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기술) 법무든 뭐든 다 ‘회사원’

by 테서스


앞 ‘이력서 쓰기(꾸미기) 각론’에서 한 번 했던 얘기인데요. 법무든 뭐든 다 회사원입니다. 회사에 입사해서 직급 받고 연봉 받았으면 당연히 회사원입니다. 당연한 얘기죠.


회사원이란 뭐냐? 18년 전 제가 신입 때 팀장님은 [모든 회사원은 비즈니스맨]이라고 하셨죠.

뭐,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긴 합니다. [모든 필멸자는 반드시 멸망하리라!] 급 동어반복은 아니지만, 회사원이나 비즈니스맨이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죠.


그런데, 이게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이 인식이 꽤 중요합니다. 특히, 법무직군처럼 “지원부서”이면서 “자격증의 가치가 높은 곳”에서는 본인을 회사원 및 비즈니스맨으로 인식하느냐 / 아니냐의 차이가 의외로 크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앞 편 말미에 잠깐 얘기한 대로) 경우에 따라서는 “자격증이 없는데 자격증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쪼큼 당황스럽습니다…


서론 너무 길게 쓰면 안 되겠죠. 바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1) 사내변호사인데 판사처럼 행동한다고?


(제가 자주 그러하듯이) 제목은 좀 강하게 뽑았습니다. [사내변호사인데 판사처럼 행동한다].


판사(判事). ‘법관’이라고도 하죠. 초임 임용되면 곧바로 3급 공무원입니다. (과거 전투력 53만으로 비유되곤 했던) 행시출신 공무원이 5급인데, 판사는 3급에서 시작하고 부장판사 되면 1급 공무원입니다. “영감님”이라고 부를 만 한 고오급 공무원이죠.


지난 편에 잠깐 썼듯이, 사법시험 50명 시대의 변호사들은 판검사와 동급이었습니다. 300명 시대에도 변호사들은 얼추 판사와 별 차이 없었어요. ‘연단 아래의 직업’이라고 하면서 변호사 스스로 판검사에 굽신거리는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판사와 변호사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뭐, 지금은… 미국식 법률시스템으로 가고 있긴 하죠. 넘쳐나는 변호사 중에서 일부 선발된 인원이 검사 초임으로 시작하고, 경력 쌓은 검사와 변호사 중에서 판사를 선발하는 시스템. 이제는 예전처럼 ‘20대 중후반 영감님’이 나올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제도적으로 판사 되기가 어려워지긴 했는데, 제가 얘기하는 ‘판사처럼 행동하는 사내변호사’는 약간 다른 의미입니다. 판사처럼 대접받으려는 게 아니라, “판사 마인드로 한 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판단만 하려 한다”는 의미로 읽으시면 됩니다.


늘 그렇듯이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들죠. 금융회사 말고 일반회사의 ‘준법지원인’에 대한 것입니다.


금융회사는 준법감시인을 필수적으로 두어야 하고, 일반회사에서도 [자산총액 5천억 이상 + 유가증권시장 상장] 요건을 충족하는 회사는 ‘준법지원인’을 두어야 합니다. 상법상 “~해야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의무사항인 건 맞죠.


그런데, 이 준법지원인 요건에 맞는 사람이 일시적으로 퇴사할 수도 있고, 후임을 바로 채용할 수 없어서 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떻게 될까요?


이 때, 패널티 규정이 없습니다. 즉, 상법상 준법지원인을 두어야 하는 회사가 준법지원인 요건에 맞는 임직원을 보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태료를 내거나 무슨 벌점을 받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물론 법에 “~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안 하면 좀 찝찝하긴 하겠죠. 가급적이면 준법지원인 요건에 맞는 사람 채용하려 합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퇴사~후임선발 과정에서 공백이 생기는 정도라면 그 공백기간으로 문제되는 경우는 없다는 게 결론입니다.


법률해석으로는 이러한데… 만약 ‘법에 있는 건 비록 훈시규정 내지 권고규정이라 해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무조건 빨리 뽑으세요! 요건 갖춘 사람 하루라도 빨리 뽑아야 합니다!] 라는 얘기가 나오겠죠?


이 준법지원인 사례는 가상사례입니다. 실제 사내변호사가 저런 의견을 낼 일은 없어요.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 = 준법지원인 요건 갖춘 자] 이기 때문에 해당 사내변호사가 그냥 준법지원인 하면 되는 것이고, ‘당장 없으니 뽑아라!’고 할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가상사례와 유사한 현상이 꽤 자주 발생합니다. ‘법률적 판단이 모호한 영역’인데,

① 법률은 강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패널티 규정이 없을 때

② 해당 거래 사례에 관한 명확한 판례나 행정해석 사례가 없어 계약자유 원칙 등에 비추어 볼 때 합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할 때

등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즉, 법무검토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무조건 안된다고 할 사안이 아닌 겁니다.


이런 사안에서, “자격증소지자가 잘못된 결론 내리면 본인에게 흠집 날 수 있다”는 두려움(?) 같은 것 때문에 “일단 안된다”고 말하는 사내변호사가 있습니다. 뭐 준법의식이 워낙 투철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 흠집 나는 걸 두려워할 때가 많은 것 같더군요.


앞 “이력서 쓰기 각론”에서 얘기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및 리스크를 0으로 만든다는 것과도 연결되는데요. 준법경영 하고 리스크 낮추는 건 좋은데, “아예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법을 지키고 리스크를 낮춘다”는 관점으로 왜곡되어 버리는 건 영 좋지 않습니다. 본인 자격증을 지킬지는 몰라도 회사원으로서는 0점 아래 마이너스가 되어 버립니다.



원래 가상사례만 들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다른 글에 언급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어서 하나 더 쓰겠습니다. “계열사 거래” 문제입니다.


어느 기업이든 다 마찬가지인데, 같은 가격과 품질에 진행할 수 있는 거래라면 당연히 “계열사 거래”를 선호합니다. 건물을 짓든, 소모성 자재를 구매하든, 직원 복지 제품을 사든 계열사 중에 관련 사업 하는 회사 있으면 그 쪽을 먼저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왕 팔아 주고 이익 주는 거 계열사한테 주고 싶죠.


다만, 공정거래법상 지켜야 할 절차는 있습니다. 효율성/보안성/긴급성 또는 입찰절차를 거쳐 객관적으로 선정. 공시대상기업집단 정도 되면 이거 신경쓰긴 합니다.


그런데, 저 절차 과정에서도 고려할 게 ‘적정가격’입니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적정가격이라는 게 산출된다면, 적정가격의 +-7% 범위 내에서 계열사 거래를 하는 것은 부당지원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공정위 고시 규정입니다.


자,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 하나를 살펴보죠. “해당 시장에 주요 업체가 2개 뿐이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


대놓고 기업 이름 언급하겠습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CJ그룹의 뚜레주르. 제과제빵 업계에서 대량공급 가능한 회사(브랜드명 기준)는 이 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각 계열사가 빵 대량 구매를 해야 한다면? SPC그룹 회사가 빵 살 때 뚜레주르에서 살까요? 반대로, CJ그룹 회사가 빵 살 때 파리바게뜨에서 살까요?


그럴 리 없죠. 당연히 자기 그룹 제빵회사 빵 삽니다. 어차피 적정가격이라고 해 봐야 양 측 모두 비슷할 건데, 기왕이면 자기 그룹 제빵회사 거 팔아 줘야죠.


이 상황에서. 모 사내변호사가 “이거 입찰해야 합니다! 공정거래법 준수하세요!”라고 한다면?


뭐, 입찰 못 할 건 없습니다. 입찰 전에 사전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매우 번거로워질 뿐. 또한, 그 정보공유 행위가 또다른 부당공동행위 이슈에 해당할지 아닐지를 고민하게 될 뿐.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이 정도 사안을 놓고 심사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빵 1만개 대량구매 해 봐야 2~3억원 수준인데 그 중 이익률 따져 봐야 몇백만원이고, 그게 적정가격 범위 내에 있으면 시정명령도 못 합니다. 기껏해야 시정권고 사안인데 이거 따지고 있을 바엔 다른 거 조사하는 게 훨씬 낫죠.


즉, 이런 거 진지하게 지적하면 계열사 내에서 그리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얘기 꺼낸 사내변호사만 뻘쭘해질 가능성이 높죠. 본인은 컴플라이언스 사명감이 투철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가 그리 대단하진 않습니다.



사내변호사라고 해서 특별할 것 없습니다. 물론 변호사 자격증 따는 동안 방대한 양의 법률지식을 습득했고 그 지식 측면에서 다른 회사원보다 우월한 건 맞지만, 회사생활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임원들 중심으로 몇십년 쌓아 온 ‘비즈니스맨의 경험’, 다른 말로는 ‘상관행’이 훨씬 더 앞설 때가 많습니다.


사내변호사는 스스로 ‘변호사’를 버리고 ‘회사원’을 앞세우는 게 더 좋습니다. 본인이 변호사 자격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게 없어지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 모두 그 사람이 변호사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거 강조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저 변호사 변호사 아닌 것 같다]라는 말 나오는 게 사내변호사에게 최고의 칭찬입니다. 변호사인데 그 지식을 회사의 이익에 활용하려고 하고 영업적 방향성과 기획 마인드까지 보여 준다면, 그 사내변호사의 앞길은 더욱 더 번창할 겁니다. 자격증에 갇혀서 ‘안 된다’만 반복하는 것보다 몇십 배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2) 넌 변호사도 아닌데 왜 그래?


사내변호사가 판사처럼 최종 판단을 하고 법을 경직되게 해석해서 “야 안돼!”만 반복하는 게 그리 좋지 않지만… 가끔은 변호사 아닌 일반 법무직원이 그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조금 더 당황스럽죠.


뭐 당황스러운 수준에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심하면 ‘이뭐병’ 얘기 나옵니다. 물론 회사 내에서 대놓고 비하발언 하지는 않겠지만 인사평가 및 고과에는 확실하게 반영될 겁니다.


회계사/세무사 자격증이 없는 재무팀원. 노무사 자격 없는 인사팀원. 변호사 아닌 법무팀원. 다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원’입니다. 모호한 걸 무조건 안된다고 해 버리면 그건 회사의 본질을 망각하는 행동입니다.


회사의 본질은 ‘돈 버는 것’. 회사원은 회사의 본질에 기여하고 연봉 높이는 것. 그래서 회사원은 비즈니스맨(Businessman).


본질에 충실합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할 때는 반대한다


계속 모순(矛盾)을 얘기하고 있는데요. 앞에서도 창과 방패의 타협점을 얘기했었는데, ‘법률적으로 안 됩니다.’를 시전할 때에도 이 모순 타협점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법에 ‘~해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렇다고 무조건 ‘Yes’를 외칠 수는 없죠. 미생의 장그래가 영어로 이름 쓰면 ‘yes’지만 현실에서는 업무상배임행위를 잡아내듯이, 우리 회사원들 또한 ‘선을 넘은 행위’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가끔 영업적 성과에 몰입한 임원 분들은 “법적으로 안 되면 법무팀이 법을 바꾸고 판례를 바꿔야지 안 된다고만 하면 어떻게 하냐?” 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제가 실제로 들었던 말이기도 해요.


[아니 제가 법 바꿀 능력이 있으면 재드래곤 상속 문제 해결하고 성과급 1조 받았겠죠 지금 그 예상성과급 2만분의 1 수준 연봉 받으면서 이 회사 있는데 법을 바꾸라구요? 제정신입니까 닝겐?]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그 말 하면 안 되겠죠. 프로이직러는 ‘사직서 및 더 좋은 회사’로 대답하는 겁니다. 면전에서 까댈 필요는 없어요.



가급적 되게 하되, 도저히 안 되는 건 명확하게 반대하기. 거기에 삐딱선 타는 윗사람 있으면 ‘사직서 및 더 좋은 회사’로 대답해 주기. 우리들 프로이직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말은 참 쉽고 현실은 어렵습니다. 현실의 이직에는 여러 가지 험난한 게 많습니다.고난의 연속이긴 하죠. 그래도 가끔은 그 고난이 인생 RPG의 '재미'가 되더군요.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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