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처음 개설 했을 땐
엄마가 열만 있는 폐렴으로 입원하고
갑작스런 급성호흡부전으로 중환자실로 이동하고
인공호흡기를 삽관하고
폐렴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과정대로 나아져
인공호흡기를 발관 해서
일반병실 이동할 것을 생각하고 준비하다가
이틀만에 재삽관을 하고
골수이형성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TP53이라는 난치성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혈액암을 진단받고
그 이후 반복되는 과정이
정신없이 매일 펼쳐지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던 때.
그 시간 속에서
엄마의 투병이 길어질 거라 예상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나름 정리해 보고자
개설했었다.
그런데
개설 후.
첫 글을 쓴건 엄마가 돌아가신 후 12일째 되던 날이 되어서였다.
엄마가 퇴원 후
어디로 가시느냐가 우리의 준비 사항이었지.
장례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케이스였다.
본가든 언니집이든 우리집이든
병실이든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이든
우리의 고려 사항에 장례식장은 없었었다.
그런데
인공호흡기 삽관과 발관의 반복
심장문제
재감염
내성균
수혈 혈소판 면역수치
열
기관절개
...
하루하루 무엇인가 좋아졌다가 나빠졌고
우리 가족은 그에 따라 널뛰기를 했고
그간 생각했던
신념이나 자존심 따위
예상치 못한 상황 한가운데서 결정을 해야 하는
급박한 하루들이 이어졌다.
그 상황에서도
혈액암 카페에 가입하고
혈액암 협회에서 지원하는 내용을 확인하고
TP53 논문을 서치하고
MDS 전문의를 찾고
병원을 찾고
전화를 하고...
엄마의 끝이 그곳 중환자실은 아닐거라 생각했었다.
우리는 기도하고
찾아보고
상담하며
그다음 단계를 준비했었다.
때론 피식 웃고
인공호흡기를 거부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까지 너무도 명료했던 엄마.
그래서 믿기지 않는다.
25 년 2월 3월 날짜가 적힌
업무 일지, 메일만 보아도
내 심장은 내려앉는다.
사십대 후반으로 가는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무덤덤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엄마에겐 그냥 딸이고 아이이다.
엄마는 다섯살 때도 지금도
그냥 나에게 엄마이다.
내가 글을 쓰며
정리를 해보자 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렇지 않다.
엄마가 있다.
없다.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두렵지 않다가.
혼자가 되었다가.
그러다가
엄마
엄마의 인생
엄마 그대로의 삶을 생각한다.
아까운 엄마.
외로웠을 엄마.
훌륭하고 멋진 엄마.
우리 엄마.
이 한탄과 회환과
정리되지 않은 아픔의 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애시당초 목적이란 게 있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더없이 슬프고
무기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