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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향숙 Mar 15. 2023

8.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현장에서 임무가 생겼다

공사 기간 내내 우리는 길 건너 아저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공사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 저기 길 건너에 있으니까 필요한 것 있으시거나 일 손 부족 하시면 부르세요. 건물 짓는 게 궁금하고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서니 신경 쓰지 마시고, 일 손 필요하시면 꼭 말씀하세요”라고 바뀌는 공정 때마다 미리 언지를 드렸다.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까봐 염려 됐다. 


팀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현장에서 임무가 하나 생겼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었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면 아저씨들의 사연을 들었다. 주로 ‘떼인 돈’ 이야기로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그랬다. 일 경험이 짧은 일용직 아저씨들은 옆에서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돈 떼인 이야기를 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돈 안 준 사람네 집 입구에 돈 줄 때까지 큰 바위를 가져 다 놓은 적도 있다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했다.

“어떻게 그렇게 다들 돈을 떼였을까?”

“ 너는 그러지 말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 네가 아저씨들 도망갈까 봐 걱정하는 거랑 같은 맥락이지”


남편 말이 맞았다. 시작도 하지 않은 공사에서 누군가 일을 하다가 돈이 입금되면 도망갔다는 류의 이야기 때문에 더 많이 불안했다. 돈을 어떻게 지불해야 손해가 덜 날지 혹은, 물건을 직접 사다 주는 게 더 나은지 비교해 견적을 내보기도 했고, 업체를 만날 때면, 사업자 등록증과 가게 위치, 사장의 이름과 얼굴을 꼭 확인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한 소리 들을까 봐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귀신같이 내 맘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저씨들과 나 사이에 ‘도망’과’ ‘떼인 돈’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각자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며칠 새, 오고 간 이야기 덕분이었다. 크게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다. 아저씨들은 최근 돈 떼인 것부터 거슬러 올라가 젊은 시절의 이야기까지 술술 말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자기 집을 지은 이야기, 새로 생긴 골프나 낚시 같은 취미 생활, 다시 고향으로 오게 된 사정, 동네를 주름잡던 젊은 시절, 형제와 자식 뒷바라지,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 사별, 이혼 등등의 대소사에, 얘기의 끝은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사는 자식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됐다. 

얹거나 보탤 말이 딱히 없어서, 더울 때는 얼린 커피를 손에 쥐어줬고, 추워진 날에는 ‘군인용’이라고 써진 핫팩을 흔들어 그들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의 불안을 안심시키며 나도 안심할 겸, 돈은 꼭 세 번에 나눠서 줬다. 시작할 때, 중간, 그리고 공사가 끝나는 날. 그들은 제 날짜에 들어오는 돈에 안심했을 테고, 난 그나마 세 번으로 나누어 주는 것에 안심했다.


얘기를 잘 들은 대가는 쏠쏠했다.

여러 사연 중 가장 여러 번 돈을 떼였던 포클레인 사장님은 아들의 창업과 그 성과에 대해 자주 전했다. 새로 만든 중장비 플랫폼에 쓸 사진을 찍으러 현장에 찾아온 아들은 사장님 말처럼 번듯하고 상냥했다. 대견한 아들에게 우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축대 공사가 끝나고 비가 오 던 어느 날, 큰 비에 이상이 없나 확인하러 불쑥 작업실에 들른 사장님은 풋사과즙을 한 박스 내밀었다. 


큰 딸이 살 뺀다고 내린 사과즙에 내 생각이 나셨다고 했다. 진지한 눈 빛의 사장님과 웃음을 참는 남편의 입모양이 번갈아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은 과수원도 있었는데 거기서 난 사과로 ‘정성껏’ 만들었다고 했다. 살이 좀 빠질까 싶어서 감사히 받았다. 누군가 와서 곤조를 피우면 자기 이름을 대라고 여러 번 말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깃든 말에 웃음이 났다. 


가장 많은 사연을 털어놓았던, 하루에 한 번씩은 나를 놀리던 기초 공사를 한 김 사장님은 우리 공사가 끝나고 얼마 후 근처 버섯 농장 해체 작업 중이라며, 그 농장 서 따 온 버섯을 큰 봉지에  덜어주고 가셨다. 저녁에 향이 엄청 진한 표고버섯을 신 라면에 왕창 넣어 끓여 먹었다. 사장님께 버섯의 향과 맛에 찬사를 표했다. 그 버섯이 표고가 아니라 훨씬 비싼 송고 버섯이라는 것을 얼마 후에 알고는, 그날 신 라면의 사치를 반성했다. 


더 추워진 어느 날 아침, 버섯이 더 먹고 싶으면 작업실 근처 마을로 오라고 김사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버섯 공장의 배지를 정리하고 있어 남은 버섯을 수거한다고 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찾았다. 커다란 봉투를 챙기는 나를 보는 남편 눈이 휘둥그랬다. “ 뭐, 여길 다 채우겠다는 건 아니고, 어차피 파지라고 하잖아 있으면 다 따올 거야” 욕심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부끄러움 보다 욕심이 앞섰다.


처음 가본 버섯 농장은 축축하고 따뜻했다. 작업대 위에 놓인 비닐로 감싼 팔뚝 만한 톱밥 배지 위로 봉긋봉긋 올라온 버섯이 보였다. 따는 재미가 있었다. 해 본 적 없는 낚시의 손 맛이 이런 걸까 생각했다. 버섯을 따고 있으니 시골에 살게 된 게 실감이 났다. 


이 후에도 여러 번 송고버섯을 사 먹었지만, 처음의 강렬함은 아니었다.


부동산에서 한참 동안 그간의 사정을 전하며 우리에게 땅을 팔았던 강 사장님은 이후에도 가끔 뵙게 되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어깨에 쌀 한 자루를 메고 오셨다. 그래도 여기에 왔으니 이곳 쌀 맛은 조금 봐야지 않겠느냐며 점심 드시고 가시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기어코 쌀 만 문 앞에 두고 가셨다. 지나가다 궁금해서 들렸다는 집을 지을 예정인 근처의 사람들도 간간히 지속적으로 찾아와 그 간의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초면의 긴 이야기는 꿀, 배추, 무, 밤, 배, 복숭아, 등등등으로 돌아왔다.


며칠 사이에 말 몇 마디 오고 갔을 뿐인 것에 비해, 그들이 내어 준 따듯한 곁이 융숭했다. 투박하고 꾸밈없는 맘이 오롯이 전해졌다. 인이 박인 미소 띤 얼굴로 대했을 내 처신이 못내 아쉬웠다. 


이곳의 무뚝뚝함 안에 담긴 마음이 좋았다. 도시의 잘 다듬어진 상냥함에 비해 날렵하지도, 매끄럽지 않은 친절이 훨씬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아는 사람이 자꾸 생겨나고 뭘 얻어먹어서 인지 이제 이곳에 진짜로 사는 느낌에 어정쩡했던 마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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