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챕터에 이어)
* (3)-2 초기 기획소송이 대성공을 거둔 이유
오랜 업력, 탄탄한 인력 구조, 짱짱한 자문로펌들을 거느린 대형건설사들. 그런 큰 회사들도 초창기 ‘아파트 하자 기획소송’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소송 들어오면 아파트단지 1건 당 몇십억씩 배상해 줘야 했고, 하자소송 여러 개 쌓이면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당했던 이유가 뭔지, 하나씩 분석해 보겠습니다. 물론 빠진 것도 있겠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략
1) 관련 법령 미비
2) 재판부의 건설업 관련 지식 부족
3) 감정의 적정성에 대한 의문
4) 기타 사정
등으로 진행하겠습니다.
1) 관련 법령 미비
전에 ‘건설법무 개론’에서도 잠시 언급했는데, 민법상 물건의 하자담보책임 기간은 6개월이지만 ‘건물’의 경우 특별법으로 하자담보책임 기간을 길게 잡고 있습니다. 현재 법령 기준으로는 각 공종별로 1년/2년/3년/5년/10년 정도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지금 기준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그냥 10년’이었다고 합니다. 아파트면 그냥 공종 구분 없이 10년.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무척 살벌하죠. 문짝 10년, 초인종 10년, 창틀 10년, 화장실 세면기 10년, 수도배관도 10년. 모두 10년입니다. 일단 건물 지었으면 그 안에 있는 거 모두 10년 동안 정상 작동해야 해요. 공종 무관하게 전부 다 그래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거 다 지킬 수 없죠. 건물을 지탱하는 내력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100년 유지되는 게 정상이고 하자담보기간도 10년은 해 줘야 하지만, 각 공종별로 2~3년마다 정기보수/교체 필요한 항목까지 일괄해서 10년 보장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법에 ‘일괄 10년’으로 나와 있으면 담보책임 인정할 수 밖에요.
물론, 이 문제는 빠르게 보완되었습니다. 건산법을 비롯한 각종 법령에 ‘시행령 별표’를 두어 1/2/3/5/10년 기간을 나누는 제도가 신속하게 도입되었습니다.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죠.
2) 재판부가 건설업에 대해 잘 모름
법원 판사들을 깔려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2000년대 초반의 판사들은 건설업에 대해 거의 몰랐습니다. 지금은 중앙지법에서 하자분쟁 심사 지침을 만들고 그걸 교육할 만큼 발전했지만, 대략 20년 전에는 ‘건설? 아몰랑.’ 분위기였습니다.
뭐, 그럴 수 밖에 없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법대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문과생’입니다. 한평생 건축도면 같은 건 한 번도 안 본 채 정년퇴직하는 사람이 절반 넘을 겁니다. 요즘처럼 아파트에 목숨 거는 시대라면 몰라도 2000년대 초반에는 그 정도 분위기가 아니었구요.
판사도 마찬가집니다. 개별 판사들의 학습능력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배운 일을 알아낼 수는 없어요. 20년 전 판사들은 건설업을 몰랐고, 하자 판단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과거 하자소송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였던 ‘콘크리트 균열’입니다.
건설업 쪽 관계자 분들은 [콘크리트(공구리) 원래 균열 생겨.]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재료의 물성(物性) 자체가 균열 생기는 구조죠. 흙과 시멘트를 ‘물’과 섞어 타설하고 그 물이 마르면서 응축되는 방식인데 균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무슨 파인세라믹(Fine-Ceramic)이 아닌 이상, 일반 건물에 쓰는 콘크리트는 당연히 균열 생깁니다.
그런데, 18년 전 건설회사 신입사원이었던 저 같은 사람이 [공구리 원래 균열 생겨.]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 C발 그런 말을 어떻게 이리 쉽게 할 수 있지? 균열 틈새로 물 스며들고 철근 녹슬면 건물 히밤쾅 무너지잖아? 아무리 건설사 직원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는 거 아냐?” 라고 반응합니다. 상급자 앞에서는 생각만 하겠지만요.
물론, 공구리 균열이 너무 크게 나서 손이 들어가고 철근이 보일 정도면 이건 명백한 하자입니다. 비 오면 벽에서 물 질질 흐르고 철근에 녹 슬어서 시뻘건 녹물 배어날 정도라면 이건 하자 맞죠.
하지만, 0.3mm 이하 두께의 표면 균열로 위에 페인트나 벽지 바르면 거의 확인 안 되며 내력벽/기둥 등 주요 건물구조에 전혀 영향 없는 수준의 균열이라면… 이건 하자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균열의 두께가 0.3mm 이상으로 추가 균열이 우려되는 수준이라 해도 해당 균열부 주위를 V컷팅하고 실리콘 등으로 보강하여 내부까지 균열 확장되는 걸 막았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저 밑줄치고 굵은글씨 표시한 부분, 듣고 보면 나름 합리적이죠? ‘공구리 균열도 다 같은 게 아니구나, 구조에 문제 없는 수준이면 균열만 메꾸면 되고 / 자연수축 균열 정도면 아예 하자도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콘크리트 균열에 대해, 저 설명이 판결에 반영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알기로 대략 10년은 걸렸어요. 대부분 문과 출신인 판사들을 상대로 ‘콘크리트의 자연수축 물성과 구조 영향성’을 알리고 설득하는 데에 10년 걸렸다는 얘깁니다.
그 전에는? ‘균열은 모두 하자’라는 식으로 판결 나왔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법률사무소에서 고용한 건축사’들이 균열 조사해서 그 보수비용 산정하면 상당 부분 인정되었죠. 판사들은 표면균열 / 심층균열을 구분할 전문성이 없으므로 건축사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법률사무소 고용 건축사’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는데요. [감정의 적정성] 논란입니다.
3) 감정의 적정성 : 표준화된 감정 정착되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음
판사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으므로, 전문가 영역에서 감정인을 선임하여 그 의견을 듣는 것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어지간하면 그 감정인 의견대로 판결하게 되죠.
그런데 말입니다.
감정인을 신뢰할 수 없다면? 감정인의 감정이 적정하지 않다면?
2020년대인 지금은 아니지만, 초창기 하자소송 감정은 신뢰도가 상당히 낮았습니다. 감정인으로 선정된 사람이 제대로 된 공사경험이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엔지니어로서의 전문지식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감정하는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 분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랬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초기 하자기획소송 변호사들은 ‘법률사무소에서 직접 건축사를 고용’했고 그 건축사들이 사(私)감정 실시한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당연히 하자보수금액을 부풀리겠죠. 하자 아닌 것도 다 하자로 집어넣고 보수에 필요한 공사금액도 높게 산정합니다.
이 사감정 자료를 반박하기 위해 감정인을 선정하면… 법률사무소에 고용된 건축사들이 ‘인맥’을 발동합니다. 혈연 학연 지연 + 전 직장 동료관계까지. 헬조선의 고유종특 인맥러쉬 풀 가동!
뭐, 2000년대 초반까지는 법조계도 이 ‘인맥러쉬 풀 가동’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전관예우 관행이 사라졌는지 여부를 따지는 건 2020년대 넘어가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명백하고 확실한 사건이라면 모를까, 판사와 검사의 재량이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인맥러쉬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법관의 양심’을 가졌다는 판검사도 인맥러쉬에 엮이는데, 엔지니어들인 건축사/기술사들에게 ‘오로지 본인의 지식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감정하시오.’ 라는 걸 기대한다면… 잘 안 되겠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리하여, 감정인이 초기 사감정 자료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1심에서 피 본 건설사는 2심에서 재감정을 신청했고, 가끔 재재감정까지 가면서 소송이 길어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앙지법을 비롯한 각 법원에 ‘감정인 등록’을 하고, 관련 분야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을 쌓은 사람만 감정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회사 측 변호사도 건축사/기술사와 협업하기 때문에 부당한 방식으로 감정 진행하면 즉각 반박 들어가죠.)
아무튼, 이러한 감정 신뢰 문제가 하자 기획소송을 더 확대시켰습니다. 이 시장을 개척(!)한 변호사들은 떼돈을 벌었고, 그 성공을 지켜본 변호사들이 후발주자로 참여하면서 하자기획소송은 점점 더 늘어만 갔습니다.
4) 기타 사정 : 소송적격, 하자담보 기간의 해석, 공사금액 판단 기준 등
법령 미비, 재판부의 건설업 관련 지식 부족, 감정인의 신뢰 문제. 이것 외에도 몇 가지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일부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죠.
첫째, 소송적격 문제는 ‘소송의 주체가 입주자대표회의냐 / 개별 입주민이냐’ 하는 것입니다.
입대위(입대의)는 그 자체가 법인이므로 법인격은 있습니다. 다만, 집합건물의 각 구분소유 관계에서 ‘입주민의 소유권’을 대신 행사할 수는 없겠죠. 소유권의 기본 원칙상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하자소송은 기본적으로 ‘자기 소유 물건에 발생한 하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입니다. 즉, 소유권자가 하자소송 원고적격을 갖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데, 하자기획소송 초창기에는 입대위 이름으로 소송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구조적으로 소유권 없는 법인이 원고가 되어 ‘개별 입주민의 재산’에 대해 소송하고 판결금을 수령했던 거죠.
지금은 입법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입대위(입대의) 또는 그 위임을 받은 관리사무소는 ‘하자보수’만 요구할 수 있고, ‘하자보수에 갈음하여 돈으로 손해배상을 받는 청구’는 개별 입주민의 이름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하자소송은 ‘금전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이므로, 원칙적으로 개별 입주민의 전유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호실 소유자의 위임장을 첨부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 문제. 개론에서도 잠시 언급했는데, ‘하자담보기간의 해석’ 문제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오래 전에는 ‘무조건 10년’이던 건축물 하자담보기간이 각 공종별로 1년/2년/3년/5년/10년 등으로 세분화되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해당 기간 경과한 공종은 하자담보책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법원판례가 나옵니다. [하자기간 내에 그 원인이 발생한 하자라면 하자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그 하자담보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례입니다. 즉, 1년짜리 하자라 해도 그 1년 기간 내에 하자 원인이 발생했다면 (주로 시공 자체를 잘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1년 경과해도 하자책임 져야 합니다.
이게 은근 골치 아픈데, 감정인이 감정하면서 ‘정확한 원인 발생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대충 ‘하자기간 내에 하자 원인 발생한 것으로 추정’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피고 측이 보완감정 요청해도 명확히 알아내기 어려워요. 결국 하자책임 인정되겠죠.
이것도 입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공동주택관리법 적용 받는 아파트는 ‘각 연차별 하자종료 확인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해당 기간 내에 하자원인 없었다는 걸 서류로 증명하려는 시도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감액사유 정도로 기능할 수는 있겠죠.
셋째 문제는 ‘공사금액의 판단’입니다.
건설공사금액은 변합니다. 하자보수도 ‘공사’고 인력과 재료가 들어가야 하니, 하자보수에 필요한 공사금액도 변동합니다.
물론 변동한다고 해서 아예 금액 확정 못하는 건 아닙니다. 건설업이 70년 된 성숙산업인 이상 가격 관련된 것도 ‘일응의 기준’이 있고, 이걸 갖고 금액 뽑으면 됩니다.
다만, 그 ‘일응의 기준’이 되는 [표준품셈]이 쪼큼 높을 뿐.
건설업에는 표준품셈이 있어서, 각 공종 별 노무비/자재비 등의 표준금액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 잘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개정해 줍니다.
문제는, 실제 거래현실에서 ‘경쟁’이 발생하고 그 경쟁 때문에 실 거래가격은 많이 내려간다는 겁니다.
관급공사 입찰시에 낙찰률이 70% 초반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 최초 예정가격은 최종 낙찰가의 140%였다는 건데, 이건 예가 뽑은 공무원이 건설사에게 이익 몰아주려고 장난한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표준품셈이 높기 때문에 그런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 표준품셈이 하자보수공사 예정가격을 산출할 때에도 ‘일응의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당연히 금액 높게 나오죠.
이 또한, 최근에는 법원이 해당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적절히 판결에 반영합니다. 감정금액을 다 인정하지 않고 원고 측 과실 및 보수업체 선정시 가격할인 가능성을 고려하여 70~80% 선에서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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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2000년대 초반 하자기획소송의 성공요인들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한 챕터 채워 버렸네요. 다음 챕터에서는 ‘건설사들의 반격’부터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