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곰처럼 강한 힘~ 표범처럼 빠른~ 발~
두려움을 모르는~ 초능력 우주보안관~
필자가 어릴 때 (대략 35년 전?) TV에 나왔던 '우주보안관 장고'의 노래가사입니다. 다시 찾아보니 원제목은 브레이브스타~르(Bravestarr)라고 하네요.
저 만화에서 주인공 브레이브스타르(번역본 '장고')는 인디언(요즘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합니다만 그냥 제작 시기를 고려해 '인디언'이라 하겠습니다.)의 신비한 힘으로 '동물 초능력'을 사용합니다. 많이 쓰는 건 아니고 4개만 쓰는데요. 대충 정리하면
- 곰같은 힘이여 솟아라
- 표범(퓨마)의 속도로 뛰어라
- 매(독수리)의 눈으로 보아라
- 늑대의 귀로 들어라
이 4개의 능력을 썼습니다. 각 능력은 실제 동물의 능력보다 몇십~몇백 배 더 강해서, 곰의 힘을 쓰면 몇십 톤 나가는 물체를 가볍게 들어올리고 / 표범의 속도를 쓰면 거의 음속을 10배 초과하는 속도로 이동하며 / 매의 눈으로 보면 무슨 인공위성 관측 시스템 급으로 세상을 다 살필 수 있었죠.
이 만화처럼 대충 '~~원주민의 신비로운 초능력'으로 설정하면 실제 동물의 능력과 무관하게 어마무시한 힘과 속도를 발휘해도 무방합니다. 신비로운 초능력이라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현실의 곰은 1~2톤 정도의 근력이 한계일 것이고 / 표범은 시속 70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겠지만 그런 거 다 필요없습니다. '신비로운 초능력' 이거 하나면 끝입니다.
그렇긴 한데...
조금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쓰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네요. 늘 그렇듯이 저 자신은 '문송합니다'인 (학점 밑바닥) 법학 학사입니다만 그래도 나름 과학상식 같은 걸 추가해서 (하꼬)소설 쓰긴 하거든요.
지구 생물의 능력을 갖춘 '현실적인 인간'의 이야기. 살짝 진행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인간 태아의 변화 : 생물 진화의 역사가 거의 다 담겨 있다 카더라
지금의 저는 '문송합니다'지만... 국딩(초딩 이전에 국딩) 시절의 저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국딩 5학년 때 '과학어린이'로 지정되어서 당시 과기부장관 표창을 받았었어요. 부상(副償)으로 `80년대 말 기준 7만원짜리 과학대백과사전을 받기도 했었죠.
그 과학대백과사전 앞부분이 꽤 재밌었습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과학상식의 70% 이상이 그 시절에 습득한 잡지식들인 것 같네요. 당시에는 '판검사 되어서 집안을 일으켜라!' 따위 유교(탈레반)적 가치가 횡행하고 있어서 결국 과학 쪽으로는 안 갔지만 아무튼 재밌었으니 좋았쓰!
그 잡지식 중 하나가 '인간 태아의 변화'였는데요. 국딩 시절의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 한 달 갓 지난 상태의 태아를 비교해 보면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모두 비슷비슷하고 인간 태아도 동일함
- 그런데 인간 태아는 6주~8주째에 매우 극렬한 변화를 겪음. 처음에는 분명 어류(그 중에서도 2억년 이상 된 상어)의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 양서류의 모습처럼 변하고 또 파충류 비스무리하게 됐다가 60일째가 되면 갑자기 인간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함
정도였습니다.
즉, 인간의 태아는 짧은 시간에 생물 진화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80년대 말 기준으로 기억하고 있는 잡지식이라 최근에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유전자 안에 생물 진화의 주요 역사가 다 담겨져 있고, 이를 유전자 단위에서 다 발현하고 변형할 수 있다면 인간 스스로 '대다수 생물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죠.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 형상으로 고정되고 다른 생물의 특성을 드러낼 수는 없게 됩니다만... 우리의 유전자 어딘가에는 다른 생물의 형상과 능력이 잠재해 있을 겁니다. 그걸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을 뿐이지 우리 몸 안에 들어 있긴 할 거예요.
그걸 활성화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가능하다면 '의식적 통제'로 부분적/제한적인 활성화가 된다면 더 좋겠죠.
(2) 동물 능력을 사용하는 범위 설정
적용하려고 하면 끝도 없겠습니다만, 대충 잘 알려진 생물 중심으로 요약하면
- 다리는 치타의 능력을 부여해 단거리 능력을 대폭 향상. 혹은 말(馬)이나 늑대의 지구력을 적용해 겁나 오래 달릴 수 있게 재변신
- 팔은 호랑이의 앞발 능력 부여. 발톱은 기본이고 인간의 80배에 달하는 싸다구(!) 능력을 부여해서 귀쌰댁 한 방 날리면 사람 목 부러뜨릴 수 있음
- 턱과 소화기관은 하이에나 모방. 몸무게의 1/3까지 먹어치울 수 있고 그렇게 폭발적으로 흡수한 에너지를 또다른 변신 에너지로 활용
- 눈은 독수리처럼 튜닝해서 평소보다 10배 멀리까지 볼 수 있고, 후각은 개-늑대만큼 좋아지며, 청각도 박쥐 수준이 됨. 심지어 평소에 못 듣던 초음파 영역도 들을 수 있음.
- 물총고기의 능력을 활용해 물 한 모금으로 사람을 꿰뚫을 수 있고, 전기뱀장어의 생체발전기를 만들어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을 지져 버릴 수 있음
(- 코브라를 비롯한 각종 뱀의 독(毒)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상대적으로 평범한 편이라 패스)
정도가 나오겠네요.
물론 여기서 더 가면 무척추동물 수준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괴작영화 '테라포마스(Terra-for-mars)' 수준의 곤충능력도 적용할 수 있고, 플라나리아의 무한재생능력을 활용해 12토막 나더라도 12개의 새로운 개체로 자라나게 설정할 수도 있죠. 19금 설정이라면 노린재의 무한발사능력(...)을 도입할 수도 있구요.
다만, 실제로 소설을 쓴다면 곤충 내지 플라나리아 급까지 내려가는 건 자제할 생각입니다. 이건 이미 기존에 나온 작품들이 많고, 다음에 언급할 '유전자 튜닝 변신에 필요한 생체 에너지' 측면에서 한계를 뛰어넘어 버리거든요.
제한을 걸어 보겠습니다.
(3) 현실적인 제한 : 변신에 필요한 생체 에너지
'신비한 초능력'으로 퉁치면 에너지의 제한은 없어집니다만... 이렇게 하면 판타지나 다름없죠. 그나마 과학소설 스멜(Smell)을 풍기려면 현실의 물리법칙을 아예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인간 세포의 유전자를 한 번에 다 바꾸려면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들 겁니다. 전환 효율이 100%라고 해도 최소한 인간 본인의 몸무게에 상응하는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을 투입해 줘야 할 거예요. 그게 아니면 세포를 재구성할 수 없겠죠.
아쉽게도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들은 이 정도로 방대한 생체 에너지를 몸에 축적해 둘 수 없습니다. 한 번 먹으면 몸무게의 1/4 ~ 1/3 수준까지 먹어치운다는 육식동물들도 자기 몸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에너지를 흡수하긴 어려워요. 인간은 저장효율이 더 낮아서 근육과 간에 저장하는 글리코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또한, 이 에너지 제한 때문에 '최종 포유류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는 하급생물'까지 변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곤충~플라나리아 단위에서는 체격이 매우 작아지는데, 인간의 체격을 유지한 채 곤충~플라나리아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될 테니까요. 그 능력을 발현시키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할 거구요.
결국 곤충~플라나리아 레벨은 제외하고 포유류 내지 일부 제한적인 파충류~어류의 능력을 구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하는데... 이것도 에너지가 많이 들긴 합니다. 짧은 시간에 신체구조를 확 바꾸려면 최소 수십만 kcal 단위의 생체에너지와 영양분이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이걸 해결하려면 '압축 단백질 블록'과 '전기를 직접 사용하는 변신 효소'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체조직을 재구성하는 재료는 인간 내부의 세포조직 및 외부의 단백질 블록을 활용하고, 세포를 재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는 생체전기를 사용한다는 설정. 이거라면 최소한 포유류 간 변신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이런 존재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겠죠. 몇십조 꼬라박아 주려면 국가 단위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결국 '군사무기'로 개발할 수 밖에 없겠네요.
그럼 시나리오가 너무 단조로워지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성을 강조한 과학소설]이라면 현실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죠.
일단 여기까지 생각했었는데요. 이 '현실 범위' 설정에서 큰 문제가 하나 더 따라붙습니다. [인간의 무기 체계가 너무 발전해서 생체무기가 별 의미 없게 되었다]는 문제겠네요.
<시나리오 실패> (4) 생물의 능력만으로는 현대 무기를 당해낼 수 없다
치타의 속도. 호랑이의 힘. 늑대의 후각과 청각. 독수리의 눈. 말의 지구력.
이걸 다 동시에 발동할 수 있다고 해도... '총알빵'을 맞으면 끝입니다. 지구 생물 중 그 어느 것도 총알을 튕겨낼 수는 없어요. 5톤 이상 나가는 코끼리도 총알 한 방에 안 죽는다는 것 뿐이지 총알 맞으면 피부가 뚫리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코끼리 전용 사냥무기를 만든다면 20mm 대물저격총 수준에서 정리되겠죠.
치타의 속도를 갖고 있어도 총알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치타가 아무리 빨라도 최대 시속 120km 정도일 텐데 총알은 총구이탈속도가 마하2(시속 2500km 정도) 급이고 유효사거리 범위 내에서는 대략 음속(시속 1250km) 전후여서 치타보다 10배 빠릅니다. 물리법칙 내에서 현대식 총알을 피할 수 있는 생물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죠.
시각, 후각, 청각 다 마찬가지입니다. 독수리도 총알빵 맞으면 추락하고, 호랑이도 총알 맞으면 쓰러집니다. 폭탄 터지면 집단으로 쓸려 나갑니다.
군사무기로 개발하면서 수십조 단위의 개발비를 투자했는데 총알 한 방 맞고 끝이라면 뭐... 그냥 일반인 1만명 징집해서 모두 소총 들려 주는 게 더 낫겠죠. 당연히 그럴 겁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곤충~플라나리아 레벨의 능력'까지 확대하면 충분히 개발할 가치가 있겠습니다만, 여기까지 내려가면 그냥 '신비한 초능력'과 동급이 됩니다. 이럴 거면 그냥 판타지 쓰는 게 낫죠.
이번 시나리오는 실패네요. 나름 현실적인 수준에서 다양한 동물로 변신하는 생물병기 컨셉으로 이야기를 꾸며 보려고 했습니다만... '현대 화약무기'의 위용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뭐, 모든 시나리오가 다 잘 될 수는 없죠. 이것저것 구상하다 보면 실패한 시나리오도 나오게 됩니다. 이 또한 하꼬소설가가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도 일단 정리는 해 두겠습니다. 20년 뒤에 다시 보면 뭔가 좋은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