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챕터에 이어)
(4) 대혼란. 건설사들의 반격 준비
GK인지 BK인지 G&K인지 이름도 가물가물한 듣보르자브 법률사무소. 그 곳에서 시작한 하자소송이 들불처럼 번져 갔습니다. 아파트 쉽게 생각했던 건설사들은 하자소송 1건 당 몇십억씩 배상판결을 받았고, 단지 큰 곳은 100억 단위가 넘어갔습니다. 하자소송 20개 누적되면 회사 부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겠죠. 어떤 산업이든 다 그렇듯이, ‘돈 버는 것’이 지상 최대 목표이고 존재이유인 게 회사(會社)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주식회사를 ‘인간이 만든 4대 발명품’에 넣기도 하는데, 그만큼 효율적이고 무서운 조직이라는 의미겠죠.
건설회사들은 반격을 준비합니다. 제도, 법원판례, 실제 하자보수 강화, 상대방 변호사 제어 등 모든 영역에서 대응하고 그 대응 방법을 체계화합니다.
앞 챕터에서도 언급했는데, 다시 한 번 요약하면
- 제도적 영역
: 하자보수기간을 각 공종별로 1년/2년/3년/5년/10년 등으로 체계화
- 법원판례 영역
: 콘크리트의 물성(物性) 등 건설기술적 영역을 판사에게 잘 설명하고, 하자감정에 적극 의견 개진하며, 표준품셈과 실제 건설계약단가의 차이 등에 대해서도 입증자료를 준비하여 지속적으로 재판부 설득
- 실제 하자보수 강화
: 소송 중에도 해당 아파트 단지에 대해 후속 하자보수 조치 시행. 즉, 손해배상으로 돈 물어 주는 것보다는 직접 하자보수 해 주는 것이 싸게 먹힌다는 것을 인식. 이렇게 하자보수를 해 준 항목을 최종 손해배상 항목에서 뺄 수 있게 함
등입니다.
앞에서 ‘상대방 변호사 제어’도 준비했다고 했는데, 이건 요약에 언급 안 했습니다. 이건 별도로 좀 길게 서술하겠습니다.
2005년 제가 신입사원일 때, 건설업 전문 변호사님과 회의하는 자리에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 ‘상대방 변호사 제어’를 잠시 논의했었는데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당시 악명 높던 GK법률사무소 (이름 정확하지 않습니다) 소속 변호사와 거기 고용된 건축사들을 모두 변호사법위반으로 고소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변호사 고유 업무에 대해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안 되고, 변호사 고유 업무에 대한 홍보/광고나 영업을 해서도 안 됩니다. 건축사들이 “저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아파트 하자소송 한번 해 보실라우? 싸게 해드릴게.” 라고 하면서 입대위/관리사무소 돌아다니면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거죠.
다만, 그 전에도 알음알음으로 비슷한 일들이 있긴 했습니다. 속칭 ‘영업사무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변호사 사무실 소속으로 변호사에게 고용된 직원 신분이지만 ‘사건 따 오는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죠. 과거 1년에 배출되는 사시합격자가 300명이던 시절에는 이런 사무장들이 몇 배 더 많았습니다.
(지금도 영업사무장 하시는 분들이 있긴 있는데, 로스쿨 시대가 되면서 변호사 숫자가 폭증하는 데다 지식인검색 등 다양한 대체홍보수단이 생겨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영업사무장들이 알음알음으로 하던 일을 ‘고용된 건축사’들이 할 뿐인데, 이걸 변호사법위반으로 고소한다면… 변호사 업계에 큰 파장이 왔겠죠. 2000년대 중반에 대한민국 법률시장이 크게 요동쳤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한 번 뒤집어졌으면 2010년대 후반 ‘로톡 변호사광고 관련 분쟁’의 방향도 바뀌었겠죠.
뭐, 그렇게 극단적인 전략까지 시행하진 않았습니다. 1년에 300명 배출되는 사시합격자, 그 희귀한 자격증을 손에 쥔 변호사끼리 ‘서로 변호사법위반으로 고소한다’는 극약처방을 시행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극약처방은 없었습니다만, 하자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건설사들도 방어논리를 잘 갖추고 ‘도면 설명능력’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건설사 직원들이 직접 변론을 할 수는 없으니 ‘도면을 설명해 줄 변호사’가 필요했겠죠.
즉, ‘회사 측을 대변하는 하자분쟁 전문 변호사’가 탄생했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감히 대선배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 ‘정홍식 변호사님’이 회사 측 하자분쟁 전문 변호사 1호입니다. 변호사들이 건설 전문지식을 모르고 도면도 잘 모르던 시절, 혼자서 도면 연구하고 건설기술자들 찾아다니면서 기술 실무를 익혀 소송에서 주장하신 분이죠.
손만 대면 몇십억 그냥 쏟아지던 하자분쟁이, 입주민 측과 회사 측이 치열한 법리전개를 하는 구도로 바뀌었습니다. 회사 측에서 적절히 하자보수 해 주고 자료 잘 준비하고 감정목록에 대해 계속 이의제기하면서 감액시도 하면 몇억원대 수준까지 배상금액 낮출 수 있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이 구도가 완성된 게 거의 201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15년 이상 피터지게 싸우면서 간신히 여기까지 왔죠. 이제는 건설사들도 미리 대응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소송 시작합니다.
그리고, 국토부/법원/주택협회/건설협회 등에서도 하자분쟁 관련 법리를 잘 정리해 두면서 하자분쟁의 틀이 확립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아파트를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공화국’답게, 아파트 하자분쟁 또한 세계 일류가 되었습니다. (응?)
뭐 이런 걸로 세계1등 하는 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에 ‘공동주택관리법’이 시행됩니다.
(5) 법령 정비.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었음
공동주택관리법. 기존 주택법 적용 대상 아파트 중 300세대 이상 / 150세대 이상에 엘리베이터 갖춘 아파트를 대상으로 ‘더 강화된 각종 조치’를 시행하게 된 법령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동주택관리법 제정 당시에는 잠시 건설업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 때는 ‘방송법무’였는데, 이 때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제목 글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글은 ‘건설법무 가이드북’이니 건설업 관련된 얘기만 해야죠.)
제정될 당시 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공동주택관리법은 꽤 잘 만든 법입니다. 2017년 초반에 시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법 시행되면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 업무가 많이 정형화되었고 소위 ‘비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일들이 꽤 줄었습니다.
하자보수와 관련하여 공동주택관리법 상 가장 특기(特記)할 만한 사항은, ‘연차별 하자종료확인서’입니다. 지난 챕터에서도 잠시 언급했었는데, 각 1년/2년/3년/5년/10년으로 된 공종별 하자에 대해 각각의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공동관리주체 및 개별 입주민을 상대로 ‘해당 공종 하자가 없다’는 걸 확인받는 서류입니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건설사 측이 아파트 준공만 하고 휘리릭 떠나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자 없다는 확인서 받기 전에 해당 하자를 꼼꼼하게 다 수리해 줘야죠. 하자보수 안 해주면 입주민들이 확인서 써 줄 리 없잖아요.
그리고, 이 하자종료확인서에 대응하여 ‘하자보증증권 발행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건설사가 건설공제조합/서울보증보험 등을 통해 하자보증증권을 발급받아 입대위/관리사무소 등에 제출하여야 하고, 하자종료확인서를 다 받지 못하면 해당 하자보증증권을 만료시킬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건설사가 하자보증증권 발급받을 때에 ‘예치금’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건설사는 준공시에 하자보증증권을 의무적으로 발급하면서 일정 금액을 보증보험기관에 맡겨 놔야 합니다. 하자보수 제대로 안 하다가 증권 실행되면 당연히 예치금 다 날리게 되고, 그게 아니라도 하자종료확인서를 다 못 받으면 예치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됩니다. 앉은 자리에서 현금 날리는 거죠.
이 [하자증권 예치금 + 연차별 하자종료확인서] 콤보를 통해, 건설사들은 준공 이후에도 각 아파트 하자를 계속 관리하고 하자신고 들어오는 대로 보수해 주게 됩니다. 보증보험기관에 묶인 예치금 찾으려면 당연히 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하자보수를 잘 하게 되어 하자소송을 줄이게 될 겁니다.
물론, 이게 입법자의 의도대로 될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연차별 하자종료확인서를 받는 과정이 그리 순탄한지도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2018년 하반기 이후로는 아파트와 무관한 건설사에 있었기 때문에, 하자종료확인서 받는 현실 업무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모든 세대에 대해서 반드시 하자종료확인서를 받아라’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즘 아파트 단지가 대형화되는 추세여서 몇천세대 단위 아파트가 늘어나는데, 이 정도 숫자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확인서 못 받는 세대가 반드시 생기거든요. 결국 현실 반영해서 80~90% 정도 종료확인서 받으면 예치금 반환해 주는 식으로 운영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잠시만. 공동주택관리법은 저렇게 정비되었는데, 그럼 이 법 적용 안 받는 주거용 건물들 – 대표적으로 ‘오피스텔’ – 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2018년 이후에 있었던 건설사가 상가+오피스텔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오피스텔은 그냥 예전과 동일한 방식이었습니다. 주택법이 아닌 ‘집합건물관리법’이 적용되었고, 집건법 적용 대상 건물은 하자보증증권 제출하는 게 의무사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예치금 돌려받을 일이 없는 거죠. 그러면 꼬박꼬박 하자보수 해 줄 이유도 없습니다.
그것 외에도, 집합건물법만 적용되는 건물에 대해서는 아직 규제가 미비합니다. 집합건물을 관리하는 관리단의 회계와 운영에 대한 감시감독 절차도 미비하고, 그로 인해 관리단 구성 단계부터 여러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다만, 앞으로 계속 개선될 겁니다. 이미 ‘준공 전 입주자 사전점검 절차’는 집합건물관리법 시행령에 도입되었고, 공동주택관리법상 입대위/관리사무소에 대한 회계감사 및 해당 구청의 관리감독권한도 도입될 겁니다. 최종적으로는 ‘아파트와 동일하게’ 하자증권 예치금을 의무화하여 ‘돈 묶어 놓은 거 찾고 싶으면 하자보수 잘 해 줘.’로 가겠죠.
여전히 갈 길이 멀긴 합니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 도입된 제도가 오피스텔을 비롯한 ‘아파트 대체 상품’까지 확대되어야 하고, 공동주택관리법상 제도의 실효성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저 ‘하자종료확인서’도 기존의 법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앞 챕터에서 설명한 것처럼 ‘하자보수기간이 종료되어도 해당 하자의 원인이 기간 내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상 하자에 대한 시공사의 책임을 면제할 수는 없다’라는 판례를 하자종료확인서 하나만으로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 보완되긴 할 겁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이고, 각 아파트는 우리 일반인들의 꿈과 애환이 서린 공간이거든요. 한국사람이 목숨과 영혼을 갈아넣는 공간이거든요.
(6) 계속 발전하는 하자소송
마지막으로, 하자소송의 최신 트렌드(?)라고나 할까 뭐 그런 걸 소개하고 끝내겠습니다.
2010년 중반 이후 ‘방화문’이 새로운 트렌드로 추가되었습니다. 각 세대 현관문 문짝이 이슈인데요.
다들 보시면, 아파트 세대 현관문은 일단 ‘철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체가 다 철덩어리는 아니고, 얇은 철판 두 장 사이에 ‘소음방지 재료’를 넣은 구조입니다.
소음방지. 뭐 대단한 건 없습니다. 두꺼운 종이로 벌집모양 만들어서 빈 공간 채우면 소음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합니다. 실제 얼마나 소음 줄어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앞에서 제가 ‘방화문’이라고 했었죠? 즉, ‘불을 막아 주는 문’이어야 합니다.
각 세대 별 현관문은 ‘소음을 막는 동시에 불도 막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현관문 밖에서 나는 소음을 최대한 줄여 주면서, 현관문 밖에서 불이 활활 타오를 때 일정 시간 이상 버텨 줘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두꺼운 종이로 벌집모양 만들어서 채운다’면?
당연히 잘 탑니다. 아주 잘 탑니다. 아주 그냥 시꺼먼 연기 팍팍 뿜어내면서 조낸 빨리 탑니다.
이 방화문 이슈가 2010년 중반 이후 ‘새로운 하자소송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그 이전에 지은 아파트 현관문은 당연히(!) 두꺼운 종이로 벌집모양 만들어서 채워넣었고, 이런 현관문은 방화성능 테스트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현관문 다 바꿔 주면 세대 전체에서 몇십억원 들어갈 거구요.
이게 어떻게 결론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파트 짓는 건설회사 법무담당자 분께서는 관심 갖고 찾아보실 거라 믿습니다^^.
*****
이리하여, 어설프게나마 대한민국 아파트 하자분쟁 역사를 정리해 봤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극히 일부분입니다만, 새롭게 시작하는 법무담당자 분이나 실무 중심으로 가볍게 알아보시려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