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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재능

by 막내딸

마음에 담아두어도 흩어지지 않는 엄마지만

그 순간순간 엄마를 기억하는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


훗날

이때 내가 담아두었던 엄마를 꺼내보고

우리가 엄마를 보내드리며 지나왔던 시간도 들여다보고

엄마가 보내준 참깨 한 톨 씻겨버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처럼

흩어져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우리 엄마를 글에서라도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 없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던 엄마를 위해

정작 엄마 앞에서는 다 하지 못한 엄마 칭찬을 오늘 마음껏 해보려고 한다.


천국에서 춤을 추시는 엄마를 상상하며.


우리 엄마 오여사는

똑똑하고

사리분별이 뛰어났고

선했고

딸 다섯을 건강히 잘 낳아 잘 키웠고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고

키 크고 늘씬했고

아주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첫눈에 홀랑 반할 만큼 매력적이었고

요리를 참 잘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깨달은 건

우리 엄마가 요리 금손이었다는 것.


누구나 엄마가 되면

사시사철 제철 음식

특산지 음식

절기마다 먹는 음식을

조미료 없이 엄마의 손맛으로 뚝딱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돼 보니 엄마가 된다고 누구나 요리 금손이 되는 것 아니더라.


슴슴하고 감칠맛 나는 엄마표 된장찌개와 이맘때 담던 아기열무김치를 자작하게 부어 비벼먹는 비빔밥은 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다.


누구나 떠오르는 엄마의 음식이 있을 텐데

우리 가족에겐 아마도 된장찌개와 열무김치로 비빈 비빔밥이 아닐까.


남편과 결혼하고 내가 엄마표 비빔밥을 해주려고, 밥에 된장찌개를 들이붓자 남편은 비빔밥이 아니냐며 왜 된장찌개를 들이붓냐고 기겁을 했다.

그리고 한입 먹어보곤 가느다란 눈이 똥그래졌다.


엄마는 조미료를 쓰지 않으시고도, 깊은 맛이 나는 음식을 만들어내셨는데, 그 비법은 육수라고 하셨다.

육수를 내실 때면 멸치 듬뿍 다시마 말린 표고버섯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어느 요리책에서 육수를 낼 때 멸치 일곱 마리쯤 들어가는 육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면 엄마 육수에는 멸치 한주먹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국물용 멸치는 자고로 마릿수를 세는 게 아니라 주먹수를 세는 게 아니었나.


또 하나

엄마는 뜨개 금손이었다.

딸들의 예술적 재능과 미적 감각은 부계에서 왔다고 생각했으나


20년 전 어느 날 뜨개를 시작해서

엄마가 뚝딱뚝딱 만들어놓은 옷 보고 우리는 엄마의 숨겨진 재능을 뒤늦게 발견했다.


20년이 지난 아직도 새것 같고 이쁘고 정교하고 섬세하다.

엄마 표현으로는 뜨개방 도사님들에 비하면 풋내기라고 겸손해했지만 결과물은 도사님들 못지않았다.


또한, 뜨개방에서도 똑똑한 엄마는 콧수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계산해 내어 도사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는 언니들을 위해서는 앙고라 블랙실로 멋진 가디건을 선물해 주셨고,

나는 막내라고 휘황찬란한 무지개색 가디건과 회색 원피스를 떠 주셨다.


나도 고상한 옷 좋아하는데

막내에게는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싶은 엄마 마음이셨나 보다.

내가 나도 블랙 해주지... 하면

엄마는 그 실이 얼마나 좋은 실인지 지금은 구하려 해도 구할 수도 없는 실이며 안 입을 거면 가져오라 하던 레퍼토리는 열 번은 들은 거 같다.


그 컬러풀한 가디건을 아직 밖에 나갈 때 입어보지 못했는데, 겨울부터는 입고 다녀야겠다.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 엄마가 떠준 거라고 자랑하고 입고 다녀야지.


엄마가 옷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떠줬는지.

셋째언니는 엄마가 떠주신 블랙 앙고라 가디건에 멋진 깃털 코사지를 달고 다녔는데

장례를 치르고 날씨가 쌀쌀해 아빠께 급히 그 가디건을 입혀드리게 되었다.

깃털 휘날리는 코사지를 단 블랙 앙고라 가디건을 입고 중절모를 쓴 아빠 모습은 패셔니스타 GD할아버지 느낌이었다.


엄마는 낡지도 않고 입는 사람마다 착착 붙는 신기한 옷을 만들어내셨던 거다.


엄마는 지금쯤 천국에서 춤을 추고 계실까

아직 엄마 칭찬 반도 못했는데.


엄마.

엄마 자랑할 게 너무 많아서 조금 쉬었다 할게요.

우리 멋진 엄마.

아까운 우리 엄마.

행복하게 춤추시고 계세요.


사랑해요.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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