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면서도
행정 은행 부동산 관련 정리를 하며,
맞닥뜨려야만 그때 알게 되는 절차와 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큰 슬픔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장례 직후 모두 모여 행정 금융 업무를 한 첫날
아빠와 딸 다섯 군단은
은행 여러 곳을 다니며 각자의 역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섯 딸을 당당히 키우고자 하셨던 부모님.
특히, 교육 담당 엄마의 철학 아래 키워진 딸들은 각자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자랐고, 지금은 20~30년 차 나름의 베테랑들이 되었다.
아빠는 그런 딸들을 슬프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한 얼굴을 하고 바라보시고 계셨다.
우리는 그렇게 잘 훈련된 군단처럼 움직였음에도
은행업무 마감 시간이 다되어서야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많음을 깨닫고
법무사를 고용하기로 한다.
그때 우리 모두는 지쳐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일종의 각성 상태였다.
특히
엄마의 입원부터 장례 전 후
모든 상황을 전두지휘하고
이끌어가는 큰 언니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았다.
충혈된 눈으로 종종 거리며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이끄는 언니가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큰언니 상태를 보고 우린 기운을 차려야 한다며
집 근처 식당에 모여 한우를 구웠다.
우리 모인 자리에서 딱 엄마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
왜진작 이렇게 딸 다섯 엄마 아빠 온전히 우리 식구만 모일 생각을 못했을까.
각자의 가족을 챙기고. 데려오고.
그게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오롯이 우리의 가족
딱 그렇게만 있는 분위기와 기분은 달랐다.
그 자리에 엄마만 없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다섯 딸과 엄마 아빠
오롯이 우리 가족
이 모임을 왜 진작 갖지 못했지.
고기를 먹으며 울컥한다.
후회를 넘어 한스럽다.
그날 우리 모두는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비슷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같이 웃고 떠들다가도
누구랄 것도 없이 울음을 쏟아내곤 한다.
법무사 일은 법무사에게로 이관하고
우리는 또 다른 계획한 일을 했다.
엄마의 유품정리
첫 번째로 엄마의 방과 물건들
옷과 모자를 정리했다.
엄마 냄새가 그대로인 옷과 모자 등을 모두 꺼냈다
걱정한 것과 다르게
엄마 옷을 보며 우리는 울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엄마 옷이 허름하고 구멍 나 있거나 적었다면 마음 찢어졌을텐데 엄마의 옷들은 모두 이쁘고 좋은 것들이었고 예상했던 것 보다 많기도 했다.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다행이라고 우리 엄마 이쁜 옷 많아서 다행이라고
엄마 취향을 고려해서 사드린 고상한 옷 모자들도 많았지만,
엄마의 로망이 반영된 엄마가 산 옷과 모자들도 많았다.
엄마는 시어머니도 아니고 며느리도 없으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카페에 가입하시곤
거기서 여러 먹거리와 물품들을 사셨었다.
그외 수산물 카페 등이 있지만,
엄마는 유독 시며느리 카페를 좋아하셨다.
우리에게 보내어지는 상당수 물품들이 그곳에서 구매한 것들이었다.
엄마의 흔적을 찾고자 가입하고 들어간 카페에서
엄마의 댓글을 찾아보았다.
역시나 따뜻하고 간결한 댓글들.
댓글만 봐도 엄마가 느껴진다.
옷과 모자. 구입하셨던 댓글 목록들을 보며
엄마는 참 열심히 많이 사셨고 나누셨구나
엄마 돈 쓰는 재미를 제법 느끼셨겠구나 싶어서
그게 또 마음이 좋았다.
아끼느라 사시고 싶으신 것 못 사셨으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이 한결 덜어지니 그것도 감사했다.
엄마
너무 잘하셨어요.
더 해드리고 싶은 것
함께하고 싶은 것
못다 한 것 많지만
그래도
엄마 마지막 시간들
하시고 싶은 것 하시고 사시고 하셨던 흔적을 보니
우리 마음이 한결 나아요.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