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주의자의 기록 예찬
남편은 나의 조사를 올 스톱 시켰다.
“그만! 다 버려 문서!” 보기 드물게 아주 단호했다.
단호한 말에 “그런 게 아니야” 라며 부정부터 하고 봤다. 혹여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그때 대처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되는 것만 찾아놨어? 되는 건? 적당히 해.”
들켰다 또, 그렇게 자주 내 속의 불안을 들키고 만다.
말을 얼버무린 채 방에 들어왔다. 적당히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아가 났다. 모르니까 대비하려고 하는 거지 의도는 무시한 채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는 남편한테 속이 상했다. 왜 직접 해 보고 싶단 말을 꺼내서 사람 신간을 볶는 건지, 누워서 입을 삐죽거리다가 튀어나온 입술을 말아 이 사이로 넣었다.
나도 안다. 무슨 말인지는,
바탕화면에는 공사 관련 법규, 문서 등등의 폴더를 만들고 알지도 못하는 말들을 주어 담았다. 거기에 더 해 유명 건축 정보 카페에 가입해 직접 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매일 밤 나는 남편에게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류의 근거 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놨다. 됐다 보다는 안 됐다 위주의 얘기였다. 분명히 그 말을 할 때 내 눈은 평소에 비해 동그랗고 흰자가 많이 보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모은 자료들은 대부분 하면 안 되는 규정, 잘 못 된 예를 수집했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염려가 지나쳤다. 그런 상황을 찾아 놓는다고 시작도 안 한 공사가 과연 안전할까?
여행을 가도 숙소와 루트와 식당이 1안과 2안으로 준비돼야 안심이 된다. 그렇다고 계획에 집착해 그대로 안 되는걸 못 견디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대책이 없는 게 두려울 뿐,
계획이라고 짜는 것들의 대다수는 염려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능수능란한 대처를 하고 싶은 완벽하지 못 한 인간이 꿈꾸는 완벽, 아마 그 반증 같은 것 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작업실을 계획할 때부터 해 볼 수 있는 것은 직접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기초공사와 패널과 설비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나머지 실내공사와 외벽 타일, 정원은 직접 하자고 했었다.
남편이 말하는 ‘직접’하겠다는 게 영, 영… 영! 불안했다. 그 직접에 나도 포함되어 있으니,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마음은 반반이었다. 멋지게 직접 해 보고도 싶고, 마음 편히 전문가에게 맡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의사를 묻는 남편에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밍밍한 으. 어. 엉 이런 애매한 대답을 해 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책을 마련하고 싶지만, 적당한 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렇지 못할 것도 같았다. 동료 몇몇이 최근에 집이나 작업실을 지었다. 축하도 하고 자문도 구할 겸 들려서 짓는 동안 어땠는지 물어보면 약속한 듯 힘들었다고, 많이 힘들었다고, 짓지 말고 사라고, 하다가 10년 늙어 버린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뭐가 힘들었어?”라고 물어보면 명확히 답을 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아휴 정말 힘들었어”라고 할 뿐.
얼마나 힘든 건지 뭐가 힘든 건지 궁금증이 쌓여갔다.
건축 사무소와 설계사무소를 여러 곳을 돌면서도 마찬 가지였다.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답답했다. 견적서에 ‘00 일괄’이라고 뭉뚱그려진 부분들을 해석하고 싶었다. 속 시원히 알고 싶은데 물을 곳이 마뜩지 않았다.
‘이럴 거면 정말 직접 해봐? 말어?’ 이런 말들이 속에서 새어 나왔다. 기초 공사 견적을 의뢰해 두고 알아보는 중 사무실도 아닌, 현장으로 오라는 한 사장님의 “얼마를 원하시는데요?”라는 질문에 결정적으로 직접 하겠다는 마음이 솟아 올랐다. 웃으며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니, 그럼 내가 얼마를 부르면 거기에 맞춰 주겠다는 거야 뭐야? 뭐 저래. 난 공정에 뭐가 들어 가는지 알고 싶은 거라고! 이럴 거면 진짜 직접 한다!” 차에 타서 투덜거렸다. 남편이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고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말은 안 했지만 그래? 같은 느낌이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미, 직접 한다는 말을 뱉었다.
갑자기 왜 힘든지, 정말 10년을 늙는지가 미친 듯이 궁금 해졌다. 물어서 해결이 안 된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게 정말 나만 궁금한 건가? 분명 궁금한 사람이 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잘해서 그렇게 궁금한 사람들과 자리를 만드는 건 어떨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설레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갔다.
“오빠 나 할래, 직접 해 볼래. 그런데 오빠 이거 할 거면 제대로 하자! 과정 사진도 찍고 기록도 상세하게 해서 우리처럼 직접 해 보고 싶은데 물어볼 때 없는 사람들한테 자세하게 얘기해주자! 그리고 진짜 10년 늙는지 안 늙는지 보고, 늙으면 왜 늙는지 결론을 내자! 그래서 말인데, 과정 전부를 기록 한 파일을 만들고 싶어”
걱정을 모아 두던 파일 대신 야무지게 모은 세심한 기록으로 불안함을 잠식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나처럼 ‘기록주의자’들을 모아 공유하고 싶었다.
시작도 안 한 공사 앞에 엑셀 파일을 떡하니 만들었다. 마음이 긍정적이 되었다. 염려와 불안이 담기지 않아도 차곡차곡 기록될 파일이, 아직 빈 이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하얀색 화면에 얇은 빈칸 들이 빼곡했다.
저곳에 나도 채울 수 있을까?
미뤄 두었던 좋아하는 것 찾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정했을지 모르는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한 번 깨 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미뤄 두었던 원초적 질문에 다시금 당황했지만 공사 과정처럼 차근히 살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면 그 사람을 좀 알아야 하는데,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크게 없다.
이럴 수가, 갑자기 생각하니 남편이 나 보다 나를 더 잘 알 것 같았다.
물어볼 곳이 없는 것은 나나 작업실이나 마찬 가지였다.
늦여름 건축 사무소에 남편이 직접 그린 도면을 맡겼다. 나도 어디에다 맡겨 허가를 내고 탐색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