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다른 글에서 잠시 밝혔듯이, 저는 ‘법무’ 직군입니다. 본 편 ‘이력서 쓰기(꾸미기)’는 주로 법무직군 중심으로 서술하겠습니다.
법무를 포함한 모든 직군에서, 경력직으로 이직하겠다고 생각하면 일단 ‘이력서’가 가장 중요합니다. 서류통과가 되어야 그 다음에 면접인데, 당연히 서류통과 할 수 있게 이력서를 잘 꾸며야죠.
(물론 실제 승부는 ‘면접’에서 갈리겠지만, 이력서 통과 못하면 면접 기회도 없습니다.)
자, 여기서 이력서 ‘꾸민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법무 쪽에서는 형사사건 피의자조서도 ‘꾸민다’고 하죠. 특정 결론에 맞게 잘 끌고 간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이력서를 꾸밀 때 중요한 것. 당연히 ‘서류심사 통과’일 것이고, 그게 이력서를 만드는 목적이고 최종 결론입니다. ‘아 이 이력서 쓴 사람 좀 치네. 법무팀으로 뽑으면 든든하겠어.’라는 느낌적인 느낌을 팍팍 줘야 합니다.
뭐 그렇다고 없는 얘기를 쓰면 안 됩니다. ‘저는 대법원 판례를 다 갈아엎고 법률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우리 편에 유리한 해석 관철시킬 수 있는 울트라 캡숑 능력자로서 저 한 명 뽑으면 회사에 1천억 이익 납니다.’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되죠.
(만약에 진짜 법 판례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재드래곤 상속 문제 해결해 주고 조 단위 성과급 받아서 대한민국 떴을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그런 사람은 없었던 것 같죠?)
있는 얘기/경험한 얘기를 쓰되, 서류심사 통과되도록. 이게 핵심입니다.
그 핵심에 맞추려면 몇 가지 요건(!)을 정리해야겠죠.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이력서 받아보는 회사의 특성에 맞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긴데, 서류심사 하는 사람(회사)의 특성에 맞춰서 이력서 꾸며야 합니다. 뽑아 주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죠. 자기만족을 위해 이력서 쓰는 게 아니고 ‘뽑아 주는 사람(회사)’에 맞춰야 합니다.
물론, 100%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 홈페이지, 전자공시에 올라온 재무제표, 언론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 몇 줄 정도가 전부이고, 정작 중요한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알기 어렵습니다. 법무팀장 / 인사팀장 / 경영지원실장이 어떤 사람들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력서 써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죠.
그렇긴 한데, 몇 가지 유형화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법무직군은 타 직군에 없는 ‘로펌 or 법률사무소’ 옵션도 생각해야죠.
일단 생각나는 대로 유형 분류해 보겠습니다.
① 일반회사 : 건설, 유통, 방송, 패션, 출판업 등등 수많은 업종
② 채권관리 중심 : 주로 추심회사. 일반회사 중에도 채권관리직 뽑는 경우 있음
③ 로펌 or 법률사무소 : 사무장 / 일반직원 / 비서
법무직군이 지원할 수 있는 영역을 위 3개로 분류해 볼 때,
① 일반회사의 경우 “업종을 이해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법무뿐만 아니라 모든 경력직 이직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사항이겠죠.
해당 업(業)에 대한 이해. 이거 참 중요합니다. 업(業)이 다르면 적용되는 법률도 달라지고, 해당 업의 상관행에 따라 ‘적정한 계약관계’도 달라지며, 그에 맞춰 계약검토의 수준도 달라집니다. 사업을 모르면 법무검토가 산으로 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법무는 ‘타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업종이해의 중요성이 낮은 편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낮다 뿐이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합니다만, 그나마 법무는 해당 업에 대해 잘 몰라도 ‘일반 법률지식과 기존 경험’으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이직러 입장에서는 회계재무 라인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즉, 법무직군에서는 ②번 채권관리 유형, ③번 로펌 or 법률사무소 사무장 분들이 ①번 일반회사 법무로 넘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반회사 간에도 업종을 뛰어넘어 다른 업종으로 넘어갈 수도 있구요. 자리 자체가 많지 않아 이직이 쉬운 편은 아니지만, 대신 업종을 뛰어넘는 이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업종을 넘나드는 이직”, 소위 점프(Jump)를 하려면… 저 위 소제목에 강조한 것처럼, [이력서 받아보는 회사의 특성에 맞춰야 합니다]. 이력서 쓰는 본인이 아니라 이력서 받는 회사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얘기는 이만 줄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법무 직군이 ① 일반회사 ② 채권추심 ③ 로펌 or 법률사무소 사무장 이렇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눠지고, 채권추심 / 사무장 분들이 일반회사로 넘어오는 경우도 꽤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회사 법무채용 때 이렇게 채권추심 / 사무장 분들 이력서를 많이 보게 되죠.
이 때 가장 특징적으로 보이는 게 “1년에 ~건 처리했다”는 표현입니다. 채권추심 쪽이면 ‘1년에 50건의 지급명령신청, 30건의 가압류, 20건의 재산명시신청을 했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고, 사무장 쪽이면 ‘1년에 민사사건 30개 가압류 20개 등기 5개 처리했습니다’라는 식이죠.
채권추심 / 사무장 경험이 없는 분들이 보시기에, 저 “1년에 ~건”이라는 숫자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와 이 사람 일 엄청 많이 하네 유능하겠다] 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글쎄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무 생각 안 듭니다]라는 답변이 대부분일 겁니다.
일반회사 소속 채용자 입장에서 볼 때, 채권추심 / 사무장 쪽으로 1년에 ~건 처리했다는 건 판단불가 영역입니다. 지급명령 1건 처리하는 데에 몇 시간이 드는지 모르고, 그걸로 법원 왕복하고 공무원과 협의하는 게 어려운지 쉬운지 모릅니다. 1건에 1시간 걸리는지 10일 걸리는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채권추심 / 사무장 쪽에서 ‘같은 업종’으로 이직하는 경우라면 “1년에 ~건 처리했습니다.”가 잘 통하겠죠. 또한, 일반회사로 이직한다 하더라도 채용하는 회사에 ‘채권추심 / 사무장 출신 팀장’이 있다면 알아봐 줄 겁니다. “와 이 친구 로펌 사무장 하면서 조낸 빡세게 살았구나 일반회사 와도 일 잘 하겠다”라고 생각하실 팀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법무 경력직 채용에서 상당수는 ‘나 홀로 법무’가 많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매출과 자산을 가진 중견기업이라면 ‘법무팀’을 운영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법무 채용을 주관하는) 팀장 급은 변호사거나 / 일반회사 법무 경력이 상당히 긴 회사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나홀로 법무 채용’이든 ‘일정 규모 이상 회사에서 법무팀원 채용’이든 간에, 채용하는 쪽이 채권추심 / 사무장 쪽 일을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해당 일 하시던 분이 “저는 1년에 ~건 처리해서 엄청 성실합니다!”라고 어필해도 “어 그래? 잘 모르겠는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이력서는 본인 기준이 아니라 “받아 보는 회사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숫자를 나열한다고 해서 그게 꼭 구체적이고 상세한 이력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력서를 받아 보는 회사 채용주관자가 관심 없는데 숫자만 나열하면 그건 ‘특색 없는 이력서’가 될 뿐입니다.
2) 자기가 한 일을 6하원칙에 따라 알아보기 쉽게 서술한다
위에서 채권추심 / 사무장 사례를 예로 들었는데, 여기서도 사례로 설명하겠습니다.
1) 저는 ~법률사무소에 송무 사무장으로 재직하면서 1년에 20건 이상의 민사소송과 30건 이상의 법률상담을 수행하였고, 제가 작성한 서면이나 법률상담 의견서는 변호사님께 승인 거부된 적이 없었습니다.
2) 소액임차인을 허위로 등록하여 우선변제 순위를 조작한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민법 404조에 근거한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여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진행하였고, 각 소액임차인이 임대인과 친인척 관계이고 실거주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여 채권침해 악의를 인정받아 최종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느 쪽이 구체적으로 보이시나요?
물론 2)번이 더 길긴 합니다. 길게 쓰면 더 구체적이긴 하죠;;
다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2)번 사건설명이 더 인상적일 겁니다. 특히 송무 사무장 쪽 업무를 잘 모르는 채용담당자(주로 인사팀장) 입장에서는 1)번에 ‘변호사에게 승인 거부된 적 없다’는 말보다는 2)번에 ‘채권자취소와 사해행위취소소송 관련 법리 요약’하는 게 훨씬 더 인상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단, 너무 길게 쓰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한 일을 쓰되, 3~4줄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잘 요약해서 써야 합니다. 전문영역 경력직이면 해당 전문지식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게 좋긴 한데, 해당 전문영역을 잘 모르는 ‘인사팀장’이 볼 때 아예 이해 안 되는 수준까지 써 버리면 안 됩니다.
제가 예시로 쓴 2)번은 ‘지원하는 회사에 법무팀장이 있다’는 전제에서 쓴 겁니다. [민법 404조 채권자취소권, 사해행위취소소송, 채권침해 악의 얘기를 했을 때 직급 높은 법무팀 고참이 바로 알아먹는다]고 생각하니까 법률용어를 쓰는 거죠. 그게 아니면 과도하게 법률용어 남발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나 홀로 법무’일 것 같은 회사에 이력서 넣는다면… 위 2)도 조금 바꿔야겠죠.
2)-2. ~법률사무소 재직 당시, 임대인이 소액임차인을 허위로 등록하여 우선변제 순위를 조작한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임대인이 선순위 소액임차인과 친인척 관계라는 점, 해당 소액임차인이 실제 거주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였고, 최종 승소하였습니다.
법률용어는 뺐지만 ‘선순위 소액임차인이 뭔가 밑장빼기 사기 행각에 연루된 것 같은 나쁜놈이구나!’라는 건 알 수 있겠죠? 이 정도면 사회생활 경험 풍부한 인사팀장님이 충분히 이해할 겁니다.
자기가 했던 일을 구체적으로 6하원칙에 따라 서술하되, 최대한 간결하게 요약 서술하는 것. 그리고, 그 업무 이력을 읽는 회사의 규모와 채용 범위를 고려하여 적절한 용어를 선택하는 것.
이력서 작성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력서를 쓰는 것 자체가 회사 업무 역량과 연결됩니다. 회사생활이라는 건 ‘상급자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잘 요약한 보고서를 올리는 것’이 핵심이거든요.
3) 참고사항 : ‘숫자’만 써도 대부분 통하는 업무도 있음
위에서 ‘무슨 일인지 잘 모르는 영역에서 1년에 ~건 숫자 표시하는 건 의미없다’고 했는데, 가끔 숫자만 써도 간지폭발 포스좔좔 흐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업종과 직군에서 [겁나 빡세고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있는 업무라면, 숫자만 써도 충분히 어필 가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M&A’입니다. 회사 하나를 통째로 인수하는 작업. 이게 엄청 빡세고 힘들다는 건 기획-인사-재무-법무-IT 등등 지원 라인 회사원들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직접 M&A 안 해 봤어도 대략 언론기사만 보면 알 수 있죠.
그 다음은 ‘공정위 대응’입니다. 건설업 분야면 하도급법 / 유통ᆞ식음료면 대규모유통업법이나 가맹사업법 등 관련 법령 / 가끔 담합 크리티컬 터지면 일반 공정거래법 중에서 부당공동행위 관련 조항 등이 있는데, 일단 공정위에 털리면 엄청 빡세다는 걸 다들 알기 때문에 공정위 업무 처리 경험도 숫자로 간지폭발 효과 얻을 수 있습니다.
법무 기준으로는 ‘형사사건 대응’도 들어가겠네요. 물론 형사사건 대응은 여러 건 나오기 어렵습니다만… 대응 경험이 있다면 이력서에 짧게나마 언급할 만 하겠죠.
* “이력서 쓰기(꾸미기)”의 일반론은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약간 미련이 남는 게 있네요. [법무 한정 각론]을 조금 쓰고 싶긴 합니다.
이 다음 챕터에서는 [법무경력자에 한정한 이력서 쓰기]를 다뤄 보겠습니다. 물론 법무 쪽 아닌 분들도 재미삼아(!)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