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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분쟁 발생시 대응 (민사, 형사, 행정)

by 테서스

1. 서론


'웹소설 소재 모음집'이라고 써 놓고서 '저작권 분쟁 발생시 대응'이라고 현실적인 글을 올리면 살짝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머리 속으로 창작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평행우주 수십만 개를 아우르더라도 우리의 몸뚱아리는 이 차원 지구의 한반도 땅에 갇혀 있죠.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 개인적으로 '현실적인 저작권 문제'를 고민하고 대응할 일이 생겼습니다. 전에 얼핏얼핏 썼던 것 같은데, 소설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사업자가 '매니지먼트 아몰랑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알아서 해 봐.' 분위기로 나오고 있거든요.


솔직히 돈으로 따지면 금전적인 손실은 얼마 안 될 겁니다. 끽해야 몇십만원 정도? 현실에서 반평생 이상 법을 다뤄 온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몇십만원으로 소송 진행하는 건 여러모로 손해입니다. 그 시간에 그냥 일하는 게 훨씬 낫죠.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창작물'은 좀 특별하잖아요? 직업과 무관하게 취미활동으로 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직접 써내려 간 소설은 특별하잖아요?


그래서 현실 대응 중입니다.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하고 연재분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별도 매니지먼트를 알아보고 있죠.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의 저작권 분쟁 대응'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저는 변호사 자격이 없으니 어떤 전문성/정확성을 요구하시면 안 되구요. 참고로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론은 대략

(1) 저작권의 물권적 성격

(2) 민사소송 가능. 하지만 민사는 영 별로

(3) 형사고소 가능. 가장 강력한 수단인데 출판사 측은 엄청 싫어할 듯

(4) 통신판매업자는 '방통위'의 규제를 받음

정도 순서로 전개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저작권의 물권적 성격


저작권은 물권(物權)입니다. 법학개론 정도 들어 보셨거나 / 법학과 2학년 정도 되셨거나 / 어느 정도 사회생활 경력이 되시는 분들은 '물권'의 개념을 아실 텐데요. 소유권처럼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고 반환청구할 수 있으며 침해금지+침해예방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게 물권의 특징입니다. 채무자에게만 행사할 수 있는 게 원칙인 채권(債權)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죠. 아주 그냥 오조오억배 정도 더 강합니다.


(* 참고로, 제가 물권의 개념을 배우던 29년 전에 민법총칙을 강의하시던 교수님은 [물권에 대해 배웠을 때 법학에 푹 빠져들었다. 법률적 권리구제가 어떤 것인지 깨닫고 감동받았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교수님은 원래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셨고 법대교수를 거쳐 대법관까지 역임하셨으니 아마 그 분 말씀이 맞을 겁니다.

반면 저는 '이게 뭐 대단하다고 저렇게 말씀하시지?'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물권 개념이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러니까 제가 야인(野人)으로 사는 거겠죠;;)


아무튼, 저작권은 물권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즉, 저작물 자체는 (미술품처럼) 실체가 있을 수도 있고 / (웹소설처럼) 구체적인 실체 없이 인터넷 정보로만 존재할 수도 있지만, 저작권에 기한 반환청구 + 침해금지청구 + 침해예방청구 3단콤보는 모두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게 잘 안 먹힙니다. 현실에서는 사람이 좋게 말할 때 들어처먹지 않는 잡것들이 꽤 많아요. 이들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집행권원'이라는 걸 확보해야 하죠.


금전소비대차의 경우 '공증'을 통해 집행권원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집행권원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원판결'입니다. 판사의 직인이 찍힌 판결문을 근거로 집행문 부여받으면 그 때 비로소 강제력이 생기는 거죠.


즉, 권리구제의 기본은 민사소송에서 시작됩니다. 그게 법치국가죠. 현실에서는 좀 다릅니다만 아무튼 이론적으로는 그러합니다.


가볍게 민사소송 살펴보죠.



(2) 민사소송 가능. 하지만 민사소송은 영 별로


민사소송은 "금전 ~원을 지급하라."는 금전청구 내지 손해배상소송으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ㅇㅇ를 이행하라."는 이행청구 형태 및 "~언제까지 ㅇㅇ를 이행하지 않으면 1일 당 ~원의 이행강제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간접강제 형태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회사 업무로만 경험하다 보니 실제 이행청구소송은 거의 경험이 없긴 한데, 뭐 인터넷 찾아보면서 소장 쓰면 할 수 있긴 할 거예요. 인지대 송달료 계산까지 하려면 많이 번거롭긴 하겠지만 하려면 할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이행청구 내지 간접강제 소송을 진행해서 저작권을 침해하는 잡것들에게 법의 응징(!)을 해 주는 게 기본이지만...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몇십만원짜리 분쟁에서 민사소송 거는 건 오히려 손해입니다. 인지대 송달료만 해도 10만원 넘게 드는데 법원 왔다갔다하는 교통비에 근로시간 손실까지 계산하면 최소 200만원은 잡아야 해요. 그 이하 금액의 분쟁은 민사소송 안 하는 게 낫습니다.


(* 참고로, 법원 소액사건을 방청하시면 판사님께서 직접 '100만원짜리 사건은 소송 안 하는 게 낫습니다.'라고 따뜻한(?) 조언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전에 어떤 판사님은 '난 150만원짜리 무스탕 코트 망가졌는데도 소송 안 했습니다. 10만원짜리 옷 망가졌다고 소송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뭐, 저작재산권의 경제적 가치가 높으면 민사소송 해야죠. [전지적 독자 시점]이나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수십억~수백억 규모의 저작재산권이라면 당근빳따 빠떼루로 민사소송 해야 합니다. 변호사도 붙여야죠.


하지만... 저처럼 월 10만원~20만원 버는 하꼬작가들은 민사소송 하기 어렵습니다. 돈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뭐... 법원 왔다갔다할 시간에 연차쓰고 낮잠이나 자는 게 직장생활에 더 도움됩니다;;


결국 민사는 영 별로네요. 하꼬작가의 숙명입니다.


그런데, 민사보다 더 좋은 게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형사처벌 조항이 있거든요. "너 고소!" 두둥!



(3) 형사고소 가능. 가장 강력한 수단인데 출판사 측은 엄청 싫어할 듯


저작권은 (저처럼) 수십만원짜리 쩌리(;;)도 있고 수십억~수백억짜리도 있습니다만, 어떤 저작권이든 고의로 침해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 136조 등에서 잘 정리해 주고 있죠. 141조에 양벌규정도 있어서 제대로 걸리면 회사 사장도 전과 달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에는 '고소전치주의'라는 알흠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실제 법률용어는 아니구요. 민사소송 절차가 워낙 번거로우니 그냥 국가권력의 힘을 빌려서 확 콩밥 먹여버린다고 협박(... 물론 형법상의 협박은 아니고 권리자가 권리 주장하는 건 '경고'입니다. 허허허;;)해서 쉽고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는 거죠.


저작권법상 형사처벌은 친고죄로 구성되어 있어서 저작권자 본인이 직접 고소를 해야 합니다. 고소장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인터넷에 떠도는 양식 하나 다운받아서 6하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사업자 관할 경찰서에 우편접수하면 됩니다. 고소, 참 쉽죠?


물론 밥 아저씨 그림처럼 '참 쉽죠?'가 모두 다 쉬운 건 아닙니다. 실제로는 좀 더 번거로워요. 게다가 대부분의 경찰들은 짜질구레한 사건을 대충 무혐의로 종결하고 싶어해서, 고소인진술을 하면서 경찰을 설득하는 게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앞에서 제가 '매니지먼트 사업자와 분쟁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저작권에 기해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하고 작품 삭제 요구를 하는 건 쉬워요. 하지만 매니지먼트 사업자가 아몰랑 배째 모드로 작품 삭제를 안 한다면?


이건 명백히 '부작위에 의한 저작권 침해'입니다. 저작권법 136조 1항에서 정하고 있는 '~전시~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에 해당하죠.


하지만 이걸 갖고 실제 형사고소로 진행한다면 경찰이 말돌리기 시전할 가능성이 99%입니다. '처음에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출간 권한을 위임했다가 취소한 거면 그냥 민사 문제 아닐까요 고소 취하하고 돌아가세요 괜히 고소 밀어붙였다가 무혐의 나오면 나중에 매니지먼트 쪽에서 무고죄로 역고소할 수도 있어요 작가님 딱 봐도 별 거 없어 보이는데 괜히 국가권력 귀찮게 하지 말고 끄지셈.'이라는 얘기를 길게 돌려서 할 겁니다.


그래도 일단 고소하셨다면 버티셔야 합니다. 나중에 무혐의 나와도 상관없어요. 무고죄는 '허위사실임을 인식하면서 오로지 국가권력을 악용하여 개인을 괴롭힐 목적으로 시행'해야 하는데, 장기간 의무 이행을 하지 않은 부작위를 민사사건으로 보느냐 /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느냐 정도의 관점 차이로는 무고죄로 엮어넣을 수 없거든요.


경찰이 영 삐딱하게 나온다면 '아니 샤발 니가 검사야? 판사야? 어디 이파리 나부랭이가 판사질이야! 당장 정리해서 검찰에 송치해! 안 그러면 확 감사실에 찔러 버리겠어!' 라고 하셔도 됩니다. 회사원 입장에서 고소했다면 경찰 눈치를 봐서 예의 갖춰야겠지만 개인 하꼬작가는 그딴 예의 버리는 게 좋아요. 국가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데 어딜 감히 민중의 지팡이가 말대꾸야.


물론 이 정도까지 막 나가지 않는 게 좋겠죠. 적당히 송치만 해 주면 땡큐베리감사. 어익후 몇십만원짜리 사건으로 국가권력이 움직여 주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저작권법상 형사처벌 조항은 '양벌규정'입니다. 삭제 요구를 할 단계라면 웹소설 출판사 측도 '부작위에 의한 공범'으로 엮어 줄 수 있고, 그럼 출판사의 사장(대표이사)도 양벌규정 대상이죠. 출판사 대표가 피의자로 올라가 있으면 어지간한 회사는 그냥 작품 삭제 진행해 줄 겁니다.


뭐, 당연히 출판사 측에서 매우매우 싫어하겠죠. 저 같은 하꼬작가가 출판사 사장 고소했다가는 영원히 웹소설 출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습니까. 어차피 저는 현실직업이 따로 있고 웹소설은 취미로 쓰는 거거든요. 그까이거 웹소설 출간 안 하는 걸로 하고 확 사장 고소해 버릴 수 있습니다. 사장 나오라 그래!



(4) 통신판매업자는 '방통위'의 규제를 받음


형사고소가 너무 과격하다 싶으신 분은 '방통위의 행정조치'를 고려해 보실 수 있습니다. 삼국지 방통이 제안하고 유비가 읊었듯이 상책(형사고소)은 너무 급하고 하책(민사소송)은 너무 완만하니 적당히 타협 봐서 중책(방통위 신고)로 가자고 판단할 수도 있죠. 물론 그러다가 방통이 죽어버렸습니다만;;


방통위 규제를 받는 회사에 있어 보면, 이 회사들은 방통위를 매우 무서워합니다. 방통위가 좀 무소불위 권력 속성이 있거든요. 독과점이 성립된 영역에서 규제를 맡았으니 무소불위가 될 수 밖에 없겠죠. 권력의 특성이 그러하기도 하구요.


아무튼, 통신판매업자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서 방통위에 신고해야 합니다. 웹소설 출판사업자는 당연히 통신판매업자일 것이고 대부분 방통위 신고 번호를 갖고 있을 거예요. 제 소설이 올라가 있는 웹소설 출판사도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방통위 신고 번호를 띄워 뒀더군요.


무소불위의 규제기관이 있는 사업영역에서 웹소설 출판 통신판매업자가 저작권 침해 행위를 방치하고 아몰랑 아무것도 안해 배째 모드로 일관한다? 뭐 이러면 신고 크리 날려야죠. 대한민국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크리티컬한 시정명령으로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실제 신고 들어가면 사업자 측에서 빠르게(광속으로) 삭제조치하고 '경고' 처분으로 끝내려는 노력을 할 겁니다. 뭐 신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원래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죠. 민사소송으로 이행청구하는 것보다 빠르잖아요. 참 쉽죠?



(보충) 웹소설 작가들은 스스로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


가끔 살다 보면 웹소설 작가 분들이 저작권 침해 / 명예훼손 등으로 속앓이 하는 푸념글(...)을 보게 됩니다. 뭐 기본적으로 저는 제 가족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 그냥 지나가곤 합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반평생 한 줌 법률지식을 팔아서 먹고사는 무자격 회사원이다 보니 한마디씩 할 때도 있습니다.


웹소설 작가들은 모두 '창작자'로서 '저작권'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특허권 이상으로 소중해서 물권적 지위를 부여했고 형사사법기관의 보호까지 받을 수 있는 강력한 권리를 보유했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 권리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했다고 푸념할 시간에 자기 권리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법체계는 변호사강제주의가 아닙니다(일부 헌법재판 제외). 본인이 본인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는 변호사가 필요없어요. 본인 스스로 알아보면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웹소설 작가들은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사람들'입니다. 현실 법제도 공부하는 능력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 공부한 지식을 활용하는 건 다들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잘 싸웁시다. 웹소설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을(乙)인 건 어쩔 수 없지만 정신적인 측면까지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깟 경제적 이익 때려치우고 저작권자로서 갑질하면 됩니다. 그게 은근히 재밌기도 해요.



웹소설 소재와 무관한 현실 이야기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네요.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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