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브런치스토리에 글 올리시는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이, 저 또한 평소에는 과격한 표현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물론 저 자신이 19금 하꼬 소설가여서 자제한다고 해도 군데군데 비속어가 들어가긴 합니다만, 그래도 제 수준에서는 자제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러하죠.
그렇긴 한데...
저는 '내로남불'을 무척 싫어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지지 세력을 여러 번 바꿨고 지금도 언제든 바꿀 가능성이 높은데, 지지 세력을 바꾸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역겨운 내로남불'입니다.
물론 제가 항상 언행일치를 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이 모순이고 저 자신도 여러 모순을 안고 있죠. 환경을 중시한다면서 고기를 먹고,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지만 반려동물 물고빠는 인간은 혐오합니다. 저 자신의 내면에 많은 모순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또 한 번. 그렇긴 한데...
소위 '정치인'이라는 잡것들이 내로남불 시전하면 무척 역겹습니다. 자기 편의 범죄(주로 성범죄)에 대해서는 입꾹닫 침묵, 반대편의 범죄(이 또한 주로 성범죄)에 대해서는 아몰랑 무조건 사퇴예욧 빼애애액! 이런 것들은 입을 확 찢어야죠.
특히, 진보(進步)라는 이름을 내건 집단이 이렇게 내로남불 시전하면 아주 그냥 혐오감 대폭발입니다. 1997년 한총련 출범식에서 무고한 시민을 프락치로 몰아 때려 죽이고 그 다음날 '정부의 탄압입니다 웅앵웅.'을 시전할 때 느꼈던 혐오감이 28년 만에 다시 연탄까스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입니다.
또한, 향후 5년 간 막힐지도 모르는 '표현의 자유'를 미리 누리고 싶기도 하네요. 브런치스토리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상업적 성과를 얻어야 하는 웹소설 출판업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자주/광범위하게 제한하곤 합니다. 그 전에 미리 써 놔야겠죠.
바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2. 본론
(1) 뒤주링거의 사도세자
예전에 서브컬쳐 문화권에서 잠깐 유행한 담론이 있었습니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다시 뒤주를 열어 볼 때까지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중첩되는 것이다.' 라는 식의 개그(?)였죠.
대충 이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물리학자 슈뢰딩거였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매우 유명하죠.
1시간마다 50%의 확률로 살상가스를 뿜어내는 상자(혹은 살상가스 외에 총, 칼, 폭탄 등등 각종 살상무기를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안에 고양이를 가두고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확인하는데, 상자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한히 반복하면 굶어죽기라도 할 테니 고양이가 반드시 죽는다는 건 확실한데, 그 이전의 시점에서는 고양이가 죽은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중첩되는 겁니다.
뭐, 이 가상 사고실험을 제안한 슈뢰딩거는 '양자의 상태가 중첩되는 게 말이 되냐?'는 의미에서 양자중첩이론을 깔려고 이걸 제안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역으로 '중첩 상태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비유'로 쓰이고 있죠. 이 또한 모순(Irony)일까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대략 1900년대 초반에 제안되었는데, 이걸 사고실험으로 끝내지 않고 직접 실행한 나라가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제안보다 200년 가량 빠르게, 심지어 고양이가 아닌 '사람', 그것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무려 임금 자리를 물려받을 '세자'로 시행해 버렸죠. 헬조선은 양자중첩성을 미리 깨달은 나라...일까요?
비극적인 사건을 희화화하는 건 나쁜 짓이에욧 빼애애액! 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위키 사도세자 항목에서 이 저질 개그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뭐,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혐오소설은 제 주력장르이기도 하죠.
그래서 계획한 게 [뒤주링거의 사도세자]였습니다. 뒤주에 갇혀 1주일 동안 찜통더위 속에서 찜닭 급으로 푹푹 삶기고 있던 사도세자가 넋이라도 있고없고 상태에서 '인간 영혼의 중첩성'을 깨닫게 되고, 21세기에 살고 있던 '동급의 캐막장 후손'과 영혼중첩하게 된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원래는 이 시나리오에서 사도세자와 영혼중첩하게 되는 '동급의 캐막장 후손'은 가상인물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모티브가 될 만한 인물은 없었죠.
물론 이 시나리오로 소설 쓴다고 해도 실제 인물을 등장시키진 않을 겁니다. 저는 알페스 BL 쓰는 부류가 아니거든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할 수는 있지만 당연히 가상인물로 재가공(!)해야죠.
아무튼, 이 '동급의 캐막장 후손'으로 올릴 만한 캐릭터가 있네요. 뭐 한 명으로 다 대체할 수 없지만 몇 명 합치면 충분히 나올 것 같습니다.
[드럼통의 요도세자]입니다.
(2) 요도견의 제왕 : 드럼통의 요도세자
모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설친다. 애비가 국가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더더욱 설친다. 그 전에도 요도에 젓가락 꽂고 다니면서 발광했지만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설친다.
애비의 지지율이 떡락한다. 이러다가는 탄핵 이전에 혁명 일어나서 썰릴 것 같다. 이러면 결단을 내려야지.
애비는 발광아들을 집에 가두려고 한다. 정신병원에 가두면 언론에 나올 테니 그냥 조용히 임기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집에 가둬 두려 한다.
그런데 뭐 그게 쉽나.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들은 집에 '드럼통'을 준비한다. 애비에게 항의하겠다는 의미로 요도에 젓가락 꽂고 스스로 드럼통에 들어간다.
물론 금방 후회한다. 내가 이럴려고 드럼통 준비했나 자괴감이 든다. 어서 빨리 나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드럼통이 안 열린다. 이대로 인생 하직하는 건가. 가족과 연을 끊으려는 애비의 의도대로 되고 마는 것인가.
그 때. 아들의 귓가에, 아니 머릿속에 속삭임이 들려 온다.
"넌 누구냐?"
"네?"
"나는 조선의 세자다!"
"으음? 그 사극에 나오는 세자 말씀이신가요?"
"그래! 넌 뭐냐? 뭐 하는 변태길래 요도에 젓가락을 꽂고 있느냐? 이 답답한 철통은 또 뭐고?"
사도세자 이훤과 영혼중첩이 일어났다는 건 나중에 알아보면 된다. 중요한 건 사도세자가 엄청 힘이 좋다는 것. 드럼통 뚜껑 따위 박살내 줘!
콰아앙!
드럼통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뒤주에 갇혀 죽을 뻔 했던 개싸이코 연쇄간살마 '사도세자 이훤'이었다.
현대 권력자의 아들로 영혼중첩된 사도세자. 그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쇄간살 시작이다.
그래도 요도견들은 이 사람을 찬양하겠지. 그들의 능력이 닿는 한 피의 실드를 쳐 주려 하겠지. 표현의 자유가 말살된 헬조선은 사도세자가 활개치기에 딱 좋다.
사도세자는 21세기에서 '제왕'이 되었다. 요도견들의 제왕.
------
이 소설을 쓸 일이 없길 바랍니다. '표현의 자유가 말살된 헬조선'을 볼 일이 없길 바랍니다.
뭐, 언제든 쓸 수 있습니다. 혐오소설은 제 주력장르고, 저는 쓸 수 있는 글은 다 쓴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표현의 자유에 한계가 있다구요? 너무 극단적이시네. 내가 쓰고 싶어서 쓴다는데 뭐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