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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향숙 Mar 15. 2023

4. 두 번째 땅.

양평 끝자락, 저 멀리 강원도.


서두르지 않았지만 마냥 땅 만 보고 다닐 수도 없었다.

땅을 보러 가기 전에는 처음부터 내 땅이었던 것처럼 ‘아 이 땅이야!’ 하면서 느낌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거 같은 환상이 있었지만,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땅인가 싶으면 저 땅 같고, 뭔가 아쉬움이 꼭 하나씩 남았다.


남편이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전에 석산리에서 오다가 비포장 길 갔던 거 기억나느냐고, 그때 길 옆에 길고 넓은 땅이 기억나냐 물었다.


기억이 났다. 가을이었고, 김밥을 싸서 집에서 조금 먼 계곡에 가서 먹으려다 바람이 너무 불어 그냥 돌아오다가 새로 나고 있는 길로 들어서서 낯 선 곳을 지나왔었다. 동네가 아늑하고 낮은 언덕에 땅이었다. 둘이서 여기 참 좋다고, 그렇지만 비포장 도로만 아니면, 땅이 조금만 작으면 좋겠다던 생각이 났다.


김밥을 싸서 갔던 산, 그 때 사진이 사진첩에 남아있었다.


“어 오빠 기억나 왜?”

“거기 그 땅이 나왔어. 지금 부동산에 가는 길이야. 다녀와서 전화할게.”

상기된 목소리에 왠지 이 번에는 진짜 우리 땅이 생기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봤던 땅이고 느낌이 좋았던 곳이라 내심 그곳이 적당 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른 봄, 새 학기처럼 이쯤 시작하면 좋을 것 만 같았다.


다녀온 남편이 사진을 보내왔다. 털다 남은 깻대가 무성했다. 살금살금 꽃이 피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서야 땅을 봤다. 남편이 추려서 보여주었던 열 개 가까운 땅 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다. 더군다나 비포장이던 길은 포장을 마치고 번듯한 2차선 도로가 되어 있었다.


“저 나무가 마음에 들어” 남편의 손 끝은 나즈막 한 뒷 산을 향했다. 삐죽이 솟은 잣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줄자로 땅 크기를 재고, 사진을 찍었다. 지도에서 지목을 확인했다. 처음 땅을 샀을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최대한 꼼꼼히 땅을 살폈다.

나침반 위에 E라고 표시된 쪽이 멀찌감치 내려다 보였다.


“오빠 저기 저 끝이 강원도야?”

“응,”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멀리 강원도가 보이는 땅이 마음에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땅의 정보를 계속 찾아보면서 장단점을 살폈다. 길이 없던 땅과는 달리 번듯한 아스팔트 도로가 붙어있다는 게 마음을 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남편이 주중에 부동산과 계약을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땅 주인이 옆 땅 가격을 알려 줬다고 평당 오만 원을 더 달라고 했다. 사려고 했던 가격 보다 몇 천만 원이 추가되니 멈칫했다.


우선 계약을 멈췄고 다시 다른 땅을 보기로 했다.

“이상하네… 우리 땅 같았는데…” 불쑥 그런 마음이 들었다.

계약까지 간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못내 아쉬웠다. 하려다가 마니까 다시 똥줄이 조금씩 탔다. 그렇지만 서둘지 않고 신중하게 이 번에는 꼭 타이밍을 맞춰 보겠다고 다짐했다. 각자 부동산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사이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났다.

아직까지 그때의 마음을 이곳에 적을 수가 없다.

일 년 반 동안 ‘마음의 준비’만 오백 번 도 넘게 한 거 같은데,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저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가락에 힘을 꼭 주고, 이를 꽉 깨물었을 뿐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장례를 치르는 게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맏이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었다고 남편이 얘기해 주었다. 얘기가 오고 간 지 두 달이 지났고, 경황이 없어 상을 치르고 연락하기로 했다.


한 달 후,

부동산 사장님의 제안으로 적당한 가격의 원만한 합의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한 시간 넘게 그 간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빠와 동년배의 어르신은 땅을 파신 게 시원 섭섭해 보였다. 말씀에서 오래도록 애정을 갖은 게 느껴졌다. 잘 가꾸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땅을 판 기념으로 점심을 사겠다고 하셨다. 부동산 사장님 두 분과 함께 고깃집에서 잔을 부딪히고 땅을 사고판 것에 대해 축하를 나눴다. 처음 있는 일이라 그런지 신기하고 낯설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시작의 단추가 잘 끼워진 것 같아 마음이 넉넉해졌다.


그날 밤, 엄마를 떠 올렸다. 그동안 나의 작은 부름이, 쉬고 있는 엄마를 깨울까 하는 생각에 그리움마저도 서둘러 누그러트렸다. 짧은 생각에도 금세 목구멍이 울렁거렸다. 침을 꿀꺽꿀꺽 삼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엄마 사진을 열고 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어쩌면, 엄마가 사정을 알고 마무리를 지어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엄마가 마무리 지어 준 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를 돌봤듯이 이곳도 정성 들여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미뤄 두었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멈출 수가 없어 소리 없이 내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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