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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재) 랩다이아 키우는 철종

by 테서스

1. 필자의 중딩 시절 이야기


오늘 글은 서론-본론 형태가 아니라 현실의 기억 - 소설 시나리오 순서로 가 보겠습니다.


필자는 대략 국민학교 세대이고,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에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때 서울 쪽에는 학원이 꽤 발달했던 것 같지만 지방에는 그런 거 없었죠. 방학 때 잠시 영어수학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과학 쪽은 그냥 학교수업만 했었습니다.


이렇게 학교수업만으로 과학을 배우던 시절. 아마 중2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이온(Ion) 반응을 배우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화학 수업의 선행과정 비스무레하게 주요 원소기호를 외우고 / 그걸 물에 녹여 이온화시켰을 때 양전자 이온과 음전자 이온을 구분하는 내용이었죠.


(그냥 고등학교 화학 과정대로 원소기호를 다 가르쳐 주고 주기율표에 따른 성질을 가르쳐 주면 더 쉬웠을 텐데... 아무튼 그 때는 각 원소 별로 양이온 / 음이온 구별하고 이온화되었을 때 양전자 / 음전자 숫자도 외웠었습니다.)


이걸 공부할 당시 '탄산(H2CO3)'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탄산은 H+ 양이온 두 개와 CO3-- 음이온 한 개로 나뉘어집니다. 수소 양이온은 양전자를 각 1개씩 갖고 / CO3-- 음이온은 음전자를 두 개 갖고 있죠.


이걸 본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파박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산화탄소(CO2)를 전기분해하면 C만 따로 모이는 거 아냐? C만 모으면 최소 흑연이고 잘 하면 다이아몬드 나오는 거잖아? 이럼 대박인데!]



당시 중2였던 저는 이 아이디어에 온갖 상상을 덧붙였습니다. 내 아이디어대로 된다면 집에서 전기세만 좀 내면서 다이아몬드 수천만개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순식간에 때부자가 되어서 세계1위 초초초 울트라 슈퍼 갑부로 등극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뭐, 친구들은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었죠. 그렇게 쉽게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으면 온 세상 과학자들이 다 했지 아직도 안 하고 있겠냐, 중학생 수준에서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다, 빨리 꿈 깨라 등등 부정적인 얘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문송합니다.'로 일관하는 문과생 출신이긴 하지만 나름 고등학교 과정 내내 화학은 늘 100점 받았던 것 같네요.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20번까지 외우고 전자의 오비탈(Orbital) 궤도에 대해 2-8-8 원칙만 알면 문과 수준에서 나오는 화학문제는 틀릴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쯤의 저는


[아 내가 중딩 때 헛된 꿈을 꿨구나. 이산화탄소는 이온화 하는 게 어렵겠네. 물에 통째로 녹여서 탄산 만들면 수소 원자는 오비탈 궤도에서 전자 하나 뺏기면서 양이온이 되는 거고 CO3 입자는 오비탈 궤도에 전자 두 개를 받아들여서 음이온이 되겠지만, 이산화탄소(CO2)상태에서 바로 이온화할 수는 없어.

C는 원소기호 6번이라 오비탈 궤도 2번 줄에 4개의 전자를 갖고 있는데 이러면 오비탈 퀘도에 전자를 추가하거나 빼는 게 어렵겠네. 전기적으로는 중성이고.

(문과 수준에서) 4족 원소인 실리콘도 동일하게 오비탈 궤도 상 전자 수가 4개야. 이래서 '반도체'인 거구나.]


라는 걸 이해했습니다. 문과 수준에서 독학으로 이 정도 깨달았으면 잘했다고 봐야죠. 30년 전의 나 칭찬해^^.


아무튼, 이때쯤에 '이산화탄소 전기분해해서 다이아몬드 대량생산하고 세계1위 때부자가 된다!'는 창렬한(?) 꿈은 포기했습니다. 문과생답게 문과 공부 열심히 하고 당시 입시제도의 헛점을 노려 수학 본고사 한 방으로 대학 가야죠. 뭐 그 때는 그랬습니다.



어어, 그런데 말입니다.


저 중딩 때 했던 생각이 아예 의미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전기분해로 이산화탄소에서 탄소원자만 따로 빼내 곧바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건 안 되겠지만, '고온.고압 환경에서 다이아몬드 씨앗을 크게 키우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목에 쓴 대로 '랩다이아'는 가능했습니다. 연구실(Laboratory)에서 키운(Grown)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실제로 구현 가능했고, 2020년대에 와서는 현실에서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쪼큼 아쉽죠. 중딩 때 제 아이디어를 들은 누군가가 '어엇 이 놈 봐라? 떡잎이 나쁘지 않네.' 라고 생각하면서 공대 화학공학과 진학을 추천해 줬으면 제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설프게 법대 가서 어설프게 학점 2.2로 간신히 졸업하고 어설프게 법무직원으로 회사 다니는 것보다 쪼큼은 나을 수도 있었을 듯 한데요.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그랬던 것처럼 굳이 다이아몬드를 태워서 이산화탄소가 나오는지 확인해 볼 필요는 없었겠지만, 대신 다양한 실험들을 많이 해 보긴 했겠죠. 화학과 출신답게 석유화학회사 취직했을 수도 있구요.)


뭐 지나간 얘기에 if를 붙여 봐야 별 의미 없습니다. 현실은 2회차가 없죠. 항상 인생은 실전입니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아모르 파티.


다만, 45살 이후의 저는 '소설가'를 겸업하고 있습니다. 중딩 때 구상했던 대로 다이아몬드를 양산해서 세계1위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걸 상상하고 소설로 쓸 수는 있죠.


소설 시나리오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회귀'가 좋겠네요.



2. 소설 시나리오 : 랩다이아 키우는 철종


(1) 왜 하필 철종인가?


'현실의 랩다이아 기술을 과거로 옮겨서 때돈 번다!'는 걸 주요 테마로 삼는다면... 대략 19세기 중후반이나 20세기 초반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먼 과거로 올라가면 다이아몬드 유통이 어려워지고, 가까운 과거로 가면 이미 인공다이아몬드 기술이 태동하기 시작한 상태라 금새 기술격차가 줄어들 테니까요.


그리고, 19세기 중후반 정도 시점에서 영국/미국/프랑스 쪽으로 가면 '주인공의 고난'을 넣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렇다고 20세기 초반 독일 시점으로 가서 나치놀이 하기에는 인간적으로 약간 꺼림칙하구요.


결국 '식민지로 전락할 약소국의 운명을 바꿔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적당히 고난 겪고 적당히 기승전결 있으면서 적당히 대리만족도 느낄 수 있는 무난한 시나리오. 무난한 게 잘 팔리겠죠.


다만, 저는 고종 시대로 가는 건 별로입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 몇 번 썼듯이 저는 고종을 '고좆'으로 부를 때가 많아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싫어합니다.


뭐, 전문적으로 한국사 공부하시는 분들은 '고종도 아예 최악은 아니었다'고 평가하시긴 합니다. 조선왕조 역사 중에서 고종보다 더 하타치인 인간들도 몇 명은 있었을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의 광풍이 불 때 약소국의 군주였던 게 문제였을 뿐, 고종 본인은 그렇게까지 무능하진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에게는 고종이 '고좆'일 뿐입니다. 임오군란,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종이 대응한 방식을 보면 고좆 호칭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군인 월급을 썩은 쌀로 주고 / 농자천하지대본 외치는 봉건국가에서 농민들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들을 방치했으며 /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외세(外勢)를 끌여들었다가 자기도 감당 못해서 일본 낭인들에게 마누라 목이 떨어지는 굴욕을 겪었잖아요. '내가 조선의 국모다!' 따위 국뽕 들어내고 보면 고좆-중전민씨 콤비는 무능하다고 욕 먹을 만 합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평가로 고종을 들어내고 보면... '철종'이 시대적으로 가장 가깝습니다. 고종 직전의 임금이었고 무엇보다도 '평민의 삶을 살았던 왕족'이라는 사연이 있죠.


현실의 철종은 뭔가를 해 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문 배우고 책 몇 권 읽은 걸로는 당대의 권문세족들을 휘어잡기 어려웠겠죠. 애당초 신하들이 만만한 바지사장 세우려고 데려온 왕족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철종에게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면? 조선의 재정사정을 확 뒤집어서 중국산 금땡이 은땡이를 다 빨아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면?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설정을 추가해야 합니다. [현실의 에너지 법칙을 무시한다]는 설정이 들어가야죠.



(2) 상온 상압 조건에서 랩다이아를 만들어야 돈 벌 수 있음


문송한 수준에서 대충 랩다이아 만드는 방법을 검색해 봤는데... 대략 '조오오오온나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정도만 이해했습니다;; 나노 수준의 다이아몬드 입자를 만들려면 온도 2천도 + 압력 30만 기압 수준이어야 하고, 다이아몬드 씨앗을 키워서 랩그로운으로 크게 만드는 것도 은근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하네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에너지를 확보하는 게 별 일 아니겠지만, 19세기 중반 조선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대인이 과거로 회귀해 간다면) 강원도 쪽에 석탄이 많으니 화력발전소를 지을 수는 있겠지만 그 전기를 배송하고 연구소에 써먹기에는 어렵죠. 철종이 무슨 대단한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런 일에 인력 동원했다가는 반정(反正) 크리티컬 맞고 쫓겨날 겁니다.


결국 뉴턴물리학 수준의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마법'을 추가해야겠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강력한 마법을 주면 곤란합니다. 적당히 딱 랩다이아몬드만 만들고 나머지는 철종 본인이 임금의 능력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왕이면 영어로 미국-영국 상인들과 직접 협상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안동김씨 가문의 횡포,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며 계속 밀려오는 코쟁이 군대들, 숫자로 밀어붙이는 청나라 군대, 코쟁이들 못지않게 최신무기로 잘 무장된 왜군. 이들 사이에서 '다이아몬드의 힘'으로 조선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다이아몬드 말고도 외교적 협상능력이나 군사적 역량 등을 잘 발휘해야겠죠. 조선 내부의 탐관오리들도 척결해야 하구요.


자, 간단히 시나리오 앞부분만 써 놓겠습니다.



(3) 퐁퐁남이었는데 철종으로 회귀해서 랩다이아 팔아먹은 썰 푼다


몇몇 광신도들이 '혐오라구욧 빼애애액!'을 외치는 단어 나왔습니다. 퐁퐁남.


뭐 (광신도들에게 말하면) 니들이 주관적으로 혐오라고 느낄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뭐 어쩔티비. 역겨운 것들을 역겨운 것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게 무엇인지 밝히는 건 작가의 권리이자 의무야. 남성향 소설의 표현들이 혐오라고 느껴지면 BL작품 가서 (똥)구멍 하나에 투스틱 쑤셔넣는 거나 보세요.


광신도들의 빼애액거림 따위 사뿐히 씹어 주고 '퐁퐁남' 설정대로 가겠습니다.



유능하고 성실한 연구원이었으나 퐁퐁 당해 버린 퐁퐁이형. 심지어 목숨까지 잃게 된다. 21세기의 랩다이아 회사 직원은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만, 죽기 직전에 애절하게 외친 소원이 이루어졌나 보다. 퐁퐁이형은 '임금'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어, 그런데...


왜 하고많은 임금 중에 하필 '철종'이냐? 아오, 기왕 임금 만들어 줄 거면 빔샤벨로 달을 썰어 버리는 아머드 태종 정도는 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세종대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퐁퐁이형은 분노하여 썩은 통나무 하나를 꽉 움켜쥔다. 그리고...


"어? 이거 뭐야?"


퐁퐁이형이 쥐었던 나무토막이 '다이아몬드'로 바뀌었다. 퐁퐁이형의 내면에 넘쳐나던 분노(!)가 온 우주의 기운으로 승화하여 상온 상압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기술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거면... 이거면 가능해! 세계정복도 할 수 있어!"


철종이 된 퐁퐁이형. 그의 웅장한 진군이 시작된다. 다이아몬드 파워로 세계정복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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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품을 쓴다면 조금 진중하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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