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향숙 Mar 15. 2023

9. 병아리 부화기를 샀습니다.

재난 영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 아니면 어디 가서 사기당할 까봐 걱정이 돼서 맡았어요!


기초 공사를 연결해 준 건축 사무소 사장님이 우리의 첫인상에 대해 얘기했다. 처음 사무실을 찾았을 때 신기했다고, 겁도 없이 무작정 찾아다니는 무모한 사람들이 있나 싶으면서, 자기 아니면 어디 가서 크게 사기당할까 싶었다며, 돈은 안 될지언정 사람 하나 살리자는 심정으로 맡았다며, 그나마 비수기로 접어드는 시기라 가능했지, 아니면 자기 못 만났을 거라고 힘주어 여러 번 말했다.  

젊고 재미있는 사장님은 공사 기간 동안 별일 없이도 슬쩍 와서 현장도 봐주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지만, 별 뜻 없이 내뱉는 말 덕분에 내 꿈자리를 재난영화 뺨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땅에 물이 차면 건물이 뜬다. 얼어서 동파되면 땅이 주저앉는다. 지하수에 모래가 지나가면 정수기 파이프가 박살 난다 등,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말 한 이유는 공사가 끝나갈 때 즘 법으로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자기 팀이 공사를 꼼꼼히 했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내게는 ‘터진다’ ’ 뜬다’ ‘박살 난다’ 같은 말만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중에서 ‘얼어터지는’이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북향 땅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한 번씩 눈이 녹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동파’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바짝 얼어붙었다. 백 미터 깊이의 지하수를 파고 묻었지만, 얼어서 터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나는 영화에서 본 지구가 빙하기를 맞아 꽁꽁 얼어버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남편은 공사가 끝나면 겨울에 한 달 즈음 따뜻하고 물가가 싼 나라에서 지내다 오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속도 없이 사람을 설레게 했다.

양평은 겨울이 길다. 부동산에서 여름에 시원한 집이라고 소개하는 지역은 겨울이 오지게 춥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강원도와 맞붙은 지역, 살짝 고지가 높은 북향의 땅, 현장에 오시는 분들은 조금 친해지면 해가 일찍 산 뒤로 넘어가 그늘이 생기는 마당에 서서 “아휴 개응달” 이라며 나를 놀렸다.


그 개응달의 서늘함은 시작도 안 한 겨울 앞에서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다.


“오빠, 나는 겨울에 따뜻한 나라는 못 갈 것 같아. 갈 거면 번갈아 가던지 하고, 한 사람은 이곳을 지켜야겠어!”  이제 막 벽이 생긴 지붕도 얹지 않은 황량한 건물 앞에서 남편에게 설레는 따뜻한 휴양지를 과감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말만 했겠는가…

난방이 되는 기계들에 대한 폭풍 검색이 시작 됐다.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수도가 배치된 화장실, 부엌, 홀의 수도에 감을 발열 포일, 라디에이터, 등등을 찾았다. 여러 가지 기구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제 벽을 붙였을 뿐 창호도 안 들어온 건물 앞에 마음만 급했다.

특히 야외에 묻혀있는 지하수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인터넷 카페의 고수 중 산골짜기에 사는 한 사람이 병아리 부화용 온열기를 추천했다. 아주 적은 전력으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기구였다. 생전 처음 보는 기계를 다시 동영상으로 검색해서 설치방법과 사용 방법을 익혔다. 이 정도면 겨울이 와도 크게 문제가 될 거 같지 않았다.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 이게 뭐요? 하모니카요?” 새로 산 부화기를 사장님께 내밀었다.

“ 병아리 부화 할 때 쓰는 거 라는데 이것을 지하수정에 설치하려고요"

“ 왜요?”

“ 이거 설치하면 얼지 않는 대요…”


사장님은 허리를 뒤로 재끼고 웃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에게 병아리 부화용 온열기를 건네며 내 물건을 소개했다.

모두가 신기해하며, 다른 용도로 쓰겠다는 병아리 부화용 온열기를 구경했다. 곁눈질로 나를 보는 아저씨들의 시선에서 웃긴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신기한 웃음거리가 된 하모니카를 닮은 물건을 주섬주섬 주어 담아 박스에 도로 넣었다.


사장님은 내 등을 철썩 치면서 “이렇게 겁이 많아가지고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 그리고 내가 양평에서  공사를 얼마나 했는데, 그것도 생각 안 했겠어? 아이고 참”


규정이라는 게 있다.

대한민국은 겨울 평균 온도에 따라 지하수와 우수관, 집수정의 깊이가 다르게 묻힌다. 법적으로 묻는 깊이가 정해져 있으며, 혹시 몰라 양평 기준 보다 조금 더 깊이 1m 정도 밑에 묻어 두었다고, 단열재도 붙여 놓았다고, 물이 얼 일은 없으며, 모터에서 나오는 열로 충분한 열이 생긴다고 했다.


“아니! 이참에 달걀 부화나 한 번 하셔, 병아리 한 번 길러 보셔”

차 창을 열고 한 번 더 나를 놀리고 돌아갔다.

그 해 겨울 영하 20도가 한 달을 찍었다. 모범생 마냥 규정에 맞춰 지은 건물은 다행히 얼지도 새지도 터지지도 않았다.


 불혹, 사소한 말에 흔들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나이를 지나면서도 말 한마디에 귀가 펄럭이고 마음이 요동을 친다. 걱정이 부화하듯 마음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면 창고 깊숙이 처박은 병아리 부화용 온열기를 생각하며 얇은 마음의 끝 자락에 닿는다.

적당히 걱정하고 때 맞춰 대비하는 능숙하고 유연한 인간이 되고 싶다.

남편에게 불혹을 넘어서 이렇게 잘 흔들려도 되는 것이냐고 혼잣 말처럼 뱉었다.



“그 건 평균 수명이 60 즘 될 때 얘기고”


백세 시대, 그럼 나는 아직 충분히 현혹돼도 되는 나이 임에 틀림없다. 하!


단풍도 떨어지기 전 서리가 내려 개응달에는 살얼음이 얼었다.


이전 08화 8.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