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서스 Oct 06. 2023

건설법무 개론 (5)

(6)-1 공사 진행 과정에서 업체관리. 토목, 골조, 미장, 창호, 배관, 도장 등 다양한 전문업체 존재.

하도급법은 건설법무의 핵심. 타절 관련 법리도 매우 중요. 건산법상 재하도급 제한도 알아둬야 함.


제가 건설회사 법무담당자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한 지 2개월 가량 되었을 때. 기획팀 소속이던 선배 사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의 종합건설사는 사실상 ‘금융업’으로 봐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분명 건설사 입사했고, 이 회사에서 건설공사 많이 했다고 매년 실적신고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금융업’이라니. 이건 뭥미?


몇 달 지나고 나니, 어떤 의미인지 살짝 감이 왔습니다. 건설현장의 공사, 그 구체적인 작업은 종합건설사 직원이 하지 않습니다. 현장에 나간 건설사 직원은 ‘관리감독’만 할 뿐, 실제 작업은 ‘하청업체 직원 및 그 하청업체가 모집해 온 일용직 근로자’들이 다 하는 구조였습니다.


래미안, 힐스테이트, 자이, 아이파크, 롯데캐슬, 센트레빌, 포스코더샾, 두산위브, 기타등등 잡다하게 많은 아파트 브랜드들. 다 똑같습니다. 삐까뻔쩍한 브랜드 이름을 앞세운 특상급 종합건설사들은 ‘관리감독’만 할 뿐, 실제 각 현장에서 시공하는 건 하청 받은 전문건설업체 + 일용직 근로자들입니다.


어제 자이 현장에서 일한 철콘 전문공사 업체가 오늘 롯데캐슬 현장 가서 공구리 치고, 내일은 아이파크 가서 공구리 칩니다. 서울의 아이파크와 광주의 아이파크는 세부 공사를 한 전문업체가 다르고, 대신 서울의 아이파크와 서울의 롯데캐슬을 ‘사실상 같은 공사’로 분류하는 게 맞습니다.


상위 종합건설사는 ‘그 신용으로 은행대출을 일으켜 공사비를 조달하는 신용보강 역할’을 해 주고, 공사에 문제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며, 문제 생겼을 때에는 그 신용과 자금력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입니다. 직접 공사를 하지는 않아요.


소위 ‘1군’이라 불리는 상위 100위권 종합건설업체 중, 건설장비를 보유하고 직접 현장에서 공구리 치는 업체는 사실상 없습니다. 1군 업체 중 상당수 종합건설사는 해당 법인 소속 기술자도 몇 명 없어요. 대부분 ‘프로젝트 현채직’으로 현장 개설될 때에 모집하는 형태이고, 평상시에는 최소한의 기술자만 직고용하고 있습니다.


종합건설-전문건설, 원청-하청. 이 ‘하도급 구조’가 대한민국 건설업의 기본 형태입니다. 초창기부터 이 형태로 사업 진행해 왔고, 건산법을 비롯한 각종 법령에서 아예 제도적으로 인정해 줬으며,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건설업에서는 ‘하도급 관리’가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은 ‘협력업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사가 각 현장별 하수급인(하청업체)를 관리하는 게 건설공사의 핵심입니다.


건설법무 또한 이 하도급 관리에 대해 잘 알아야겠죠. 그 첫 시작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줄여서 [하도급법]입니다.



1) 하도급법


 하도급법 적용 범위


건설법무 관련하여 하도급법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급법의 적용 범위]에 관한 것입니다.


일단 법 제목이 ‘하도급법’이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아하 이 법은 다단계 도급 관계에서 하도급 부분을 규제하는 법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매매계약(주로 물품제작-공급계약)에는 하도급법이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하도급법은 물품제작과 같은 매매계약에도 적용됩니다. 하도급이 아닌 원도급에도 적용됩니다. 심지어 용역계약에도 적용됩니다. 사실상 모든 거래에 다 적용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는 하도급법 2조 1항 정의규정을 보면 명확한데요. 해당 조항은 제조위탁, 수리위탁, 건설위탁, 용역위탁 및 그 위탁받을 것을 다시 위탁한 경우 전체를 ‘하도급거래’라고 하고 있습니다. 법률적인 하도급은 이 ‘다시 위탁’ 부분만을 의미하지만, 현실 하도급법은 원도급 내지 제작매매 일체를 ‘하도급거래’로 정의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하도급법의 역사적 흐름을 고려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요.

원래 하도급법이 건설분야의 다단계 하도급 관행을 법률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1984년에 처음 만들어진 법이긴 합니다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그 적용 범위를 점점 넓혀 갔고 마침내 ‘모든 거래’에 적용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해 놓고 도대체 뭘 보호하느냐? 바로 [중소기업 보호]가 핵심입니다.


하도급법은 (각 사업별로 다르지만 일단 건설업 기준으로) 매출 1천억 이하의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법입니다. 업종이 다르면 매출 1500억까지 보호해 주기도 하고 대금지급 등에서는 매출 3천억 이하 중견기업도 보호해 줍니다만, 일단 기본은 ‘중소기업 보호’입니다.


즉, 대한민국의 하도급법은 (그 이름과 무관하게) 현실적으로 “중소기업보호법”으로 기능합니다. 대기업~중견기업의 갑질로부터 ‘을의 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보호해 주는 법. 취지는 참 알흠답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어떤 법령이든 취지가 잘못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무슨 소급입법으로 과거 법률행위를 전면 무효로 처리하는 수준의 법률이 아니라면 취지는 다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종합건설사 입장에서 법무를 다뤄 왔죠. 하도급법도 종합건설사 입장에서 살펴보게 됩니다. 이 종합건설사 입장에서 하도급법을 말한다면…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건설법무 담당자에게 현시창 느끼게 하는 법, 하도급법. 간단히 살펴볼까요?



 하도급법 겉핥기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도급법을 간단히 살펴보면,

- 모든 사항을 ‘원청’이 문서화하여 교부

- 해당 문서에 부당특약 있으면 안 됨

- 원청이 그 윗선에서 대금 내려받았으면 15일 내, 돈 못 받아도 60일 내에 하청에 대금 지급

- 하도급대금 제때 잘 주기 위해 지급보증증권을 발급받는 방식으로 지급보증 해야 함. 단, 하청 측이 계약이행보증증권 제출 못하는 상황이면 지급보증도 면제.

- 물가변동 등 사유 있으면 하청이 대금증액 협의 요청 가능. 원청은 성실히 협의해야 함

- 기술탈취, 부당해지, 부당구매강요, 부당반품, 부당감액 등 일체의 갑질 금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조항들이 있습니다만, 대략 핵심은 위와 같습니다. 이걸 더 요약하면,

ⅰ) 철저한 서면주의

ⅱ) 받으면 15일 / 안 받아도 60일 내에 대금지급. 지급보증도 기억

ⅲ) 부당특약 등등 갑질금지

정도로 기억하면 되겠네요.


뭐, 이렇게만 써 놓으면 딱히 현시창 느낄 일 없을 것 같습니다. 다 좋은 말이잖아요. 서면계약서 잘 쓰고, 윗선에서 돈 못 받아도 60일 내에 돈 주고, 부당특약 같은 거 안 하면 됩니다. 말은 ‘참 쉽죠?’ 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③ 하도급법 준수 의무


첫번째, 철저한 서면주의. 하도급계약과 그 이행 관련한 사항은 ‘서면’을 작성해야 하고, 이 서면 작성 의무는 원청에게 있습니다. 제 기억에 이 조항은 2012년에 하도급법 개정되면서 도입되었을 거예요.


취지는 당연히 좋지만, 대학 등에서 법 배우신 분들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실 겁니다. ‘구두계약도 당연히 계약인데 왜 모두 다 서면으로 하라는 거지?’라고요.


맞습니다. 본 조항은 구두계약도 가능하다는 민사법 원칙을 수정해 ‘서면주의를 강제’하는 게 핵심입니다. 위반시 행정제재 가능하니 당연히 강제조항이구요.


문제는,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서면으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건설현장에서는 다양한 일이 일어납니다. 산재도 발생하고, 밤에 술 먹고 지나가던 행인이 쌓아 놓은 자재에 걸려 다리 부러지고, 그러면서 자재관리 문제 생기고, 가끔 원청보다 더 상위에 있는 발주자/감리가 설계를 바꾸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발주자/감리는 구두지시를 해도 무방합니다. 원청사가 매출 1천억 이상 중견기업이면 이 원청사는 하도급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거든요.


대신 원청사는 그 아래 하청업체들에게 서면 교부해 줘야 합니다. 법대로 한다면 그렇습니다.



다음 두 번째. ‘위에서 대금 못 받아도 60일 내에 대금지급해라.’는 조항.


건설업 동향에 대해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불경기 오면 엄청 많은 건설사가 줄줄이 무너집니다. 아파트 경기 좋을 때 잠깐 이익률 호전되긴 하지만, 그게 꺾이면 대규모 적자사태를 겪거나 / 아예 흑자부도로 도산합니다. ‘빚 내서 땅 사고 선분양으로 돈 땡겨 쓴다’는 사업구조 상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경기에도 저 ‘60일 내 대금지급’은 지켜야 합니다. 하도급법은 강행규정이고, 위반하면 행정제재 들어오거든요. 대금지급 조항처럼 중요한 조항들은 형사처벌도 가능합니다.


세 번째. 부당특약 등 각종 갑질 금지.


이것도 취지는 좋습니다만…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갑질하지 마!’라고 하는데, 노가다 현장에서 서로 상호존중하면서 ‘님 오늘 하루도 안전하게 활기차게 스트레스 관리 잘 하고 살살 일해요 호호호’ 이럴 리 없잖아요?


물론 쌍욕하거나 사람 패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하도급법을 넘어 그냥 형법 적용 사안이죠. 하도급법이 규정하는 ‘부당특약’이라는 건 물리적인 갑질이 아니라 “계약상의 갑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원청사가 그 상위 발주자 등으로부터 각종 사유로 감액/계약금액고정 등 조항을 적용받았을 경우 이를 하청에 적용 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청업체도 어렵습니다. 하청업체가 맡은 일 못하고 무너질 경우 계약해지(속칭 ‘타절’)를 해야 하는데, 계약해지 과정에서 갑질 논란이 따라옵니다. 계약 해지당하고 쫓겨나는 업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갑질 주장 하겠지만, 원청사는 또 원청사의 입장이 있을 수 밖에요.



길게 얘기하려면 끝이 없지만 이 정도로 줄이고. 하도급법을 100% 준수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청사가 돈이 남아돌고 부도 위험도 없으며 매년 15% 이상씩 초과수익 얻으면서 눈누난나 잘 살고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정말 지키기 어렵습니다.


하도급법을 운영하는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위도 하도급법 위반사항을 경미/중요 등으로 나눠 판단합니다. 서면작성의무 위반 등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것으로 보아 주로 경고처분 / 대금미지급이나 지연지급은 바로 과징금처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죠.

(물론 경고처분도 3년에 3회 누적되면 과징금 부과합니다.)


그런데, 원청업체(종합건설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알면서도 하도급법 위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60일 내에 하도급대금 줘야 한다는 걸 뻔히 알지만 발주처에서 돈 못 받은 상태에서 하도급대금만 먼저 줘 버리면 부도나고 법정관리 가야 하니, 법 위반하는 걸 알면서도 바로 돈 안 주고 60일을 훌쩍 넘길 때까지 버티는 거죠.


공정위는 이런 상황도 잘 알고 있습니다. 건설사 중 상당수가 ‘이름만 1군’이지 실제 속사정 들여다 보면 많이 부실하다는 것, 현장관리 인력도 부족하고 미분양이 엄청 쌓여서 오늘내일 한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알아도 어쩌겠습니까. 법은 지켜져야 하는 것을.



하도급법 위반사항이 많이 쌓이면 공정위가 ‘현장 직권조사’를 나옵니다. 경찰 검찰 공정위 조사 다 받아 봤고 다들 힘들지만, 공정위 조사 대응하는 게 쪼큼 더 힘듭니다. 공정위는 영장주의가 아니거든요.

(최근에는 영장에 준하여 공문에 조사 사유를 명시하고 별건조사를 가급적 금지한다고 합니다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남은 직장생활 동안 조사 대응 업무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공정위 경찰 검찰의 조사와 그 대응은 개론에서 다룰 게 아니니 일단 제외하겠습니다. 원래 주제대로 가면 이제 ‘타절’과 ‘재하도급 제한’을 다뤄야겠습니다만… 하도급법 얘기 나오니 개론 수준에서도 말이 길어지네요. 타절과 재하도급 제한은 다음 챕터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