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명품백이 왜 나와
그래 가방값! 명품백 하나 샀다 치고 땅을 찾자!
내가 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힌 합리화였다. 토목 공사를 앞두고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나는 부분은 여기저기 물어보면 견적은 다 나온다. 땅을 파거나 흙을 붓고 파내는 일은 그 말 따라 ‘케바케’였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은 돈이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평평하고 고른 정도의 밭이지만, 공사가 시작되면 땅 밑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간 분주히 카페를 들락날락한 결과 건축의 시작은 토목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고, 포클레인을 구하면 되는 일이었다. 양평에 있는 포클레인 중장비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혹시라도 견적이 맞아서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야무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어눌하게 보이면 덤터기 라도 쓰일까 봐 걱정스러워, 말을 여러 번 연습해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는 포클레인 기사님을 찾았다. 목소리가 시원한 것이 느낌이 왔다. 더군다나 생활의 달인에 나왔다는 포클레인 기사님을 찾은 것이다. 사무실에서 얘기가 오고 가는 중, 포클레인으로 직접 볼펜 줍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운이 좋구나 시작이 좋구나’ 이렇게 능숙한 분을 한 번에 만나는구나 쾌재를 불렀다.
섣불리 금액을 말하지 않고 현장을 보고 가격을 정하자는 기사님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우리 땅에 다녀온 기사님은 앞 쪽의 엉성한 돌을 빼고 시멘트로 된 축대를 쌓아 올리면 땅 길이가 길어 꽤 많은 평수의 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했다. 축대를 쌓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금액도 잘 모르는 데다가 빠듯하게 시작하는 마당에 축대까지 신경 쓸 겨를 이 없어 예비비에 추가해 놓지 않았다. 가진 돈에서 공사를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예상외의 돈이 지출되는 게 걱정이 됐다. 공사비가 늘은 사람은 봤어도 줄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앞 뒤로 먹어 들어간 땅을 정리하면 못해도 60평 넘는 땅이 생긴다니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덜컥 기사님의 말을 믿고 앞뒤 없이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고 남편에게 물었다. “하면 좋은데 돈이 얼마나 들을지가 엄두가 안 나네…” 축대를 쌓지 않고 데크로 둘이서 마무리하는데 3~400 정도를 예상했는데, 더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축대 쌓는 팀에게 견적을 물어본 기사님께 연락이 왔다. 우리가 말 한 1m 미만으로 낮게 쌓으면 칠백만 원 정도가 든 다고 했다. 애매한 금액차이였다. 삼백 정도를 더 들여 큰 아파트 평수의 땅을 찾는다니 벌써 거기에 심고 싶던 나무들을 머릿속에 늘어 세웠다. 번듯한 축대가 길게 뻗어 있으면 깔끔하고, 품 마저 덜 든다 생각하니 몹시 하고 싶었다.
문득, 명품백이 떠올랐다. 나한테 없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고가의 물건이다. 가방 대신 축대라고 생각하니, 크기로 치자면 무려 그 가방들을 천 개쯤 쌓아도 될 만한데, 가격은 손바닥 보다 좀 큰 가방값 이라니 얼마든지 해도 될 일이라 여겨졌다. 홈 쇼핑에서 지금 당장 안 사면 엄청 손해 보는 듯 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 호객 행위처럼 스스로를 아주 잘 설득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진지하게 가방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방을 산 셈 치고 축대를 쌓으면 될 거라고 말했다. 이상한 것을 본 듯이 나를 보는 그의 눈을 똑바로 봤다. 어떻게 끼워 맞춘 합리화인데 여기서 눈 빛이 흔들리면 안 됐다.
말 귀를 못 알아듣고 가방이 갖고 싶냐고 묻는 남편에게 다시 설명했다. 대체 있지도 않은 그 가방 이야기를 왜 하느냐는 것이다. 그럼 있지 않은 가방에 비유하지 어디에 비유를 할까? 합리화는 그런 것이다. 동떨어 진 것을 대입할수록 묘하게 설득력이 올라간다. 만약에 평소에 갖고 싶던 신형 노트북을 비교하면, 그 돈을 아껴서 염탐 중인 새 프로세스를 장착한 컴퓨터를 사고 말지 쪽으로 설득 됐을 수도 있다.
포클레인 기사님이 동네에 시멘트 블록 공장이 있어서 자기가 발주를 넣으면 우리가 사는 것보다 싸게, 그러니까 업자 가격에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걸 우주의 기운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런 것이 나한테 밀려오는 것 같았다.
장부를 펼쳐 시작하지도 앉은 공사의 금액에 -700이라고 표시했다. 고민 끝에 축대를 쌓기로 했다.
축대 쌓는 팀이 현장 답사를 왔다. 땅이 평평 하가는 한데 경사가 있어서 낮은 쪽을 기준으로 평을 잡으면, 가장 높은 쪽은 3m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쌓으려 던 1m 미만으로는 땅 모양을 바로 잡고 많은 평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다. 쌓았을 때 장점이 훨씬 많았다. 그렇지만 금액은 예상 금액에서 크게 벗어났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난 그 60평이 무척 찾고 싶은데 말이다.
“오빠… 어떤 가방은 7~800 정도 한대, 친구들만 봐도 가방은 두세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
“너 그 가방 얘기 그 만 해” 남편이 단호히 말하는 바람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비싼 가방 세 개 값으로 길고 높은 축대를 쌓았다. 만족스러웠다. 물론 합리적 합리화가 먹혀서 그런 것은 아니다. 유용한 합리화는 공사 내내 계속 됐다. 벽돌, 잔디, 파이프 등등, 목돈이 빠져나갈 때마다 다른 작고 아담하고 값 비싼 물건으로 환산해, 커다란 것을 값싸게 얻는 것에 취해 여기저기 떠 벌렸으나, 아무도 귀 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지, 언니는 대체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왜 하는 거야?”
전화기 너머 동생이 조잘조잘 지껄였다.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작고 비싼 가방 값으로 앞 땅과 뒷 땅을 정비해 400평을 거의 다 찾게 됐다. 돈 쓴 보람, 그런 것이다. 그리고 크기가 작고 평소에 안 쓰는 물건일수록 합리화하기에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나저나, 나는 왜 그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