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이전에 ‘건설법무 개론’을 쓰면서 하자보수 및 하자분쟁에 대해 잠시 언급했었는데, 할 얘기가 많다 보니 따로 챕터 하나 만들었습니다. ‘하자분쟁의 역사’라는 거창한 타이틀도 달았구요.
뭐, 제가 이 역사를 처음부터 다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략 1997년부터 하자분쟁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고 건설회사 법무담당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거든요.
즉, 하자분쟁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려면 `90년대 중반부터 건설분야 하자분쟁을 담당하신 분이 오셔야 합니다. 대략 업력 30년 이상 되셔야겠죠. 이런 분들은 대부분 은퇴하셨거나 / 법무법인 등에서 파트너~대표 급으로 근무하실 테니, 따로 글 쓰실 시간도 없을 거구요.
결국 제가 아는 ‘하자분쟁의 역사’는 일부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 시작한 건 2005년이고, 그 이전의 하자분쟁 경과에 대해서는 신입사원이 “~카더라”로 전해 들은 수준입니다.
그렇긴 한데, 일단 여기저기 검색해 봐도 ‘대한민국 아파트 하자분쟁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없습니다. 고수 분들이 나서지 않으시면 제가 정리해도 되겠죠. 일부 부정확한 부분이 있다면, 추후 적극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설은 이 정도로 줄이고. 본론에서 ‘하자분쟁 역사’를 다룬 뒤, 보론에서 하자분쟁 진행시 주요 쟁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겠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97년 이전
(2) IMF 이후 조금씩 고급화되는 아파트
(3)-1 아파트 하자 기획소송 시대
* (3)-2 초기 기획소송이 대성공을 거둔 이유
(4) 대혼란. 건설사들의 반격 준비
(5) 법령 정비.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었음
(6) 발전하는 하자소송
자,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2. 본론
(1) `97년 이전
: 아파트 하자분쟁? 그게뭐임? 먹는거임?
`97년 이전의 아파트 하자분쟁. 소제목 아래에 ‘그게뭐임?’이라고 썼는데… 말 그대로입니다. 다들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물론, 아주 크고 대단한 하자들이 있긴 했습니다.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하자들. 이건 하자 수준이 아니라 ‘재난’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삼풍백화점 무너지던 날에 맹장수술을 했었고 당시 의학기술로는 맹장수술도 전신마취를 해야 했었는데, 저녁 무렵 마취 덜 풀린 상태에서 삼풍백화점 뉴스를 봤습니다. 저는 처음에 꿈꾸는 줄 알았어요.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종말설이 현실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세기말 악몽 같았습니다.)
그런 대단한 하자 말고 일반 아파트의 하자는… 다들 참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개별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은 있었겠지만 이걸 집단화하여 소송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 `97년 이전에는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맨션/빌라 등의 이름으로 집합건물이 늘어나고 있었고 서울에는 은마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단독주택에 살았습니다. 내돈내산 단독주택에 하자 생기면 당연히 현재 사는 사람이 고치는 줄 알았죠.
또한, `97년 이전에는 건설사들도 아파트에 별로 신경 안 썼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90년대 초중반에 소위 ‘1군 건설사’들은 아파트 공사를 ‘~따위’로 취급했어요. 물론 돈만 주면 다 짓긴 했지만, 그리 고급 공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80년대에 ‘중동 붐’을 타고 전 지구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대한민국 건설업. 그 자부심(!)이 90년대 초중반까지 이어졌고, 네모반듯하게 획일적으로 지어 올리는 아파트는 그냥 쉬운공사 취급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건설사 분위기와는 천지차이죠. 최근 어지간한 건설사는 모두 ‘주택사업부’를 두고 있고, 상위 건설사들은 주택사업부가 실적을 견인하며 회사 먹여살리는 핵심부서이며 몇몇 건설사들은 아예 아파트사업 하나로만 조 단위 수익을 올리며 급성장했습니다만… `90년대 ‘지구를 엔지니어링하는 대한민국 건설업’의 기준에서는 아파트 공사 따위는 그냥 일감 없을 때 하는 잡공사 정도였습니다.
그 시절에 하자보수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2005년에 입사했던 건설사 분위기로 볼 때, `90년대에는 하자보수팀 자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5년의 하자보수팀도 (까놓고 말하면) 회사 내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가는 허접부서 정도로 취급받았었구요.
(2005년 당시 제가 다녔던 회사 기준으로, 핵심부서 팀장님들은 부장 / 팀이 아닌 ‘파트’의 파트장은 차장 급이었는데, 하자보수팀의 팀장은 ‘과장’이었습니다. 2007년까지 계속 그 상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또한 지금 건설사 분위기와는 천지차이입니다. 요즘 건설사들은 하자보수팀을 ‘CS팀’으로 부르면서 “고객감동을 책임지는 핵심부서”로 대우해 주고, CS팀이 각 아파트 현장을 사전점검하고 감사팀 이상의 파워를 발휘할 수 있게 권한부여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CS팀에 소속된 분들도 어지간한 현장 공사팀장/공무팀장 맡을 수 있는 경력자 분들이구요.
(건설사 입장에서는) 나름 행복(?)했던 `97년 이전 시절. 하지만, 그 행복은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을 뿌리까지 바꿔 버린 대사건 ‘IMF’가 찾아왔죠.
IMF 자체에 대해 다룰 생각은 아니고, 그 이후 건설사들의 주된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입니다.
(2) IMF 이후 조금씩 고급화되는 아파트
: 브랜드 아파트의 시작
저는 개인적으로 군대를 늦게 갔었는데요. 2002년 제가 이등병이던 시절, 심심해 하던 병장이 끝말잇기 하자고 해서 잠시 놀아 줬습니다. 그 때 제가 ‘래미안’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병장의 반응은… “그게 뭐야?” 였습니다.
즉, 2000년에 군대 입대해서 2002년까지 강원도 북동쪽 끝자락에 처박혀 있던 20대 초반 한국남자는 ‘래미안’을 몰랐습니다. 건설업계에서 1~2위 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아파트에 브랜드를 붙인 ‘삼성물산’은 알았겠지만, 그 삼성물산이 만든 1호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이 글 보시는 독자님들 중에 ‘래미안’ 브랜드 모르시는 분 있을까요?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롯데캐슬, 포스코더샾, 두산위브, 센트레빌, 수자인, 베르디움(중간에 t를 ‘ㄷ’으로 읽는 이유가 뭔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튼 베르디움), 기타등등 수백개의 아파트 브랜드. 지금은 아파트에 브랜드 안 붙이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현대아파트’, ‘동부아파트’ 식으로 부르는 게 더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물론, (21세기 초반 기준으로) 단순히 브랜드만 갖다붙인 건 아니었습니다. 전용면적 내 효율적인 공간 배치, 내력벽을 비내력벽으로 바꾸고 그 벽체 공간을 붙박이장으로 활용하는 센스, 적절한 외벽 디자인, 화려한 홍보전략까지. 아파트는 ‘고오오급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야간 조명쇼 벌이는 브랜드 아파트의 가격은 계속 올라갔습니다.
바야흐로 ‘아파트 공화국’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대다수 대한민국 중년들이 그렇듯이, 저는 어릴 때 단독주택 살다가 (중간에 고시원 오래 살다가) 나이들어서 아파트 살게 되었는데요. 아파트 사니까 편하긴 편합니다. 단독주택에서 쥐/박휘벌레/잡도둑 걱정하고 위쪽 언덕에 성당 지으면서 토사 흘러내려와 지하실 침수되던 문제 싹 다 없어졌죠. 자기 전용공간 들어오면 세상 편합니다.
물론,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층간소음과 층간 담배공해 문제는 심각해졌습니다. 아래층에 담배 피우면 위쪽 10개 층이 고통받고, 한 개 호실에서 뛰어대면 대각선 아래에 있는 여러 호실이 밤잠 설칩니다. 괴로운 건 괴롭죠.
그렇긴 하지만, 단독주택과 아파트를 비교하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 압승’입니다. 관리사무소에 경비업무과 공용부분 관리를 모두 맡기고 각 세대는 자기 전용공간만 신경쓰면 된다는 것, 이게 너무 편합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대세’가 되어 갔습니다. 2000년대 초반, IMF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기업들이 성장할 때, 건설사들은 ‘브랜드 아파트’라는 새로운 먹거리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裏面)에서, 분쟁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나지막히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매우 창대하여 전국의 대형건설사들을 뒤흔들 정도로 커지는 분쟁. 하자분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3)-1 아파트 하자 기획소송 시대
: ‘하자소송 원고 측 전문변호사’의 등장. 초토화되는 건설사들
지금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2005년 제가 신입사원인 시절에 유명한 법률사무소 하나가 있었습니다. GK였나 G&K였나 뭐 그랬는데, 대형건설사 입장에서는 거의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강동경찰서 강력반 형사 강철중이 때려잡는 공공의 적 수준으로 위협적인 적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90년대 초중반까지는 큰 하자분쟁이 거의 없었고 / 관련 법령도 거의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건설산업기본법 등에서는 그냥 아파트 하자기간을 ‘10년’으로 퉁치고 있었고, 각 아파트 입주민들은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중대한 하자가 아닌 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이걸 시공사에 소송 걸어서 받아내겠다는 생각을 거의 안 했었죠.
그러나, 어디에나 ‘선각자’가 있는 법입니다. 대부분 문과출신이어서 ‘문송합니다’가 기본 옵션인 변호사 업계에도 도면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디나 그렇듯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업(?)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작게, 사소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게 눈덩이 굴리듯 굴러가면서 점점 더 커지고, 어느 순간에는 산을 갈아엎을 듯 커집니다.
로펌이 뜨고 개인 법률사무소는 일감이 줄어들던 시절. 어느 법률사무소 변호사 분들이 ‘아파트 하자소송 이거 돈 좀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근처 아파트 입대위 회장 같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아이디어 떠올렸을 텐데, 곧 이게 ‘실제 소송’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소송을 해 보니… 어어, 이거 진짜 돈이 됩니다. 그것도 꽤 많이 됩니다. 아파트 단지 1개 당 몇십억 받아낼 수 있고, 그 중 5~10%를 성공보수로 받아내면 하자소송 1건 만으로도 1년 수익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파트 하자 기획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건설회사 입사한 건 저 ‘하자 기획소송’의 틀이 잡히고 / 건설사들도 거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요. 일단 하자 기획소송의 주된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자소송 원고 측 전문변호사가 ‘건축사’를 고용
2) 아파트 입대위들을 상대로 영업. 수임계약 체결
3) 변호사에게 고용된 건축사가 ‘자체 감정’을 실시. 각종 하자 적발
4) 하자 리스트를 첨부하여 법원에 하자소송 접수
5) ‘해당 하자를 모두 보수하는 비용’을 산정. 해당 비용이 수십억에 이름
저 GK인지 G&K인지 이름 가물가물한 법률사무소. 그 곳에서 시작된 아파트 하자 기획소송은 어느 새 거대한 사업이 되었습니다. 1건 승소하면 성공보수가 몇억원씩 들어오고, 그 성공사례가 인근 아파트 단지로 소문나고, 그래서 더 많은 하자소송이 일어나는 형태였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있겠죠. 건설사들이 바보도 아닌데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이유, 그게 1997년 ~ 2000년 초반 경에 존재했겠죠.
그 이유는 챕터를 바꿔 서술하겠습니다. 분량이 1회 연재분을 넘었으니 끊고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