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향숙 Mar 15. 2023

13. 미대오빠와 고속승진

못 해도 괜찮아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진 ‘미대오빠’의 이미지 덕분에 환상이 있었다. 우선 키도 크고, 길고 하얀 손을 가졌고, 예쁜 색 물감이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우수에 찬 눈빛과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의 낭만적인 말. 미대에 가서 그런 오빠들을 보지 못했다.


우리 집 미대 오빠도 역시 그렇지 않다. 우선 하얗지 않고 감성보다는 이성과 판단을 주로 하는 자다.

그 오빠는, 주로 ‘아닌 것은 아니다’는 말을 잘한다. 그리고 공사 기간 동안 “일단 들자, 이거 조금만 옆으로 옮기자, 다시 떼자, 이 거 여기다 올리자” 라는 말을 주로했다. 여기서 들자, 옮기자, 떼자, 올리자 같은 것들은 테이블, 오두막, 벽, 대형작품 같은 것이다. 청유문이지만 내가 안 하면 미대오빠 혼자 할 수도 없는 일이라 거절할 수 도 없다.


“야 이번에 이거 두 번 일 안 하려면…”

“오빠~! 여태껏 두 번 일 안 한 건 없는데?”

“아, 그럼 세 번 일 안 하려면 ”

인정마저 빠르게 해 버리니 받아 칠 말이 없었다. 대체 내가 왜 두 번씩 세 번씩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은 어이없이 반복 됐다. 예를 들면, 작업 실 앞에 세운 커다란 조형물 방향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조금이 약 30센티정도, 몇 미터 짜리 작품을 그만큼 옮긴 다고 얼마나 느낌이 다를까 싶은데 그는 ‘좀, 그래’ 라며 굳이 굳이 옮기고 싶어 한다. 옮겨도 잘 모르겠는 나와 달리 남편의 입꼬리가 살짝 일자인 것을 보면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오두막에 지붕을 얹은 날 주차장 담 밖으로 조금 넘어오는 지붕 옆 선이 ‘좀 그런’ 남편은 오두막을 밀자고 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가늠할 새도 없이 잽싸게 자동차 자키를 차에서 꺼내온 남편은 돌돌돌 손잡이를 돌려 벌써 오두막을 밀어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청유문에 매 번 토끼눈과 도끼눈 사이로 “내가?!”라고 크게 되물었다. 절대 안 될 거 같은 것도 남편의 ‘에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는 초 현실적 긍정의 말에 힘을 입으면, 어느새 난 밀고 들고 올리고 있었다.


“그걸 밀었다고?!!” “왜?” 동생도 오두막을 자동차 바퀴 갈 때 차 들어 올리는 물건으로 밀어서 옮겼다고 하니까 신기했던지 이유를 물었다.

“ 또 좀 그렇대”라고 대답했다. “전화기 넘어 쇳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언니 우리 형부 별명 ‘좀 그르테’ 씨로 하자 큭큭큭, 아니 맨날 뭐가 그렇게 좀 그래 큭큭큭” 이상한 별명을 지어 부르니 기분이 좋았다.


전 날부터 그르테 씨가 말이 없었다.

“이제 사람을 불러야 할 거 같아” “왜?” 그의 입에서 처음 들어 보는 말에 놀라서 되물었다.

“지붕 밑에 마지막 부분은 아무래도 사람 불러야 할 거 같아…”

남편은 고소 공포증이 있다.

작업실의 높이가 5미터 인 것도 그가 올라갈 수 있는 높이의 최대치 이기도 해서다. 그럼에도 설치해 놓은 두 단짜리 비계에 오르는 게 무리인 듯했다.

“내가 올라가 볼게!”

“괜찮겠어?”

“우선 한 번 올라가 볼게. 오래됐지만, 아르바이트할 때 올라가 봤어, 나 조소과 나왔잖아!” 속으로는 조금 겁이 났지만, 걱정할까 봐 씩씩 함을 보태 말했다.

매 번 하자라는 남편을 타박했지만, 여태껏 남의 손 안 빌리고 한 성취감이 있는데, 여기서 조금 남은 벽 때문에 그것을 깨고 싶지 않았다.


올라와서 본 땅 밑은 생각보다 높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빠 오케이! 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고개가 빠지게 올려다보는 남편에게 손을 동그랗게 말아 괜찮다고 했다. 엉금엉금 내려와 땅을 밟자 남편이 내 엉덩이를 한참 두들겼다. 굉장히 신통한 모양이었다. 어깨가 으쓱했다.


거의 다 붙여 가던 날 대학 동기 오빠가 왔다. 지붕 근처에서 손을 흔들었다. “뭐야 십장 된 거야? 고속 승진 했네?” 인스타 그램의 ‘난 괜찮다’ 태그에 매 번 ‘안 괜찮다’라고 댓글을 달며 놀리는 사람이다.

승진이란 말이 나쁘지 않았다. 십장, 공사현장에서 가장 높은 자. 고속 승진에는 책임이 따랐다. 할 수 있게 되니, 공임이 많이 들까 봐 포기했던 뒷 벽 가장자리까지 벽돌을 붙이기로 했다. 긴 장마 사이사이 해가 나는 날은 꼭대기에 올라 마무리를 했다. 처음에는 붙이는 것보다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것에 더 신경이 쓰여 일이 더뎠다. 며칠 후, 자리가 익숙해지자 마무리에 속도가 붙었다. 연신 오빠를 불렀다. 이거 줘라 저거 줘라 야무지게 남편을 부렸다. “예히이~”라고 당나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심부름을 하는 남편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조금 귀여웠다. 지붕과 벽이 닿은 면에 줄 눈 시멘트를 다 넣고 지붕 위로 팔을 올려 만세를 불렀다. 팔 월의 하늘에는 크고 토실토실 한 구름이 먼 산 끝가지 펼쳐져 있었다. 일당 중에 가장 비싼 일당이 벽돌을 쌓거나 붙이는 일이라고 했다. 또, 일당을 쓰지 않았으니 적어도 4~500 만원은 아꼈다고 합리화를 했다.


 날이 더워져 새벽에 일 하고 뜨거운 낮에는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한 숨 자자고 했다. 해가 뜨기 전에 작업실에 도착 한 날 저 밑 동쪽으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음악을 틀고 앉아 오전을 다 까먹고 수다를 떨었다. 며칠 사이 벽돌로 인해 번듯하니 눈에 띄게 좋아진 벽면을 완성한 서로를 치하하며 앞으로 할 일들과 해 보고 싶은 것에 대해 얘기했다. 눈앞에 일이 널려있음에도 봇물 터지듯이 터져 버린 수다에 엉덩이가 무거워져서 커피만 축냈다.


못 할 거 같던 일을 끝내 놓으니 괜찮음을 지나쳐  조금씩 스스로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의심하던 남편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졌다. 매 번 못 할 수 도 있다고, 괜찮다고 하는 남편 말이 와닿지 않아서 조바심이 났는데, 남편이 못 하는 것을 내가 메꿔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못 해도 괜찮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실감이 났다. 나머지 일도 이렇게 사이좋게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둘이라 다행이라는 마음에 불쑥 젖어 들어, 뒤에서 남편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우리집  미대 오빠는 종이로 모형을 만들었다.


 “이기 이기, 아침부터 와 이라노”라며 팔을 휘 둘러 황급히 내게서 벗어났다. 좀비처럼 다시 팔을 벌리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만치 멀어졌다. 그런 남편이 우스워 교황님처럼 손 키스를 날리며 쫓아갔다.

낭만도 없는 우리 집 미대오빠는 벌써 저만치 가서 일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날은 이미 뜨거웠다.



이전 12화 12. #난괜찮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