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서 ‘이직 별 거 없다’는 점을 강조(?)했었는데요.
당연히 이직한다고 해서 인생이 확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어딜 가나 월급쟁이, 어딜 가나 회사원.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 진짜 본인이 원하는 일 하는 거 아니면 다 비슷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진짜로 원하는 일’이 없습니다. 곧 굶어 죽어도 예술 하겠다는 예술가 기질(?) 같은 건 1000명 중 1명 있을까말까이고, 대부분은 그냥 돈 많이 주는 일자리를 선호할 뿐입니다.
이직한다고 해서 돈 받는 게 대폭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대리~과장 때에는 +20%까지 연봉인상 노릴 수도 있고 차~부장 때에도 +10% 정도까지는 올려 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세금’을 고려하면 인상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과세구간이 15%에서 24%로 바뀔 때가 되면 진짜 인상 효과 줄어드는 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이직 기대감’을 내려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의 장점]이 있긴 하죠. 오늘 글은 목차부터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1) 인간관계 포맷(Format)
(2) 적정한 긴장감 유지
(3) 시야 확대
(4) 최종적으로는 ‘실력’
(5) 고독감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정도 목차면 좋겠네요. 하나씩 썰 풀어 보겠습니다.
(1) 인간관계 포맷(Format)
평소 그러하듯이 소제목을 좀 강하게 뽑았습니다. 인간관계 포맷(Format).
예전 구형 컴퓨터 쓰시던 분들은 포맷 몇 번 해 보셨을 거예요. 리셋(Reset)보다 좀 더 강하죠. 싹 밀어버리고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당연한 말인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 ‘Dog진상’이 있다면 인간관계 포맷 차원에서 이직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도로 닭 썰고 직원 귀쌰대기 날릴 정도면 바로 경찰신고 들어가야 하고, 그보다 낮은 수준의 Dog진상 상대할 때에도 [썩소 + 사직서] 콤보로 되돌려 줘야죠.
즉, ‘싫은 인간관계’는 당연히 포맷해야 하고, 이직은 그 포맷 진행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아예 회사 자체를 옮겨 버리면 싫은 사람 더 안 봐도 되니까요.
뭐, 저도 이직 5번 했으니 ‘사람이 싫어서 이직한다’는 경우가 있긴 했습니다. 법무팀에서 보고서 쓰는데 사건번호 썼다고 무능하네 어쩌네 떠들면 곧바로 이직 알아봐야죠. 사건번호 안 써서 혼자만 내용 파악하는 유능한 법무직원으로 꽉꽉 채워서 큰 성과 내시라고 (뽁큐 날려 주고) 떠나야 합니다.
다만, 실제 직장생활에서는 의외로 ‘싫은 인간관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ㄸㄹㅇ 불변의 법칙에 따라 어느 직장이든 ㄸㄹㅇ가 있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규모와 절차가 갖춰진 회사라면 그들의 갑질파워(!)가 상당히 제한됩니다. 내면은 갑질본능으로 넘쳐나더라도 겉으로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긴 하죠.
이직할 때 중요한 것은 [좋거나 중립적이던 인간관계도 포맷한다]는 점입니다.
이 얘기를 하면 살짝 의문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좋은 인간관계까지 포맷한다고? 왜? 글쓴이 인성에 문제 있나?’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 일부 맞을 수도 있구요.
중립적인 인간관계는 그렇다 치고, ‘좋은 인간관계까지 포맷’.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친분까지 지워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원 대 회사원의 관계를 넘어 개인적으로 친해진 경우(사내커플이라던가 사내커플이라던가 사내커플이라던가)는 당연히 그 친분 유지하겠죠. 그건 당연한 겁니다.
제가 말하는 ‘좋은 인간관계 포맷’은 일 관련된 겁니다. 즉, 기존 회사에서 일잘러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특진했던 것도 내려놓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또 의문 가지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아니 기존 회사 좋은 관계를 내려놓자는 얘기를 [장점]에 쓴다고? 뭐 착각한 거 아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 일부 맞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저는 ‘좋은 관계 끊어내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회사에서 인정받는 과정에서 스스로 나태해질 수 있었던 걸 재정비하고 더 날카롭게 실력 다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 그게 이직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좀 더 상세히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2) 적정한 긴장감 유지
한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마음 편해지는 시점’이 옵니다. 저는 대략 2년 정도 다니면 그랬었는데요. 회사가 정해준 자기 자리에 앉는 게 편하고, 기존 일상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약간 나태해집니다.
물론 이게 나쁜 건 아닙니다. 업종과 직군에 따라서는 적응완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니는 게 훨씬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반복 숙달되면 실수가 줄어드는 직군이라면 한 회사 오래 다니는 게 업무숙련도 측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직군이 다 그런 건 아니죠. 직군에 따라서는 계속 날카로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게 연구개발 기술직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중립성을 가져야 하는 법무직군일 수도 있으며, 제3의 직군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너무 편한 것보다는 적절히 긴장감 갖는 게 더 나은 업무가 분명 존재합니다.
이런 직군에 속해 있으시다면, 적정 주기로 이직하는 게 본인 실력을 유지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됩니다. 너무 자주 이직하면 안 되겠지만 대략 4~5년 단위로 옮기면서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일해 보는 게 본인에게 도움 됩니다.
이 얘기는 너무 ‘제3자’ 같은 느낌이죠? 앞에서 [변호사든 뭐든 다 회사원]이라고 강조해 놓고 여기서는 중립적인 척 본인실력을 위해 긴장감 유지해라 이러고 있으니 앞뒤 모순인 것 같죠?
모순을 넘어 조금 더 솔직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가신(家臣)이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가족에 속한 신하, 가신(家臣). 그렇다고 가축(家畜)은 아니고… 사실상 특정 개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말하겠죠.
뭐, 가신 임무를 하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는 독자적으로도 엄청 유능하고 똑똑하죠. 아이언맨의 비서 ‘페퍼’는 곧바로 CEO 승진하기도 했었고 ‘자비스’는 비브라늄 육체를 얻어 묠니르 휘두르기도 했었구요.
현실의 가신들도 아주 잘 나갑니다. (삼성의 흑역사로 묻혔지만) 고 이건희 회장님의 개인 사생활(…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생략하겠습니다)을 챙겼던 가신들은 연봉 몇억 받았을 거예요. 재드래곤 상속 문제와 연관되었던 가신들은 더 잘 됐을 거구요.
법무/재무 직군에서는 이러한 가신 수요가 은근 있습니다. 회사에서 월급 받는데 오너 분들의 개인재산도 같이 관리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공개적으로 그런 업무를 안 하더라도 소위 ‘회사 내 높은 분들’과 인맥 쌓을 기회도 꽤 있습니다.
오너(Owner)의 개인 의지가 중요한 회사에서 ‘가신’으로 발돋움하는 것, 이거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이걸 노리고 그 길로 성장하려는 분들도 많아요. 회사원으로서 도전해 볼 만한 일입니다.
다만, 그 가신 본인의 개인적인 영역이 축소될 뿐.
저는 가신(家臣)으로 남기보다는 저 개인적으로 독자적인 성장루트를 밟아 나가길 원했습니다. ㅇㅇ회사 오너의 오른팔 왼팔 놀이 하는 것보다는 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먹고사는 ‘1인 노동 상품’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게 이직하는 근본 이유는 아니죠. 누차 강조했듯이 이직 1순위는 ‘돈’입니다. 그건 절대불변이에요.
다만, 돈 이외의 가치를 조금 덧붙인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노동상품이길 바랬습니다. 한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실력 그 잡채’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직을 통해 적정한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게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안 그런 분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이직을 통한 낯선 느낌이 더 신선하고 자유로웠습니다.
회사원으로 얽매여 있으면서 자유를 꿈꾸는 것. 이것 또한 모순이네요. 우리 인생이 다 모순덩어리입니다;;
(3) 시야 확대
아무튼 이렇게 여러 회사 옮겨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집니다. 그럴 수 밖에 없죠.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온갖 진상들을 다 봤는데(…) 시야가 좁으면 그것도 이상하잖아요.
뭐, 시야 넓어진다고 해서 주식투자에 대박나거나 부동산 예측을 기막히게 잘 하거나 기타등등 일 안해도 먹고 살 만큼 대박나진 않습니다. 회사원 생활은 계속 비슷하죠.
다만, 한 회사의 고정적인 시각이 아니라 여러 회사의 시각을 종합하게 될 경우, [우물 안 개구리들의 헛소리]를 걸러낼 수 있게 됩니다. 달리 말해, 회사 내 ㄸㄹㅇ들의 갑질러쉬에 낚이는 일이 줄어들죠.
제가 차장급일 때 다녔던 회사 대리 한 분이 이런 걱정을 하시더군요. “전무님이 이 업계 연줄 장난아닌데, 제가 이직하겠다고 하면 어디 연락해서 이직 못하게 막아버릴 것 같아요. 전무님 성격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라는 걱정.
이 걱정, 현실화되었을까요?
그럴 리 없죠. 현실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전무 나부랭이(!)는 대한민국에 널렸고, 그 중에 다른 회사에 압력 가해서 이직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전무는 진짜 몇 명 안 될 겁니다. 만에 하나 그런 업종이 있다고 해도, 업종 바꿔서 이직하면 그만이죠.
저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2020그레이트CJ’도 비슷합니다. CJ충성맨들은 무슨 종교 믿듯이 ‘우리는 무조건 매년 24% 이상 성장해서 위대한 목표 달성한다!’고 떠들지만 대략 이익률 0.01% 블랙기업에서 박박 기다가 온 경력직 입장에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말잔치일 뿐. 떠나고 나면 ‘아몰랑’입니다.
프로이직러는 말잔치에 속지 않습니다. 뻔히 보이는 위협에 쫄지 않고, 또 허황된 과장광고에 낚이지 않습니다. 그저 차분하게 그날그날 일 처리하고 월급 받아갈 뿐입니다.
(4) 최종적으로는 ‘실력’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은 ‘가격 대비 효용’으로 승부합니다. 노동시장의 노동상품들도 마찬가지예요. 받는 연봉 대비 더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면 그걸로 만사 오케이. 참 쉽죠?
늘 그렇듯이, ‘참 쉽죠?’가 가장 어렵습니다. 연봉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는 것, 이게 정답이지만 그만큼 어렵습니다.
다만, 경력직 프로이직러에게는 이게 더 절실합니다. 한 회사 오래 다닌 말뚝충성맨들은 그 (위장된) 충성심 때문에라도 실수 한두개 정도는 용서받는 반면, 이직러들에게는 그런 안전장치가 전혀 없거든요.
목 끝에 칼을 대고 사는 기분…이라면 너무 오버하는 거지만, 기본적으로는 적절한 긴장감 유지하면서 항상 실력으로 승부 봐야 합니다. “쟤 잘 뽑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빠르게 / 잘 / 깔끔하게 일 처리해야 합니다.
그 하루하루의 긴장감이 또 더 나은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매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5) 고독감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이렇게 ‘실력 중심 프로이직러’로 살다 보면… 회사생활의 대부분을 낯선 사람들과 보내게 됩니다. 살짝 고독하긴 하죠.
그러나, 회사생활은 돈 벌기 위해 하는 거지 친분 쌓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동료들과 일 얘기를 해야지 개인 사생활 얘기할 필요 없어요. 적당한 거리 유지하는 게 서로 도움이 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단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이라는 말이 있죠.
출처를 모르고 보면 ‘와 C발 무슨 애니 대사임? 간지짱!’ 얘기가 나올 만한 중2병 간지폭발 드립이지만, 출처 알고 보면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극사상’이라는 답이 나오는 말. 실제로는 애니/영화에서 더 많이 써먹는 말.
이 말 그대로입니다. 프로이직러가 느끼는 고독감은 단지 그 프로이직러를 더 강하게 만들 뿐입니다.
기나긴 직장생활. 일을 중심으로 일 열심히 하면서 삽시다. 프로이직러는 더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프로이직러의 장점으로 ‘더 오래 가는 길’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