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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사 Apr 05. 2023

인화점

집에 가고 싶은 어린아이들. 일 뿐



건물들의 불이 일제히 꺼지는 시간. 9시 59분을 막 지나는 시점에서 공간 전체에 속삭이듯이 조용히 울리는 군인들의 목소리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우울한 소리들이 내게서 차츰 멀어진다.

현재 나는 수상한 자가 침입했을 때 즉각 보고하여 신속한 대처를 일임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겉치레일 뿐. 이 시기의 군대라는 조직에서 그보다 더 중요시되는 임무란. 

나와 같은 병사들의 극단적 행동이나 일탈행위를 주시하는 임무가 주가 되어버리는 법. 그래서 난 이 눅눅한 복도에 앉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적의 ㅈ자도 보이지 않는 불편한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침번의 A to Z이다.


평소처럼 머릿속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어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은 급격하게 달라지지 못한다. 달라지지는 못하지만 그날은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고개를 숙여보니 불침번의 책상에 휘갈겨져 있는 여느 때와 같은 문장들이 내 현실을 비웃음과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도 가장 정적이라 할 수 있는 곳의 일부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집집집집집집집집집. 집 가고 싶다. x 같은 곳. 군대 너무 좋아. 군인 너무 멋져.  

이 외에도 광적이고 상투적이고 유치 찬란한 글자들이 한때 나무였던 책상의 밑둥치에 무수히 쓰여있었다.

하나같이 삐뚜름한 글씨체로 하여금 이것이 20대 애새끼들의 잔흔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으리라.

이것들은 그저 피젯 fidget을 위한 글씨이기에 고장 난 내비게이션처럼 어떤 목표를 가지고 쓴 글자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겪어본 자는 조금이나마 저 글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쓰여진 것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을 둔 곳으로의 귀환을.


집을 부르짖는 군인의 외침이 마치 길을 잃어버린 어린이의 울음처럼 느껴진다.

'집으로 보내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도, 아니 아이라서 그런가 무심코 자신의 터전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

마음의 안정을 넘어 생존을 원하기에.

그러나 다 큰 군인은 다르다. 확실한 목표를 가진 채로 -타인이 부여했을 뿐이지만- 이곳에 잠시 몸담을 뿐인데도 왜인지 이들은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나 어리숙한 철부지들을 끌고 와서 나라를 위한 도구로 쓰다가 갈아 끼우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은 인간이 우리가 징집병을 지칭하는 단어인 용사의 현재 위치라고 느낀다.

우리 모두가 일체 개입하지 않은 조상님들의 국가 차원의 문제를 우리 세대까지 기어코 끌고 와서는 제대로 해결하지도, 끝맺지도 못하고선 자기들 사정대로 데려온 주제에 감사하다고 성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탄피 대우를 해준다. 

탄피는 무엇인가. 그저 총알을 발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품이다. 탄피는 적을 끝장내기 위한 탄환을 효율적으로 발사하기 위해 존재할 뿐인 객체이. 그 탄피와 우리의 입지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군인들의 반수 이상이 국가의 안녕을 지키는 방벽이자 일종의 보험인 것이다. 

내게 있어 이러한 체제는 너무나도 조악하게만 느껴진다. 소년병 제도는 un협약 아래에 불법이니 쓸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과 특별히 차이는 없지만 엄연히 20세에 들어섬으로써 룰의 바깥으로 벗어나 쓰기 좋은 놈들.

자의성이 충분히 확립되지 않은 20대 초중반은

최소한의 인지력을 갖춘 통제하기 좋은 부품으로써 참 적절하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커버린 애매하게 늙은 놈들보단 여러모로 다루기도 쉬워 부랴부랴 데려 왔을 뿐인 국가 방어체계란 과연 든든하게 느껴지는가? 어차피 전시상황에 돌입하면 경험 많으신 간부님들이 주 전력일 테니 우리는 탄피신세가 될게 뻔히 보인다.


우리는 어엿한 군인이 될 수 없다. 그야말로 인화점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놈들이기에.

불타오르기 위한 가장 낮은 온도인 인화점의 시기인 우리들이 항상 화가 나있는 이유를 이곳에라도 쓰고 싶어졌다.


인도 속담엔 이런 말이 있더라. 소리 내어 구걸하지 않는 자는 소리 없이 굶어 죽는다.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하는 문제들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되어 돌아올까?

아무리 포장해 봐도 단단히 잘못됐다 느껴지는 체계가 당연하다는 듯이 채택되고 인정되는 사회에서 내가 어디까지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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