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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진을 보면 낯설다

by 막내딸

엄마 사진은 얼마 되지가 않는다.


16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엄마는 후유증이 크게 남았다.


다시 풍성하게 날 줄 알았던 머리카락은

아기 배넷머리처럼 자랐고,

발 저림 증상은 좀처럼 낫지 않았고.

이전 기운을 회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엄마가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엄마는 점점 나이가 들었다.


유방암 수술은

엄마는 장년과 노년의 구분자가 되었다.


엄마는 왜 좀처럼

다른 완쾌 케이스처럼 깨끗이 낫지 못했을까.

당시 표적치료 조건이 되진 못해

광범위한 항암치료를 한 것이 이유가 됐던 게 아닐까

결국 그때의 그 강력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유방암 완쾌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엄마의 몸에도 무리가 가게 했고

결국 유전자 변형(tp53)까지 초래한 것일 거라고 예상해 본다.


그 지점까지 가게 되면

그때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을 거라고

어쩔 수 없는 후회를 한다.


엄마는 그 이후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풍성한 가발도

가발을 벗은 원래의 모습도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엄마 그때 나이는 환갑을 막 넘긴 나이.

봉사 단장으로

오카리나 연습생으로

스포츠 댄스와 피아노 초보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신나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중에

유방암이라는 날벼락이 찾아왔다.


그 몇 년 전 갱년기를 맞이한 엄마는

머리 복잡한 책은 그만 접어두고

몸을 움직여보겠다는 야심 찬 결심으로

위에 나열한 활동을 참 재미있고 즐겁게

참 잘 해내었다.

그간 엄마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신나 연신 사진을 찍으러 다니셨고

딸들은 변한 엄마를 당황스럽지만 유쾌하고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바라봤었던 것 같다.


아빠도 딸들도

"엄마 그래요! 즐겨요!"

했던 마음이었던 거 같다.


스포츠댄스 동아리 활동으로 공연을 하신다며

휘황찬란한 파란 의상을 입고

우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엄마의 신난 모습

아빠와 우리의 환호성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담은 사진


평소라면 부끄러워했을 엄마는

그때

자신감 넘치고 신나는 엄마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셨다.


엄마.

그때 엄마 너무 신나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때 그 모습 언제나 간직할게요.



그런데 엄마.

유방암 수술 이후 항암까지 마

너무 지치고 힘겨웠잖아요.

근데 엄마

엄마가 이겨내 줘서 너무 감사했어요.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고

엄마라서 마냥 좋았어요.

그리고 다시 엄마 인생을 찾고

엄마가 가진 기력으로

엄마의 강인함으로

그 이전 이후 어느 때이든

엄마는 나의 엄마로

언제나 최선을 다하셨어요.

엄마는 이전이든 이후든

제게는 우리 가족에게는 다를 바 없는 우리 엄마였어요.


엄마.

저는 요즘 매일 위령기도를 해요.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에요.

아직 교리도 시작하지 못했고,

여섯 살 때 받은 유아세례가 전부지만

천주교식 장례를 치르고,

장례 내내 위령기도와 미사

장례미사와

성요셉공원

그 모든 게 엄마가 천국에서 천사로 가는 축복의 의식으로 모두의 기도와 염원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엄마가 천국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면

조건을 거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가는 접어두고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하느님 앞으로 다가가고자 해요.


엄마.

엄마의 사진을 보면 왜 이렇게 낯설까요.

내 앞에 있던 엄마는

사진과는 달리.

따뜻한 손과 하얀 얼굴.

분한 목소리로 제 곁에서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말랑거리는 엄마였

사진 속 엄마만으로는

아직 다 낯설어요.


제 나이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고

그 이후가 허락될지 모르지만

엄마가 없는 세상이

앞으로 많이 남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낯설어요.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익숙해지겠.

나의 엄마.

오여사님.


사랑해요. 엄마.

우리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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