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저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진짜 하기 싫은데 사실상 강제로;;) 공정위 관련 기사를 자주 찾아봅니다. 일 하는 척 하면서 쉬려면 이거라도 찾아봐야죠;;
그런데 오늘 좀 독특한 기사가 났습니다. 패션 쪽에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오늘 처음 들어 본 용어 - 에코레더(Eco Leather)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326307?sid=101
'무신사'가 뭐 하는 회사인지는 대충 알지만 세부적으로 무슨 광고를 하는지는 몰랐었는데... 공정위에서 한 방 때렸네요. 인조가죽을 에코레더로 광고하는 것은 전형적인 그린워싱(Green Washing)이고 친환경을 앞세워 소비자를 기망하는 것으로 거짓.과장 광고다, 뭐 그런 취지입니다.
공정위의 판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광고 영역에서 공정위의 역할은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과 일반인의 경제적 판단 기준'을 보호하는 것이고, 일반인들이 '친환경'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 경향성이 합리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보호해 줘야 합니다. 대부분의 '친환경'이 석유화학제품을 줄이는 것이라는 상식이 형성되어 있다면 그 상식도 보호해 줘야죠.
여기서 잠깐. 그런데 말입니다.
[석유화학제품을 줄이는 게 친환경이다.] 는 명제 자체는 일반인의 상식으로 굳어지긴 했습니다. 공정위는 이걸 보호할 수 있고 또 보호해야 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리적 관점 내지 상식을 떠나서 과학적-합법칙적 인과관계 측면에서도 그러할까요?
조금 범위를 넓혀 봅시다. '친환경'의 정의(定義)를 '석유화학제품 사용 자제'에 국한하지 않고 [지구 전반적인 환경과 동물의 권익 보호]까지 포함해서 볼 때, 도대체 어디까지가 친환경이고 어디까지가 반(反)환경인 걸까요?
모호한 말장난은 짧게 줄여야겠죠. 본론으로 넘어갑니다.
2. 본론
(1) 가죽(Leather)의 본질 : 동물을 죽여야 가죽을 얻는다
가죽. 레더. 레자. 퍼(Fur)를 포함한 일체의 동물 껍데기.
아주 쉽습니다. '가죽'의 정의 자체가 '동물의 피부와 그에 붙은 털 일체'를 의미하는 이상, 가죽의 본질은 '동물을 죽여 그 껍질을 벗기는 것'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이래 계속 그러했고, 현대에도 그러합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가죽은 '소가죽'입니다. 일단 현대인들이 소고기를 엄청 많이 먹으니 그 부산물로 소가죽도 많이 생산되긴 하죠. 아직 고기만 따로 배양하는 기술이 상업적으로 유용하지 않으니 소 전체를 키워야 하고, 그렇게 키운 소를 죽이면 가죽을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각종 가죽제품으로 활용하긴 해야 하구요.
소를 키우는 것 자체가 환경파괴라는 얘기가 많긴 합니다. 인간이 옥수수 등 곡물을 직접 섭취하는 것보다 소에게 곡물을 먹여 살찌운 뒤 그 소를 잡아먹는 게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또 소가 방귀를 뀌면(...) 메탄가스가 겁나 많이 나와서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고 하죠. 채식주의자 분들은 소고기를 비롯한 일체의 고기를 거부하기도 하시죠.
그래서 소를 안 키우면... 가죽제품은 뭘로 만들죠? 설마... 인피(人皮)?
에이 그럴 수는 없죠. 저 같은 소시오패스가 이 지구에 널려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가죽으로 소가죽을 대체할 리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친환경 이전에 살인죄로 무기징역 살아야 할 거예요.
소가죽의 대체품은 없습니다. 적어도 '천연가죽'으로서 소가죽을 대체할 만큼 저렴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소재가 없어요. 그건 명확합니다.
천연가죽이 아닌 대체품을 찾는다면... 결국 석유화학제품 뿐이죠. 인조가죽 뿐입니다.
당연한 얘길 길게 했네요. 다음 챕터 넘어갑니다.
(2) 그럼 천연 직물 소재는? 이것도 에너지 엄청 쓴대요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엠마 왓슨'이 한때 '석유화학 섬유 옷은 환경을 파괴해요 모두 천연소재 직물 옷을 입어요 뿌잉뿌잉.'을 시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그때 나온 얘기가 [어? 천연소재 직물도 에너지 엄청 씁니다. 석유화학제품보다 몇십 배 많이 써요.] 였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표적으로 '목화'가 나왔었죠. 면(綿)으로 가공되어서 온갖 부드럽고 좋은 천의 소재가 되는 목화. 이거 키우는 데 물+비료+살충제 등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간다고 합니다. 특히 '물'과 '비료'가 장난 아니라고 하네요.
물은 퍼올리면 되긴 합니다만... 강물도 퍼올리려면 전기를 써야 하고, 안 되면 지하수를 퍼올려야 하는데 이건 전기가 더 많이 들죠. 전기를 태양광+풍력으로 만들면 된다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적으로 잠깐 생긴다'는 문제 때문에 결국 다른 발전수단과 결합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전기를 가장 쉽게 만드는 방법이 '화력발전'인 건 굳이 설명 안 해도 다 압니다.
비료는... (인간 숫자 폭증에 가장 크게 기여했지만 또한 독가스를 만들어서 인간을 여럿 죽이기도 한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NH3)를 만드는 방법(하버-보쉬법)을 개발하긴 했습니다만, 이 하버-보쉬법도 결국은 전기를 써야 합니다. 태양광+풍력만으로 낮 시간에만 비료를 만든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 봤어요. 그런 비료공장이 있다면 비/눈/밤에 가동을 중단해야 하고 겨울과 여름에도 가동 효율이 떨어질 테니 아마 망하겠죠.
결국 목화는 '화석연료'로 키웁니다. 최종 산출물인 면(綿)은 천연소재 제품이지만 그 천연소재 제품을 키울 때까지 화석연료를 무진장 때려박아야 합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략 감으로 찍어도 '석유 자체에서 석유화학 직물을 뽑아내는 것'이 더 저렴하고 화석연료 사용량도 적을 것 같습니다.
(3) 소가죽도 안 되고 천연소재 직물도 안 되면? 어쩌라고?
천연가죽의 대표주자 소가죽은 소를 키우는 데에 어마무시한 에너지와 식량(곡물)을 쏟아부어야 하고 메탄까스가 대량 발생합니다. 천연소재 직물도 물과 비료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해서 석유화학으로 곧장 합성직물을 뽑아내는 것보다 더 큰 낭비를 유발합니다. 과거처럼 똥 퍼서 삭히고 천연비료로 쓴다면 조금 나아지겠지만 냄새공해...가 쩔어서 안 될 겁니다. 기생충 문제도 있구요.
(* 지금 이 글에서는 잠시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태양광+풍력은 에너지 공급 측면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전기는 그 자체로 저장할 수 없다.]는 명백하고 명확한 과학적 사실 때문에 '간헐적 발전수단'인 태양광+풍력은 보조수단에 그치게 됩니다. 이것도 정신승리로 극복할 수 없죠.)
그럼 뭘 해야 햐죠? 뭘 어떻게 해야 '친환경'이 되는 거죠?
뭐, 채식을 하면 좋습니다. 적어도 채식주의자들이 지구 환경에 더 기여한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고기 먹는 쾌감(!)을 포기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존경받을 만 합니다.
다만, 저는 육식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걸 아끼고 덜 쓰는 건 가능하지만 고기는 먹어야 해요. 사람이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스트레스를 줄이죠. 고기까지 끊으면 스트레스로 사람 죽일 수도 있으니 주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육식 해야 합니다;;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덜 쓰는 것] 뿐입니다.
골프 안 치고, 낚시 안 하고, 해외여행 조금 덜 다니고, 국내여행도 조금 덜 다니고, 환경파괴적인 취미보다는 조금 저렴하게 컴퓨터 게임만 하고, 출퇴근할 때에도 자가용 타지 말고, 핸드폰도 최신폰 타령하지 말고, 각종 전자제품도 고장나기 전까지는 계속 쓰고, 등산할 때에도 굳이 수백만원짜리 석유화학제품 등산복 입지 말고. 그게 그나마 지구 환경을 덜 파괴하고 조금 더 보호하는 길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과학기술력 수준에서는 그러합니다.
(4) 인조가죽은 에코(Eco)가 아니지만... 절약하는 인간은 호모 '에코'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슬기로운 인간'입니다. 우리 시대의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죠.
우리는 다들 지혜롭고 슬기로운 인간입니다. 인조가죽이 에코레더라는 (개구라) 과장광고에 속지 않을 정도의 능지를 보유하고 있고, 또 다른 에코(Eco) 놀이에 휩쓸리기 전에 에너지와 자원 사용량 정도는 비교해 볼 수 있는 능지도 있습니다. 다들 그 정도는 합니다.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덜 쓰는 것' 뿐이라면. 지금 세상에서 80억 인류가 뭘 하든 환경을 파괴하니 그나마 유일한 대안이 '덜 쓰는 것' 뿐이라면.
절약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80억 인류는 자발적으로 / 알아서 / 스스로 물자를 아껴야 합니다.
호모 '에코' 사피엔스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강조하듯이 저는 육식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만... 그 외의 영역에서는 절약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작은 환경보호 때문이 아니라 그냥 돈이 없어서(;;) 한 것이지만, 나름 30년 가량 절약하면서 살다 보니 나름 자부심도 생겼고 이제 환경보호라는 좋은 명분까지 얻었습니다.
절약합시다. 아낍시다. 각자의 노후를 위해서. 자식들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구를 위해서.
이만 잡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