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쪽에 인연 있으신 분들은 ‘오야지’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십장, 오야지, 대마, 마도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죠. 예전 건설산업기본법과 근로기준법에서는 ‘시공참여자’라는 (나름 멋진) 이름으로 불렀었구요.
건설업의 많은 용어들이 그렇듯이, 십장/오야지는 일본 식 표현의 잔재인 것 같습니다. 노가다 판이 원래 그렇죠…
용어는 둘째 치고, 이 오야지 관련하여 건설업 내부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제도화하려던 시절도 있었고, 다시 불법으로 몰아세워 없애려는 시도도 있었으며, 그냥 아몰랑 방치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몰랑 방치’ 시즌인 것 같네요…)
나름 건설업 분야에서 법무 일 하면서 경험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차는
(1) 오야지의 존재 이유
(2) 관련 제도의 변화
(3) 기존 문제점 / 현재 문제점
(4)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
(5) 합리적인 개선 방안은 없는가
순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오야지의 존재 이유
대한민국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건설업’은 꽤 오래됐습니다.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 현대적 건물을 짓기 시작한 때부터니, 거의 대한민국과 역사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업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집약적 산업’입니다. 콘크리트(공구리) 배합 및 타설, 거푸집 이동 등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죠. 즉, 이 노동력을 어디서/어떻게/적절한 시기에 모집해 오느냐가 건설업의 핵심 요소입니다.
(물론 자재도 제때 수급해야겠지만 자재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겠죠.)
그런데, 이 ‘노동력 모집’이 쉽지 않습니다. 건설업은 1년 내내 계속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수주가 없으면 쉬어야 하는 사업’이고, 전국 각지 어디서 일감이 나올지 모르는 사업이거든요.
노동력을 미리 다 고용해서 몇십년씩 데리고 있으면서 지방 갈 때 숙소 다 얻어주면 ‘안정적 공급’은 가능하겠지만,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건설업자가 늘어나 경쟁 붙으면 결국 ‘단가 인하’가 이어질 텐데, 이렇게 고정 인건비를 부담하는 방식이면 가격경쟁력에서 밀립니다.
결국 건설업자는 ‘일용직 노동력’을 늘리는 방식으로 운영하게 됩니다. 새로 개설되는 현장에 맞춰 그 현장 인근의 노동자를 일용직으로 고용해 매일 일당 주는 방식. 지금까지 바뀌지 않는 용어 [노가다]의 탄생입니다.
이렇게, 건설업은 태생부터 비정규직/일용직 인력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분야에서는 IMF 이전까지 비정규직 고용 형태가 거의 없었던 반면, 건설업은 IMF와 무관하게 태생적으로 비정규직/일용직이 많았습니다. 산업구조 상 당연한 일이었죠.
이 구조에서, [해당 지역의 노동인력을 원활하게 모집해 오고 건설현장에 투입시켜 주는 업무]가 매우매우 중요해집니다. 특히 지방 쪽 건설공사를 하는데 건설회사 측 기술자들이 해당 지방 사정을 잘 모른다면, 인력 모아 오는 사람의 값어치는 더 올라갑니다.
이리하여, ‘일용직 건설근로인력을 모집하고 / 관리하고 / 현장에 투입해 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탄생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 일용직 인력들에게 현장기술을 가르치고 숙련시키는 역할까지 더해지죠. 노가다판에서 직접 몸으로 뛰면서 기술을 익히고 가르치며 신참들을 관리해 주는 역할, 그 모두가 집약됩니다.
[오야지]가 탄생한 거죠.
오야지는 건설업 초창기부터 필요했고, 건설업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핵심 주체였습니다. 전체 공정관리는 건설기술자들이 수행했지만 ‘실제 업무’는 오야지 및 그가 모아 온 노가다 인력이 수행했죠. 오야지 없으면 안 됐습니다.
건설업의 필수요소인 오야지. 이 존재에 대해, 대한민국 법률 체계는 몇 차례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2) 관련 제도의 변화
2000년대 이전 사정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야지에 대해 법률적으로 관리하지 않았던 ‘입법공백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저도 21세기 이전의 입법사정을 알고 있진 않습니다. 제가 법무담당 신입사원으로 일 배울 때에는 이미 ‘제도권 편입’이 이루어진 상태였죠.
공백 상태를 지나 ‘제도권 편입기’였던 시절. 오야지는 [시공참여자]라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꽤 그럴듯하죠. 시공을 책임지는 건설업자도 아니고, 건설업자 밑에서 하도급을 하는 하청도 아니고, 시공에 참여하긴 하는데 사업자는 아닌 특수한 지위. 법률명칭 꽤 잘 지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건설산업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이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시공참여자가 개입한 경우 근로자의 임금에 대해 규정했던 근로기준법 규정도 순차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즉, 오야지에 대한 제도는 공백기→제도편입기→폐지 3개의 단계를 거칩니다. 2023년 현재에는 확실히 폐지되고 없죠. 법적으로는요.
상당히 특이하긴 합니다. 관련 규정이 없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굳이 제도에 편입시켰는데 이걸 아예 폐지시킨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드뭅니다.
오야지(시공참여자)에 대해 이렇게 극단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건,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겠죠? 그 문제점은 다음 항에서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기존 문제점 / 현재 문제점
1) 기존 문제점
일이 있으면 출역하여 일하고 ‘하루 일당’을 받는 방식의 노가다. 이 노가다 인력을 모집관리하고 일 가르쳐 주고 한 팀으로 만들어 데리고 다니는 오야지. 자기 팀원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던 오야지.
그리고, 계좌이체가 활성화되지 않고 ‘종이돈’으로 직접 일당을 주던 시절.
대충 어떤 문제가 있었을지 짐작하시겠죠? 바로 [오야지가 팀원들 일당을 대표 수령한다]는 문제입니다.
(한 80년대 후반 기준 건설현장에서) 10명 단위 팀이 하루 일해서 일당 50만원을 받으면, 그 50만원을 오야지가 대표로 다 받은 후에 각 팀원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러면서 ‘오야지 수당’을 떼고 주겠죠. 노가다 인력을 소개시켜 주는 수고비(거마비), 일 가르쳐 주는 교육비 등을 공제할 겁니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나눠 줄 때에는 별 문제없습니다. 노가다 일당이 최저임금보다는 높고, 오야지와 각 일용근로자 간 구두 근로계약도 일단 무효는 아니니까요. 아예 일 없이 노는 것보다는 오야지 수고비 떼 주고 일당 받아가는 게 낫습니다.
문제는… ‘오야지가 이 돈을 나눠 주지 않을 때’ 입니다. 도박이든 뭐든 사정 발생하여 오야지가 자기 팀원들 일당까지 다 써버리는 거죠.
이거 진짜 골치아픕니다. 분명 건설사 입장에서는 일당 다 줬으니 더 줄 의무 없다고 나올 것이고, 근로자들은 뼈빠지게 노가다 하고 한 푼도 못 받습니다. 서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물론, 이렇게 ‘중간에 먹고 튄다’는 문제는 오야지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오야지 바로 윗 단계에 있는 하청/재하청 업체 대표이사가 법인 돈 다 빼내서 갖고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러면 오야지 입장에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죠.
오래 전 일이지만, 제가 신입사원 때 첫 직원대리소송으로 나갔던 게 저런 ‘중간먹튀’ 사건이었습니다. 위임장 내고 피고 자리에 앉아 있긴 했지만 한 마디도 할 필요 없더군요. 판사님께서 먼저 ‘계약관계 없으니 원고가 그냥 취하해라.’고 하셨고, 돈 한 푼 못 받은 일용근로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중간먹튀 문제를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습니다. 회사들의 금전처리 업무가 계좌이체 중심으로 전산화되는 시대적 변화도 있었고, 건설공사대금 중 노무비만 따로 떼내어 압류금지 등 특별조치를 하기도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노무비닷컴 등을 통해 각 근로자 노임이 해당 근로자 계좌로 직접 이체되도록 하는 시스템까지 왔습니다.
그 최종시스템 도입 전에, 오야지 제도가 ‘시공참여자’로 법제화되었었습니다. 법률 밖에서 계속 비법 영역으로 남겨 두느니 차라리 시공참여자로 법적 지위를 부여해 관리하겠다는 취지였을 겁니다.
다만, 시공참여자 제도가 있다고 해서 이런 중간먹튀 문제가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결국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던지 다시 폐지해 버리고 말았죠.
뭐, 어찌어찌해서 예전 같은 중간먹튀 문제는 거의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근로자 보호 측면에서는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죠.
대신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건 ‘현재 문제점’으로 정리하겠습니다.
2) 현재 문제점
앞서 말한 대로, 오야지는 ‘시공참여자’로 제도권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폐지됐습니다. 2008년 말의 일입니다.
이 때 당시 국토부에서 의도한 것은, 오야지를 불법화하여 배제하겠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야지들이 개인사업자를 내거나 / 법인 설립하여 ‘정식 전문건설업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모든 법 개정사항이 그렇듯이, 취지는 좋습니다. 국토부 취지대로 오야지들이 ‘정식사업자’가 되어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고 소속 일용직 근로자들을 잘 관리하게 됐다면 참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영역에서도 자주 그러하듯이) 시궁창.
오야지들은 ‘무면허업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력소개업 관련 개인사업자를 내는 경우는 있지만 최소한 건설업 영역에서는 건설면허(등록)를 갖지 않은 무면허업자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오야지들이 상위 업체로부터 일감을 따낼 때 ‘전문건설업자로서 하청계약’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건설면허가 없으니 건설하도급-재하도급 계약을 할 수 없는 거죠. 실제로는 일감 중 일부를 도맡아 하는 계약(속칭 ‘품떼기’계약)이지만 면허가 없으니 건설계약으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즉, 오야지에게 일감을 맡기는 건설업체는 ‘무면허업자’와 계약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건설산업기본법 상 ‘재하도급 금지 위반’이 됩니다. 재하도급을 하려면 여러 요건을 다 충족시켜야 하지만 그 중 당연히 ‘건설면허 가진 전문업자에게 재하도급 줘라’는 요건이 있는데, 처음부터 건설면허가 없는 오야지에게 일감 떼 줬으면 즉시 재하도급 금지 위반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재하도급 금지 위반은 ‘무면허업자’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규정위반으로 수주받은 업자는 처벌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무면허업자는 면허 관련 영업정지를 할 수도 없습니다. 면허가 없으니 정지도 안 되는 거죠.
물론 무면허 자체로 건산법 위반이니 이에 대해 별도의 제재를 할 수 있습니다만… 이건 품떼기 계약으로 일감 자체를 받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하고, 최종 무면허 확정되어 과징금 나온다 해도 그리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벌금 내고 또 한다’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시공참여자 제도를 폐지한 건 오야지 계약을 불법적인 무면허 재하도급 형태로 만들었을 뿐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됐습니다. 오히려 현장 상황과 계약구조를 괴리시켜 버리는 결과만 낳았죠.
원래 의도대로라면, 오야지들은 서로 공동출자 형식으로 법인설립하여 전문건설업자가 되고 / 일용직 근로자들은 그 전문건설업체 소속 직원으로서 장기계약을 보장받으며 /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건설 현장 기술들이 교육전수되는, 알흠다운 모습이 되었어야 합니다. 의도는 그랬죠.
하지만 현실은… 뭐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4)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
오야지가 노가다 인력 모아 오고 관리하고 교육하고 ‘한 팀’으로 데리고 다니는 현상. 제도권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는 현상.
이 현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미래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건설 현장 근로자 상당수가 외국인으로 교체되고 젊은 숙련공 찾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오야지 의존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건설강국이었던 대한민국이 건설기술력을 잃어 가고 아파트조차도 제대로 못 만드는 나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오야지’는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5) 합리적인 개선 방안은 없는가
오야지 문제, 건설업 종사자로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회사직원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 건축과 공무원들, 국토부 공무원들 다 알고 있습니다. 손을 못 댈 뿐이죠.
이걸 고치려면,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을 포괄하여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해 줄 단체가 있어야 하고 / 그 단체에서 신입 근로자들을 교육시켜야 하며 / 현장에서의 작업관리 인력도 별도 조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돈 많이 들겠죠. 일개 건설회사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느냐?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돈 많이 드는 일’인데, 한정된 예산으로 이것저것 다 돌봐야 하는 정부가 건국 이후 70년 이상 된 성숙산업인 건설업에 그 정도 돈을 투자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모두가 나서기 어려우니 계속 방치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야지들은 계속 활동하죠. 필요하기 때문에 활동하는 겁니다.
법적으로는 오야지 배제하고 각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 개별관리해야 하지만, 지방에 처음 내려간 건설업체가 무작정 근로자 모은다고 해서 제대로 모으기 어려울 뿐 아니라 / 근로자의 숙련도를 평가하고 관리할 방법도 없습니다. 결국은 오야지 통해서 몇십명 모아 오도록 하는 수 밖에 없어요. 안 그러면 공사 못합니다.
전면적인 대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실에 맞는 계약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다시 제도화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시공참여자’를 부활시켜야 하겠죠. 그냥 문제 있다고 법에서 삭제하고 아몰랑 하는 게 아니라, 법에 규정한 뒤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관리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