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같은 것에 담겼을 뿐인 나
오랜만의 동해 가운데쯤에서 한층 온순해진 바람을 맞았다.
배경에 불과할 뿐인 내가 또 다른 배경을 카메라로 찍어댄다. 참 신기하다.
이곳에서 이렇게 즐거워지다 보면 이 바다는 나에게 찰나의 약품이 되어준다.
딱 작년 여름에도 , 머나먼 3년 전에도 이곳을 방문했었는데 나에게 있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서해바다는 아무리 시기적절한 때에 찾아가 보아도 이곳에 당연하다는 듯 만연한 창쾌함을 찾아볼 수 없다. 발은 차갑고 모래는 화끈거리며 얼어붙을 듯한 바람에도 섞여있는 온기가 지금부터가 진짜 너의 시작점이라고 말해주는 듯 볼을 스쳤다.
사실이 그랬다. 과거보다 한층 더 다양한 군상을 거쳐오며 내 시각은 조금이지만 확실하게 변했다.
비록 몸에 밴 태도는 같을지언정 조금은 달라진 시선으로 이 바다를 대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좀 더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을지조차 확신을 부여할 수 없다. 하나 덧붙이자면 내게 펼쳐질 풍경에 나 자신이 그곳에 어울릴만한 인간이 될지조차도.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거치다 보니 문득 내가 찍은 사진의 레이아웃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진에 담긴 아름답다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자격이 있어서 이곳에 서있던 게 아닐 것이다.
그렇지. 이제 조금은 흘러가듯이 맡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