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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사 Mar 18. 2024

내 정신은 피부 위에만 존재했다는 것을




지나버린 계절들을 아직 기억한다.

이미 머나멀다 못해 다른 사람의 것처럼도 느껴지게 돼버린 어느 과거. 나뭇잎을 뚫고 가려는 햇빛의 온기와 그 그늘이 만든 시원함이 이뤄낸 모순의 시너지를 아직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어리석었다.

마치 저번주 목요일에 태어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일의 책임을 위해서, 연명을 위해서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경시하고 미래를 숭배했다.


그 꼴은 마치 이 지구의 지표면과도 같았다.

세월의 토석이 겹겹이 쌓이고 그 단층에 새겨진 수많은 화석들의 근원을 꿈에도 신경 쓰지 않고 땅을 딛는 나처럼 내 피부도 지금껏 지나온 시간들을 똑똑히 품고 있었는데도, 내 피부 밑에는 그 시간들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나는 내 몸도, 마음도 그저 테세우스의 배라고만 여긴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숭배하던 미래는 거대한 심해와도 같이 변모하여 끝없는 동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감히 발조차 들이지 못하는 곳으로 확정된다.


정말 바보 같았지? 지금도 10년 전의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도 매 순간 미지의 내후년을 숭배해 왔어.

그래서 배터리가 다 나가버렸던 거야. 바보 같게도 내 몸 바깥쪽의 지표면만 중시하며 나의 내면의 화석들을 깡그리 없던 것 취급하는 놈이 어떻게 감히 다른 것을 함유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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