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 이어서 씁니다.)
(5) 트루먼 쇼 :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미리 인사드리겠습니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앤드 굿나잇! + 매우 공손한 인사.
짐 캐리.
개인적으로 짐 캐리의 연기를 참 좋아합니다. '마스크'에서 고무 가면을 쓰고서도 표정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코미디 연기, '트루먼 쇼'를 기점으로 활짝 꽃피웠던 진지한 연기 모두 T.O.P.였습니다.
다만 짐 캐리의 '현실 사생활'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기사 찾아보다 보면 나오는 얘긴데 성병 걸려서 고생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투자실패로 번 돈을 다 날려먹은 것 같기도 하고.
뭐, 굳이 쉴드 치자면 '불우하고 가난했던 어린 날에 대한 보상심리'를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짐 캐리와 친한 사람들이 나서서 하면 되고.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동양인으로서는 그냥 연기만 평가하면 됩니다. 연기 잘하면 됐죠. 사생활에서 살인 강간 급 범죄를 저질렀다면 평가에 반영해야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그저 연기만 보고 나머지는 아몰랑. 연기 얘기만 하겠습니다.
[뛰어난 코미디 배우는 진지한 정극 연기에서도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 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잭 블랙'도 정극 연기력이 탁월한 배우죠. 피터 잭슨 버전의 킹콩에서 악역 감독 역할을 맡아 눈 희번덕거릴 때에는 소름끼칠 정도였습니다.
잭 블랙의 정극 연기도 대단하지만,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짐 캐리를 더 위에 놓고 싶네요. 짐 캐리가 하드캐리한 영화 '트루먼 쇼'가 너무 강력합니다.
트루먼 쇼의 줄거리를 다시 요약할 필요는 없겠죠. 워낙 유명한 영화라 많이들 보셨을 것이고, 안 보신 분들도 줄거리는 아실 것 같습니다. 30평생 리얼리티 쇼의 희생양으로 모든 인생이 중계되던 남자가 인공 섬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간다는 이야기. 줄거리 끝.
트루먼이 (감독의 횡포로 미쳐 날뛰는 바다를 헤치고) '세상의 끝'에 다다랐을 때. 끝없이 펼쳐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인 줄 알았던 게 그저 '페인트 칠을 한 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신의 목소리처럼 울려퍼지는 감독의 목소리가 '넌 스타(Star)야.'라고 속삭일 때.
트루먼은 화내지 않습니다. 슬퍼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영화 초반의 대사를 읊조릴 뿐입니다.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미리 인사드리겠습니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앤드 굿나잇! + 매우 공손한 인사.
마지막에 짐 캐리가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짐 캐리의 사생활에 대한 평가는 제쳐 두고, 트루먼 쇼 끝자락에서 '세상의 끝에 달린 문'을 열기 직전 환하게 웃는 모습만큼은 정말 흐뭇했습니다.
결말이 좋은 영화 다섯번째. '트루먼 쇼'였습니다.
(6) 이터널 선샤인 : 미워도 다시 한 번
이 영화는 넣을까말까 하다가 결국 추가했습니다. 짐 캐리가 진지한 정극 연기를 선보인 또 하나의 명작,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부터 날리고 시작하면... 이터널 선샤인 주요 설정은 [강제 기억 삭제]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내고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 버릴 수 있다는 설정이죠.
주인공 짐 캐리는 잠에서 깨자마자 '샤발 오늘 기분이 너무 심하게 멜랑꼴리해서 회사 못 가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회사에 긴급 연차 신청을 한 뒤 기차를 타고 바닷가로 갑니다. 아마 바다 이름이 '몬톡'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몬톡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주인공은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나는데... 유명한 노래 가사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으로 번안된 노래인데, 한국사람이 아는 노래를 미국인인 주인공이 기억해 내지 못합니다.
아무튼 주인공은 클레멘타인에 대해 강한 호감을 느끼고, 클레멘타인도 주인공이 싫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둘은 몬톡 바닷가를 거닐면서 서로에게 반합니다. 오늘부터 연애 1일차가 될 것 같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연애 1일차가 아니었고, 서로 닳고닳고닳디닳아 식상해지다 못해 증오하게 된 연인 사이였습니다.
주인공과 클레멘타인은 과거에 이미 연인이었고, 둘이 대판 싸운 뒤 클레멘타인이 먼저 [강제 기억 삭제]를 해 버리자 주인공 남자도 빡쳐서 클레멘타인 관련 기억을 다 지워 버린 것이었습니다.
기억 삭제 연구소의 여직원(커스틴 던스트)과 연구소장도 비슷한 관계였습니다. 연구소장의 불륜으로 시작된 만남이었는데 연구소장은 여직원의 기억을 삭제하고 불륜관계를 덮어 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다시 시작되죠. 연구소장의 아내는 한숨을 내쉬며 '처음이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이 꼬인 상황. 잘 끝날 수 있을까요?
클레멘타인에 대한 증오감정을 지워 버린 남자 짐 캐리. 그는 매우 담담하고 차분하게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It's OK.
또다시 서로 증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서로 사귀다가 너무 미워하게 되어 기억 자체를 지워 버리겠다고 작정했던 것처럼, 또 새로 시작하더라도 결국 다시 증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시작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워했어도 다시 한 번. 새롭게 사랑하기로 합니다. It's OK. It's OK.
짐 캐리의 '진심을 담은 정극 연기'는 매우 탁월했습니다. 얼굴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남자가 그 근육을 모두 고정시킨 채 담담하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더 강렬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싸웠을 때 더 애절해지겠죠. It's OK.
(7) 늘 힘이 되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 :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 계속 숨을 쉬어야지(Keep breathing). 내일 파도에 뭐가 떠밀려 올지 모르잖아.
드디어 '결말이 좋은 영화'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제 인생의 반전(反轉)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도 워낙 잘 알려져 있죠. 글로벌 물류회사 페덱스(Fedex)에서 미친듯이 바쁘게 살던 관리자 톰 행크스가 비행기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되어 4년 동안 '나 혼자 산다'를 매우 처절한 버전으로 찍다가 / 어느 날 파도에 떠밀려 온 '간이 화장실의 플라스틱 벽'을 얻어 그걸 돛 대용으로 활용해 무인도를 탈출하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4년 동안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이 처절하고 처참한 '나 혼자 산다' 모드였던 톰 행크스에게... 그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2가지 물건이었습니다. 하나는 (사람 얼굴을 그려넣은) 배구공 윌슨. 다른 하나는 '약혼녀(헬렌 헌트)의 사진'이 있는 팬던트였습니다.
윌슨은 바다에서 떠내려가 버리죠. 미안해 윌슨~~~!을 외치지만 다시 주워올 수 없습니다. 지못미 윌슨 ㅠ.ㅠ
그리고 약혼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아이도 낳았죠. 돌아온 톰 행크스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 잠시 함께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톰 행크스는 그런 약혼녀를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런 후 주인공은 밤 늦은 시간에 누군가와 대화하며 (어쩌면 독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담하게 아픔을 털어놓습니다. 4년 동안 매일 팬던트 속 약혼녀의 사진을 들여다봤고 그 사진 속 여인을 다시 만날 날만 기다렸는데, 막상 현실로 돌아와 보니 약혼녀와 다시 맺어질 수 없는 상황. 불가피한 실연(失戀)의 아픔을 매우 차분하게 늘어놓습니다.
그 후 나오는 대사.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 계속 숨을 쉬어야지(Keep breathing). 내일 파도에 뭐가 떠밀려 올지 모르잖아.
개인적으로 저는 35살까지 고시원에 살았고, 모아 놓은 돈은 하나도 없어 -300만원 빚을 진 상태였으며, 고시원에서 목 맬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와 다시 직업을 구했고, 1년도 안 되어 결혼했으며, 아내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아끼는 생활을 한 끝에 경기도 아파트 2채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35살, 고시원에 갇혀 있는 저를 다시 만난다면... 저 대사를 그대로 읊어 줄 것 같습니다.
"계속 숨을 쉬어야지. 내일 파도에 뭐가 떠밀려 올지 모르잖아."
저는 계속 숨을 쉬었습니다. 내일 파도에 뭐가 떠밀려 올지 모르는 채 무작정 다시 한 번 세상에 나갔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히면서 직급과 연봉을 높였으며, 아내와 함께 2주택을 일궜습니다.
Keep breathing. 계속 숨을 쉬어야 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겁니다. 숨이 멈출 때까지 숨을 쉬는 겁니다.
내일 파도에 뭐가 떠밀려 올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안 오는 날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계속 숨을 쉬어야 합니다.
인생에 마지막 하나 부여잡을 게 있다면, 계속 숨쉬는 걸 부여잡아야겠죠. Keep breathing.
결말이 좋은 영화를 정리했는데, 영화 7편 정리하는 데에 상-중-하 3편을 써 버렸습니다. 다음에는 원래 취지대로 '웹소설 소재'를 정리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