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개론 이렇게 쓰면 대략 석박사 자격증 가진 교육전문가 분이 집필하신 글 같지만…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그냥 현장에서 빡빡 구른 실무경력자가 이름만 ‘개론’으로 붙인 것 뿐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실무경력자. 이게 참 애매합니다. 똑같이 경력 15년이라도 그 사람이 해 온 일은 천차만별이거든요. 대략 경력 쌓였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라는 추정치가 있긴 합니다만, 그 추정치 이상의 능력을 갖췄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건설법무’라는 게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건설업은 70년 이상 된 성숙산업이고, 시행사 / 시공사 / 건물관리 / 개별 전문공사 등 영역이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주로 일어나는 분쟁은 꽤 다른 형태를 띄기 때문에, 같은 건설법무라고 해도 영역이 달라지면 새로 적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론’이라는 이름으로 쓰윽 훑어보려 합니다. 시간이 되면 ‘각론’이 하나씩 붙게 되겠죠. 시간만 되면.
일단 시작해 보겠습니다.
2. 전체 흐름 개관
‘건설’이 진행되는 전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가장 보편적인 ‘아파트’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쉽겠죠.
(1) 토지 매입
(2) 토지 현황 정리. 지하 기초시설(상하수도, 전기, 통신) 확보
(3) (아파트, 상가 등 대부분의 건물에서) 선분양 진행. 분양관리 시작
(4) 터파기 시작. 공사 단계
(5) 공사관리. 분리발주 공종 확인. 주변 민원 해결
(Hoxy 공사중단 발생하면… 일 많아짐)
(6) 공사 진행 과정에서 업체관리. 토목, 골조, 미장, 창호, 배관, 도장 등 다양한 전문업체 존재.
(7) 준공승인. 선분양 진행했던 것에 대한 후속조치로 입주 진행
(8) 하자보수
(9) 잔금미납 정리
(10) 공사대금 정산 (아파트보다는 다른 공사에 많음)
정도로 요약되겠네요. 더 세분화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목차가 10개만 되어도 부담스러우니 이 정도로만 나누겠습니다.
이 10가지 각각의 경우에 법률분쟁이 발생하고, 분쟁의 형태도 각각 다릅니다. 게다가 ‘분쟁주체’도 달라집니다. 시행사, 종합건설사, 전문건설사, 입주자대표회의, 공공기관, 금융사, 개인 모두 입장이 다르고 그 각각 입장에 맞는 주장을 합니다.
그걸 다 정리할 수는 없겠죠. 본 글에서는 말 그대로 개론(槪論)으로만 정리하고, 세부 테마는 나중에 시간 될 때 항목별로 정리할까 합니다.
이하에서는 10개 항목에 대해 주요 분쟁가능성 및 이를 고려한 법률검토사항을 간략히 요약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겠습니다.
3. 각 절차 별 분쟁가능성 및 법률검토사항
(1) 토지 매입
: ‘대출약정’이 중요. 용도변경+세금 문제는 법무검토 항목이 아니나, 경우에 따라서는 법무 지원 필요
건설업은 ‘땅 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죠.
과거에 이렇게 땅 사는 작업은 주로 시행사에서 진행했고, 그냥 ‘건설회사’라고만 하면 주로 ‘종합건설업 면허를 가진 시공사’를 지칭했었습니다. 즉, 토지매입 및 개발업무 / 공사업무 서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이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대다수 건설사들이 직접 개발사업부서 및 분양부서를 두고 ‘자체시행’을 하게 되었고, 기존 시행사들도 건설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직접 시공을 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건설기술자 상당수가 ‘프로젝트 계약직’ 형태로 계약하게 되기도 했었죠.
배경 설명은 이정도로 하고. 법무담당자 입장에서, 토지매입 단계에서는 신경쓸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LH 등 공공기관이 토지매도하는 경우에는 해당 입찰조건 / 민간에서 매도하는 경우에는 부동산매매계약서 정도를 살펴봐야겠지만, 둘 다 거의 정형화되어 있어 딱히 크게 고칠 것은 없습니다.
(계약위반시 계약금10%를 해약금으로 처리하는 것은 국룰…이죠.)
물론 해당 입찰조건이나 계약에 특약사항이 있고 이 특약이 비상식적이라면 당연히 법무검토 단계에서 지적해야 합니다. 다만, 제 경험상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땅 사들이는 게 [재개발/재건축] 이라면… 이건 엄청 길게 설명해야 하고, 제가 다 설명할 역량이 안 됩니다. 재개발재건축 쪽은 설명 패스하겠습니다.
땅 사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자연인+법인이 그렇듯이 ‘내돈내산’으로 땅 덜컥 사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은행대출을 껴야 하죠. 계약금 정도는 자기 돈으로 걸지만 그 이후 중도금/잔금은 해당 토지를 담보로 대출 일으켜서 납부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이 대출 약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대부분의 경우 대출 해 주는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 많습니다. 그리고, 브릿지-론(Bridge-loan)이라고 해서 딱 토지매입 완료시까지만 대출 진행한 후 / 분양계획과 연동되어 분양대출이 본격화되면 우선상환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양 내지 개발계획대로 되지 않고 사업연기되면 브릿지론 자체의 상환조건이 발동해서 땅 날려먹는 건 기본(!)이겠죠.
이 대출약정. 법무담당자는 어떤 식으로 검토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딱히 할 건 없습니다.
대출약정이 금융기관에 유리한 계약이기는 하지만, 대출받는 시행사 측 법무담당자가 이 조항 뜯어고치겠다고 의견 내더라도 딱히 별 의미는 없습니다… 결국 법무검토라는 게 상대방을 설득하여 계약초안을 바꿔야 의미 있는 작업인데, 돈 빌려 주는 쪽이 초안 바꿀 생각이 없다면 뭐 어쩌겠습니까. 불리해도 수용해야죠.
(가끔 계약서 상 불리한 조건이 작동하면 ‘법무검토가 잘못됐어!’라고 주장하는 직장인들이 있는데, 그런 면피성 발언에 말려들 필요 없습니다. 고칠 수 있는 걸 고치는 거죠. 대한민국 슈퍼갑 금융기관에 돈 빌려 오는 상황에서 일개 법무담당자가 고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불리한 조항들에 대해 ‘추후 ~하면 ~조치가 실행되어 ~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도는 확인시켜 주는 게 좋습니다. 물론 대출약정 진행하는 사업부에서도 잘 알겠지만 다시 한 번 체크하긴 해야겠죠.)
이렇게 대출약정을 확인하고 나면, ‘용도변경’도 보긴 봐야 됩니다. 공장 지으려고 땅 샀는데 쌩뚱맞게 농지(農地)면 당황스럽잖아요.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 확인하는 건 기본입니다.
다만, 이 또한 법무담당자가 ‘확인’만 하는 사항이고 주도적으로 용도변경을 할 건 아닙니다. 용도변경 필요한 사안이라면 처음부터 이를 고려하여 매수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고, 용도변경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매수했는데 변경이 늦어지거나 / 안 되는 경우라면 이는 의사결정을 한 개발사업부(팀)에서 책임져야 할 사안입니다.
또 하나, 토지매입을 하고 ‘분양 등 개발계획’이 없거나 / 늦어지면 해당 토지에 대해 중과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분류되면서 종합부동산세 나오면… ‘크리티컬한 치명타’를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법무담당자 책임 영역은 아닙니다. 분양 등 개발계획은 개발사업부(팀) 주관사항이고 세무 쪽은 주로 재무-회계 라인 검토사항이죠. 그거 안 챙겨서 세금크리 터졌다면… 그냥 회사 전체적으로 경험부족 상태인 겁니다.
물론, 이런 용도변경/세금크리 문제로 소송 진행해야 한다면 그 때부터는 다시 법무담당자 영역입니다. 행정전문/세무전문 변호사와 로펌을 찾아야겠죠. 사실관계도 잘 정리해야 하구요.
더 좋은 건, 이런 문제를 사전에 지적하고 대응방안 준비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입니다. 책임 영역은 아니지만 본인 책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 아주 바람직하죠.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습니다.
토지매입 부분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단계 넘어가겠습니다.
(2) 토지 현황 정리. 지하 기초시설(상하수도, 전기, 통신) 확보
: 용도에 맞지 않는 계약 또는 ‘지장물’ 분쟁
공공사업과 민간사업을 구분짓지 않고 서술하고 있는데요. 땅 살 때, 매도인이 공공기관이냐 / 민간이냐에 따라 매입절차도 달라지지만, 해당 토지를 얼마만큼 정비해서 주느냐 하는 점도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공공기관으로부터 매입하는 경우가 조금 더 안전할 겁니다. 일단 토지 용도변경은 기본으로 해 주고, LH의 택지공급 같은 경우 상하수도/전기/통신 등 기초시설을 토지 입구까지 매설해 준 뒤 매각입찰공고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도인 담보책임에 관한 법률용어를 쓴다면) 권리하자, 물건하자 모두 제거한 상태로 파는 거죠.
다만… 공공기간 매각 토지라 해도, 간혹 하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도미변경 같은 권리하자도 있겠지만, ‘물건의 하자’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토지의 물건하자. ‘지장물’이 문제입니다.
토지를 건물준공 목적으로 매수할 경우, 일정 수준까지는 땅파기 작업을 해야 하고 건물이 단단하게 올라가도록 지반공사도 해야 합니다. 이 때 암(巖)이 나오거나 / 땅이 너무 물렁물렁하거나 하는 경우에는 지반공사 비용이 많이 들죠. 가끔 땅 파는데 문화재 나오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문화재보호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건설사 입장에서 날벼락인 건 어쩔 수 없죠. 가능하다면 문화재 발굴시 보존비용을 국가가 일부 분담해 주는 것으로 법률개정해 주면 좋겠지만… 일개 기업 법무담당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자연적 문제’는 매도인에게 담보책임을 물을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토지는 그 형상대로 거래하는 것이고, 매도인이 해당 토지의 지하 부분까지 상세히 다 조사할 의무는 없겠죠.
문제는 ‘인위적인 지장물’일 때 발생합니다. 즉, 기존 건물의 폐기 잔해 / 기초구조 등을 그대로 매립해 버렸거나, 다른 곳에서 쓰레기를 가져와 매립했거나 하는 등의 문제일 때 분쟁이 생깁니다.
이런 인위적인 지장물이 있다는 것을 매도인이 알고서 팔았다면 당연히 책임져야죠. 채무불이행과 담보책임의 경합에 대해 학설대립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법원판례에서는 굳이 따지지 않고 경합적용해 줍니다. 고의로 은폐했다면 빼박 채무불이행입니다.
그런데… LH를 비롯한 공공기관도 나름 법률검토 다 거치고 리스크 헷징 철저하게 합니다. 공공기관이 고의로 은폐할 리는 없고 대부분 ‘과실’로 인공지장물이 있는 상황일 텐데(공공기관 취득 이전에 불법폐기물이 매설되었고 공공기관은 그걸 모른 채 재매각했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실로 지장물 있다는 걸 몰랐을 경우에 대비한 계약조항 정도는 만들어 놨겠죠.
LH 및 각 지자체들의 토지매매계약을 보면, 대략 [해당 토지의 지상 및 지중 상태에 대해서는 매수예정자가 시추 등의 방법으로 확인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발견하지 못한 지상/지중 하자에 대해서는 매도인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식의 조항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조항은 ‘임의규정인 매도인의 담보책임을 배제하는 조항’으로서 원칙적으로 유효합니다.
그렇다면, 이 토지를 매수해서 시추 등으로 지장물을 확인하지 못했던 토지매수사업자는 그 지장물 폐기 관련 책임을 옴팡 다 뒤집어써야 할까요? 돈 몇 억원 자체부담으로 추가투입해서 누군가 묻어 놓은 불법폐기물 다 들어내고 그 손실 온전히 감당해야 할까요?
그럼 좀 억울하겠죠. 소송 붙어서 매도인 책임 따지고 싶을 겁니다.
소송 붙는다면, 저 계약조항을 어떤 식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요? 분명 임의규정을 배제하는 조항으로서 일응 유효한 계약인데, 그걸 배제할 방법이 있을까요?
제 경험상,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방계약법. 다른 하나는 약관규제법입니다.
(판례는 약관규제법 쪽이 먼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방 당사자가 여러 상대방에게 적용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만들어 둔 계약 양식은 ‘약관’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약관에 대해서는 약관규제법의 적용을 받고, 공정위 약관심사과에서 총괄 관리하며, 법원 또한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판결하는 과정에서 약관규제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LH등이 저러한 ‘담보책임면제특약’을 계약서에 둔 경우, 이 계약서를 1명의 사업자를 위해서만 특별히 따로 만들었을 리 없겠죠. ‘표준양식’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뒤집으면 ‘약관’이 됩니다. 어지간한 공공기관 계약서는 거의 다 약관입니다.
약관규제법에는 몇 가지 기본 원칙과 개별해석원칙이 있습니다만, 개론 수준에서 그걸 다 살펴볼 필요는 없겠죠. 일단 ‘약관작성자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당하게 경감하는 약관조항’은 무효입니다. 저 담보책임면제특약이 대표적인 사례죠.
그리고, 지방계약법에도 지방자치단체 측이 계약할 때 상대방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LH가 아닌 지자체로부터 토지를 매수했다면 지방계약법 조항을 원용할 수도 있겠죠.
뭐 어떤 조항을 원용하든 상관없습니다. 매수자 측이 단순시추 등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지장물이 있어 매매대상 토지에 ‘물건의 하자’가 존재했고, 이에 대해 매도인의 담보책임을 전면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만 소명하면 됩니다. 우리는 사실을 말하고, 판사는 법에 따른 결론을 주겠죠.
한 가지 추가하면, 지자체/공공기관을 상대로 소송할 때 “C발 다 죽었어 이번에 끝장본다 내가 이자까지 다 받아낼 거야 지자체 따위 부셔 버리겠어!” 라고 덤벼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자제하는 게 민간사업자의 미덕(!)이겠죠?
유사사건에 대한 판례가 있는 경우, 지자체 등 공공기관은 적절한 선에서 조정/화해권고를 받아 이자 및 소송비용을 줄이려는 전략으로 나오게 됩니다. 물론 판례가 없다면 끝까지 가고, 위 지장물에 대한 약관규제법 적용 사안도 처음에는 대법원까지 갔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명확한 판례가 있는 상황이죠.
법무업무 하면서 대법원 판례 / 헌법재판소 위헌결정례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저는 굳이 그렇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기존 판례에 따라 해석하고 그에 따라 결정 받아도 충분히 직장생활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글 쓰다 보니, (2)번까지 왔는데도 꽤 길어졌네요.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이쯤에서 끊고, (3)번 이하 항목은 새 챕터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