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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향숙 Mar 15. 2023

14. 십 년, 늙지는 않았습니다.

실체도 없는 성공과 실패

둘이서 공사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안 되던 날 남편은 이 번 주까지 공사를 마무리하자고 했다. 치울게 산더미 같은데, 청소가 아닌 대청소가 필요한데 여기서 그만하자니 더 보태서 미완성인 채로 프로젝트를 열자니, 기가 막혔다. 대체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어릴 적 학교에 손님이 올 때면 대청소를 하는 것이라고 세뇌되지 않았던가? 장학사라도 오는 날이면 이틀 삼 일씩 대청소를 하고, 지저분 한 건 다 숨기고, 온종일 왁스 묻은 걸레로 바닥을 문지르지 않았던가? 대답하기 싫어서 정리 안 된 짐을 피해 쓸데없이 바닥만 쓸어데며 몇 가지 생각해 둔 프로젝트 제목만 되뇌었다.


 프로젝트 생각만 하면 불안초조가 밀려왔다. 작업실도 미완성 같고, 위태로운 마음도 아직 정리가 안 됐다. 다 숨기고 나도 숨고 싶었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무언가 전달하려면 마음도 대차고, 작업실도 완벽해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확인해봐야 할 게 있었다. 십 년을 한꺼번에 늙었는지, 그러지 않았어야 그 부분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늙었어”  

십 년쯤 나이 들어 보이냐 는 물음에 동생은 그냥 늙었다고 했다. 불안했다.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다. ‘성실한 대답’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최대한 모임에서 오고 갈 수 있는 질문지를 만들어 답에 대한 계획을 준비했다. 공사기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상황마다 궁금했던 것을 하나씩 나열했다. 문득, 준공을 기다리던 겨울밤, 크게 고민했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이게 실패하면 어쩌려고 했어?”

안경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만든 남편이 되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이걸 시작하면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생각했어?” 의아함을 넘어선 남편의 물음에 급격히 위축 됐다.

 “그러니까 이게 잘 못 되거나 실패하면…”

 “도대체 여기서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어? 너는 건물 짓고 끝내려고 했니? 애초에 실패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 정말 어이없어하는 남편이 어이없었다.

“네가 이걸 지으면서 실패할 생각을 한 것은 건물 짓는 게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고 생각해서야. 우리는 이곳에서 지내기 위한 시작을 했을 뿐, 실패는 없어, 만약에 공사가 잘 못 되었어도 다시 하면 그뿐인 일이야.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뭘 하면서 재밌게 지낼지를 생각 해 봐”



머릿속도 마음속도 복잡 해 졌다. 남편 말처럼 정말 끝만 생각했다. 이곳에서 지낼 생각은 일절 하지도 않고 건물 짓는 것에만 급급했다. 내 삶도 과정은 생각도 않고 결론적인 성공과 실패로 구분 지었다. 명확한 목표도 없었고, 실패에 대한 주체도 없으면서 그저, 마흔이라는 나이 언저리에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실패라고 여겼다. 이 정도의 시간을 들이고, 나이가 먹었으면, 뭐라도 됐어야 했다며 그렇지 못 한 나를 원망하며, 스스로에게 눈을 흘겼다. 눈칫밥을 그렇게 주었으니 주눅이 들고도 남았다.


“넌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남편이 다시 물었다.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 이렇게도 할 수 있으니까 미리 겁먹고 당황하지 말라고, 염려 때문에 자기를 뒤로 미루지 말라고” 어디서 들었던 말인지 생각한 말인지 모르지만 진심이었다. 사람들이 나의 누추한 시간을 반추해 망설임을 거두길 바랐다.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말하듯 너도 그렇게 생각해 봐. 네가 걱정했던 것들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물론 쉬웠다는 건 아니야, 앞으로도 네가 여기서 얼마나 재밌게 지내는지가 중요한 거야. 사람들에게 건축 얘기만 전하려고 한 게 아니잖아? 어떻게 지내는지가 훨씬 중요하잖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실패 같은 것은 없어.” 가끔 너무 맞는 소리를 할 때는 살짝 얄밉기까지 하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 성공이고 나발이고 고만 징징 거리자


전하고 싶은 말을 들여다보면 그냥 공사를 마친 이야기는 아니었다. 왜 직접 하게 됐는지, 그랬더니 뭐가 좋았고 안 좋았는지 그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건축을 통해 느낀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짓는 동안 안달복달 한 건 그 새 잊었다.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다 작년 사진을 찾아봤다. 얼마큼 나이가 들어 뵈는지 잘 모르겠다.


동생 말대로 라면 십 년을 한꺼번에 늙었다기보다는 그냥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무는 자란다.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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