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기술) 자격증은 중요하지 않다

by 테서스


이번 챕터는 주로 ‘법무직군’에 관련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전체 글 제목은 ‘프로이직러가 알려 주는 이직의 기술’이지만, 저 자신이 법무직군에서 오래 일 하다 보니 중간중간 법무 고유의 이야기가 들어가긴 하네요.


자격증. 의사, 간호사, 교사의 경우 자격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격증 없으면 아예 해당 직무를 할 수 없죠. 교사는 ‘학원’이라는 대체재가 있고 학원강사는 자격증 없어도 할 수 있긴 합니다만, 초중고 학교에서 교단에 서려면 교사 자격 필수입니다.


다만, 직장인의 경우 자격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닙니다. 회사 임원들이 많지만 임원들 중 상당수는 운전면허 말고 다른 자격이 없어요. 임원 될 자격증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회계사/세무사/노무사 등 전문자격증이 있으면 여러모로 직장생활에 도움 되긴 합니다. 그 자격증으로 별도 회계법인/세무법인/노무법인 등에 취직해도 되고, 일반회사 들어가서 자격증수당 받으면서 소위 인하우스(In-house) 근무 하는 것도 좋죠. 그러면서 진급 빨라질 수도 있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전문자격증 중 유독 ‘변호사’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법무직군 경력직 까페 등등에 보면 자격증에 대한 고민 글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국내 로스쿨이 어려우니 미국변호사는 어떤가 하는 글도 많구요.


우선, 결론부터 명확히 하겠습니다. 제목에 쓴 대로, 자격증 중요하지 않습니다. 혹시 자격증 중요하다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면, 중요하지 않게 만들어 주면 됩니다. ‘프로이직러’로서 그렇게 해 주면 됩니다.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썼으니,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죠. 법무직군에서 ‘변호사’가 갖는 위상 변화, 실무에서의 역할, 안 될 때의 대응 정도로 나눠서 서술하겠습니다.



(1) ‘변호사’의 위상 변화


요즘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예전 쌍팔년도 즈음에는 “나는 판검사가 돼서 집안을 일으킬 끄야!” 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어이없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저런 소리가 횡행(!)했어요.


`90년대 중반 법대1학년생이 되었을 때, 교수님이 웃으면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들어왔다고 해서 집안 일으킬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저 보면 아시겠죠?” 라고 하시더군요.

(그 교수님은 재학중 사법시험 합격에 연수원 초상위권에 첫 근무지가 서울중앙지법 판사이셨던 분입니다. 당시 법조계에서 최첨단 엘리트 코스를 밟으셨던 분이죠.)


대한민국에서 위상 변화가 가장 심했던 전문직종이 바로 ‘변호사’인 것 같습니다. 물론 법조3륜을 이루는 다른 두 축 – 판사, 검사 – 또한 심각한 위상 변화를 겪었고, 변호사 업계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큰 변화를 겪은 이유는 결국 ‘사람 숫자’겠죠. 선발인원이 대폭 늘어나면서 중하위권이 몰락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상위권인 판사 검사 대형로펌들도 일정 수준 위상이 내려갔습니다.



대략 `70년대까지 판사 검사 변호사는 ‘하늘 위의 별’이었습니다. 한 해에 50명만 뽑았거든요. 인구비율로 따지면 조선시대 과거급제보다 더 적은 인원을 선발했었습니다. `60년대 언제쯤에는 절대평가 도입하면서 한 해에 3명인가 합격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해에 50명. 이 시험 합격한 사람은 진정 암기천재입니다. 다른 능력은 둘째 치고 일단 암기형 시험에서는 대한민국 내에서 Top of top 찍는 사람들이에요. 지금 시대에 태어나 이과 쪽으로 공부했으면 의대 가뿐히 합격할 능력자들입니다.



이 엄격한 선발 과정이 `80년대에 쪼큼 완화됩니다. ‘사법시험 300명 시대’가 열렸죠.


뭐, 300명 시대에도 여전히 하늘 위의 별이긴 했습니다. 2020년대 의사들이 평균 연 4억 번다고 하는데, 300명 시대 변호사 평균수입이 3억원 이상이었을 겁니다. 물가상승률 고려하면 요즘 기준으로 10억원 이상 버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때 변호사들에게 ‘사내변호사’는 매우 이례적인 제도였습니다. 혹시 사내변호사 간다 해도 ‘무조건 임원’이었고, 어지간하면 몇 년 고생하더라도 개인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로펌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사법시험 1000명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판검사 임용 및 군복무 때문에 법무관 임용되는 사람 빼고 나면 한 해에 쏟아지는 변호사가 700명 이상. 변호사 몸값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펌 초짜변호사 연봉이 1억 밑으로 하락했다’는 게 변호사 업계에서 충격과 공포(!)로 전해지기도 했었죠. 사내변호사 제도도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초짜 변호사들은 회사에 부장 급으로 입사하다가 더 아래 직급으로도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초짜 억대연봉 깨진 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진짜배기 쓰나미가 밀려 오고 있었거든요. ‘로스쿨 쓰나미’입니다.



로스쿨 시대 이후, 일시적으로 한 해 배출 변호사가 2000명 넘었습니다. 사시 1000명 + 로스쿨 1500명. 판검사 임용 200명 빼도 2300명입니다. 쌍팔년도 대비 7배 이상, `70년대 대비 46배. 이 정도면 시장붕괴 올 만 하죠.


초짜 변호사가 최저임금 못 번다는 기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 회사들은 시장원리에 따라 냉정하게(!) ‘가격 후려치기’를 했죠. 사내변호사 임용시 로스쿨 졸업 변호사는 ‘대리’, 사법시험 출신은 ‘과장’. 그렇게 굳어졌고, 사법시험이 없어진 후에도 비슷합니다.



300명 시대에는 `80년대 물가 기준으로도 연 3억 평균이었는데, 1500~2000명 시대에는 전체 평균이 1.5억인가 되고 그나마 로펌으로 일감이 몰려 초짜가 개인 이름으로 개업했다가는 월 200만원 벌기도 어려운 시대. 이게 지금 현실입니다. ‘변호사 위상’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자, 이 시대에서 ‘변호사 자격 가진 회사원’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2) 실무에서 변호사의 역할


“실무에서 변호사가 뭐 하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소송”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당연한 얘기죠. 소송은 변호사 업무의 핵심입니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다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회사 실무에서 변호사가 뭐 하지?”라고 묻는다면…


일단 여전히 “소송”이 중요한 건 맞습니다. 민사소송에서 외부 변호사 쓰지 않고 사내변호사가 직접 소송대리하는 것, 형사사건 터졌을 때 변호사 자격으로 경찰/검찰 조사 때 동행하는 것. 이게 사내변호사의 핵심 역할인 건 맞습니다.


다만, 그 영역이 그리 크지 않을 뿐.



민사소송에서 사내변호사 써서 착수금 성공보수금 아끼는 금액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사내변호사가 몇백억짜리 소송 다 맡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 정도 큰 소송은 사내변호사에게 일임하지 않고, 짜잘짜잘한 소송만 맡기거든요. 큰 형사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민사소송 기준으로 소가 1억원 이하 사건은 직원대리 가능합니다. 즉, 굳이 변호사 아니라도 사실관계 잘 정리하고 기본적인 법리주장 할 능력만 되면 다른 회사원이 소송 담당해도 상관없어요.

(앞에서 쓴 대로, 80살 된 국졸 할머니도 소송 할 수 있습니다. 대학 나온 회사원이면 법학 전혀 몰라도 소송대리 가능합니다.)


결국 사내변호사만 할 수 있는 “고유의 역할”은

- 소가 1억원 이상 ~ 몇억원 수준 규모의 민사소송

-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으로 회사원이 소환되었을 때 배석

하는 정도입니다. 둘 다 규모가 커지거나 사안이 심각해지면 외부변호사 투입하구요.


그리고, 이 “고유 역할”을 위해 사내변호사를 채용하면 “비용”이 발생합니다. 로스쿨 갓 나온 초짜를 대리 급으로 채용하면 신입이나 다름없어서 일 가르쳐야 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 변호사를 과장 이상 급으로 채용하면 연봉 많이 줘야 하죠.


결국,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내변호사 고유 역할만 보고 뽑으면 연봉대비 효과로는 손해 납니다. 회사 규모가 커서 자체사건 숫자도 늘어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사내변호사는 그 고유 역할 말고 “다른 법무업무”도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다른 법무업무”는 변호사 자격 없는 회사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법률지식이 있으면 더 좋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지식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하자소송이면 현장기술자가 더 낫고, 세무 쪽 분쟁이면 재무팀 직원이 더 잘 합니다.



그러고 또 하나. 결정적으로, “회사 임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회사든 간에 임원은 고스톱 쳐서 되는 게 아닙니다. 완전 가-족같은 좋소기업이면 몰라도 어지간한 회사 임원들은 다 백전노장입니다.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시장 폭망했다는 것 정도는 임원 급에서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즉, 법무직군을 위에서 관리하는 임원 대부분은 변호사 자격증을 “회계사/세무사/노무사와 동급”으로 봅니다. 회계사나 세무사 자격증 있다고 해서 재무팀장 시켜 주는 게 아니고 노무사 자격증 있다고 인사팀장 되는 게 아니듯이, 변호사 자격증 또한 필수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어디나 그렇듯이, ‘대부분 그렇다’는 것은 ‘일부 반대의 경우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변호사 자격을 매우 중시하는 스타일의 임원들도 있긴 있습니다.


변호사 자격을 중시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격증의 권위’에 의존하는 타입. 둘째, ‘변호사 집단’을 만들려는 타입.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다음에 얘기할 ‘프로이직러의 자세’만 갖춰져 있다면 충분합니다.



(3) 응 괜찮아 이직하면 그만이야


처음 시작부터 그랬듯이, 이 글은 ‘프로이직러를 위한 이직의 기술’입니다. 즉, 언제나 어디서나 이직할 준비가 되어 있고 평상시에도 계속 이직을 위해 본인 역량을 갈고닦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본인에게 자격증이 없는데, 위쪽 임원들이 ‘실력과 무관하게’ 자격증 있는 사람만 우대한다면.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바뀔 것 같지 않다면.


뭐 그러라고 하십시오. 이직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려고 프로이직러 된 건데 당연히 이직하면 되죠.



물론, 업종과 상황에서 따라서는 이직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가후’의 경우, 이직 잘못하다가는 역적으로 몰려 모가지 썰립니다. 운동선수들처럼 관련 시장이 극단적으로 작은 경우에도 이직하기 어렵구요.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원들에게는 ‘넓고 광활한 이직시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특히 재무/인사/기획/법무 같은 지원부서는 업종 자체를 바꾸는 방법도 있죠. 준비만 잘 되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일단은 자격증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되, 실력과 무관한 자격증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라면. 굳이 개고생 하면서 그 회사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으려 할 필요 없습니다. 회사 자체를 자기에 맞게 바꿀 수 없을 것 같으면 떠나면 그만입니다. 썩소 날려 주면서 사직서 내고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게 승리자인 겁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자격증의 권위에 의존하는 임원’은 대부분 본인 능력보다는 ‘한 회사 말뚝충성’으로 올라간 스타일이 많습니다. 이미 한 번이라도 이직한 사람이라면 이런 임원 밑에서 그리 좋은 꼴 보기 어렵죠. 말뚝충성맨은 자기들끼리 모여 놀라고 하십시오. 우리 프로이직러들은 ‘알빠노’ 외쳐 주면 됩니다.


상황을 만든다는 것. 그건 꼭 지금 있는 회사에서 뭔가 만들어 내라는 게 아닙니다. 이직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상황을 찾는 것도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프로이직러가 됩니다. ‘유능한 저니맨’ 컨셉으로 마지막 직장을 찾아헤매는 프로이직러. 그 또한 자유롭고 좋습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자격증 없는 법무직군’의 입장에서 서술했는데요. 다음 챕터에서는 (방향을 바꿔) ‘자격증 있는 법무직군’도 다뤄 보겠습니다. 또한, ‘자격증 없는데 있는 듯 행동하는 법무직군’도 같이 언급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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