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1년 차의 거창한 계획
얼마 전 남편이 전시를 하면서 알게 된 분이 있다. 조금 먼 옆 동네에 비슷한 시기에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집과 작업실을 지었고, 우여곡절의 사정이 많았다. 공사를 마친 사람들끼리 공사 내의 사정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끈끈함이 생겼다. 그분이 놀러 오셨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각자의 아쉬움과 공사 에피소드를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밤을 넘겼다. 처음 놀러 올 때 가져다준 가지는 우리 집 마당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주 달랐다. 몽둥이를 연상 캐 하는 그 가지는 실하고 진한 맛이었다. 우리 뒷 산을 바라보면서 그 실한 가지 밭의 주인은 “ 저 산 흙이 정말 좋네요, 저런 흙 인터넷에서 엄청 비싸게 팔아요”라고 말했다.
‘비싼 흙’
난 ‘좋네요’ 보다 ‘비싼’에 꽂혔다. 마치 고가의 영양제를 지척에 두고도 못 알아본 느낌이었다. 내 밭의 가느다란 가지도 그 흙이라면 몽둥이처럼 자랄 것 같았다. 얼른 그 흙을 내 마당에 퍼다 붓고 싶은 조바심이 들었다. 드디어 땅이 녹기 시작했고, 비가 와서 촉촉해진 틈을 타 삼일 내내 흙을 퍼다 날랐다.
또다시 합리적인 합리화가 시작 됐다. 가장 가볍고 커다란 바구니에 삽으로 가득 퍼 온 흙을 마당에 부울 때마다 오만 원 십만 원 속으로 새기 시작했다. 하루에 이 백만 원어치의 흙을 부었다 생각하니 이제 내 정원은 그냥 정원이 아니라 고급 정원이 된 거 같았다. 밤이면 낮에 찍었던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꿀 잠을 잤다.
욕심은 도로를 가로질러 앞 산의 낙엽을 탐하게 됐다. 산에 난 길 옆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해가 들지 않아 적당히 촉촉하고 적당히 삭은 낙엽이 널려 있었다. 바구니로는 부족했다. 내 몸 만한 포대자루를 창고에서 꺼내 혹시 뱀이라도 만날 까봐 긴 장화를 신고 건너가 포대에 가득 담아 정원에 쏟았다. 이게 썩어 부엽토가 된다니 인터넷에서 조그마한 봉지에 만원 이만 원 하던 흙 봉지가 머리를 스쳤다. 퇴비도 듬뿍 섞는다. 배도 안고팠다. 밥을 할 시간이 없어 계란과 감자를 삶아 대충 먹었다.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았다.
정원 일 년 차의 계획은 거창했다. 과실 수와 향기가 나는 꽃이 어우러지고 각종 허브가 무심하게 피어 있는 정원을 상상했다. 이미지 사이트에서 아름다운 마당 이미지들을 모았다. 탐이 나는 남의 것을 모조리 긁어모아 내 것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각종 씨앗과 모종을 속속 주문했다. 나무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려 나무를 사 왔다. 봄이면 꽃을 보고 여름이 지나면 과실을 바구니에 똑똑 따 담아 차가운 물에 씻어 먹고 다 먹지도 못 할 만큼의 과일을 청과 잼으로 만들 꿈을 꾸었다.
꿈은 꿈일 뿐,
매실나무는 심은 해 가을에, 복숭아나무는 다음 해 봄에 죽었다. 월동이 잘 된다던 라일락은 두 해째 같은 키에 꽃 한번 보여 주지 않고 있다. 텃밭의 여린 잎채소들은 비가 오면 녹아내리고, 해가 나면 타 죽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근으로 심었던 작약이, 그렇게 꽃 한번 나지 않던 장미가 꽃을 피운 날 잔치를 열어야 할 거 같은 심정이 들 정도로 흥분 됐다. 장미에 일절 관심 없는 남편을 목청껏 불러 냄새를 맡아보라고 여러 번 말했다. 심드렁한 반응이 성에 안 차 동생에게 영상통화로 장미꽃을 보여 주면서 말로 할 수 없는 향을 설명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에는 온실정원을 검색했다. 우유갑 모양의 형태에 하얀 기둥, 강화유리 한 두 평이면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 풍경에 따뜻한 온실 안에 향기 가득한 식물들이 놓인 상상을 하니 사치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직 내 오두막 정리도 못 해 놓고 다른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결혼 전까지 아파트에 만 살았던 나는 화단은 봤어도 마당은 본 적이 없다.
나에게 마당, 정원이 생기고 그곳을 가꾸는 일이라는 뜻밖의 것에 취했다. 의사가 말했던 좋아하는 것, 찾고 있던 답이 흙장난인가 라는 단순한 생각에 더 열심히 마당을 헤집었다.
너무 더디고 더뎌, 황량한 마당을 기다리기가 지루해 사진을 찍어 그 위에 마스터플랜을 그려도 봤다.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을 상상했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상상…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상상하고 바뀐 모습을 그려 본 게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상상이라는 말에 대해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그 속에는 걱정과 염려 대신, 기대와 그에 부흥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음습한 생각이 침범할 겨를이 없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마음이 느슨해졌다.
마당에 대해 과 할 정도로 기쁨을 드러내 보니, 무거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표현을 잘 못 하니, 나도 모르게 켜켜이 쌓인 감정은 경중도 없이 단단히 굳어가며 무겁고 둔탁한 사림이 되었다.
내가 그리는 마당을 위해 몸을 열심히 움직였을 뿐인데 마음이 정리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작년 봄 뒷마당을 개간해 넓은 땅을 확보하고, 전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모종을 사 왔다. 그중에 브로콜리와 양배추도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뒷 곁에는 흰나비가 살포시 날아다녔다. 남편의 머리 위에도 발에도 앉아 있는 흰나비는 마치 누군가의 영혼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좋은 기운이 찾아오려고 나비가 가득한 가 보다… 는 아니고, 교과서에 나온 초록색의 토실토실 배추벌레, 그들이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의 두텁고 실한 잎은 모조리 망사처럼 됐다. 애벌레들이 바글바글한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흰나비를 길렀다.
브로콜리는 먹어보지도 못했고, 양배추 반 토막을 애벌레에게서 구해냈다. 잎을 씻어 한 입 물었다가 퉤 퉤 뱉었다. 이렇게 떫고 쌉쌀한 양배추는 처음이었다.
올 해에는 자주 먹는 것으로 만 심고 향신료를 더 많이 심었다. 이제 더 이상 심을 곳도 없으면서 봄이면 여기저기 묘목 시장을 기웃거린다. 나무와 꽃을 구경하고 마당에 자리를 어떻게 만들까 궁리한다. 홍천 묘목 시장에 구경을 가서 호두나무를 봤다.
이 것은 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학교 선배 오빠의 작업실에 큰 호두나무에서 바로 따 먹었던 싱싱한 호두살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호두나무를 집었다. 몇 그루를 살까 생각하면서도 너무 많이 달릴 걱정을 미리 하면서 두 그루면 충분하다며 사가지고 왔다.
하나는 내 마당에 심고 하나는 뒷마당에 심었다. 혹시 새로 온 땅이 추울까 봐 깎은 잔디를 살포시 덮어 두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초록의 호두 열매가 가득했다.
“언니, 이 코끼리 코 같은 작대기는 뭐야?” 마당에서 꽃을 구경하던 동생이 물었다.
“그거 호두나무”
“이제 나한테 나무 샀다고 하지 마! 맨날 어디서 작대기 같은 거 꽂아 놓고 나무래!”
아직도 가끔은 이곳의 내가 생경하다.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명사보다는 동사가 어울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 사람들이 이곳에서 뭔가를 하면서 즐거웠으면 하는 생각.
사리사욕의 끝에는 밭에서 난 것으로 이것저것 해 먹을 생각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