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아주. 꽉 찬 우주. 그러나 텅 빈 우주.
나는 어릴 때부터 우주 너머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일지 알고서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건지 아연했다.
그야 그랬다. 한차례 성장하고 나서 지구가 푸른 점으로 변해가는 그 모습을 보고는 즐거움보다는 공허함을 더 진하게 느꼈으니까.
자. 상상해 본다.
지구가 점점 멀어짐과 동시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사람의 목소리를 담은 통신이 -가족의 음성을 녹음해 둘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어느덧 멀어지는 거리에 비례해서 통신상태가 좋지 않은 구세대의 전파처럼 뚝. 뚝. 끊어졌다.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듯 울리려고 노력하는 이 목소리가 이미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관측이 가능한 지구의 푸른 존재감이 본인은 이 우주 속에 언제까지고 버젓이 존재할 것이라고 상기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려 하늘로 눈을 쳐들었을 때 봤던 그때의 풍경과 놀랍도록 똑같은 광경이다. 빛의 속도로 움직임에 스쳐가는 행성들이 하늘에서 그어지는 빗방울처럼 수없이 많고, 또한 덧없기에 그 속에 하나의 점으로써 존재하는 하찮은 지구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갔다는 사실이 갈수록 경외스러워지기만 했다.
차갑고 새카만 허공에 가득 찬 한낱 빗방울과도 같을 텐데 지구는 이렇게나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내 앞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도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게만 보인다.
대체 어느 정도의 확률로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소중히 태어나서 소중히 자라와 무사히 여기까지 봉착하였다. 가지치기당한 수많은 가능성들을 자연스럽게 밟고 천천히 살아간다. 우리의 모습은 떨어지는 빗방울 한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방울로써 땅을 적시는 힘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찍어 누른다.
그런 기운찬 의지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늘도 나는
빅뱅의 폭발과 난포의 폭발이 서로 연관이 없기를 바라는 쓸데없는 공상과 함께 여전히 유한할 삶을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