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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향숙 Mar 15. 2023

11. 건축일상다반사

‘몸’과’ 돈’이 허락하는 건축

준공 신청서를 넣고 일주일 사이에 준공이 났다. 부엌과 화장실 바닥을 에폭시로 마무리하고 실내 마감을 시작했다. 남편은 벽에 석고보드를 붙이고 그 사이 나는 나르거나 모서리에 맞춰 재단을 하거나 틈 사이를 메꾸는 일을 했다.


 일 년 동안 공사를 직접 할 거라고 마음먹고 돈도 몸도 준비했지만, 가끔씩 돈과 기운이 달렸다. 지급되기로 했던 돈이 미뤄지면 빚을 내어 메꾸기도 했고, 기력이 달리는 날은 장어를 사 먹기도 하면서, 돈이 안될 때는 몸으로, 몸이 안될 때는 돈으로 메꿨다. 조바심을 멈추고 싶은데 계획이 서지 않는 일에 취약하다 보니 뭐라도 대비책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나가야 할 돈이 빠듯해 어떻게 메꿀지 계산을 하다가 집 보증금이 떠올랐다. 그게 있다 생각하니 한편으로 안심이 됐다. 안 되면 그거라도 빼면 된다라고 맘을 먹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오빠, 나 이제 엄마도 없으니까 막살 거야”

“어떻게 막살 건데?”

“ 돈 모자라면 집 빼고 공사하는데 텐트 치고 지낼 거야.” 생각의 앞 뒤를 다 잘라먹고 몸통만 말했다.


“ 아니, 나는 그럴 의사가 없어. 엄마는 거기에 왜 가져다 붙여,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남편은 처다도 안 보고 말 만했다.

“ 그럴 수 있다는 각오라고!” 말하자 남편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나를 봤다. 눈 빛이 마치 결혼 전 엄마가 결혼해서 쓸 물건들을 잘 생각해보고 하나씩 사라고 했을 때, 불쑥 자전거를 개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내에 나갔다가 자전거를 사서 타고 온 나를 보던 엄마 눈 빛과 흡사했다. 엄마는 그날이 후 며칠 동안 나랑 말을 섞지 않았다.


 이러다가 남편도 엄마처럼 말을 섞지 않을까 싶어, 빼먹었던 앞 뒤를 붙여 각오를 늘어놨다. 늘어놓다 보니 속 마음이 튀어나왔다. “어쩌면, 그동안 난 좀 잘 사는 시늉을 하고 싶었는지 몰라. 특히 엄마에게는 말이야.”


 망할 일 없는 내 인생이 망했다고 느끼며, 어딘가에 보이고 싶어 했던 잘 사는 시늉의 끝 자락에는 엄마가 있었다. 정작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에게 기대했을, 바랐을 엄마에게  앞 뒤 다 잘라먹고 좋게 만 보이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없으니 그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대를 했던 걸까?


두서도 없이 그저 깊고 넓고 두터운 인간을 꿈꿨다. 그런 자리도 꿈꿨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분명히 아니었다. 누군가 부귀와 영화를 욕망에 두었다면, 난 명확 치도 않은 그저 좋은 사람을 욕망에 두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해 주는 다큐멘터리 속 석가모니 같은 삶을 맨 입으로 꿈꿨다. 그런 허영이 욕망인지 조차 몰랐다.


결혼 후 양평에 놀러 왔던 엄마는 현관에 놓인 자전거를 보며, 그때처럼 곱지 않은 눈초리로 서른씩이나 넘어서 결혼 준비에 고작 자전거를 사들인 내가 무척 한심 했다고 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운전면허도 없는 난 시골살이에 자전거가 꼭 필요할 거 같았다. 그것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게 좋았다. 예전 집에는 신문 구독을 하며 받은 투박한 자전거가 있었다. 후졌지만 탈 수는 있었다. 언젠가는 사은품이 아닌 마음에 쏙 드는 자전거를 가지리라 생각했었다. 혼수라는 명목에 억지로 자전거를 끼워 넣었다.


욕은 먹었지만, 준비한 혼수는 요긴하게 쓰였다. 걷기에 조금 먼 거리에 있던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도 쓰고, 운동 겸 머리도 식힐 겸 이어폰을 끼고 강변을 따라 벚나무가 심어진 새로 생긴 자전거 길을 달리면 온 갓 사나운 마음은 길 끝까지 달려갔다 돌아올 때면 어느새 누그러들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든 그걸로 본전은 찾았다고 생각했다.


………


겨울이 지날 무렵 코로나가 찾아왔다. 20세기말에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이가 한 껏 멀리 상상한 미래, 사생대회에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우주선을 타고 가는 달나라 여행 같은 것을 그렸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지도 모르던 그림 속 미래 21세기의 2020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살았던 몇 세기 전의 역병 같은 게 돌다니 아이러니했다. 이름도 없던 무시 무시한 바이러스는 나날이 창궐해 갔다.


여기까지 세상의 시름이 크게 전달되지 않았다. 만남을 제한하는 뉴스가 무색할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 격리인 듯 아닌 듯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은 채 일상은 잘 만 흘렀다.


쌓고 붙이고 바르고 갈고 칠하고를 매일 반복했다. 마음도 같이 갈고 버리고 칠 해지는 듯했다. 육신의 고단함은 멈추지 않던 반성과 후회의 시간을 사그라들게 했다. 일을 마치고 헉헉 거리며 집에 들어오다가 불쑥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타지 않고 몇 년째 놓여 있는 자전거, 그리고 가고 없는 엄마, 어느 시절마다 미숙했던 내가 불쑥 튀어나온다. 이대로 생각을 더하면 어두운 끝으로 몰릴 것 같아 고개를 획획 저었다.


내가 닿고 싶어 한 거기까지 이 번 생애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른다. 어느 날은 후회에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날도 있고, 어느 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어지럽혀진 채 차곡차곡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실처럼.


건축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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