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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Nov 01. 2023

[건설법무] 건설업 관련 보증보험증권 문제 정리


1. 개요


보증보험. 영문계약에서는 Bond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보험은 Insurance라고 하는데, 보증보험은 그 증권적 성질을 더 강조하는 것인지 Bond로 다르게 부르는 것 같더군요.


한국의 건설 관련 보증보험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70년 된 성숙산업인 건설업의 변화 동향을 잘 반영하는 동시에, 건설업 종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면서 자체적인 (마다가스카르식) 생태계를 조성했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왜 마다가스카르식 생태계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목차부터 잡고 가겠습니다.


(1) 건설 관련 보증보험의 종류

(2) 건설 관련 보증보험 발급기관

(3) 관련 법리 – 주로 계약이행보증보험에 관하여

   1) 보증인 동시에 보험

   2) 실손해 보상하는 특수한 손해배상예정

(4) 개선 방향 고민


순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건설 관련 보증보험의 종류


건설 관련 보증보험 중 가장 많이 쓰이는 ‘3대 메이저’는 ①선급금증권 ②계약이행증권 ③하자보증증권 이렇게 3가지입니다.


선급금증권은 ‘아직 일 안 한 상태에서 돈부터 주면서 돈 받은 시공사(하도급사 포함) 측이 발급받아 제출하는 증권’입니다.

공사 자체는 개시하지 않았지만 사전에 현장사무실 개설하고 / 사람 모으고 / 장비임차계약 계약금 주고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 미리 선급금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업체 사정에 따라서는 이 선급금을 먹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먹튀 그 자체)… 보증보험 취급 기관에서 선급금증권 발급받는 겁니다.


계약이행증권은 ‘공사 제대로 못했을 때 발생하는 손해를 담보하기 위해 시공사(하도급사 포함) 측이 발급받아 제출하는 증권’입니다.

앞 개론에서 타절(해지)에 대해 잠시 언급했었는데, 모든 업체가 다 정상적으로 공사 수행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살다 보면 문제 생기는 업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런 경우 타절-후속업체 선정 과정에서 손해가 꽤 생깁니다. 이 손해를 보전받는 게 계약이행증권의 목적입니다.

단, 하도급법 등에 따라 계약이행증권은 ‘전체 계약된 공사금액의 10%’로 제한됩니다. 이는 아래 법리에서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하자보증증권은 ‘다 끝낸 공사에서 하자 발생했을 때 이 하자보수 및 그에 갈음한 손해를 담보하기 위해 시공사(하도급사 포함) 측이 발급받아 제출하는 증권’입니다.

하자증권은 계약이행증권과 비슷한 방식으로 행사하는데, 건설공사 하자담보기간이 각 1년/2년/3년/5년/10년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하자증권도 그에 맞게 발급됩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발급기관에서 ‘현금예치’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 3대 메이저 외에 ‘지급보증’이 있는데, 이건 발주처(원도급사 포함)가 공사대금 제대로 못 줄 경우 이를 담보하기 위해 발주처 측이 발급받아 시공사(하도급사 포함) 측에 제출하는 증권입니다. 현실적으로 지급보증이 실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므로 이건 금번 정리에서 패스하겠습니다.



(2) 건설 관련 보증보험 발급기관 : 사실상 2개


선급금증권, 계약이행증권, 하자보증증권. 이 건설업 3대 보증보험증권을 발급할 수 있는 기관은 당연히 ‘돈이 많아야 합니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 돈으로 땜빵하는 게 보증보험의 핵심이므로, 돈 없는 기관이 보증보험 발급해 주도록 하면 안 됩니다.


돈 많은 곳. 가장 대표적으로 ‘은행’이 생각나실 겁니다. 은행 돈 많죠.


보험사, 증권사도 돈 많습니다. 대략 ‘금융기관’으로 묶이는 돈장사 / 돈복사 업계는 다들 돈 많습니다. 보험사는 기본 업무가 ‘보험’이니 보증보험 업무 맡아도 될 것 같구요.


제가 해외계약을 많이 본 건 아닙니다만, 해외 건설공사에서는 은행 등이 보증보험증권(Bond)를 발행해 주는 것 같습니다. 대충 미국계약에서도 ‘공사 소재지 관할하는 금융기관’ 등으로 표현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대한민국 건설 관련 보증보험은 은행/보험사/증권사 등에서 발급받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보증보험 발급기관. 건산법 등 관련 법령에는 3개가 나옵니다. 서울보증보험, 각 업종별 공제조합(종합건설업 관련 건설공제조합, 전문공종 별 전문건설공제조합 등등), 신용보증기금 이렇게 3개입니다.


다만, 현실에서 신용보증기금 증권을 본 적은 없습니다. 건설법무 18년차인데 신용보증기금 증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 합니다.


결국 보증보험 발급기관은 2개 뿐입니다. 서울보증보험, 공제조합.


이 중 서울보증보험은 발급수수료를 더 많이 받습니다. 별도의 조합원이 없고 모두 일반고객으로 처리하며 건설업 외 여러 분야에 보증보험 발급해 주니 수수료 더 받을 만 하죠.


공제조합은 수수료가 낮은 대신, ‘조합원’이 되어야 합니다. 건설공제조합은 종합건설면허 보유 사업자만 가입 가능하고, 각 공종 별 전문건설공제조합은 해당 전문건설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가입시 조합에 출자해야 하구요.



현황만 놓고 보면, 건설 보증보험은 사실상 과점 구조입니다. 독과점이면 당연히(!) 시장을 장악한 측이 유리하죠.

이런 구조 때문인지, 건설 보증보험에 특이한 법리가 도입되었습니다. 아래에서 다시 서술합니다.



(3) 관련 법리 – 주로 계약이행보증보험에 관하여


보증보험 중 ‘선급금증권’은 딱히 복잡할 게 없습니다. 돈을 줬고 그 돈에 횡령사고 등이 발생할 때에 대비한 보증보험이므로, 손실 난 돈만큼 보증이행하면 그만입니다.


하자증권의 경우에도 해당 시공사가 살아 있으면 어찌어찌 하자보수하거나 직접 배상해 주고 끝납니다. 보증보험사에 현금예치한 게 또다른 담보로 작용하기도 하구요.


문제는 계약이행보증보험입니다. 전체 계약금액의 10%로 제한되어 있는 계약이행보증, 이거 청구할 때 복잡해집니다.


   1) 보증인 동시에 보험


우선, 대한민국 법원은 보증보험의 성질을 ‘보증인 동시에 보험이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뭐 동어반복이긴 하네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명대사(?)인 [필멸자는 반드시 멸망하리라!] 수준의 동어반복입니다.


보증은 주채무의 이행이 없을 경우 이를 대신 이행하는 채무이고, 보험은 사고발생시 해당 사고의 손실을 전부 또는 일부 보전해 주는 금융상품. 이걸 개념상으로 구분하고 다시 ‘두 가지 성격 다 있다’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다음 법리입니다. 제가 신입사원 때 매우 당황했던 법리.


   2) 실손해 보상하는 특수한 손해배상예정


‘실손해를 보상하는 특수한 손해배상예정’. 그냥 들으면 고개 끄덕끄덕하고 넘어가겠지만, 대학 등에서 손해배상예정 법리를 배우신 분들은 ‘응? 이게 뭥미?’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손해배상예정은 원칙적으로 해당 예정금액만큼의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손배예정금액을 10억으로 설정했는데 실제 손해는 3억인 경우에도 10억 다 줘야 하고, 반대로 실제 손해가 17억으로 늘어나도 10억만 주면 됩니다. 실손해 입증 없이 손배예정금액 10억만 주고받으면 끝입니다. 그게 손해배상예정입니다.


위약금은 손배예정으로 추정되고, 계약금은 해약금으로 추정되며, 해약금을 위약금으로 한다는 명문규정 내지 상관행이나 정황이 있는 경우 계약금이 손배예정으로 추정되므로 계약금으로 약정해제할 경우 실제 손해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계약금만 몰취하고 끝낸다. 이것도 이론적으로 배우는 내용입니다.


즉, 손배예정이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손배예정 금액 받으면 됩니다. 손배예정 약정을 해 놓고 별도로 실손해를 따져서 보상한다는 건 이론에 어긋납니다.

(물론 손배예정이 과다하면 법원이 사정 고려하여 감액할 수 있지만 계약금액의 10%가 과다하다고 보긴 어렵죠.)


이렇게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손해를 보상하는 특수한 손해배상예정]이라는 건…

‘아니 C발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게 무슨 손배예정이야? 이거 만든 인간은 민법 채권총론 수업도 안 들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8년 전 건설회사 신입사원이었던 저도 그런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는 말과 방구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중첩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말인 동시에 방구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인 동시에 방구인 법리로 판사 변호사 일반회사원 모두 개고생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 하면…


일단 주채무계약(공사계약. 하도급계약 포함)에는 ‘~수급인이 그 공사를 부실하게 할 때의 손해를 담보하기 위해 계약금액의 10%에 해당하는 현금을 예치하여야 한다. 다만, 이에 갈음한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 현금예치는 빼박 위약금이고 손해배상예정이죠. 이렇게 현금예치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 위약금 몰취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 보증보험증권 약관을 보면 ‘~보증보험기관은 해당 손해에 대해 보증보험증권 액면가액을 한도로 하여 실손해를 보상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보증보험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 주는 게 아니에요. ‘실손해’를 보상하는 겁니다.


여기서 ‘보증과 보험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게 다시 나옵니다. 보증채무는 주채무를 한도로 하지만 주채무보다 줄어들 수 있죠. 약정에 따라 주채무의 일부만 보증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 구조 때문에 (말과 방구가 동시에 성립하는) ‘실손해를 입증해야 하는 특수한 손해배상예정’이 탄생했습니다. 분명 계약금액의 10%를 담보해 주는 증권을 받았는데 실제 이 돈 받아내려면 해당 건설공사 관련 자료를 모두 취합해서 실손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 법무담당자를 조낸 빡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보증보험 발급기관은 2개 뿐’이라는 상황이 더해집니다.


그나마 서울보증보험은 자체적으로 자금사정이 좋고, 수수료도 많이 받으며, 최초 증권 발급시 업체 자금사정이 나쁘면 대표이사 개인 자산에 담보를 잡는 등 회수예정조치를 하고 증권 발급합니다. 즉, 서울보증보험은 돈 잘 주는 편입니다.


반면, 공제조합은 자금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종합건설사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건설공제조합은 괜찮은 편이지만 각 전문공종 별 전문건설공제조합은 금융기관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영세한 편입니다. 조오오온나 돈 받아내기 어렵습니다.


분명 ‘손배예정’이었는데 실제 보증보험 청구하면 돈 안 주고 몇 달 동안 말싸움만 하다가 결국 소송하면 법원에 실손해 입증자료 다 내야 하고 그거 다 내면 후속업체 계약할 때 부당하게 증액한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손실 뻥튀기하면 사업자 측 귀책으로 감액해야 한다 손배예정이 과다하면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는데 이는 실손해 보상 예정한 보증보험에도 적용된다 등등의 주장이 나오고 그럼 현장에서 실손해 자료 다시 분석해서 원래 타절 전 업체 계약예정금액과 후속업체 계약예정금액 다 비교하고 증액사유 소명하고 소명했는데도 또 반박당하고 그러다 판사가 조정 붙이는데 또 조정 거부되면 하세월 흘러가고 나는 사람인가 나비인가 어느 밤 불나방이 어설프게 법 배워서 법무담당자로 뺑이치네 어화둥둥 둥기둥가. 결국 몇 년 걸립니다.



신입사원 때 저걸 담당했었는데… 민법 책에 잠깐 언급되고 시험에도 잘 안 나오는 판례가 저 정도로 복잡한 일일 줄 몰랐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더군요.

 지금은 좀 바뀐 것 같습니다. 법무법인 율촌 자료에 의하면, 2022년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7다241697 판결’이 나와서 ‘주계약에 손배예정으로 되어 있고 보증보험사가 해당 주계약에 대해 보증보험 발급한 거라면 이는 손배예정으로서 별도 손해 입증 없이 몰취 가능하다’는 취지로 판시했다고 합니다.


즉, 이 범위에서는 위 보증보험 약관이 수정 적용되겠죠. 물론 주계약 자체에 실손해보상 취지가 있다면 여전히 예전처럼 실손해증명 작업 해야 할 거구요.


최근에는 보증보험증권 청구 분쟁을 담당해 본 적이 없어서 실무에서 저 대법원 판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로 실전(實戰)의 영역이니, 문제 터지면 각 법무담당자께서 고민하고 연구하시면 됩니다^^.



(4) 개선 방향 고민


개선 방향. 뭐 별 거 없습니다. ‘파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는 광고멘트처럼, 보증보험발급의 과점적 구조를 깨면 됩니다.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보증보험증권 발급 가능하게 하고 실손해 증명 보상 약관을 없앤 상품이 선택되도록 해 주면 게임 끝납니다.


다만… 18년 전 건설회사 신입사원이 생각했던 개선 방향은 아직 현실에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인데 아무도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멍청한 것인지, 알면서도 다른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것인지, 저거 개선하느니 그냥 현상태 그대로 두고 각 공제조합 이사장 자리 유지하는 게 누군가에게 더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더 많은 개선방향은 다른 누군가가 고민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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