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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책과 힘과 벽

by 막내딸

엄마는

딸 다섯과 엄마를 아는 모든 이에게

공통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각자에게 다른 투영을 하신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막내인 나에겐

엄마는 이상을 투영하신 것 같다.


현실에서

나는 부족함과

현실적인 타협과 그로 인해 다다르지 못한 목적에

허우적대는 워킹맘.

그럼에도

엄마는 그 고군분투마저 숭고하게 여겨주는 내 엄마였다.


나를 다독이던 엄마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엄마

무엇을 하든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엄마


내게 유일했던 엄마.

나의 지지기반이었던 엄마.


나의 엄마는 똑똑하고 품위 있고 인격적으로 성숙했던 어른이었다고 자부한다.

내가 만나고 겪어봤던 어른 중에서

나의 엄마는 려깊고 바른 분이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겪은 어른들... 그 품격과 인품의 극과극을 겪어보며,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그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명료해졌다. )


나의 엄마가 깊고 성숙했던 건

엄마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외로움과 연민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유하고 명망 있던 집안의 고명딸로 태어난 엄마는 여섯 살에 엄마를 잃으면서 필연적 외로움을 안고 살게 되었고 인간은 모두 알고 보면 불쌍한 존재라고 여겼던 것 같다.

엄마는 엄마가 없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 때면 엄마는 그 사람도 사느라 힘들고,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다 같이 사는 게 세상이라 하셨다.


엄마 우리 어릴 적 소공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언니들에게는 그 이야기를 읽어주다 오열하는 엄마를 보곤 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상처를 하시고 재혼을 하시고

엄마에게 남매들이 생기면서

엄마는 한 집안의 장녀가 되었지만,

동시에 외로웠다고 했다.


부유했던 집안이

사람들로 인해서 서서히 저물어가면서

엄마의 꿈도 저물어져 갔던 것 같다.

똑똑하고 독서하며 사색하길 좋아하는 사려 깊은 학생이었던 엄마는 선생님이 되고자 했으나, 저물어가는 집안의 사업을 돕게 된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지방 소도시에 유일한 주유소를 운영했고, 운수 회사가 경쟁자가 되면서 기반을 잃어가게 되는데 여기에는 내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사업을 돕다가

우연히

(영화 같은 만남은 다음에)

아빠를 만나게 되고,

아빠와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되었을 것이다.


아빠 집안 역시 역사를 들어보면 한국 근대사가 펼쳐지는 풍부한 이야기가 많은 집이다.

역시 부유하고, 고학력에다가 미남인 아빠였으니 엄마도 그때는 아빠를 무척 좋아했겠지?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애증을 여기에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딸 다섯 키우며 사랑과 애증으로 점철된... 좀 다르다면 어쨌든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언제나 바랐던 아빠와 정신 바짝 차리고 딸 다섯을 키웠던 엄마와의 얘기가 될 것이다.


시집온 아빠 집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야기로 대신한다.

큰아버지와 아빠의 터울이 커 엄마가 시집왔을 땐,

사촌오빠(내기준)들은 이미 초중고생이었고,

엄마는 그런 오빠들을 데리고 공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바쁘고 고되게 시집살이를 해야 했던 엄마는

사촌 오빠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

못다 한 꿈을 조금은 이뤄냈을까.


재밌는 건

그때 살았던 집은 일본식 가옥으로.

전 집주인은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일본인 중학교 교장선생의 집이었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까지 살았고

넓디넓은 정원과 나무와 꽃과 숲이 어루어진 보기 드문 크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6.25 전쟁이 터져 피난을 다녀올 때마다

그 집은 한국군 정부의 본부였다가.

공산군의 본부였다가.

그렇게 바뀌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학교를 세워야 했는데,

우리 집 한쪽 창고들이

그 지역 중학교 1,2회 입학생들의 교실로 쓰였다고 한다.

나 어릴 적 학교 이름이 쓰인 책걸상을 보고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 이야기를 엄마 장례식장에서

엄마에게 공부를 배웠던 큰 사촌오빠한테 듣게 되었다.


어쨌든

다섯 딸 중 한 명이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집안의 역사와 자녀들의 스토리를 봤을 때

엄마의 꿈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엄마한테 공부를 배웠던

사촌 오빠 한 명은

엄마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목놓아 울며 곡을 했다.

이때 나의 회사분들이 막 도착해서 조문을 마친 때여서

우리들은 모두 곡소리에 놀라 오빠를 봤는데

엄마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채 눈물을 쏟아내며 온 힘을 다해 곡을 하는 오빠를 보고는

모두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를 위해 깊은 애도해 준 오빠 고마워요.

존경하고 사랑한다 말해준 오빠

엄마도 오빠를 참 아꼈답니다.


엄마는 외로웠을지 몰라도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분들의 애도와 애통함과 엄마에 대한 추억을 보고 들으며 우리 엄마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참 훌륭하게 사셨다고 다시 한번 느꼈어요.


엄마 존경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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