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서 씁니다.)
(2) 그런데 한국 상황은...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미쿡은 '기업분리명령'으로 독점기업을 확 찢어버릴 수 있고, 한국은 기업분리명령까지는 도입하지 않았지만 각종 특별법을 통해 어지간한 산업 영역에서는 '영업정지'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분리명령보다는 영업정지가 더 강력할 수도 있죠. 거기에 '형사처벌' 콤보까지 더할 수 있으니, 현재 대한민국의 공정거래 관련 규제는 (특별법까지 다 더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결코 약한 편이 아닙니다.
법은 약하지 않은데 왜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까요? 쿠팡처럼 사고를 쳤는데도 배째라 모드로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우선 다시 한 번 밝히는데, 이 글은 전문자격증도 없고 / 자문료를 받지도 않았으며 / 그저 민간기업에서 오랫동안 공정위 업무를 한 민간회사원이 경험에 따라 느낌적인 느낌으로 쓰는 글이라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한국 시장은 미국식 공정거래 규제가 먹히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물리적인 영토, 인구 수, 경제력 등이 '유효경쟁'이 성립할 만한 규모에 이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영역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유효경쟁을 하기 어렵고 오히려 독과점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한국의 독과점. 뭐가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자동차'와 '항공'이 독과점입니다. 자동차는 현대차. 항공은 대한항공. 독점 성립해 버렸죠. 물론 자동차는 현대차 기아차 2개 법인이고 대한항공도 아시아나항공이 아직 별개 법인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연인인 오너(Owner)가 동일하면 동일기업집단입니다.
뭐, 자동차와 항공 정도 되면 일반인이 함부로 도전하기 어려우니 독과점 성립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럼 '소비재'는 어떨까요?
소비재 분야에서도 독과점이 꽤 됩니다. 대표적으로 '침대'와 '제과제빵'이 있죠.
침대 분야에서 에이스침대 + 시몬스침대 + 대진썰타침대 등이 있지만 이거 다 같은 오너 밑으로 통합되었었습니다. 지금은 승계가 이루어지면서 2세 자녀들이 각각 나눠먹은 것 같지만 IMF 직후에는 대한민국 침대회사가 사실상 1개 뿐이었어요.
제과제빵에서는 (산재사고로 악명 높은) SPC그룹의 점유율이 엄청납니다. 물론 만년2등 콩라인 뚜레주르를 앞세운 'CJ푸드빌'이 있긴 하고 / 대전에서는 (대전의 유일한 관광거리) '성심당'이 어마무시한 힘을 자랑합니다만 전반적으로는 SPC그룹이 킹왕짱이에요. 삼립 + 파리바게뜨 + 베스킨라빈스 등으로 이어지는 기호품 시장 장악력이 장난없습니다.
독점이 아니라 '과점'으로 넓히면... 더 많습니다. 3개 사업자 합계 시장점유율이 75%를 넘기면 공정거래법상으로 '과점형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는데, 이렇게 2~3개 사업자만 있는 시장이 널리고 널렸어요.
통신은 SK-KT-LG. 알뜰폰도 통신3사 자회사가 장악. 유료방송 송출 영역에서는 통신3사의 IPTV와 위성방송이 장악. 유료인터넷은 무선통신의 끼워팔기 상품.
햄버거는 롯데리아+맥도날드+맘스터치 3파전. 버거킹도 있고 KFC도 치킨버거 팔아 주며 쉑쉑버거 등등이 있긴 하지만 그냥 '기타등등' 정도입니다. 그나마 맘스터치 나오면서 3파전이지, 예전에는 롯데리아 맥도날드 2개로 끝이었어요.
(일반 소비재는 아니지만) '엘리베이터'도 3파전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 + 오티스 + 티센크루프. 가아끔 미쯔비시 엘리베이터도 보이긴 합니다만 3개회사 점유율이 90% 가량 될 겁니다. 과점시장이죠.
(넷플리스의 공격으로 다 죽어 가지만) 오프라인 영화관도 3파전이었네요. CGV / 롯데시네마 / 메가박스. 이런 씨지브이같은.
(지금은 쿠팡 등에 밀려 확 기울었지만) 기존의 오프라인 대형마트도 3파전이었습니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 / 롯데그룹의 롯데마트 /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며 MBK로 갔다가 곧 망할 것 같은 홈플러스. 그나마 홈플러스 망하면 2파전으로 바뀌겠네요. 농협 하나로마트는 명함 내밀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편의점'도 3파전 하다가 2파전으로 줄었던 것 같네요. CU GS 세븐일레븐 정도 있었는데 세븐일레븐이 어딘가로 인수되었을 겁니다.
한국 시장에서 이렇게 독점~소수과점 회사가 많은 이유가 뭘까요? 분명 공정위에서는 '유효경쟁 활성화'를 내걸고 있는데 왜 독과점이 늘어나는 걸까요?
제 생각에, 한국 시장이 너무 작은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5천만명 인구는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적지 않고 경제력도 세계 12~15위 정도 되니 약하지 않습니다만, 물리적으로 거리가 너무 가깝고 대도시 중심으로 소비가 집중되어 있으니 '규모의 경제 효율성'이 강하게 나타나서 결국 몇몇 상위업체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독과점은 분명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상위 독과점사업자 내부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에 따른 효율성'을 누립니다. 당장 재무.법무.기획 등 지원조직에서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재료구입에서도 대량구매를 통해 단가를 낮출 수 있으며, 재고관리 및 유통망 관리에서도 훨씬 더 효율적이죠.
즉, 독과점을 이룬 사업자는 '굳이 갑질을 하지 않더라도' 규모의 경제로 인한 효율성 때문에 수익성이 좋아집니다. 통신3사처럼 수익성이 너무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서비스 개선을 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수익성은 좋아집니다.
공정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결합에서 독과점을 인정하는 예외사유로 '기업회생.파산 등의 상황에서 경영효율성 향상을 위한 인수합병'을 인정해 주죠. 위에서 언급한 자동차.항공.침대 등이 모두 이렇게 기업회생.파산 등의 상황에서 경영효율성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기업인수합병을 승인받은 사례들입니다.
결국,
- IMF나 금융위기 등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일부 기업이 회생.파산 위기에 처하고
- 당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인수합병을 허용해 주면
- 독과점 기업이 탄생하고
- 그 독과점 기업은 경제위기를 벗어난 후에도 더욱 더 세력을 넓히며
- 최종적으로 독과점을 공고히 하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그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은 대다수 사업영역에서 독점~과점이 정착되었습니다. 건설업 등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시장은 독점~과점이라고 봐야겠죠.
그게 현실입니다.
(3) '유효 경쟁'은 환상일까?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제관점에서 결코 작지 않은 나라이고 인구도 꽤 많은 편인데... 사실상 유효경쟁 상황을 만들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상당수 시장에서는 기존의 독과점 기업들이 그 점유율을 공고히 지켜내고 있고 오히려 독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요.
잠시 딴 얘기를 하면...
이건 마르크스 자본론에서 언급하는 '자본주의 말기 현상'과 약간 겹쳐 보입니다. 자본론에서는 자본가들이 가치~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익을 누리지만 자본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그 이익은 점점 줄어들고 그 과정에서 소규모 자본가는 계속 도산하며 독과점이 심화된다고 언급하거든요. 주류경제학에서도 이 현상 자체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구요.
뭐, 그렇다고 확 자본주의를 갈아엎고 공산혁명으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아끔 대규모 공황 사태를 겪을 수도 있고 그걸 막으려고 저점에서 돈 풀어제끼면 장기불황 및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듯 해요. 또 이게 유지되어야 저 같은 공정위 담당 회사원들이 먹고 살 수 있기도 하죠;;
잠시 말이 옆길로 샜는데, 아무튼 대한민국 공정위가 원하는 '유효 경쟁'은 공허한 목표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간기업들은 항상 정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 끝없이 제도의 빈틈을 찾아내며 / 기존 시장의 틀을 허물고 다른 시장으로 영향력을 전이해 갑니다. 정부가 '유효경쟁 좋다구욧 빼애애액!'을 시전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아요.
쿠팡 사태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이것도 결국 정부 대응이 늦었습니다. 온라인 유통시장이 크게 성장할 때 손놓고 있다가 이제 노동조합 세력이 '새벽배송은 2급 발암물질이라구욧 빼애애액!'을 시전하니 뒤늦게 뭔가 꼬투리를 잡아 족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그런다고 딱히 달라지는 거 없어요. 한반도 남쪽에서 유통망을 장악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 효율'로 이익을 내는 상황은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또한, 이제 와서 쿠팡을 놓고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시장지배적 기업으로 지정해 주겠어 빼애애액!"을 시전하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공정위가 과거에 'CJ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갑질행위를 심사할 당시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합해서 시장을 획정한다!]는 선례를 만들어 버렸거든요.
물론 공정위는 [선례 따윈 호떡 뒤집듯이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선례]도 갖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매우 괴로웠던 선례 뒤집기 사건 - CJ헬로비전 매각실패 사건 - 때에 유선방송시장의 독과점 판단 기준을 호떡 뒤집듯 뒤집어 버렸죠. 이번에도 또 뒤집으려면 뒤집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CJ헬로비전 매각실패 때 선례 뒤집었던 건 당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엔딩이었습니다. 뭐 공정위 선례뒤집기 호떡쇼 때문에 탄핵된 건 아니었지만 일부는 영향을 줬겠죠. 일부는.
이번 공정위원장이 또다시 선례뒤집기 호떡쇼를 할까요? 대충 지지율 믿고 나대나대 날뛰면서 학자의 자존심 따윈 아몰랑 당장 여론몰이가 중요해 정도 마인드로 거하게 호떡쇼를 벌일까요?
호떡 뒤집다가 누구 얼굴에 맞으면 화상 심하게 입습니다. 뒤집으려면 잘 뒤집으세요. 본인 얼굴만 아니면 된다는 마인드로 대충 던지지 마시고.
뭐, 저희 같은 일반인이 해결책을 고민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저 현실에 순응할 뿐입니다. 이렇게 정년까지 잘 다니고 월급 받으면 제 할 일은 끝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