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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향숙 Mar 15. 2023

7. 달 빛 아래

잠수함이 떴습니다.


공사 기간 중, 가장 큰 사건이 벌어진 날.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가로등이 없는 곳,

달 빛, 너무 밝아 달이 푸르스름해 보였다. 달이 이렇게 밝은 것을 본 적이 있었나? 내려다 보이는 길 끝의 먼 산이 밝게 빛났다.


낮 동안 요란스럽게 다시 묻은 텅 빈 정화조에 물 받는 소리만 쩌렁쩌렁 울렸다.


이 땅에서 10년 정도를 지내고 나이가 더 들면 이곳 보다 겨울이 짧고 따뜻한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때를 대비해 시설물 규정에 맞춰 건축할 준비를 했다. 우리가 이곳을 나가고 나면 그다음 날 어떤 업종의 가게가 들어오더라도 장사하는데 무리 없이 설치를 해 두기로 했다. 그중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전기와, 상하수도였다. 영업용 전기에 부족함이 없게 증량해 연결하고, 도시와 달리 상하수도가 연결이 되지 않은 지역이라 지하수를 따로 파고, 개인 정화시절을 따로 갖추어야 했다. 정화조는 기준이 가장 큰 일반음식점에도 여유로운 정도로 14톤짜리로 묻기로 했다.


양평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규정상 플라스틱 정화조만 땅에 묻을 수 없다. 나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건물에 지낼지언정, 정화조는 오수가 유실 됐을 때 땅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시멘트로 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설치해야 했다. 박스는 콘크리트 집을 짓는 과정과 같았다. 이 주가 넘어서야 매립할 수 있었다.


드디어 대형 트레일러에 실린 커다란 정화조가 도착했다.


잠수함,

여기저기서 잠수함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정화조는 정말 잠수함처럼 보였다.

크레인이 파랗고 크고 긴 정화조를 천천히 들어 조심스레 박스 안에 넣었다. 딱 맞게 들어앉은 정화조를 보고 있자니 공정 하나가 넘어간 게 실감이 났다.

“자 사장님들 이제 여기다가 물을 반 이상 받으세요.”

사장님은 다른 공사 현장에 일이 생겨 급히 가야 한다고 우리에게 임무를 맡기고 자리를 떴다.

깊어서 속이 보이지도 않는 정화조에서 물이 차는 소리가 촬촬촬 울렸다. 얼마만큼 받아야 하는 걸까?

손이 시려 호호 불며 해질 때까지 물을 받다가 집에 왔다. 핸드폰 불 빛으로 비춰도 깊은 정화조 속이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14톤짜리 정화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잠수함이 떴어” 다음날 아침 현장에 도착하니 일찍 나온 사장님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시멘트 박스 안에 고이 있어야 할 정화조가 동동 떠 있었다. 시멘트 박스 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모래를 부었는데 물양이 적어 정화조가 부력으로 모래를 밀고 올라와 버렸다.


“아니 물을 반 이상 받으랬더니 얼마큼 받은 거예요?!” 라며 채근하는 사장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이 사태를 수습하는데 비용이 얼마가 추가될 것인가? 그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정화조를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그 안에 들어간 모레를 다시 파 내려면 포클레인이 와야 하고. 한 대 가지고 안 될 수도 있고, 작은 포클레인은 얼마였더라? 60+60+40+30+30+…’

알고 있는 가격을 더하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왜 물을 받으라고 했는지, 자세히 설명도 않고 가버렸던 사장님한테 짜증이 났다.

남편을 따로 불러 조용히 복화술로 말했다.

“예비비에서 해결하게 할 거야, 나 돈 못줘, 더 요구해도 돈 없다고 해, 내가 볼 때는 어떻게든 돼”


 난 사장님께 투정 반 아쉬운 소리 반으로 말했다.

“아 이렇게 중요한 일이었으면 꽉 받으라고 하시지요, 대강 말씀하시고 사장님 ‘볼 일’ 보러 가셔서 저희는 잘 모르니까… 몰라 몰라 난 몰라” 잘 안 되는 콧소리를 섞었다.

‘볼 일’에 일부러 힘을 주었다. 내 현장 놔두고 다른 현장 간 것에 대해 상기시키려는 얄팍한 수였다.

연신 담배만 피우며  아이씨 아이씨 한 숨을 쉬던 사장님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크레인 후배, 6w 포클레인 친구, 3w 포클레인 후배, 그리고 건축 사무소 소장님이 연달아 도착했다.


 뜬 잠수함을 구경하러 왔다며 모두가 핸드폰 카메라를 열어 사진을 찍고, 사장님을 놀렸다. 이걸 어떻게 띄웠냐  네가 이러고도 전문가냐, 내일이면 동네방네 다 소문이 나서 이제 너는 얼굴을 못 들 거라는 둥, 나를 제외하고 모두 하나 같이 심각하지 않았다. 아저씨들 사이에 섞여 같이 웃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저이는 왜 저기서 같이 웃고 있나? 남의 일인가?’ 생각하며 남편을 끌어당겼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정말 이러고만 있을 건지… 그래 여태껏 내 똥줄만 탔지, 남에 똥줄 타는 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할 거예요~~~~ 나 울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 울고 싶었다. 멀리서 사장님이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며 “걱정 말고 있어 봐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둑어둑 해 진 정화조 옆을 트럭 두 대가 라이트를 비추고, 그 요란한 친구들은 일사불란하게 정화조를 들고 모래를 퍼냈다. 그리고 다시 정화조를 넣었다.


늦은 저녁 문을 연 두부 집에서 밥을 먹었다. 세상 재미있는 일을 구경했던 것처럼 신이 난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사장님을 놀렸다. 사이를 틈타 넌지시 돈 이야기를 하는 사장님한테 단호히 말했다.

“몰라 난, 예비비에서 해결해 줘요. 안 그럼 현금서비스받아야 해요. 물은 오늘 내가 밤을 새워서라도 받을 거야 나머지는 사장님이 해결해 난 몰라.”


늦은 밤 정화조옆, 돌 위에 앉아 말없이 물소리를 들으며 달 빛 아래 반짝이는 깨밭을 내려다봤다. 낮의 소란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둠이 빛나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 훤히 보이는 어둠 아래 번갈아 가며 호수를 잡고 말없이 물을 받았다. 주머니 속 캔 커피가 따뜻했다. 짙고 무거운 안개가 내려오는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걱정을 조금 더 내려놓아도 충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내 손을 안 거치고도 유유히 흘러갔다. 낮 동안의 옹졸한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흰 봉투에 돈을 넣어 사장님께 드렸다. 삼겹살에 소주값이니 ‘어제의 용사’들과 한 잔 하시라고 감사를 전했다.


그날의 분주한 마음은  고요했던 달 빛으로만 기억에 남았다.



 김사장님과 친구들은 재미있는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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