방송도 방송이어서 '방송 물'을 먹었다고 자부(!)하는 직원들을 쉽게 내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명 정도는 억지로 내보내긴 했죠. CJ헬로비전으로 인수되기 전에 법인카드 사용한 내역을 문제삼아서 '횡령으로 고소당할래 나갈래?'를 시전하는 방법으로 내보낸 직원들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지역SO 소속 직원들도 일단 정규직인 이상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해고가 불가능했고, 좁은 방송 시장에서 이직이 어려운 이상 각 직원들은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 걸로 커버하려고 했지 선뜻 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CJ헬로비전 내부에 이미 '지역SO출신'이 많았습니다. 2013년 진격의 M&A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 전에도 이미 여러 개의 지역SO를 인수하면서 헬로비전이 탄생했었고, 그 때 당시 양천방송-경남방송 등에서 유입된 직원들이 2014년까지 버티면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CJ헬로비전은 신규SO의 직원들을 거의 줄이지 못했습니다. '구조조정을 통한 조직 슬림화'는 물 건너 가는 것 같았죠.
여기서 또 한 번. 그런데 말입니다.
인사팀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만만하게 손쉽게 줄일 수 있는 인력'이 있었습니다. 원래 구조조정의 취지와 전혀 무관하고 단지 숫자만 줄이는 것 뿐이었지만 KPI상 인원감축 숫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인력이 있었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죠. 2014년 당시 CJ헬로비전 인사팀은 파견~계약직을 줄이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했습니다.
구조조정의 취지를 잘 이해하시는 분들은 '파견~계약직을 줄여서 구조조정 한다.'고 하면 "이건 뭥미? 어디서 배워먹은 개수작이야?" 라고 반응하실 겁니다. 네, 개수작 맞습니다. 구조조정의 취지 따위 X구녕으로 씹어먹은 개수작입니다.
멀쩡한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봉 높은 상위직급을 줄이고 신입~대리~과장 급 인력을 늘려서 전체 인건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조직을 피라미드 구조로 재편한다!] 는 것입니다. 금융권에서 시행하는 상시 구조조정이 딱 이 패턴이죠.
물론 이 과정에서 추가로 돈이 들기도 합니다. 금융권 구조조정은 주로 '희망퇴직'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로금이 투입됩니다. 가끔 3~5년치 연봉 같은 파격적인 조건이 따라붙기도 하죠.
그런데 CJ헬로비전의 구조조정은 이런 원래의 취지와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시행되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가장 약하고 연봉도 가장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칼춤을 추는 식으로 'KPI상 인원감축 숫자만 달성한다!'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매우 치사하고 졸렬한 방식이죠. 또한, 회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원래 인건비를 적게 받는 사람들을 대거 내보내고 연봉 높은 사람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면서 더욱 더 심한 역삼각형 인력구조를 고착화시키는데 뭔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사팀장은 이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본인의 KPI가 중요하니까요. 회사가 망가지든 말든 사회적 약자들이 힘들어지든 말든 본인은 KPI 숫자를 맞춰서 그 년도의 인센티브를 땡겨야 하니까요.
뭐, 여기까지만 했으면 그나마 빡치진 않았을 겁니다. 저 또한 회사원이고 KPI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니, '합법적인 영역에서' KPI의 헛점을 노리는 것만으로는 분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헛점 공략이 회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로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해도 일단은 인정해 줬을 겁니다.
당시 제가 분노했고 그 인사팀장에 대해 "너는 왜 그래?" 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새끼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파견직 직원 한 명 내보내려고 자료를 조작하고 관련자들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뭐 증거는 없죠. 10년이 지났으니 증거가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정황'만 있을 뿐.
그렇다 해도 정황만으로 서술하려 합니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 중심으로 정황만 서술하는 건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제 글을 통해 2014년 당시 CJ헬로비전의 인사팀장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해도 아몰랑. 그러면 뻘짓을 하지 말든가.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만 당시 정황을 상세히 서술하려 합니다. 제가 2016년 말에 정리해 뒀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하겠습니다. 20대 그룹 계열사의 인사팀장이라는 인간이 파견직 직원 한 명을 내보내기 위해 자료조작을 했던 정황, 그걸 다시 서술해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자세한 정황은 다음 편에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