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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향숙 Mar 15. 2023

12. #난괜찮다.

나와 친해지는 법

한 번에 끝나는 일이 ‘한 번도’ 없었지만 괜찮았다. 괜찮고 싶었고, 괜찮아야 했고, 때로는 진짜로 괜찮기도 했다. 일도 마음도,

실내 벽 공사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페이스를 찾고 나니 요령이 생겨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자르고 붙이고 틈을 메우고 갈고 페인트를 칠했다. 능숙한 몸을 마음이 곧 잘 따라오고 있었다. 잡다한 생각도 차근차근 분리수거가 되는 거 같았다. 창고 같던 실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원활한 실내와 달리 바깥 공사가 골치 아파졌다.


건물과 땅의 높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게 싫었던 남편은 기초를 다른 집에 비해 조금 낮게 앉혔다. 그게 약간의 문제가 된 것은 잔디를 깔기 위해 마사토를 부어야 하는데 건물과 땅의 높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다 보니 흙을 충분히 부울 수가 없었다. 공사 중에 땅을 여러 번 뒤집으면서 땅 밑에서 올라온 돌이 천지였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돌을 어느 정도 캐버려야 얇게나마 흙을 덮고 잔디를 깔 수 있었다.


축대로 찾은 앞 뒤 마당과 남편과 내 정원을 포함해 거의 백오십 평에 가까운 땅을 정리해야 나무와 잔디와 같은 조경을 할 수 있었다. 호미, 곡괭이, 쇠스랑과 가랑이 사이에 밴드를 끼워 들고 다니지 않아도 엉덩이에 매달려 어디든 앉을 수 있는 농사용 의자를 사 왔다. 하루에 얼마나 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구획을 정해 일주일 내에 이 돌밭을 말끔히 정리할 야무진 꿈을 꾸었다.


이름을 돌쇠로 바꿔도 될 만큼 우직하고 성실하게 돌을 캤다. 한동안은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면, 돌이 케어 져 나오는 이미지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헛것을 보고 헛웃음을 웃었다. 욱신한 팔과 다리를 핑계로 술을 한두 잔 한 마시고 누우면, 온몸에 알코올이 퍼지며 근육을 뜨겁게 달궈 오늘 내가 쓴 부위가 어디였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날은 눈을 감고 삼 초면 잠이 들었다. 불면증에는 노동이 최고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봄, 땅이 녹기 시작하고 다른 일 사이사이 돌쇠는 돌을 한 두 달 더 캤다. 어느 날은 끝도 없이 나오는 돌이 너무 지루해 도망을 갈까도 생각했다.

크기별로 골라 배수로에  사용했던 돌


눈으로 변화가 확확 드러나는 것만큼 만족도가 높은 것은 없었다. 잔디를 깔 던 날이 그랬다. 잔디 값이 백만 원인데 까는데 이백을 달라고 했다. 남편 입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삽으로 잔디를 띠어 심어 봤다는 그에게 삼 십 년 전에 해 본 것이지 않느냐고 말은 못 했지만, 이 백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면 미심쩍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당한 건수를 핑계 삼아 이제 그만 돌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농원에서 잔디를 주문했다. 다음 날 아침 5톤 트럭에 네 파렛트로 나뉘어 실려 온 잔디 480장을 지게차가 마당 중간중간에 내려놨다. 큰 시루떡 같은 잔디를 내가 나르고 남편이 줄에 맞춰 반듯하게 놓았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더니 마당의 삼분의 일에 풀색이 돌았다.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다 깔았다. 눈앞에 결과물이 확연히 드러나는 노동의 대가는 짜릿했다.

하루아침에 황무지에서 벗어나 번듯해진 잔디 위에서 서서 남편과 어깨동무를 하고 괜히 서로를 밀치며 장난을 쳤다. 어찌 될지 모른 채 돌 만 캐던 긴 시간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사라졌다. 이 백만 원을 아꼈다고 생각하니 돼지갈비가 먹고 싶었다. 저녁에 고깃집에 가기로 하고 서둘러 모래를 뿌렸다.



한 달 사이에 번듯한 잔디밭이 되었다.



남편이 아직까지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삼십 년 전 군대 얘기에 영 믿음이 안 가던 난, 뿌리가 잘 내릴지 걱정이 됐다. 또다시 그 카페에서 포크로 잔디를 콕콕 찔러 숨구멍을 만들어 주면 뿌리내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글을 믿고 60평을 포크 두 개로 틈만 나면 콕콕 쑤시고 다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큰 의미가 없는데 막상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여러 말이 귀에 들어오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벽돌을 붙이고 시멘트로 줄 눈을 넣던 일도 모두 재미는 있지만, 길고 지루한 공정이었다. 하지만 꽤 뿌듯했다. 나의 기술이 하루하루 느는 게 느껴졌다. 줄 눈 시멘트 반죽도 나날이 뻑뻑하고 고슬 고슬 해져갔다. 유튜브 미장 달인이 설명 한 농도와 비슷해졌다.

밑에 붙인 타일과 위에 붙인 타일의 간격의 일정 함이, 줄 눈 모양이 점점 반듯해지고 정갈 해 지면서 훨씬 균형 있게 보이는 순간, 신이 난 나머지 허리를 뒤로 재끼고 웃었다. 칭찬했다. 사소한 칭찬은 혹시 망칠까 긴장해 뻣뻣하게 뭉친 어깨를 조물거려 주었다. 점점 느는 기술이 신통방통 하고 아까웠다. 이러다가는 맘에 안 드는 부분을 모조리 다 떼어 내고 다시 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이토록 나를 기특해하다니, 너무 낯선 나머지 쑥스럽기까지 했다.

유독, 나한테 이렇게 데면데면할까?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전했을 말이 내게는 잘 되지 않았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되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험 한 말을 속으로 퍼부었다.

대체 왜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게 된 걸까?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자 처럼 남에게 안 할 것 같은 행동을 내게도 하지 말아야 않겠는가? 그래, 이거 라도 알았으니 지금부터 잘해 보자.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티브이 속 강연자 들의 재밌고 친절한 설명을 유심히 듣는다. 방법도 알려 준다. 거울을 보고 자기에게 말을 걸고 예쁘다, 사랑한다 말하라고… 거울 앞에 서서 그 말을 해 볼까 생각은 했으나,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조금 비유가 상했다. 다정한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사랑해’라는 말을 술도 안 취하고 하는 사람이 못 됐다. 그런데 그런 말을 자기한테 하라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보다가 그냥 나왔다.


아직도 나와 친해지는 법을 잘 모르겠다.

우선 사랑한다는 말을 자기한테 하는 방법이 나랑은 안 맞는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노동은 생각 자체를 못 할 때가 많았다. 빨리 마르는 접착제가 굳어 버릴까 기계처럼 실리콘을 짜고 외벽 타일을 올리고 붙였고, 한 번 맛 들린 단순 노동은 기계처럼 반복하며 기술을 늘렸다. 몇 년 동안 지속 됐던 불면증은 고단함 덕분인지 눕기만 하면 자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허기지고 고단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니 마음에 뭔가 고일 새가 없었다. 반듯하게 타일을 붙이고 신이 난 날, 마음이 괜찮았다. 사랑한다는 말, 다정한 격려의 말은 아니었지만 ‘어 좀 괜찮네’ 정도가 내게는 적당했다.

그래 괜찮다.

그 정도면 될 거 같았다. 그러면 그토록 찾는 내가 좀 괜찮을 듯싶었다.


날 것 같은 공사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다. 노동현장 끝에 #난 괜찮다는 태그를 달았다.

다독이며 끌어 가던 시간들이 마무리가 되고,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횟수가 늘었다. 주문 같던 말 덕분인지 정말 괜찮았다.

작업실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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